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1 5. 눈꽃 샹들리에가 그대 침실을 빛낼 때 =========================================================================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황태자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일전에 바너의 길드 마스터가 보여준 로테와 똑같이 생긴 금발 여자를 암암리에 수소문하고 있긴 하나, 그것은 개인적인 추억에 의한 일일 뿐 지금 일과는 전혀 연관이 없고 연관시킬 생각조차 없다.
그는 황태자비 자리에 앉은 ‘이’가 어떻게 이 위기를 타개할지 궁금할 뿐이다. 그녀가 마리니시네든 로테아르카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여자의 자격이 없는 거겠지.’
***
로귀하르트 제국.
풍년의 평지 로샤타르트.
어느 유명한 관광업체. 이곳은 오를린에서 온 관광객들을 로샤타르트의 명소에 안내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이들의 대표에게 비밀 전서가 도착했다.
전서를 읽은 대표는 평소 유창하게 쓰는 로샤타르트의 말을 버리고 오를린의 방언으로 외쳤다.
“은혜를 갚을 기회가 왔군!”
***
로귀하르트 제국.
신비의 지역 루앙.
루앙엔 오를린 출신의 젊은이가 둘이나 있다. 하나는 유명 단장가게를 운영하는 젊은이고 하나는 인기 마법사 공연단 음악 총괄책임자다. 그들에게 비밀 전서가 도착했다.
이들은 전서를 읽고 나서 하나같이 오를린 방언으로 외쳤다.
“그분이 위기에 처하다니!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일이야!”
***
로귀하르트 제국.
얼음 도시 시귀르.
겨울이 끝나가는 때, 시귀르의 조각가들은 황도에서 열릴 축제에 필요한 얼음을 조각하느라 바쁘다. 이 중 한 오를린 출신의 유명 조각가에서 비밀 전서가 날아들었다.
전서를 다 읽어 본 조각가는 남은 작업을 도제들에게 맡기고 서둘러 로젠플라드 성도로 갈 준비를 했다.
“사건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정말이지 두고 볼 수 없군!”
***
재판이 열린지 사흘도 되지 않아 2차 비공개 재판이 열렸다. 말이 비공개지 1차 재판에서 일어난 일이 황도에 퍼지고 말았고, 이에 여러 사람이 온갖 경로로 재판의 추이를 지켜보려 했다. 황도에서는 이미 재판의 결과에 따른 도박마저 횡행하고 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원고들과 피고는 상대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원고 측 여인들은 너도나도 황태자비에 관한 추문들을 흘리며 여론을 조성하느라 바빴고, 로테는 의지할 곳 없는 황궁에서 고군분투하느라 바빴다.
황태자는 가장 먼저 회장에 도착하여 재판을 기다렸다. 그간 궁에서 아내를 대할 때는 재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평소처럼 대했다. 한 나라의 황손을 회임한 아내를 위해서 황태자 그리고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를 다 했다.
그렇다곤 하나, 오늘 아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지켜볼 생각이다.
물론, 이미 열세의 로테가 패배하는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지만 말이다.
‘자, 내 예상을 깨주시지.’
황태자비가 회장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황태자의 시선과 태자비의 시선이 우연히 부딪혔는데, 그녀는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형형한 눈빛을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특유의 표정에서 벗어난 눈빛이다. 왠지 불안함이 보이지 않는다.
황태자는 그 분위기를 의외라고 여겼다. 약간은 기대하기도 했다. 그녀가 어떤 방패를 가져왔는지, 또 어떤 반격의 무기를 준비해왔는지.
그는 막 곁에 앉은 아내에게 물었다.
“간밤 잠은 잘 잤소?”
“덕분에요.”
“마음고생 한 것과는 다르게 오늘따라 얼굴이 밝아 보이는군. 너무 밝아 보여서…… 너답지 않아.”
“그런가요?”
“네 그런 눈빛을 보는 건 처음이야.”
“저도 이런 기분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군요.”
“무엇이…?”
“글쎄요. 이기기 위해선 때론 저를 버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인가 봅니다. 청컨대, 설혹 오늘 제가 황실 체면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용서를 해주시길.”
그때까지 황태자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녀가 무엇을 각오하고 이곳에 나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뭐, 기대하지.”
