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션 >
일주일이 지났고, 드디어 오늘은 대국민 오디션 울트라스타 K가 있는 날이다.
그런데 촬영을 우리 집에서 하냐? 다들 왜 여기 모여 있어!!!
내 빌라는 아침부터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나는 단체복을 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이세연에게 다가갔다.
"다들 사이즈 맞는 옷 찾아가요! 보자~ 나는 2호 입어야지!"
"세연아 너는 28호가 어울릴 거 같은데?"
"28호? 오빠 그게 뭐예요?"
"철인 28호. 아! 야!!! 때리지 좀 마라!"
"이 좋은 날 굳이 맞으려고 하는 오빠 마음을 모르겠어요."
심심하니깐 그렇지.
정작 나는 할 게 별로 없네.
이세연한테 몇 대 맞고 이번에는 옷을 나눠주는 유소라 에게 다가갔다.
"내 거도 줘."
"오빠는 남자니깐 7호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요."
"이 집은 옷 사이즈랑 번호랑 일관성이 없어. 이러다가 숫자대로 정리 안 되는 거 아냐?"
"그래서 몇 명은 작은 거 입어야 할지도 몰라요. 바쁘니깐 빨리 옷 들고 가요."
"네~ 네~ 알겠습니다."
쟤들은 바쁘니 안 되겠고, 이제 누구랑 놀아볼까?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한쪽에 다희랑 혜리가 눈에 들어왔다.
···
이혜리 너는 왜 왔어? 게다가 처음 오는 집에 왜 그렇게 자연스러워?
"어이 혜리 씨. 여기 웬일로 오셨어요? 오늘 일 있는 날도 아닌데요."
"재밌을 거 같아서 왔어! 너희들 대박이다! 진짜 재밌게 지낸다."
"뭐가?"
"친구 오디션 본다고 다들 야단법석이잖아. 자기 일처럼. 나 이런 분위기 너무 좋아!"
"좋으면 돈 내고 즐겨."
"뭐? 정말?"
"농담이다. 섭섭한 표정 하지 마라. 오늘 은미는 안 온대? 너희 회사 선배님."
"너 은미 선배 알아?"
"··· 내 친구야. 여기 초창기 멤버고."
"정말? 대박!!! 나 은미 선배 소개 좀 해줘."
"회사에서 보면 되잖아. 그리고 동갑인데 왜 선배라고 해?"
"나보다 먼저 데뷔했으니깐 당연히 선배지. 나도 어서 은미 선배처럼 되고 싶다."
그래서 은미는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혜리는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지, 대답 없이 고개만 가만히 들고 있다.
됐다. 내가 물어볼게. 휴대전화를 드는데, 다희가 내 손을 잡았다.
"은미 언니는 안 오기로 했어요. 여기가 워낙 구설수가 많잖아요. 아직은 조연이지만, 그래도 티비에 얼굴 알리는 배우인데, 괜히 왔다가 이상한 말 나올 수도 있대요."
"무슨 말이 나온다는 거야?"
"이미 소속사가 있는 가수가 나왔다고 언론에서 뭐라 할 수도 있나 봐요"
은미도 이제 연예계 생리를 제법 아나 보다. 짬밥은 무시 못 하네.
"그래? 아쉽네. 다희 너는 왜 왔어?"
"저요? 여기서 제 역할이 제일 중요할걸요."
"뭔데?"
다희는 카메라를 들더니 단체복을 뒤집고 있는 소라와 세연이를 찍었다.
"후후. 이날을 기억하는 역할이요."
"그래.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 수고해줘."
"네~ 헤헤헤."
별일이네. 차갑고 무표정인 다희가 환히 웃었다.
쟤도 오늘 이 분위기가 즐겁나 보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지. 소풍 가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야!!! 민현찬!!! 식용유 어딨어!!! 없으면 빨리 사와!!!"
그런 내 마음을 깨부수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서둘러 주방으로 가니 임석훈과 이선미가 도시락을 싸느라 야단법석이다.
"선미야. 식용유 없으면 참기름 넣어. 같은 기름 아냐?"
"임석훈 미친놈아. 왜 차라리 휘발유를 넣으라고 하지? 너는 의견 내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네."
"민현찬 얘는 왜 불러도 안 와. 야! 민현찬!!!"
"왔다 왔어. 뒤에 있다."
"빨리 식용유!!!"
"자. 여기 있어. 그런데 뭘 만드는 거야? 워···. 너 이거 몇인 분이냐?"
식탁과 테이블 위에 음식이 한가득하다. 누가 보면 동네잔치라도 하는 줄 알겠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먹으려면 넉넉하게 해야지. 남은 거는 너 혼자 있을 때 챙겨 먹어."
