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64화 (264/295)

< 쇼핑몰 >

두루루룩. 두루루룩.

통화연결음이 들리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박인혜야 할 말 있으니 전화 받아라. 나 흑화하기 싫다."

- 네. 민현찬 씨.

"깜짝이야!!!"

- 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중2병 놀이하고 있었거든요. 박 대표님 지금 시간 되세요?"

- 현찬 씨 말이라면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죠.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잠시 뵐 수 있을까요? 모터쇼 안 끝났으니 일산에 코엑스에 계시죠?"

-아니요. 모터쇼는 끝났고 오늘은 회사에 있습니다.

"벌써요? 빨리도 끝났네.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네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어졌다.

- 박인혜는 왜 만나려고? 너 설마? OL의 꿈을 박인혜한테?

호구신님. 저보다 더 미친 사람 같아요. 유소라 쇼핑몰 한다고 했잖아요. 쓸만한 모델 있는지 한번 보러 가려고요.

소라 혼자서 모델, 옷, 택배 사진 전부 다 하기는 엄청나게 힘들 거다.

어차피 내 돈 들어간 거 조금 도와줘야겠다.

나는 KP엔터 사무실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

어떡하지? 들어가면 박인혜와의 커넥션이 모두에게 들킬 건데.

그냥 밖에서 부르자.

근처의 커피숍에 있다고 문자 보낸 후,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놓고 기다렸다.

다행히 박인혜는 관우처럼 커피가 식기 전에 도착했다.

"현찬 씨. 안녕하세요."

"박 대표님. 잘 지내셨죠?"

"네. 항상 신경 써주는 덕분에 요즘 일이 다 잘 풀리네요. 오늘도 왠지 좋은 소식을 가져오셨을 거 같은데. 기대해봐도 되나요?"

"우선 달달한 립서비스에 감사의 말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쉽게도 좋은 소식은 아니네요. 반대로 신세 한 번 제대로 져보려고 굽신거리러 왔습니다."

"아하하. 민현찬 씨가 굽신거리다니. 그러지 마세요. 그럼 저는 기어 다녀야 해요."

어라? 박인혜 엄청 유들유들해졌네?

내 농담을 환히 웃으며 받아치는데, 예전처럼 경색된 얼굴이 아니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제법 사업가가 된 듯하다.

"박 대표님 모습 보니깐 저도 한결 가볍게 부탁할 수 있을 듯합니다. 혹시 모델 좀 쓸 수 있을까요? 이왕이면 갓 데뷔한 아마추어로요."

"모델요? 음··· 현찬 씨는 결론부터 듣는 걸 좋아하니, 바로 말씀드릴게요. 무조건 가능합니다. 무슨 일 때문에 필요한 거죠?"

"제가 해외여행 가는데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해서요."

"후훗. 이렇게 갑자기 테스트해도 안 넘어갑니다."

"···테스트인지 어떻게 알았어요?"

"현찬 씨가 여자가 필요할 리가 없죠. 원한다면 차라리 해외에서 꼬시는 게 더 이미지랑 맞기도 하고요."

아닌데!!!

여사친이 아니면 안 서기 때문에 필요 없는 건데!!!

여튼 박인혜는 기습 테스트에 합격했다. 너무 유해져서 죽어도 접대를 안 한다는 심지가 사라졌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괜한 기우였다.

"박 대표님도 이제 저를 잘 아네요. 이제 장난은 그만 치고 본론을 이야기해드릴게요. 아는 동생이 쇼핑몰을 하나 차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DP 할만한 모델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그쪽은 시작하는 단계여서 유명한 사람은 필요 없고요.

왜 놀리기 미안한 친구들 있잖아요. 너무 일이 없어서 용돈 벌이 필요한 친구들요. 그런 친구들한테 경험 삼아 하게 하고, 용돈도 챙겨주면 좋을 거 같아서요. 말이 부탁이지 정산은 확실하게 할 겁니다."

나는 말을 끝내고 박인혜를 봤다.

어라?

쉽게 오케이 해줄 줄 알았는데, 매우 심각한 얼굴로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혹시 내가 말을 잘못했나?

모델에 대한 프라이드는 강한 박인혜지. 지킬 건 지켜 주자.

"어··· 그 놀리기 미안한 친구들이란 표현이 마음에 안 든다면 그런 뜻이 아니라."

"민현찬 씨는 정말 신기하네요."