재판은 금세 시작되었다. 1차 재판에서 나온 진행자는 오늘도 시건방지고 원고 편향적인 태도로 재판을 진행했다. 원고 측이 데려온 증인들은 1차 재판에서 그라토와 렌이 했던 증언을 못 박아주는 역할을 하러 나온 듯 황태자비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라토와 같은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자기가 지금 황태자비의 과거 연인이었고 음탕하고 난잡한 관계를 즐겼다고 거짓 증언을 일삼았고, 심지어 지금 황태자비의 태중 아이가 제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한까지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 가까이 지내던 하녀의 배신도 모자라 혈족마저 로테를 배신했다. 오를린 영주의 친척, 즉 로테아르카의 사촌까지 나서서 황태자비를 모함했다.
“그녀는 입궁 전날까지 뻔뻔했지요! 글쎄 친척들에게 이런 망발을 일삼지 뭡니까? 곧 검은 드래곤이 오를린에 나타나 동생에게 구혼할 거라나! 그것은 자기 동생이 드래곤에게 납치될 것을 뻔뻔하고도 천연덕스럽게 포장하여 예고한 것이었어요!”
그녀는 오를린 일족에 다른 성숙한 여인들도 많은데 오직 오를린 영주의 딸만 황태자비 간택전에 초청을 받은 것에 관하여 평소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로테가 친척의 배신에 치를 떠는 그때, 뜬금없이 황실 재정을 담당하는 서기도 증인으로 나섰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녀는 황태자비에 오를 것을 미리 알고 황의회의 동의 없이 제국 재정을 멋대로 건드리기도 했지요!”
만면에 미소 가득한 진행자가 자세한 사항을 재촉했다.
“오호. 그 일은 정말 지나칠 수 없군요. 상세 내용을 부탁합니다만.”
“예! 그녀가 황태자비로 간택되기 전후에, 제국 재정의 계획엔 없던 여러 소비가 생겼습니다. 어이없게도 머나먼 시골 오를린과 황도를 잇는 텔레포트 홀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바너의 길드마스터는 거액의 왕관을 제작해야 했습니다. 피고는 내궁부의 동의 없이 자신의 시종들을 자신의 고향 사람들로만 채우려 시도한 적도 있었고, 자기 신분을 이용하여 사병을 모으는 데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탐욕스럽고 허영에 빠진 여자인지 알 수 있지요!”
재정 담당 서기는 관련 서류 다발을 진행자에게 전해주며 말을 마쳤다.
“황태자비가 입궁한 후의 기록입니다. 제국 재정이 엉망이 된 시점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진행자에게서 서류를 건네받은 자들이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텔레포트 홀 공사, 거액의 티아라 제작, 시종조 건, 사병 건 모두 황태자가 주도한 것일 뿐 로테는 그에 관해 조금의 의견도 낸 적 없다. 황궁 생활에 적응하기도 바쁜 자신이 어찌 그런 큰일을 요청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남편에게서 고향과 황도의 텔레포트 홀 공사가 시작된다는 말은 전해 듣기는 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반려가 될 이의 고향에 바치는 그의 예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은 자신을 공격하는 도구가 되고야 말았다.
억울하다. 하지만 일전의 재판에서처럼 남편에게 구원의 눈길을 건네진 않았다. 어차피 그래 봐야 이 남자는 언제나 그렇듯 무덤덤하게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녀는 지금 이런 공격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자신을 다독이며 원고 측의 증언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 시간이 왔다. 진행자가 피고 측에게 반대 증언의 기회를 준다고 일렀다. 그 말투와 태도는 마치 졸부가 거지에게 적선이라도 하는 것 마냥 오만하고 불손했다.
피고 측 변호인은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증인들을 하나둘씩 데려왔다.
그들이 들어서자 장내가 조금 술렁였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말끔한 외모, 세련된 복장, 능숙한 황도의 말투, 중급 이상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자들이다. 그들을 본 원고 측 증인, 즉 오를린에서 온 시골뜨기 남자들이 바짝 긴장하였다.
‘지, 진짜 마리니시네의 애인들이잖아!’
‘진짜 마리니시네의 애인’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공통적으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마리니시네 루 오를린의 전 연인들입니다. 그런 자격으로 증언하는데, 지금 원고 측의 증인으로 나온 자 중 그 누구도 진짜 미리니시네의 연인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잠시 말이 멈추다가 가벼운 웃음과 함께 혼잣말이 나왔다.
