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94화 (94/122)

00094  7. 악의 발화  =========================================================================

신비의 지역 루앙.

마도 루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에서 마도의 대현자에 관한 정보를 모은다는 핑계로 술을 진탕 마신 마리 일행은 다음날 술집 뒷골목에서 잠든 채 널브러졌다.

입술 위로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하이너는 눈을 떴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입술 위를 걷는 게 수백 개의 다리를 가진 절지 곤충이란 것을. 그리고 그 곤충이 입술을 깨물고 있다는 것을. 고작 벌레가 깨무는 것이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아프다.

“…….”

하이너는 그 벌레를 손으로 잡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어째서 여관이 아닌 이런 뒷골목에서 눈을 뜨게 된 걸까. 품위를 잃고 비렁뱅이 부랑자가 된 듯하여 기분이 좋지 않다.

예전에 오를린에서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은 적이 있다. 당시 정신을 차리니 사지가 묶였다는 걸 알았고, 아가씨께 몸을 닦이고 이런저런 능욕을 당했지. 그것도 모자라 드래곤 링클 이식이 되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가씨는 단지 머리 색깔과 눈동자 색깔을 바꾸려고 링클 이식을 시도했다고 말씀하셨지만, 결과적으로는 드래곤이 되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 후로 술이라면 질색했다. 지금처럼 정신을 잃도록 취한 적이 없었다. 물론 아가씨와 술을 마시는 일이 그다지 없기도 했고, 간혹 그런 일이 생겨도 극도로 자제해왔다.

그런 자신이 어째서 또 술을 진탕 마시고 이렇게 뒷골목에서 추하게 잠을 깨는 불상사가 일어나버렸을까. 자신이 품위를 유지해야 할 정식 기사가 아니고 또한, 이곳이 지인들이 많은 고향이 아니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망신을 당하고도 남을 일이다. 아니, 이미 사람들의 시선이 와 닿는 걸 느끼는 것 자체가 망신이겠지.

“젠장, 마법사들의 술이란….”

하이너는 마법사들이 만든 술이 그들의 마력만큼이나 독하기 때문이라고 탓했다.

이제 아가씨를 깨워야 할 때다. 호위기사의 옆에 누운 아가씨는 딱딱한 돌바닥이 불편한지 자면서도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큰 걱정이라곤 없는 안일한 분위기다. 그걸 보는 호위기사는 혀를 가볍게 찼다.

정말이지 겁도 없는 분이시지. 호위기사가 옆에 같이 잤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길거리의 불한당들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몰랐다. 아가씨의 속 편함에 넌더리가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그래도 어쩌겠어. 이건 내 죄다. 어쨌거나 이 분을 제대로 모셔야 할 호위기사는 나 아닌가.’

그는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일어나세요. 아침입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이너의 미간에 주름이 패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아가씨의 팔을 잡고 살짝 흔들었다.

“아가씨.”

“…….”

“아가씨?”

“……”

“어쩔 수 없군.”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벌레를 아가씨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조금은 장난기가 감도는 태도로 협박했다.

“일 초 드립니다. 일 초 안에 일어나지 않으시면 어찌 될지 모릅니다.”

마리의 얼굴에 벌레의 그림자가 졌다. 벌레의 기운을 무의식에 느낀 마리는 눈을 스르륵 떴다. 다리가 수백 개나 달린 기다란 벌레가 검은 몸을 바동거린다. 그 징그러운 모습에 마리는 숨이 멎을 듯 경기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앗!”

거리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행에게로 쏠렸다.

하이너는 원래 벌레로 아가씨를 조금 더 놀릴 생각이었으나,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그러지 못했다. 그는 벌레를 얼른 하수구에다 버리며 아가씨를 일으켰다.

“이렇게 추하게 누워있을 때가 아닙니다. 얼른 슈테반인지 뭔지 하는 자의 정보를 알아내야죠.”

“흐잉… 무서웠잖아! 미워!”

마리가 미운 짓을 한 호위기사의 가슴을 치려고 했으나, 호위기사는 이미 허리를 숙여 그녀의 옷 여기저기에 묻은 흙과 먼지를 털어내 주느라 바빴다.

“때마침 바깥에 사람들도 많아 정보를 모으기 쉬울 것 같군요. 서두릅시다.”

