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62화 (62/122)

00062  5. 눈꽃 샹들리에가 그대 침실을 빛낼 때   =========================================================================

그때 피고 측 증인들이 답을 알려주었다.

“리본이라니, 우습기 짝이 없군요. 원고 측 증언은 거짓입니다. 진짜 연인이 아니니 당연히 잘 알 수 없겠지요. 그래서 저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나 해댈 테고. 마리니시네와 진짜로 사귀었던 저희가 고백하건대 마리니시네의 국부에 있는 것은 바로 별 모양의 점입니다.”

그제야 원고 측 증인들이 너도나도 맞장구치기 시작했다.

“그래! 그녀의 리본을 풀고 걷어내면(?) 별 모양의 까만 점이 있었지!”

“맞아! 맞아!”

“아주 특이했지!”

그러자 피고 측 증인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마를 만졌다.

“하하, 미치겠군요. 그 별 모양은 검은색이 아닙니다만?”

당황한 원고 측 증인들은 끝까지 아무거나 갖다 붙였다.

“빠, 빨간색 점이었어! 맞아!”

“아니야! 파란색이야!”

“아니! 흰색!”

“얼간이들 같으니! 이럴 땐 무지개색이라고 말하는 게 현명하단 말이다!”

그런 촌극을 보다못한 할데바인의 딸이 두 손으로 제 머리를 붙잡으며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피고 측 증인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설명했다.

“모두 틀렸습니다. 그 점은 삼각형과 역삼각형이 포개진 별 모양으로 연갈색이지요. 마리니시네의 국부에는 바로 그러한 점이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저희 모두는 세상에서 그런 점을 가진 여인이 그녀 하나뿐이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그러자 웃던 황태자는 더욱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당황하는 사람은 오직 원고 측 사람들뿐이고, 정작 황태자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맞습니다. 제 언니에게 그런 점이 있단 것은 저도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제 증인들을 통해 알게 되었죠.”

그녀의 증인들이 그 말을 받았다.

“예.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저희를 소집하시어 재판 사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곤 언니분과 당신이 구별되는 가장 큰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마도 자매께서 너무나 똑같이 생겨 성격 같은 내면적인 것으로는 구분점을 찾기가 힘드셨을 테지요. 하여, 저희는 의견을 모아봤습니다. 마리니시네와 진짜 사귄 연인들로서 모을 수 있는 의견, 그것은 결국…… 은밀한 부위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점, 그게 마리니시네에겐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더니 언니분과 당신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거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원고 측은 말도 안 되는 농간이라며 소리쳤다. 진행자는 일단 그들을 진정시켰지만, 판결을 내리는 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만약, 판결자의 입에서 사실 확인을 부탁한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리고 지금 저 피고인 여자의 국부에 별 모양의 점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재판은 원고 측에 불리하게 돌아갈 게 자명해진다. 그렇게 되면 진행자 자신은 친 할데바인의 사람으로서 과연 재판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

이미 판결자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

“고로, 지금 피고로 나온 황태자비 전하의 국부엔 그 점이 없다는 말이겠지요? 사실 확인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그것은 황태자비의 국부를 확인해보자는 의미였다. 치욕스러운 검사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지고한 황족이 그런 일에 응할 수 있을까? 벼랑 끝에 내몰린 할데바인 대공의 딸은 황태자비가 그런 수치스러운 증명을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며 코웃음 쳤다.

‘길가의 창녀도 재판장에서 제 것을 보여주진 못할 테지, 아무렴.’

그러나 로테는 적의 예상을 벗어났다.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서서히 일으키는 로테를 보고 할데바인 대공 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런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이 상황을 제지했다.

“그런 확인까지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군. 그녀에게 그런 별난 점은 없다고 내가 보증하지. 그녀와 나만큼 가까운 이는 없을 테니. 아닌가?”

그 자는 바로 황태자비의 남편인 황태자다.

비로소 로테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아아, 비오르틴. 당신….’

남편의 결정적 한마디가 구원처럼 느껴진다. 여태 온몸을 팽팽히 죄었던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다.

황태자는 그동안 보인 방관적인 태도와는 다르게 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판결자의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판결자 뒤에 있는 로젠플라드 신상에 대고 예를 갖춰 인사하며 이 상황을 종결시킬 발언을 하였다.

“로젠플라드시여. 저희가 비록 부부로서 짧은 시간 함께 한 사이라 할지라도 이 말씀은 드려야겠군요. 저는 한때 아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은 적 있습니다. 고향에서의 그녀는 순진하고 마음씨 착한 여인이었습니다. 고향 시절을 이야기하던 아내의 눈빛과 표정,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그녀가 진실하다고 증명했습니다. 그녀는 결백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제 모든 것을 신께 걸고, 지금 황태자비로 있는 그녀가 마리니시네가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황태자의 시선이 문득 로테에게 향했다. 로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드디어 남편이 제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아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황태자는 아내에게 무감정한 시선을 고정하며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녀는 절대…… 마리니시네일 수 없습니다.”