“정말이지 저런 멍청해 보이는 남자들을 그녀가 사귈 리 없잖아.”
가짜 연인들은 큰 죄라도 지은 듯 모두 동요했고,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진짜 애인들이 증언을 이어갔다.
“저들은 하나같이 마리니시네에게 퇴짜를 맞은 이들이죠. 그래서 고향에 남아 있었던 거고요.”
“마리니시네에게 퇴짜를 맞는 것과 고향에 남는 것이 무슨 관련이라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퇴짜를 맞은 남자들은 고향에 남아 한심한 인생이나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녀와 사귀다가 헤어진 자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서 성공하고 맙니다. 이것은 법칙과도 같아요.”
“저기,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인지……?”
“그녀는 나, 아니, 우리 시골뜨기들에게 구원자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녀와 사귄 연인들은 전부 외지로 나가 성공한 삶을 살고 있거든요.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저는 원래 오를린의 소작농 아들로서 따분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지도만 바라보면서 외지에 가길 꿈꾸었지만, 현실에선 오를린 밖으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겁쟁이였지요. 그런 나에게 그녀가 말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겁만 먹는 겁쟁이는 오를린의 수치라고. 그 후로는 그녀와 함께 소용돌이 산에 가서 겁을 없애는 훈련을 시작했지요. 말이 훈련이었지만 아주 달콤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소용돌이 산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마력 생물을 만났습니다. 그때, 마법이라곤 조금도 쓰지 못하는 제가 맨손으로 그 생물을 때려잡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오직 마리니시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 제 등에 난 짐승의 발톱이 할퀸 자국이 보이시죠? 이게 그 증거지요. 겁쟁이였던 저는 저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그런 일을 해낸 겁니다. 그리고 그날…… 그녀에게 이별을 선고받았지요. 그녀는…… 겁을 떨쳐낸 너에게 이제 자신의 존재는 필요 없다고…….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 이별 선언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어서 그녀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일을 시작했지요. 지금 저는, 로샤타르트 관광업에 몸담고 있습니다. 오를린과 같은 시골 영지에서 로샤타르트로 오려는 여행자들을 안내해주는 일이죠.”
그러자 다른 젊은이들까지 나서서 그와 비슷한 사연을 말했다.
“저도 오를린 노예로 귀족들 머리나 빗겨주며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마리니시네 아가씨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더군요. 너는 손재주가 좋구나! 그 뒤 아가씨께서는 저에게 하녀들의 단장 교육을 맡기셨습니다. 제게 단장법을 교육받은 하녀들은 하나같이 자기 아가씨들의 외모를 빛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지요. 그 후에 아가씨께서는 저를 자유 신분으로 만들어주셨고 현재 저는 루앙의 단장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를린의 멋쟁이라는 상호명 아시죠? 요새는 황도에까지 분점을 낸 상태로…….”
“저는 오를린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죠. 저희 집은 언제나 저렴한 가구만 만들었습니다. 영지민들이 주로 사용하던 투박한 모양의 의자, 식탁, 나막신…… 저는 그저 나무 깎기 도구가 된 것 같은 제 삶에 늘 염증을 느꼈어요. 그대로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으며 살아야 하나, 아니면 영지를 뛰쳐나와야 하나, 그런 회의를 느끼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가씨께서 한 유명한 조각가분께 저를 제자로 삼아주길 추천하시더군요. 그렇게 저는 이 년간의 도제 생활을 거쳐 현재는 시귀르 얼음 조각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저의 작품은 매년 제국 예술제에…….”
“저는 원래 오를린의 자유 신분이었지만 당장 잠을 잘 집도 없는 거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진 거라곤 그렐(현악기의 일종)과 목소리뿐인 저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번 돈으로 빵 한 조각을 사 먹고 궁핍한 일상을 이어갔죠. 그러던 어느 날 아가씨와 사귀게 되었고, 아가씨는 제 목소리가 뛰어나다며 좀 더 큰 도시로 가서 많은 사람에게 제 노래를 들려줄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직접 제게 교통비까지 대주셨고, 최고급 그렐도 사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아가씨와 뼈아픈 이별을 해야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아가씨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현재 루앙 인기 마법사들의 공연관에서 공연 음악을 책임지는 총괄자가 되었거든요…….”