그의 말마따나 거리 곳곳이 벌레 떼 같은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로만 붐비는 게 아니라 거리 모양새도 시끌벅적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기다란 끈이 달리고, 그 끈에는 마법의 상징들을 그린 알록달록한 깃발이 내걸렸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나팔, 타악기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주전부리와 장난감, 마법 물품을 파는 상인들의 호객 소리도 끊이질 않는다. 거리가 이런 왁자지껄한 분위기인 이유는 오늘 아침, 마도사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슈테반을 환영하기 위해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마리는 차분하게 그들을 살펴보았다. 어젯밤 술집에서 본 사람 중에도 마법사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아예 마법사들이 떼를 이루고 있다.

“어머나! 이 거리 좀 봐! 그 누가 루앙을 마법에 심취한 자들의 음습한 곳이라고 할까! 황도의 번화가보다 더 시끌벅적한데 말이지!”

“축제라서 그런 거잖습니까.”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종족은 바로 인간. 대륙의 종족 중에서 가장 강한 마력치를 타고난다는 이들이니 그 수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 빗자루나 지팡이를 쥐고, 마파에 따라 다른 모양의 로브를 입은 그들은 가장 전형적인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다음 많이 보이는 종족은 수인으로 크게 두 종족이 있다. 검은 피부에 작은 날개를 등에 단 박쥐수인, 그리고 코 옆에 기다란 수염과 기다란 홍채가 특징인 고양이수인으로, 그들은 수인족 중에서도 달을 섬기는 밤의 종족으로 유명하다. 어제도 그랬지만, 마리는 그들이 능숙하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주 신기했다.

모인 이들 중에는 간혹 동한이나 서한의 복장을 한 자들도 있다. 그리고 흑인이 마도사 복장을 한 진풍경도 보인다. 제국 간 왕래가 자유로워지다 보니 요새는 흑인 마법사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별하게도 귀여운 이들이 왕왕 보인다. 그들은 아주 어린 마법사 수련생들이다. 자그마한 몸체에 마법사 로브를 두르고 큰 고깔모자를 쓴 것만으로도 귀여운데, 고사리손에 들린 지팡이라니!

그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어서 하이너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리는 호위기사가 그 귀여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간파하곤 씁쓸해졌다.

“참 딱하지?”

“예?”

“저 아이들 말이야.”

저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딱하다고? 하이너는 아가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설명했다.

“저 아이들은 자기가 원해서 마법사의 길을 가는 게 아니야. 부모 때문이지.”

“그렇습니까.”

“사실 마법사들은 자식을 낳으려 하지 않지. 마법 수련만으로도 바쁘고 고된데 자식을 낳아 기를 여유는 없거든. 간혹 고(高) 마도에 오르거나 마탑에서 일을 하는 안정적인 시기에 자식을 낳거나 양자를 두기는 하지만.”

“즉, 저 아이들이 딱한 이유가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란 말씀입니까?”

“그런 것도 있고…… 마법사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험난하고 위험한 일이잖아. 온갖 위험한 실험도 그렇고 저들의 마기로 인해 마력생물들이 위험하게 꼬이는 것도 그렇고.”

“흐음.”

“부모가 나빠. 저 아이들은 때로는 말이지…….”

“때로는요…?”

“부모의 마력을 높여줄 제물로 희생되기도 해.”

호위기사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가씨야 영주의 딸로 태어나 나름대로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부모가 아이를 제물로 삼는 것이 충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은 그녀와는 다르다. 평민과 천민들이 자식을 도구로 쓰는 것을 워낙 많이 봐온 터라 이제 와 충격적일 것도 없다. 대수롭지 않다는 대꾸가 나왔다.

“어딜 가나 자식을 종속물로 대하는 부모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종속이라는 단어조차 과하지. 저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를 노예보다 못하게 취급한다니까. 그들은 늙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마력을 잃으면 자기보다 약한 마력생물의 마력을 빼앗거나 그게 아니면 자식의 마력을 빼앗지. 저 아이들도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도구일 확률이 높아. 이른바 마력 건전지라고나 할까?”

조금 격해진 목소리에 하이너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가씨가 말씀하신 ‘건전지’라는 단어를 몰라서 묻고 싶어도 꾹 참았다.

