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5 7. 악의 발화 =========================================================================
마리 역시 마리아를 보았다. 대현자라는 작자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처음부터 불길하다 했더니, 그자가 마리아의 새하얀 목덜미에 이를 박으려 한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뱀이 먹잇감을 물기 직전의 탐욕스럽고도 위협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과장스럽게 한 손을 높이 드는 모습을 보니 뭔가 제물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마리는 두고 볼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일행이었던 저 소녀를 제물 삼다니!
“가엾잖아!”
마리는 위험에 빠진 마리아를 모른 체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체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호위기사를 보았다. 이미 호위기사는 결심한 눈빛을 하고 있다. 마리아를 구하려는 결심이다.
“아가씨.”
“응?”
“나서게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럼 잠시 물러나 계시길 부탁합니다.”
그 사이 마리의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주위엔 심상찮은 바람이 사람들을 휘감았다. 단상 주변으로 강풍이 불었고 축제를 수 놓는 색색의 깃발들이 수선한 소리를 내며 펄럭였다. 마리는 그 바람이 드래곤의 마법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호위기사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신을 아릿하게 하는 살기가 그 증거!
그녀가 사람들에게 외쳤다.
“모두 피해요!”
사람들 역시 마기에 예민한 부류들만 모인지라 이미 드래곤의 살기를 느끼고 자리를 피하고 있다. 단상 위의 대현자와 드래콘 소녀, 그리고 단상 아래 여행자 차림의 한 미청년-하이너-를 제외한 모두가 비껴 나가는 모습이 마치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퍼지는 모습 같다.
“흐… 으아?”
슈테반은 제물을 바치는 의식인 흡혈을 멈추었다. 드래콘의 마기를 빨아들이는 의식을 진행하는 데 방해를 받다니.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성가시고 불쾌하게 여기기보다는 흥미롭게 관조했다.
“으흐흐…… 이게 무슨 소동인지 한 번 볼까으으흐흐…….”
그 사이 하이너는 여태 해온 것보다 훨씬 조용하게 변신을 시도했다. 인간의 몸체에서 거대한 드래곤으로 변해가는 일련의 과정이 마법영상구의 느린 화면을 보듯 느른하다. 강함을 느낄수록 부드럽게, 분노를 느낄수록 침착하게 굴어야 한다고 자기 스스로 끊임없이 최면을 건 덕분이다. 이런 변신에도 적응했는지 고통도 미미한 정도다.
“아니, 저건!”
“드래곤이야! 드래곤이라고!”
온전히 변신을 마친 하이너를 보고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고, 슈테반은 히죽 웃었다.
“흐흐, 이거 이거… 드래곤께서 용케도 그 굉장한 마력을 숨기고 계셨군. 흐흐…….”
슈테반의 품에 있던 마리아가 단상 안쪽으로 패대기쳐졌다. 슈테반은 이제껏 음산하게 중얼거린 것과는 다르게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크게 외쳤다.
“이깟 드래콘 따위완 비교도 할 수 없는 맛 난 피가 오셨잖아! 흐하하하!”
맛 난 피. 그것은 마력생물 드래곤의 피에 깃든 마기를 뜻한다. 슈테반은 신이 난다는 듯 드래곤을 보았다.
아아. 이렇게 반가운 존재라니. 줄곧 드래곤의 마기를 숨기고 있던 걸 보면 마력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아주 강한 녀석이 제 발로 찾아와 준 것이다! 슈테반은 여태 자신의 적이 마탑의 고상한 족속들이라고만 생각했다. 언제나 간접적이고도 우회적인 방식으로만 루앙의 대현자에게 힘을 자제할 것을 종용, 혹은 협박해온 그런 가식적이고 넌더리 나는 것들을 적이라고 둔 것에 슈테반은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따분한 틀이 깨지고 드래곤이 나타났다.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데서!
“흐…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슈테반이 몸을 수직으로 띄우자 하이너 역시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들 사이엔 축제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포함, 온갖 물건들이 먼지처럼 나부꼈다. 금세 하늘엔 새하얀 인간의 형상과 검디검은 드래곤의 형상이 서로를 마주 본 채 대치했다. 광장에 모인 마법사들이 저마다 중얼거렸다.
“대결인가!”
“역시 그렇게 해석해야겠지?”
“너무 갑작스럽긴 해도 이거 진짜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겠어!”