"오~~ 이선미. 웬일로 나를 다 챙겨줘? 석훈아. 선미 머리 만져서 열없는지 확인해봐라."
"열은 없고 열기 때문에 뒤질 수는 있겠는데. 애 지금 고든 램지야. 요리에 미쳤어."
"너희 둘 다 죽기 싫으면 빨리 도와주기나 해."
"네."
"넵!"
나와 임석훈은 서둘러 이선미를 도와서 음식을 마무리했다.
하··· 힘드네.
이제 도시락도 챙겼으니 마지막 준비를 하러 가자.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러 테라스에 갔다.
한쪽 의자에 진희가 이어폰을 끼운 채 초여름의 아침 햇살을 맞으며 눈을 감고 있다.
이러니깐 진짜 주인공 같네.
살며시 옆에 앉자 이어폰을 빼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진희가 내려놓은 이어폰을 잡고 어깨를 덩실거렸다.
"두둥. 두둥. 같이 들을래?"
"아하하. 선배 뭐예요."
기분 좋은지 환히 웃는다.
"너무 진지해 보여서 장난 한번 쳐봤어. 왜 혼자 밖에 있어?"
"선배가 저 밖에 나가 있으라 했어요."
"내가? 아. 맞아! 그랬었지. 애들 준비하는 거 보면 부담스러울까 봐 그랬어. 어때? 마음은 좀 가라앉아?"
"네. 저 오늘 너무 편해요. 모든 게 잘 될 거 같아요."
"다행이네. 그럼 이제 가 볼까?"
"네~"
괜한 걱정 했네. 진희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다.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어느덧 단체 티를 다 입고 있다.
다희가 1호, 세연이가 2호, 임석훈이 3호, 선미가 4호, 유소라가 5호, 내가 7호···.
"응? 왜 6호는 없어?"
유소라가 6호가 적힌 티를 챙긴다.
"6호는 지금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누군데? 더 올 사람 있어? 박호빈이면 난 안 갈 거야."
"호빈 선배가 여기 왜 와요. 그런데 호빈 선배만큼 뜬금없는 사람이에요. 이제 출발해요."
누구지?
일단 내려가 보자.
짐을 들고 빌라 1층에 내려오자 한쪽에 여대생 한 명이 짧은 반바지를 입고 뒤돌아 서 있었다.
소라는 그 사람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왔어. 이제 출발하자."
"언니야! 왜 이리 늦었는데!!! 어?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신입생 진혜리 왔쑵니다아~~~!!!!"
···
진혜리? 네가 여기 왜 있어?
"혜리야! 너 웬일이야?"
"뭐가?"
옆에서 이혜리가 나를 본다.
아니, 너 부른 거 아냐.
"혜리야 너한테 이야기 한 거 아니야."
"오빠야! 나 부른 거 아니에요?"
"너 부른 거 맞는데. 아씨!!! 야! 진혜리! 너 이쪽으로 와. 그리고 이혜리 너도 이쪽으로 와봐."
이혜리도 진혜리도 고개를 갸웃하며 내 앞에 섰다.
"얘도 혜리고 얘도 혜리거든. 이혜리는 모토쇼에서 만난 친군데 나랑 동갑이고, 진혜리는 과 후배인데 이제 스무 살이야. 너희 둘은 도플갱어처럼 만나면 안 되는 사이인데 만나버렸네. 이제부터 이혜리는 큰 혜리, 진혜리는 작은 혜리다. 오케이?"
"어? 너도 혜리야?"
"언니야도 혜리예요? 반가워요!"
두 혜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
점점 왜 주위 사람들이 세트 메뉴가 되어가는 거 같지?
혼란하고 복잡하구나.
*
독수리 7남매처럼 1호부터 7호까지 단체복을 입은 우리는, 진희를 여왕님처럼 모시고 대국민 오디션장인 커다란 체육관에 왔다.
체육관에는 단체 응원 온 사람이 우리뿐만이 아닌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진희는 몸에 번호표도 달았고, 챙겨온 도시락은 이미 텅텅 비었는데, 아직도 계속 대기 중이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체육관 근처에 널브러져 진혜리, 이혜리, 이선미랑 공기놀이나 하고 있는데,
"오빠! 진희 차례예요!!!"
이세연이 황급히 달려와서 나를 팍 밀었다.
"드디어 왔구나! 빨리 가자! 이세연 민 거는 나중에 죽었어."
"뭐래. 빨리! 빨리! 티비에 나와야 한단 말이에요!"
"알았다. 알았어! 다들 가자!"
우리는 흡사 전쟁하는 장군들처럼 당당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관 입구에 서는데 방송국 관계자가 당당한 우리를 보더니
"일행들은 기다리세요. 참가자 누구예요?"