한참 후에 마리는 잠시 불거진 감정을 추스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언젠가 내가 대륙을 완전히 정복하는 날이 오면, 마법사들이 자식을 그렇게 다루지 못하게 법을 만들 거야. 반드시 그렇게 하고 말 거라고.”

“예, 뭐. 아가씨께선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구나!”

“흠, 뭐. 원래 인간에게 긍정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법이지요.”

대현자 슈테반 뷔야크는 마신의 광장에서 마도사 순례에 관한 연설을 한다고 한다. 하여, 두 사람은 마신의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까지 가려면 대략 한 시간이 걸린다. 마리는 걸으면서 행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지역의 마도인들은 대개 슈테반 뷔야크의 대륙 순례 이야기에 기대하거나 그를 향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으나, 간혹 수다 중에는 저속한 내용도 섞여 있었다.

한 중년 사내가 들창코를 씰룩이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우리 대현자께서는 마탑의 일인자도 맥을 못 추린다는 마력의 소유자라는데, 참 좋겠어!”

“무엇이?”

“고결하신 마탑의 귀족들과 달리 제국민들의 눈치 따윈 보지 않고 이년 저년 후릴 수 있잖아.”

들창코의 중년 사내는 제 하체를 난삽하게 튕기며 이죽거렸다.

“대현자님의 거시기에서 마력이 샘솟는다 하면 달려들지 않을 년들이 어디 있겠느냐고. 아오, 내가 생각해도 참…….”

“듣고 보니 그러네. 로젠플라드 사제가 돼서 신녀들을 따먹는 것보다 백 배는 재미있겠어. 실컷 먹고 나서 마력 따윈 하나도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낄낄거리면 따먹힌 년들의 표정이 어떨까. 흐히히….”

악질적인 말에 한 사람이 나서서 호통쳤다.

“천벌 받을 소리! 대현자께서는 여자의 몸이나 탐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럼 그분은 뭘 탐하시는데?”

“피야. 피라고.”

“흡혈귀란 말이야?”

아무리 대현자에 관한 정보를 모은다지만, 저런 정보는 밑도 끝도 없지 않은가? 마리는 소음 공해라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그런 그녀를 하이너는 한참 동안 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결국, 대현자에 관한 정보는 이런 식으로 얻게 되는 건가. 이런 신빙성도 없는 정보들을…….’

씁쓸하다. 아무래도 아가씨께서는 어제 여관에서 통 발기되지 않는 호위기사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대현자의 정보를 핑계 대며 외출하신 거겠지. 대현자의 정보 따위는 처음부터 핑계일 뿐이었던 게다.

아아. 일행이 단 둘뿐이다 보니 앞으로 그녀와 무수한 밤을 보낼 일은 많은데, 망할 놈의 드래곤 발정이 지속된다면 곤란하다. 인간인 아가씨에겐 발정하지 않는 몸이라니. 아가씨의 연인으로서 면목이 없어지지 않은가. 가뜩이나 정사를 즐기는 분이신데…….

호위기사가 그러한 생각에 잠겨 침울해 있는데, 마리가 물었다.

“참, 하이너. 속은 어때?”

“속이요? 그러고 보니….”

어젯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속이 좋지 않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하는 과음 후유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이너는 이 상태를 의아하게 여기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만.”

“후후. 그래?”

“아가씨 속은 좀 괜찮습니까?”

“나야, 뭐.”

마리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지만, 괜찮다는 듯이 밝게 웃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어제 술집 주인 여자와 수다를 떨다가 남자의 정력에 좋다는 약을 달인 물을 호위기사에게 술인 양 속이고 주었는데, 그 효과가 어떠할지 오늘 밤이 매우 기대된다.

“흐흐흠!”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거리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 상인이 맛난 주전부리를 팔고 있다. 당분을 가공해 실처럼 하늘하늘하게 만든 뒤 날개 모양으로 굳힌 맛도 좋고 보기도 아름다운 과자다.

마리는 하이너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기사님! 나 저거 사줘요!”

돈도 없고 월급 개념도 아가씨 때문에 잊은 지 오래인 하이너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거지라서 말입니다.”

“아잉, 지갑에 100자일 있는 거 다 알아. 그 돈이면 저거 배부르도록 먹을 수 있다고오….”

“떼쓰시긴.”