대현자와 드래곤이 서로를 노려보는 사이, 마리는 때마침 몸에 늘 지니는 스크롤 중 항풍의 힘을 지닌 것을 소진하여 거친 바람을 뚫고 단상의 마리아에게로 달려갔다. 칼춤처럼 무자비한 먼지 바람을 뚫고 돌진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여쁜 숙녀가 아니라 재빠른 산 동물 같다.
“저 금발 여자는 어째서 제물을 구하는 거지?”
“글쎄.”
마리는 두 무시무시한 마력 생물체들이 싸우는 여파에 행여나 마리아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마리아를 부축하여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융통성 있는 드래곤이라면 사람들이 모인 곳을 최대한 피해 대결하리라!
마리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두 강한 마력 생물의 대치에 걱정의 말을 했을 것이나, 애써 걱정을 지워버린 그녀는 호위기사를 향해 응원의 말을 전할 뿐이다.
“지지 마!”
갑작스러운 말에 마법사들이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그 시선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당당히 외쳤다.
“싸움까지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리됐으니 나도 모르겠어! 난 널 믿어! 넌 이길 수 있을 거야! 저딴 하얀 병신에게 지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러자 어떤 마법사들은 대현자를 보고 ‘하얀 병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불쾌감을 표했고, 또 다른 마법사들은 재미있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드래곤은 놀라운 청력으로 지상에서 나오는 모든 목소리를 들었다.
“루네에서 40년을 살았지만, 대현자께 시비를 거는 이는 인간과 마력생물을 통틀어 처음인 것 같군!”
그러자 한 예리한 목소리의 노인이 대꾸했다.
“저건 시비가 아닌 것 같군?”
“어째서?”
“제물로 나온 이는 드래콘 처녀라고. 드래콘 처녀가 대현자께 피를 빨려 마력을 흡수당하는 것이 대관절 드래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보통은 드래곤이 그러든가 말든가 하고 무시하는 게 좋아. 그러는 게 서로에게 상책인데, 저 드래곤은 대현자의 제물 의식을 무시하기는커녕 공격을 시도할 낌새를 보이잖은가. 분명 드래곤과 드래콘 처녀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야.”
“이른바 둘은 연인관계라 이건가?”
사람들의 말에 하이너는 비웃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얼굴을 감싸는 단단한 드래곤 비늘이 비웃기에는 너무나 무겁다.
‘웃기는 소리! 연인관계라니! 애당초 드래콘과 드래곤은 그 종부터 다르다고! 금단으로 엮지 말란 말이다! 이 변태 마법사 자식들아!’
그는 아가씨의 응원도 들었다.
난 널 믿어! 넌 이길 수 있을 거야!
난 널 믿어! 넌 이길 수 있을 거야!
난 널 믿어! 넌 이길 수 있을 거야!
하이너는 슈테반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며 마음으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요. 제가 저 자그마한 녀석에게 진다는 건,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인간의 나이로 치자면 아직 아이에 불과한 마리아의 피를 빨다니! 드래곤으로서, 아니, 오를린 남자의 명예를 걸고 저 사악한 자를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드래곤이 거칠게 포효했다.
그아아아아아아! 그아아아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였다.
겁이 많은 사람들은 그 소리에 질려 도망가느라 바쁘고, 두 마력생물의 싸움에 흥미가 생긴 노련한 마법사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줄곧 서로를 보기만 하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둘을 보며 사람들이 갖가지 추측의 말을 쏟아내었다.
바로 붙기엔 무리겠지, 아마도 서로 힘을 가늠하는 중일 테야, 대현자께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맞붙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하신 게 분명해. 그래서 드래곤에게 장소 이동을 제의하시겠지, 드래곤이 무턱대고 변신한 기세와는 다르게 지금 대현자님께 잔뜩 겁을 먹고 얼어붙어 있어, 저 포효는 겁이 나서 지르는 것에 불과할 뿐…….
하지만 그 말은 모두 틀렸다. 상대의 힘을 가늠하는 데 애쓰는 쪽은 오직 슈테반이다. 지고의 마력에 통달한 뒤 늘 표면적인 적이 없던 그가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드래곤의 도발을 받았다. 그런 슈테반이 드래곤의 힘을 가늠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싸움 장소를 다른 곳으로 정하려 한다는 추측도 틀렸다. 슈테반은 그런 배려심을 조금도 가지지 않은 인물이기에.
