소설리스트

〈 2화 〉2화 (2/173)



〈 2화 〉2화

호구의 인생. 어떤 DNA가 내 몸에 스며들어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자를 위하거나 여자를 위해서 이 한몸 던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어쩌면 야동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건 그런 본능을 부정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당하는 듯한 모습에서  안에 있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는 거다.
아무튼 여자를 건져내는 데는 성공했다. 온통 젖어서 몸이 무거워진 상태로 사람 하나를 뭍으로 끌어내는게 힘든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숨이 가쁘고 땀과 물에 흠뻑 젖어버렸다.
근데 이 여자는죽었는지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스마트폰을 찾았다. 그런데 주머니에 있어야할 스마트폰이 없었다. 아무래도 떨어질 때 한강에 빠트린 듯 하다.

“미친. 미친. 미친!”

문제는 내가 구조조치를 할 수 없다는 거다. 군대에서 인공호흡에 관한 동영상도 봤고 교육도 들은 기억은 있지만, 시팔 그걸 진지하게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알고 있는 바로는 인공호흡을 잘못하면 자칫 갈비뼈가 으스러질수도 있다고 들은 것 같다.
그래도 일단 할건 해야했다. 이대로 사람이 죽는걸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나는 우선 여자의 상의를 벗겼다. 브래지어를 차고 있는 여자의 가슴과 가슴 사이에 두손을 포개서 얹었다.

‘자, 여기까지는 지나가는 똥개새끼도 아는 거야. 기억하자. 기억하자. 기억하자.’

나는 두팔을  뻗은 상태에서 반동을 주고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강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약하지도 않게.
본능인지 어떤 느낌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내가 손을 대자마자 여자의 몸에서 반구 모양의 붉은 기운이 몸전체를 타고 움직이는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야동을 볼 때나 tv에 나오는 헐벗은 모델들을 볼 때도 간혹 이런 반구 모양의 붉은점이 왔다갔다하는 걸 본적이 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기 눈에는 안 보인다고 그랬다. 그래서 헛것을 보나 싶었는데 그 이후에도 그런 증상들은 계속 됐고 나는 그때마다 쉬쉬하며 넘어갔었다.
이건 뭐지? 싶은데 그 붉은점이 내가 손을 대고 있는 곳보다 살짝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살짝 위치를 옮겼다. 그리고는 살포시 압력을 줘서 누르자 여자의 몸 전체가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내 상체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입에서 물을 쏟아냈다.

“커헉. 허윽!”

살렸다. 살려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뭘 어째야할지 몰라 붉은점이 있는 그녀의 등을 다독여줬다. 이전에는 없었던 생기. 창백했던 몸 곳곳에 붉은점이 다닥다닥 생기면서 추위를 느꼈는지 오들오들 떨어댔다.
나는 그녀의 붉은점들을 살포시 손으로 문대줬고 그때마다 붉은점들이 서서히 사라지는게 보였다.

“괜찮아요?”

내가 말하자 그녀가 원망의 눈초리로 날 올려다봤다. 머리가 얼굴에 달라붙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예쁜 얼굴이다. 눈도 큼지막하고 쌍꺼풀도 짙다. 약간은 사납게 느껴질 정도의 뾰족한 콧날과 비인간적으로 딱 떨어지는턱라인을 보고 단번에 수술한 얼굴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어요.”

어이없는 소리. 쿨럭이면서 하고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그녀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또 떨어지든 말든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제가 보는 앞에서는 하지 마세요. 자칫 제 목숨까지 잃을까봐 두려우니까.”

일어나서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낸다고 털었지만 헛수고다. 물기 때문에 덩달아 묻은 흙을 조금이나마 털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내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여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게 사과했다. 그래도 심성은 착한 여자인 듯.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건 미안한 모양이다.

“댁이 어디세요? 지금 못해도 새벽 3시는 됐을텐데.”
“...”

여자가 말이 없어서 내가 벗겨버린 그녀의 상의를 건넸다. 여자는 옷을 입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신이 지금 속옷만 입고 있다는 게 아무렇지 않은지 태연하게 나와 눈을 마주치면 옷을 입었다.

“데려다 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갈까요. 이대로 있으면 자살도 못해보고 고뿔 걸려서 죽을 걸요.”

여자는 내 말이 뻘하게 웃겼는지 피식하며 물미역같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제1의 목숨을 한강에 던지고 나니까 이제 좀 살만한 모양이다. 어쩌면 기분이 좆같아서 그냥 한강물에 발이나 담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스마트폰은 없어졌는데 담배는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젖은 성냥개비처럼 이미 쓸모를 잃은 상태였다.

“아, 다 젖었네. 시팔.”

나는 그중에서 그나마 덜 젖은걸 입에 가져다 대고 라이터를 켰는데 역시나 헛수고다. 내가 한참을 담배랑 옥신각신하고 있자 여자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어댔다.
미치셨어요? 나는 그런 물음이 담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고 그녀도 무안해져서 웃음을 그치더니 마침내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담배 하나 사드려요?”
“... 이왕이면 스마트폰도 좀 사주세요. 그쪽 구하려다가 한강에 빠트린거 같으니까.”
“참내. 그러니까 누가 구해달랬냐고요.”
“그쪽이... 하, 그만합시다.”