귀찮은 듯이 말을 툭툭 던졌고, 단체복을 입은 우리 사이에서 진희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저예요."
"네. 혼자서 들어가시고 나머지는 밖에 있어요."
진희는 혼자 쪼르륵 들어갔고, 우리는 겁먹은 강아지들처럼 초조하게 섰다.
장군은 무슨. 완전 조빱이네.
조금 높아 보이는 남자가 그런 우리를 보더니, 툭툭거린 제작진을 불렀다.
"쟤들 조금 재밌어 보이는데?"
"네?"
"거기 한 번 뒤돌아 주세요."
우리요?
단체로 쪼르륵 뒤돌자, 남자는 깔깔 웃는다.
"으하하하. 그냥 과 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 등에 번호 뭐예요?"
"팬클럽 넘버입니다. 1호부터 7호까지 있습니다!"
"재밌네. 이거 그림 나오겠다. 저 사람들 뒤에 등 번호 나오도록 카메라 한 대 붙여주고, 여러분들은 다들 일렬로 손잡든가 아니면 팔짱 끼고 기다려주세요. 그게 더 좋아요."
"네."
일렬로 나란히 팔짱을 낀 우리.
그런데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저기. 죄송한데 저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 좀 가야겠어요."
"어··· 그럼 그림 안 되는데? 몇 호예요?"
"7호입니다."
"7호면 마지막 번호니깐 문제없겠네. 알겠어요. 화장실 가세요.'
"네. 다들 나 대신 응원 좀 해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미안 애들아. 나는 안에 들어가서 볼 거야.
밖에서 결과 나올 때까지 긴장돼서 어떻게 기다려.
어제 박인혜에게 부탁했고, 박인혜는 민정상한테 부탁했고, 민정상은 자기 지인한테 부탁해서 나만 특별히 아르바이트 스탭처럼 들어가도록 힘써줬다.
개꿀. 인맥 좋아요!
화장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 네. 전화 받았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민현찬입니다."
- 오셨어요? 잠시만요.
조금 기다리자 옆문에서 30대 중반 아저씨 한 명이 나오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다.
"민현찬 씨?"
"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거 원래 안 되는 건데, 특별히 해드리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말하면 정말 안 돼요."
"당연하죠! 입 닫고 합죽이가 되어 있겠습니다."
"그런데···. 잠시만. 비주얼도 괜찮은데 혹시 참가자로 안 나가볼래요? 한 컷 나올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저는 사전 예선도 안 치렀잖아요. 괜히 말 나올 수도 있어요."
"흐음. 그 말이 맞네요. 여튼 들어갑시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제 조카라고 해요."
네. 삼촌.
처음 보는 삼촌을 따라서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잠시 쉬는 시간인지 진희를 한쪽에 놔두고 심사위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 이제 시작할게요.
PD로 보이는 사람의 말이 떨어지자 다들 분주하게 움직인다.
우리 진희는 잘하겠지? 나는 까치발을 들어서 촬영 현장을 바라봤다.
사라락.
진희가 원피스를 입고 신발을 벗은 채 걸어가자 심사위원들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찬다.
오케이. 여기 까지는 좋다.
"안녕하세요. 경기도에서 온 한진희입니다."
심사위원 중 턱수염 난 가수가 신기하다는 듯이 진희를 바라본다.
"반가워요. 신발은 왜 벗은 거예요?"
옆에 있던 다른 심사위원이 한마디를 거든다.
"혹시 발에 무좀 있는 거 아냐?"
"야! 너는 그게 참가자한테 할 말이냐."
"형 왜! 무좀 있을 수도 있지! 뭐 어때서?"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자 여자 심사위원이 정리한다.
"오빠들 좀 가만히 있어. 이야기 들어보자. 진희라고 했죠? 왜 신발을 벗은 거예요?"
"아···. 사실 제가 겁이 엄청 많은 성격이거든요. 특히 사람들 앞에 서면 아무것도 못 해요."
진희는 고개를 돌려 카메라맨들과 스탭을 한 번 본 후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람들 많은 데서 노래했던 게 미국에 있을 때예요. 신발 벗으면 그때 기분이 나서 긴장 안 할 수 있어서 벗었습니다."
...
너 나랑 대학교 축제도 나갔었잖아. 자신감을 되찾더니 거짓말도 늘었네. 좋은 현상이야.
"뭐야? 나는 무좀이길 바랐는데."
"으이그. 오빠는 오늘 시청자 게시판 보면 난리 날 거야."