슈테반은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 웅장한 마성(魔聲)으로 도발했다.
“으흐흐…… 어째서 공격하지 않지?”
드래곤에게선 대답이 없다.
그렇게 얼마쯤 있었을까. 인내심이 바닥 난 슈테반이 다시 말했다.
“혹시 나와 겨뤄볼 생각이 없…으아아아악!”
드래곤의 입에서 화염이 번개처럼 터져 나와 슈테반을 노렸다. 그 탓에 슈테반의 하얀 머리카락과 로브에 불이 붙었다. 슈테반의 몸체는 순식간에 통구이가 되려 했으나 그 자신이 가진 강력한 회복 마법에 의해 원상태로 돌아왔다. 동시에 슈테반은 재빨리 화염 방어 마력도 둘렀다. 그리고 드래곤과 거리를 넓혔다.
아아. 드래곤의 기습을 받다니!
자극받은 슈테반은 크게 웃었다.
“으흐하하하! 파충류에게 신사적인 것을 기대한 게 잘못이겠지? 흐흐…!”
한번 기습으로 시작한 드래곤은 화염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맹렬한 기세로 슈테반을 태워 없애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심함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화염이 광풍으로 다른 엉뚱한 곳에 번지는 걸 막고자 바람 마법을 중단했다.
기습하는 건 자신인데, 오히려 기습 받는 처지처럼 포효가 터져 나왔다.
구아아아아!
그아아아아!
사실 이런 기습은 기사도를 배우던 시절에는 절대 하지 않았으며 치욕으로 여기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치욕이 아니다. 여행에서 온갖 일을 겪고 또한 륀체르와 베개싸움을 하면서 기습의 효용을 터득했기에 자신은 이제 기습이란 개념 자체에 어떤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어째서 자꾸 짜증스럽게 굉음이 터져 나오는지. 아마도 드래곤 발정기의 효과임이 분명하다.
그아아아아아아아!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슈테반에게 끊임없이 화염을 쏘지만, 슈테반은 공격을 하기보다 방어에만 집중하고 드넓은 공터 쪽으로 빠질 뿐이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행동인가?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엔 저 녀석의 허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의가 배려심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어째서 도망만 가지? 화는 나지만 어떤 공격을 할 수 없으니 그냥 도망가는 건가? 녀석…… 대현자라는 이름은 허세고 실은 약한 놈인지도?’
잠시 그런 생각을 들게 하지만, 약한 놈은 아니다. 드래곤의 집중 화염 공격을 받고도 방어막 하나 손상되지 않은 점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여, 하이너는 화염 공격을 지속하면서 다른 공격을 생각했다. 아무리 불을 뿜어도 손상되지 않는 슈테반의 방어막에 긴장도 느껴졌다.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맞수를 만나서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건 절대 기분 좋은 일일 수 없다! 한때 자신의 일행이던 마리아를 노린 녀석을 상대하는 일 아닌가? 자아. 생각해보자. 만에 하나 아가씨와 자신이 이 광장에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리아의 목숨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몹쓸 놈! 너는 마리아를 죽이려 했어!’
그런 생각에 화염 공격은 더욱 강해졌다. 화염 공격에 이어 드래곤은 전광을 뿜어 공격하기도 했다. 그가 뿜어내는 전광의 모습은 마치 신이 휘두르는 거대한 창과 같은 모습이었다. 공격이 갈수록 격렬해져서 지상에서 그들을 구경하던 마법사들도 화염으로부터의 방어막을 펼쳐야 할 정도다.
마리는 마리아를 꼭 안으면서 무심코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오, 로젠플라드시여! 믿지도 않은 신을 부를 정도로 그녀는 불안하다.
“하이너! 이 자식! 대체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면 어쩌겠다는 거야! 이성을 잃은 거니? 그런 거야?”
드래곤을 노려보던 마리는 잠시 시선을 내려 마리아를 보았다. 이 마력 생물 소녀 하나 때문에 드래곤이 저토록 날뛸 정도인가, 어쩌면 발정기의 힘 때문에 저렇게…… 마리의 생각은 거기까지 뻗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생각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이니, 마리! 우리는 일행이었어. 일행이 다칠 뻔했으니 하이너가 저렇게 화내는 건 당연하다고!’