시선이 로테를 향해 있어도, 로테를 향한 것 같지 않다. 그의 말 또한 분명 로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지만, 어째서인지 로테는 싸늘한 한기만 느꼈다.

“이상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녀는 그저 몸이 떨렸다. 남편의 목소리가 이토록 가까이에서 들리는데도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했다. 그만큼 남편의 말에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아랫배가 시큰거렸다. 불쾌하고도 뜨거운 기운이 배를 감싸는 듯했다. 여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로테는 행여 아이가 잘못될까 두려움에 한참을 떨어야만 했다.

‘재판 때문이야. 재판 때문에 아이가 화를 내는 거라고.’

***

2차 재판은 할데바인의 패배나 마찬가지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판결자는 할데바인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려 한 것인지 판결을 미루었다. 즉, 3차 재판을 열겠다고 한 것이다.

할데바인이 질 거라 판단한 원고들(할데바인 딸을 제외한 간택전의 후보들)은 몸을 사렸다. 황족을 건드려놓고서 이대로 재판에 지게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황태자 내외에 의해 보복 재판이 시작될 것이다. 평소 할데바인에 이를 갈던 황태자가 그 보복을 주도할 것은 당연한 일. 그렇게 되면 할데바인에 붙어 황태자비를 공격하는 데 동참했던 자신들의 안위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뒤가 구린 그들은 지레 겁을 먹어 재판에서 손을 떼겠다며 물러났고, 할데바인은 몇 남지 않은 원고들과 힘을 합치기로 했다.

3차 재판은 그들에겐 마지막 발악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밤낮없이 로테를 흠잡을 일만 모색하였다.

3차 재판이 시작되면서 이 싸움은 소모전으로 변해갔다. 사건의 중심과는 관계없는 비난 위주의 소모전. 오를린의 재정이 갑자기 좋아진 것은 영주의 비합법적인 사업 덕분이 아니냐? 그 뒷배엔 황태자비가 있는 게 아니냐? 그것만으로도 지금 황태자비로 있는 여자는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 그것을 도와줬을 황태자도 책임에서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할데바인 대공은 어떻게든 로테를 끌어내리려고 온갖 흠잡을 만한 일을 다 끌고 와 그녀를 벼랑 끝에 몰았고, 그녀는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진실을 밝혀 이겨내려 애썼다. 물론 뒤늦은 감이 있으나 그때부터는 황태자도 나서서 그녀를 위해 최고의 변호인을 붙여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태자비에게 정체불명의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에는 바너의 우편 번호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보낸 사람은 알 수 없다. (*보낸 사람이 불명확한 우편물은 원래 황궁에 도착할 수 없으나, 그 우편물은 오를린 영주의 저택을 거쳤다가 무사히 황궁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우편 상자 속에는 마법영상구가 들어 있었고, 로테는 그 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이럴 수가! 글쎄 황태자비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자기 자신을 ‘99.9점짜리 가슴의 마리니시네 님!’이라 칭하지 않는가. 그녀가 자신을 보고 ‘마리’라고 칭하는 부분이 몇 차례 더 나왔고, 그녀를 보고 ‘아가씨’, 혹은 ‘마리니시네’라고 부르는 남자들도 많았다. 그 마법영상구 속 금발 여인의 목소리, 표정, 말투, 그 모든 것이 로테와는 다르다. 얼굴만 같지 완전히 다른 인격의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 말인즉슨 영상 속 여인은 마리니시네라는 말이다.

‘언니! 대체 바너에서 왜 그런 푼수 같은 말이나 하고 있는 거야? 드래곤에게 잡혀갔다더니 거기서 뭐하는 거지?’

영상에는 날짜가 표시되어 있다. 모두 로테가 황궁에 있는 시기에 찍힌 영상들이다. 마법영상구의 날짜는 마법으로도 조작할 수 없는 것. 그 덕분에 로테가 영상을 조작하여 만들었다는 누명은 피할 수 있으리라.

***

3차 재판이 시작되고, 로테는 그 동영상을 증거물로 썼다. 쓰면서 ‘언니 마리니시네는 영상 속에서 나온 것과 같이 외지를 돌아다니느라 바쁘다.’고 주장하였다. 회장의 분위기는 진행자의 주도와는 다르게 점점 로테의 승리로 넘어갔다. 황태자가 고용한 변호인들의 합동 변호로 인해 할데바인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 로테아르카 루 오를린은 무죄.