담배는 사줘도 스마트폰은 수지타산에 안 맞는다? 시벌 그 목숨 가격이 4500원 정도였던 거다. 내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담배를 바닥에 던지는 동안에도 그녀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예쁜 얼굴로 빙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갑니다.”

새벽 3시. 사위는 조용하다.

한강을 낀 가파른 둔덕을 돌아서 올라가야 길이 보일 것 같다. 여기는 대체로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곳일 수밖에 없다.  닿는 곳을 길 삼아 걷는데 여자가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담배. 안 사드려도 되요?”
“아 됐어요. 담배 사줄거면 스마트폰도 같이 사주던가.”
“알았어요. 스마트폰도 사줄게요.”

나는 멈춰서서 뒤를 봤다.  여자, 지금 자기 구해줬다고 알랑방귀뀌는거야 뭐야? 문득 엉덩이 흔드는 여우같은 김서아가 떠올랐다. 내가 한두번 속지. 가만, 근데 이건 내가 손해보는 건 아니잖아.
나는 다시 길을 걸으면서 말했다.

“댁이 어디시냐고요.”
“안 알려줘요. 그리고 지금 집에 들어갈 생각도 없어요.”
“그럼 우리집 올래요? 저 자취하는데.”
“푸흡. 자취가 무슨 상관이래요? 부모님이 안 계시면 뭐라도 할 것처럼.”
“아니. 내 말은 지금 이 시간에 들어가기 애매하고 부모님이 계시면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그렇죠.”
“그렇게 구구절절하게 설명 안 해도 되는데.”
“제가 찐따라서.”
“찐따가 다른 사람 목숨 구해준다고 한강에 뛰어드나요?”
“원래 찐따가 잃을  없어서 더 무서운 법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그런 걸로 해요. 자취방은 여기서 멀어요?”

여자는 어느새 내 옆까지 따라붙어서 함께 걸었다.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진짜 우리집 가게요? 생판 처음 보고 이름도 모르는데?”
“그러는 그쪽은 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을 구해줬는데요?”
“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급후회되네. 내가 왜 그랬지?”

누가 들어도 장난기 가득한 말이었다. 나는 새삼 여자와 단둘이 걷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감정이 새록 떠오르는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여자가 맨발로 걷다가 돌에 잘못 발을 디뎌서 기우뚱했다. 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아우, 진짜. 조심좀 해요.”
“... 미안해요.”
“괜찮아요? 걸을수 있겠어요?”
“발을 좀 삔거 같아요.”

여자는 힘겹게 말하며 다리를 절뚝거렸다. 정말 가지가지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속에서 애틋한 마음이 생겨났다. 잡고있는 그녀의 팔은 여리고 가늘었다. 옷이 물기 때문에 몸매에 쫙 달라붙고 속이 다 비쳐서 야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이와중에 발기가 되지는 않았다.

“업혀요.”
“네?”

당황한 그녀에게 등을 보여줬다.

“업히라고요.”
“아, 걸을 수는 있는데.”
“잔말 말고 업혀요.”

그녀는 내게 업혔고 나는 그 상태로 도로쪽으로 걸었다. 방금 전까지 브래지어까지 다 봤는데 막상 등짝에 가슴이 뭉개지니까 사뭇 다른 감정이 생겨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문드문 차가 지나다녔고 다행히 택시가 다녀서 택시를 잡아 탔다. 기본요금 밖에 안나오는 거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나는 젖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눈물을 머금고 택시비를 지불했다.
내리자마자  여자를 등에 업고 내 자취방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누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는 어려운, 언덕 위의 허름한 건물이다. 재개발이 아직까지 안 된 곳이라 주변 지형지물도 구려서 안 그래도 허름한 건물이 더 추레하게 느껴졌다.

“좋은 집에 살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죠?”
“아니에요. 신세 지는데  그런것까지 생각하겠어요.”
“일단 먼저 따뜻한 물로 샤워부터 하세요. 물 틀어놓고 좀 많이 기다려야 따뜻한  나오니까  전에 드라이기로 몸좀 말리고 계시던지.”

문을열고 들어가자 그녀가 헤벌쭉 웃었다.

“흐흐. 홀아비 냄새. 여자친구 없죠?”
“아씨. 쫒겨나고 싶어요?”