"쟤가 잘해야지 난리 나지. 진희라고 했죠? 지금 굉장히 기대돼요. 사실 우린 무난한 참가자들한테 지쳐가는 중이거든요. 진희 씨는 지금 꽤 산뜻한 느낌을 주고 있어요. 기대해봐도 되죠?"
"너는 괜히 부담 주고 그러냐. 진희 씨 부담 갖지 말고 해봐요."
"네! 알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말이 끝나자 진희는 기타를 잡아서 튜닝을 잠시 했다.
"쟤 그래도 튜닝은 하네."
"다행이다. 나 튜닝 안 하면 신발 신으라고 하려고 했어."
"오빠 참가자들한테 독설 좀 하지 마."
"독설이 아니라 사실인 거야."
"저···. 이제 시작해도 될까요?"
"네. 시작하세요."
후···. 드디어 시작이구나. 간 떨리는 순간이다.
뚜루뚜~ 뚜루~~
"웬유 유 돈돈미 베라 퍼선~~~"
진희는 경쾌하게 제이슨 므라즈의 아임 유어즈를 불렀다.
잘하네. 혹시나 긴장해서 실수할 줄 알았는데, 평소처럼 잘 부른다.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찬찬히 심사위원들 얼굴을 봤는데 복잡 미묘하다. 관심은 가지고 유심히는 보는데, 뭔가 못마땅한 얼굴이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지? 초조한 마음에 스탭을 봤는데, 젠장! 마찬가지다.
스탭들도 마찬가지로 놀라거나 감동한 얼굴이 아니다. 특히 PD로 보이는 사람은 옅은 한숨까지 내쉰다.
뭐가 잘못된 걸까? 이게 아마추어의 한계인가?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사이에 어느새 노래가 끝났다.
"흐음···. 잘하긴 잘하네."
"노래 전문적으로 배웠나요?"
"아. 보컬학원에 반년 정도 다닌 적 있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혼자 연습했고요."
"그래서인지 기본은 탄탄하네."
"일단 음색이 좋아. 그래서 마음에 드는데···. 하아···."
저기요. 뭐가 불만이에요? 말 좀 해주세요! 답답해 뒤지겠네.
그때 수염 있는 남자 심사위원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한 번은 더 보고 싶어. 일단 음색이 좋잖아. 기본기도 탄탄하고. 우리 기대는 안 차지만 이 정도면 괜찮아."
"형. 아니야. 이런 애들 오늘 많이 떨어졌어."
"오빠. 나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사람들 많았어요."
"아쉬운데. 진희 씨?"
"네······."
"아. 너무 풀 죽지 마세요. 사실 노래는 잘해요. 오늘 참가자 중에서 못하는 편은 절대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약해요. 합격자 중에서는 약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기술적으로나 음색은 아마추어 중에서 꽤 높은 수준인데, 노래에 송곳 같은 감정이 부족해요. 무난한 공 같다고나 할까?"
"감정요···?"
"네. 진희 씨가 부른 제이슨 므라즈를 듣고 미국의 센터럴 파크가 떠올라야 하는데, 나는 어린이 대공원도 안 떠올랐어요."
"형. 나도 그랬어."
"오빠 저도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정말 고민 중인데, 혹시 마음을 돌릴 수 있게 한 곡 더 부를 수 있어요? 가장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노래로요."
심사위원 말에 진희는 두 눈을 질근 감았다.
하···. 넓은 곳에 혼자 서 있는 진희가 왜 이리 애처롭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리는데, 진희가 눈을 떴다.
"네. 그런 노래 있어요. 한 번 해볼게요."
뭐지? 기분 탓인가? 아니면 초조해서 그런가?
진희의 눈동자가 빛을 받는 샹들리에처럼 반짝인다.
"어? 눈빛이 달라졌는데? 재밌겠네."
"그래. 저런 눈빛으로 노래를 불러야지. 마음에 들어. 괜찮네."
"기대할게요~"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진희에게 집중된다.
PD도 뭔가 건질 만한 게 나오길 기대하면서 바라본다.
진희야! 거기서 유고걸 하면 안 된다. 진짜 흑역사로 평생 가져갈 수 있어!!!
다행히도 진희가 부른 노래는 태연에 '만약에'였다.
"만약에···. 내가 간다면~~ 내가 다가간다면~~"
이... 이게 뭐야? 딱 한 소절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촬영장 공기가 확 바뀌었다.
"뭐야? 왜 이렇게 잘해?"
"조용히 해."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다. 세 명 다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노래에 빠져들었다.
스탭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넋을 놓은 채 바라보고 있고, PD는 주먹마저 꽉 쥐고 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진희와 눈을 마주친 채,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진희는 몸을 돌려서 심사위원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짧은 시간에 내가 있는지 봤나 보다.
< 오디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