황태자는 쾌재를 불렀다. 이번 일로 할데바인을 공격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황족에게 불경하고 악질적인 누명을 씌운 그 자체만으로도 그 일족을 멸할 명분으로 충분했다. 그는 먼저 황의회에 안건을 내어 로젠플라드에 빼앗겼던 자신의 부대인 루빈을 복속시키는 일을 진행했고, 그사이 할데바인을 재판에 회부할 기초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미, 할데바인은 방어를 해둔 상태였다. 그들은 황족을 상대로 무려 3차 재판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순전히 남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엉터리 증언을 한 이들, 즉 그라토와 렌과 오를린의 가짜 연인 청년들 때문에 이 사달이 일어난 거라며 대외적으로 피해자인 척 굴었다. 그들은 증인으로 이용했던 자들, 그라토와 렌을 포함한 모두를 무고죄로 고발하였다. 그리고 황족 모욕죄를 추가하기까지 하였다.

로젠플라드 신의회는 자체 재판을 열어 그들을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화형에 처해 버렸다. 제국민은 오를린 시골 사람들이 황태자비를 시기하여 그런 일을 벌였다고 믿게 되었고, 그들을 벌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할데바인을 황족의 수호자, 제국의 안녕을 위하는 자로 포장되고야 말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황태자는 할데바인을 공격할 수 없다. 진실이 어떻든 많은 이들에게 황실을 지켜주는 이로 추앙받게 돼버린 할데바인을 공격한다면 그림이 좋지 못하리라.

하지만 이렇게 같은 편인 척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내 수호자를 자처했으면 나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야겠지. 안 그런가, 늙은 너구리?”

황태자는 할데바인 영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하늘 아래, 널따란 화단엔 고양잇과 수인 하나가 뱀을 물어뜯었다.

***

할데바인의 수도 리데바인.

대공의 저택.

할데바인은 태초의 나무 조각이라는 고급 재료로 만들어진 활을 들고 취미에 열중했다. 살아있는 수인들의 심장이나 눈을 과녁 삼아 화살을 날리는 것이 그의 오랜 취미다.

지금, 궁장 가득 고통 받는 수인족이 내지르는 신음으로 가득하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궁장에 울리는 신음은 괴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정말이지 운이 나빴고, 또 나쁘다. 다른 날에는 쏘는 족족 명중했으나 오늘은 기분 탓인지 쉽지 않다. 애꿎은 수인들은 심장 근처에 화살을 여러 차례 맞고 죽었으며, 어떤 동물들은 눈 대신 이마에 화살이 꽂혀 즉사했다.

마지막으로 대공이 노린 수인은 유대류의 수인이다. 그 수인은 육아낭 속에 새끼를 품고 있었는데, 잔인한 대공의 화살은 육아낭 속의 새끼를 관통하고 어미의 배에도 깊숙이 박혔다. 어미가 고통에 신음하였다. 어미의 육아낭은 피범벅이 되었다. 대공은 어미의 몸부림을 한참 동안 구경하다가 어미 머리에도 화살을 날려 죽여 버렸다.

주름 가득한 대공의 입에서 저주가 흘러나왔다.

“저런 꼴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황태자비의 아이와 황태자비에게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재판을 열어 로테를 폐위하고 그 자리에 자기 딸을 올리려 했다. 그런데 재판에서 지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영상을 보내 황태자비를 도운 녀석은 대체 누구일까?

정보에 의하면 상자가 오를린 영주 저택에서 온 게 아니라, 실은 바너에서 왔다고 하던데……?

큰 세력을 유지하다 보니 적이 한둘이 아니어서 대관절 누구인지 추측할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재판이 패배로 끝났으니 이제는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다. 더는 얌전한 방식만 써서는 안 된다.

물론, 이미 2차 재판 중 황태자비가 마시는 물에다가 태중의 아이를 서서히 사산케 하는 독약을 미량 넣어두었다. 그날 재판을 마칠 즈음, 황태자비가 배를 잡고 얼굴을 구겼었지……. 아마도 태중의 아이는 독약의 효과가 제대로 드러나기만 한다면야 앞으로 이틀 안에 죽을 것이다.

그다음엔 그녀가 슬픔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대공이 계획한 방식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물론, 자살로 꾸며진 액살이겠지만 말이다.

대공은 제가 죽인 유대류 수인을 보면서 차분히 마음을 식혔다.

핏물을 본 그의 마음은 안정되었다.

***

대공의 기대와 달리 이틀 후에도 황손은 사산되지 않았다. 대공은 하수인의 일 처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겼다. 누군가가 자기 일을 방해한다는 생각이다.

‘대체 어떤 녀석이 내 일을 방해하는 거냐!’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는 와중에 딸이 와서 우는소리를 했다.

“아버지! 저는 이대로 혼기를 놓쳐야 하나요? 야울(황태자비가 기거하는 야울 궁을 일컬음)의 안주인은 정녕 되지 못하는 건가요?”

대공은 아무런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황태자비를 그대로 암살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에 실패한다면, 그때야말로 자신이 감춰둔 마력기갑부대를 동원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냐고요!”

“음? 아니다. 뭐, 그래. 네가 야울의 안주인이 되라는 법은 없지.”

“하! 뭐라고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그래. 그까짓 안주인이 별거냐?”

마력기갑부대를 동원한 반역에 성공만 한다면 딸을 야울의 여왕으로도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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