내 말에 여자는 싱긋 웃으면서 바로 옆에 딸려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자취방의 구조가 그렇다. 들어가자마자 신발 벗는  옆에 바로 화장실이 딸려있는 구조다. 어떤 건축가가 똥이 준내게 마려워서 이런 구조로 지은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침대 하나, 그리고 컴퓨터 책상 하나, 옷장 하나. 그렇게 끝이다.
나는 화장실에서 수건만 꺼내 젖은 몸을 대충 닦아내고 의자에 앉았다.
스펙타클한 하루였다. 김서아한테 전화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 닭갈비를 맛있게 쳐먹고 보험가입하고 한강까지 걸어가서 목숨걸고 사람 하나 살려주기까지.  인생에  안되는 진귀한 날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인생에 파노라마가 있을 거였으면 일기라도써볼걸 그랬다.
그나저나 나 혹시 저 여자랑 오늘 자게 되는 걸까. 보여지는대로 침대는 하나. 늦은 시간이니 자고 갈 거라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모쏠아다에게는 너무도 벅찬 순간이다.
위잉거리는 드라이기 소리. 그리고 이내 쏟아지는 물이 어딘가에 부딪쳐서 다시 매끈한 타일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순간, 묘한 상상을 하게 된다. 김서아나 이 여자나 둘 다 몸매가 좋은 편에 속할 거다.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도드라진 가슴과 쫙 달라붙은 옷 때문에 드러난 콜라병 몸매. 여러 개의 뽀얀 둔덕으로이뤄진 몸에 따뜻하게 흐르는 물이 떨어지고 있을테다.
!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오늘 이 여자랑 잔다! 야동에서나 보던 장면들을 생각하며 무한대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여자의 가녀린 허리를 잡고 밑을 부딪치는 상상과 가녀린 손가락 사이에 거친 내 손가락이 들어가서 깍지를 끼고 적절한 자세와 적절한 언행으로 뜨겁게 분위기를 달구는 상상을 했다.
결국 오늘 이런 일을 겪게 되는구나.
이십구년동안 버틴 내 고추야, 드디어 너에게도 쓰임새라는 게 생겼다, 임마!
나는 또 생각을 했다. 모쏠아다인게 티나면 어떡하지? 야동을 봤으니까 거기에 나오던 대로만 딱 따라하면 될까. 처음하면 구멍도 제대로  찾는다던데.
이런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있는데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는지 여자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저기... 갈아입을 옷좀 주실래요? 아무거나. 반바지나 티같은거라도...”
“아, 예!”

나는 옷장을 뒤져서 그나마 괜찮은 걸 찾았다. 그런데 그와중에 성적 판타지가 발동해서 큰 와이셔츠랑 대충 집에 있을 때 입는 반바지를 그녀에게 건네줬다.
후욱후욱. 그래 오버핏의 와이셔츠. 손을 다 가려서 소매를 손가락으로 쥘 정도의 그런 오버핏. 나는 조금씩 발동이 걸려오는  느껴졌다. 상상력이 이렇게 자극적인 거다.
아다를 떼면 제일 먼저 할 일. 컴퓨터에 있는 야동을  지운다. 그 후에 언제든 하고싶으면 첫날밤을 떠올리면서 그 기억을 딸감으로, 상상력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자극적인 장면들을 연출, 즐겁게 해결한다.
이 여자랑 매일밤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자기 몸에 맞지 않게 큰 와이셔츠를 입은  나왔다. 밑단이 길어서 반바지는 입었는지 안입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기다랗고 여리여리한 다리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 모습이 더럽게 섹시하게 느껴졌다.

“드라이기 갖고 나왔어요. 말리고 있으려고. 추우실텐데 얼른 씻으세요.”
“아, 네.”

나는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갔다. 밖에서 우웅하는 소리가 들린다.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기분좋게 따뜻한 물에 몸을 씻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나만 모르던, 삶의 현장인가. 모텔에 들어가면 “오빠, 나 먼저 씻을게.” “어, 빨리 하고 나와. 나 못 참겠어.” “아잉. 짐승.” 이런 대화들이 오갈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녀와 내가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뿐.
생각해보니 이름도 모르네. 아니, 이름을 모르니까 더 흥분된다고 해야할까. 흥분되니까 마음이 급해지네. 아, 씻는게 중요하냐. 빨리 밖으로 나가자.
나는 바디워시로 몸을 빠르게 씻고 수건으로 닦아낸 후에 챙겨놓은 옷을 입었다. 혹시라도 나체로 나갔다간 뺨을 맞을수도 있으니까.
밖으로 나가자 여자는 쥐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형광등에 비치는 얼굴은 잔뜩 달아오른 상태였다. 내가 나온 걸 뒤늦게 눈치챘는지 눈길을 던져줬다.

“나왔어요?”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내쉬는 그녀. 근데 야릇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주변 공기도 그렇고 그녀의 몸에 생긴 붉은 반점도 그렇고.

“... 열이 오르는거 같아요. 하... 아까는 괜찮았는데.”

그녀의 붉어진 이마에 손을 가져다댔다. 확실히 열이 난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걸까.
나는 그녀를 최대한 편안하게 눕혔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짤막하게 말하면서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다.
다른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녀의 몸에 생긴 붉은 반점들이 신경 쓰였던거다.
아마 그녀도 몸이 더웠기 때문에 땀을 닦아주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였을 거다.
반점들은 몸의 이곳저곳에 간헐적으로 퍼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까 접질렀다고 했던 발목 쪽이 유난히 시뻘겋게 불타고 있었다.
이거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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