호위기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상인에게 다가가 날개 과자를 색깔별로 다섯 개나 사서 모조리 아가씨에게 주었다. 마리가 그것을 받아들고 하얀색 날개 과자를 혀로 할짝거렸다. 하얀색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온몸이 저릴 듯 다디단 맛에 속이 메스꺼운 것도 잊고 함박웃음 짓는 그녀를 호위기사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 달다! 기사님은 안 드세요?”

글쎄요. 아가씨가 그걸 드시는 모습만 봐도 온몸이 달아서……. 수줍음이 많은 호위기사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지 않고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아가씨나 많이 드십시오.”

“다섯 개는 너무 많은데, 흐음.”

마리는 날개 과자 하얀색을 빨면서 나머지 네 개는 꼬마 마법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어여쁜 아가씨에게 날개 과자를 받아든 아이들은 부끄러워하거나 기뻐하면서 그것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한 아이는 아이답지 않게 능글맞은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두 분!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구려!”

“호호호!”

마리가 입을 가리고 웃자, 하이너도 피식 웃었다. 대현자를 보러 가는 길이 마치 연인이 한적하게 거리를 걷는 오붓한 시간처럼 변한 듯하다. 그렇게 그들이 계속 걸어갔고, 어느새 마신의 광장이 가까워졌다. 붉은 벽돌이 바닥에 촘촘히 박혀 있고 광장 한가운데엔 검은 달 모양의 돌 조각과 널찍한 단상이 있다.

박쥐수인 마법사 하나가 사람들 머리 위로 날갯짓하며 외쳤다.

“대현자님께서 나타나셨다! 모두 경배하라!”

그러자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마법사가 단상 쪽을 향해 머리 위로 합장하며 외쳤다.

“슈테반 님! 마력의 지존이시여!”

“루앙의 지도자시여!”

“검은 달의 수호자시여!”

마법사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 상인, 자경단, 축제의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모인 예술가들마저도 그에게 경배를 표현했다. 마리 일행 역시 군중 사이에서 튀지 않으려고 그들을 따라 합장했다. 그 후에는 단상 쪽을 보며 대현자라는 이의 모습을 확인했다.

한 남성, 주름 하나 없는 매끈하고 새하얀 피부의 젊은 남성이 하얀색 기다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피부도 새하얀데 입은 옷도 새하얗다. 이 여름에 입기엔 제법 두꺼운 원단의 하얀 로브와 그 로브 전체에 수 놓인 은색의 기하학적인 문양은 아주 세련되고 섬세한, 한마디로 고급이라 그가 이 지역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한눈에 알린다. 하얀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눈동자도 하얗다. 그 때문에 인상이 상당히 괴기스럽다. 아무리 하얀색을 좋아하는 마리라고 해도, 저런 모습을 친근하게 느낄 수 없다.

오싹해진 그녀는 온몸을 떨었다.

“뭐지? 온통 새하얀 게 유령 같아. 정말 무섭게 생긴 작자야….”

하이너는 말없이 대현자 슈테반 뷔야크를 보았다. 늦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에다 마법사들의 후끈한 열기마저 섞여 가슴을 갑갑하게 했다.

단상 위의 슈테반은 한 손을 들어 경배와 찬양의 소리를 중단시켰다.

그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녹슨 못이 녹슨 쇠판에 긁히는 듯 탁한 목소리가 기다란 울림통을 통하여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연설의 시작을 장식하는 것은 마도인들을 향한 인사도, 축제를 시작하기 전에 흔히 하는 형식적인 말도 아니다.

오직 음산한 웃음소리뿐.

“으흐흐…….”

그게 대현자라는 작자의 첫 마디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마리가 호위기사의 귓가에다 중얼거렸다.

“나 태어나서 저런 병신 같은 웃음소리는 처음 들어. 륀체르가 베개 싸움 할 때 질렀던 미친 닭소리보다 더 하다니까.”

품위를 갖추지 못한 말버릇에 호위기사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아가씨, 제발 그 저속한 말 좀 어떻게….”

하이너는 말을 뚝 멈추었다. 단상의 슈테반 뒤에서 나타나는 두 명의 마법사와 그들이 든 들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들것의 위에는 이번 축제의 제물로 보이는 자가 누워 있다. 그것은 진줏빛 머리카락을 바닥으로 길게 늘어뜨린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다. 하이너는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마리아……!”

============================ 작품 후기 ============================

즐거운 주말 보내시나요? 날씨가 춥던데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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