잇따른 증언에 따르면 마리니시네라는 여자는 그저 그런 촌부를 훌륭한 요리사, 복식사, 운동선수 등으로 키워낸 마성의 여자로 표현되었다.
이에 원고 측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증거를 요구하였다. 이미 증인들이 나와서 하는 증언인데 또 증거가 필요하다니? 그들은 자신들이 거쳐 온 행적을 증명하는 서류와 신분을 보이며 증언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알려주어야 했다.
그러자 원고 측은 이번엔 다른 것으로 시비를 걸었다. 증언들이 아무리 사실이라고는 하나 동생을 대신하여 입궁한 피고의 죄는 어찌할 수 없을 거란 주장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재판장에 있는 황태자비를 로테가 아닌 마리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드디어 로테 측 변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진정한 증언은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로테는 다가올 일을 각오하고 눈을 감았다. 황태자는 그런 아내를 흥미로운 눈길로 보았다.
피고 측 변호인은 증언하러 나온 남자들을 보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엄중하고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먼저 황태자 전하께 용서를 구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궁의 품위를 훼손하는 질문을 던져야겠습니다. 자, 그럼 오를린의 청년으로 살며 마리니시네와 사귀었다던 당신들 모두에게 묻겠습니다.”
진짜 연인들은 질문이 무엇인지 각오한 듯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 측 변호인이 한참을 뜸들이다 어렵게 물었다.
“연인으로 지냈다면 깊은 관계도 했다는 걸 의미하겠지요. 그런 관계를 한 분들만 대답하시면 됩니다. 로테아르카와 마리니시네를 구분할 수 있는 당신들만의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까?”
한참 동안의 침묵 후에 남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러자 피고 측이 증인으로 내세운 가짜 연인들은 입을 꾹 다문 채로 서로 불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사건을 지켜보는 황태자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제 아내를 보았고, 로테는 시선을 내리며 고백했다.
“저 역시, 언니와 저를 확실히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진행자는 할데바인 대공 딸의 눈치를 보느라 진행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판결을 내리는 자가 남자들에게 물었다.
“그 방법이 무엇이지요?”
진짜 연인 중 대표로 나선 관광업자가 고백했다.
“마리니시네와 잠자리한 남자들이라면 모를 수 없을 겁니다. 그녀의 국부에는 다른 여자들에게선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양이 있지요. 여기서 원고 측의 증인들에게 묻겠습니다만…… 당신들은 그 특이한 모양이 무엇인지 압니까? 연인이라 했으니 모를 리 없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연인이라 해도…….”
“다 육체적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니…….”
원고 측 증인들이 난감한 기색으로 그렇게 대답했으나, 할데바인 대공 딸의 매서운 눈초리에 그들은 우왕좌왕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화, 확실히 마, 마리니시네 그녀의 그곳엔 특이한 모양이…….”
관광업자가 물었다.
“그 특이한 모양이 무엇이죠?”
“그, 그게…….”
“어째서 말하지 못하는지?”
“그게 뭐냐면, 그,…….”
우물쭈물하던 원고 측 증인은 급기야 제멋대로 지껄이고 말았다.
“…… 털이 리본으로 묶여 있습니다만!”
그러자 장내에 침묵이 돌았고, 판결을 내리는 자는 헛기침을 했으며, 진행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신성한 재판장에서 농담하면 안 된다!’고 꾸짖었다. 할데바인 대공의 딸은 구두 굽으로 바닥을 긁으면서 욕설마저 했다.
“그딴 데다 그런 창의력을 쓰지 말란 말이야!”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는 다름 아닌 바로 황태자였다. 그의 웃음에 놀란 로테가 당황스러워 그를 보았고, 그는 너무 격하게 웃어서 살짝 흘러내린 암갈색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잠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원고 측 증인이 내세운 말이 너무나 어이가 없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리본이라…… 뭐, 그 여자랑 어울리긴 하는군.’
황태자는 언젠가 륀체르 사파이어가 보여준 영상 속의 그녀, 장난꾸러기 같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내의 얼굴이지만, 결코 아내가 아닌 그녀의 얼굴을.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