그때였다. 강한 전광에 방어막이 조금 손상된 슈테반은 화가 났는지 갑자기 더욱 강한 방어막을 두르더니 드디어 드래곤에게로 돌진했다. 아이처럼 따지는 행동마저 하고 있다.
“우와아아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이 삼아 사는 게 당연한 건데 어째서 방해를 하느냐! 네놈은 대지의 마기를 빼앗아 사는 용 주제에!”
슈테반이 돌진할수록 하이너는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슈테반이 조금 전에 외치는 말은 확실히 이곳 루네의 모든 마법사에게 슈테반 자신이 약자임을 공표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하이너는 기분이 좋아야 했으나 그러지 못하다.
‘내가…… 대지의 마기를 빼앗아 사는 용이라고?’
그때 슈테반이 외쳤다.
“흐흐…… 다 먹어주마!”
그 짧은 순간 하이너는 슈테반의 목적을 깨달았다. 슈테반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드래곤의 마력을 미약하게나마 빼앗고 있다! 슈테반은 드래곤의 마력을 빼앗을 목적이다!
불현듯 하이너는 거리에서 들은 슈테반에 관한 정보를 기억해냈다.
「천벌 받을 소리! 대현자께서는 여자의 몸이나 탐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럼 그분은 뭘 탐하시는데?」
「피야. 피라고.」
「흡혈귀란 말이야?」
뒤늦게야 알았다. 가까이 다가오면서 마기를 빼앗는 이 대현자라는 자식! 이 자식은 지금 드래곤의 몸에 붙어 피를 빼앗는 식으로 더욱 깊게 마력을 흡수할 속셈이다!
‘모기 같은 녀석! 그렇다면 그 방식에 따라주겠어!’
드래곤은 슈테반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한쪽 날개를 스스로 물어뜯어 허공에 드래곤의 피를 흩뿌렸다. 그 핏방울들은 모조리 슈테반에게 흡수되었고, 핏방울에 깃든 마력으로 한층 강해진 슈테반은 드래곤의 포효 그 이상의 마성파음을 지르며 거대한 백룡이 되었다. 그러나 하이너만큼 그리 몸체는 크지 않았다. 슈테반은 이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갑자기 드래곤의 상처 난 날개에 달라붙어 핥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쾅!
드래곤은 추락하듯 지상으로 낙하했다. 드래곤의 거대한 바위 같은 몸체가 백룡의 모습을 한 슈테반을 깔아뭉개버린 것이다. 드래곤은 백룡을 완전히 납작하게 만들 기세로 짖어댔다.
그아아아아아아!
드래곤은 그것도 모자라 백룡의 피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지고의 마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슈테반의 모든 마기가 드래곤에게 흘러들어갔다.
하이너에게 흡혈, 흡기의 능력은 없으나, 그런데도 그의 흡기 기술은 능숙하다. 순간이동이 처음으로 가능했던 그때처럼, 강한 의지의 힘이 그의 몸에 기술을 저절로 습득하게 한 것이다.
슈테반의 피, 그가 가진 마기, 그의 기술 모든 것이 드래곤의 몸에 흘러들어 가고, 드래곤은 끔찍할 정도로 진한 포만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날갯짓했다.
그아아아아!
그 순간 마리는 드래곤의 아래를 보았다. 드래곤의 몸에서 뻗은 수백, 수천 개의 나무뿌리 같은 검은 물질이 백룡의 정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백룡은 반항한다고 몸부림쳤지만, 점점 비쩍 말라갈 뿐이다.
그 끔찍한 광경에 마리는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불길해…….”
슈테반을 새하얀 가루로 만들어버린 드래곤은 승천하는 용처럼 하늘로 날아가 구름 위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광경을 본 수많은 마법사가 입을 모아 외쳤다.
“새, 새로운…….”
“새로운 대현자 님께서 나타나셨다!”
“새로운 지도자께서 나타나셨어!”
“이제 이곳은 드래곤의 땅이 되었다고!”
그들은 경배와 찬양의 의미로 하늘을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마리는 짙은 구름 저 너머를 보는 듯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불안함에 자꾸만 입술이 깨물렸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 안긴 마리아에게 묻듯이 혼잣말했다.
“단지 너를 구하려 한 것뿐인데…… 왠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한 듯해.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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