"왜요?"

"안 그래도 쇼핑몰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KP 엔터에서 하기는 무리가 있어요. 디자이너 없이 모델 회사가 쇼핑몰을 차리는 건 조금 우습잖아요. 그렇다고 우리 쪽에 유명 셀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관계사 수준으로 조그마한 쇼핑몰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네요! 신입들에게는 작은 경험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 쇼핑몰 매출은 어느 정도죠?"

"···0원입니다."

"네? 그럼 디자이너는?"

"이제 구하러 다니고 있을 거예요."

"저기 민현찬 씨. 장난인 건 아니시죠? 아니, 혹시 이것도 테스트인가요?"

"사실 그게 말이에요···"

나는 박인혜에게 유소라의 쇼핑몰에 대해 있는 사실대로 말했다.

야! 나는 그냥 부탁했을 뿐이야! 과대해석 한 건 당신 착각이야.

민망하게 있는데, 박인혜는 오히려 껄껄 웃었다.

진짜 관우 같네.

"아하하하 그 아이 대단하네요. 마음에 들어요."

"진짜요?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이거 테스트 아니에요."

"얼마나 기특해요? 아는 오빠한테 떼 써도 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발표를 준비해왔잖아요. 어쩌면 그 아이는 미래의 빌 게이츠일지도 몰라요."

"빌 게이츠는 하버드 입학생인데... 여튼, 그런 이유로 할 만한 모델이 있는지 찾는 거예요. 걔도 핏은 괜찮은데, 그래도 모델이 압도적이잖아요. 옷이란 게 또 자기가 입는 거랑 남이 입는 거랑 느낌이 다르고요."

"네. 이해는 됐어요. 흐음. 할 만한 모델이라···"

손가락을 딱딱거리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없으면 무리는 하지 마세요. 이건 플러스알파 같은 거지 메인 디쉬는 아닙니다. 안 해준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후훗. 그 말이 제일 무서운 거 아세요? 순간 우리 회사 에이스인 은미라도 불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이건 농담이고 마침 일에 목마른 친구가 있어요. 나레이터 모델이라도 하겠다고 뭐라도 시켜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 친구가 누군데요? 열정적인 두 사람이 만나면 제법 괜찮은 그림이 그려지겠는데요."

"아하하하. 어쩜 그렇게 저랑 생각이 똑같으세요.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 한 번 두 사람에게 기대해보죠."

"그래서 누구예요? 예뻐요?"

"이런 모습 보면 현찬 씨도 20대 초반이 맞는데, 왜 돈 만들어가면 무서워지는 건지 모르겠네요. 엄청 예쁩니다. 지금 한번 보실래요?"

"네!!! 지금 볼래요!!! 아씨! 잠시만. 그러면 내가 여기 주주인 거 들키잖아."

"조카라고 하죠. 뭐. 잠시만요."

고러면 되겠네! 박인혜 융통성도 많이 늘었어.

박인혜는 휴대전화를 들었고, 조금 있자 입을 열었다.

"어 혜리야. 오늘 회사 온다고 했지? 어디야 근처야?"

···

누구라고요? 혜리라고요?

잠시만이라고 외치려는데 박인혜가 더 빨랐다.

"응. 내 조카가 너 모터쇼에서 봤다고 싸인 받고 싶다고 해서. 잠시만 와줘."

저···

박 대표님. 저를 조카라고 하면 조까는 소리가 돼요.

왜냐하면, 이미 박 대표님 몰래 둘이서 친구 먹은 사이거든요.

시불. 뭔가 조진 기분이다.

혜리가 오기 전에 박인혜에게 모터쇼에서 있었던, 엘레나, 혜리, 최혜승과 만남을 이야기해줬다.

이야기를 들은 박인혜가, 몰래 나간 거냐고 길길이 날뛰는 걸 겨우 말렸다.

얘들아. 입이 싼 남자라서 미안해.

다행히 내 얼굴을 봐서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고, 조금 있자 혜리가 도착했다.

지금은 커피숍에서 세 사람이 이 조합이 뭔가 하는 생각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다.

그 어색함을 처음 깬 건 박인혜다.

"혜리야. 내 조카 민현찬이야."

"대표님 조카분이 현찬이예요?"

"응? 너 현찬이 알아?"

"아··· 엘레나 언니 친구분이라서 잠시 인사했어요! 진짜 인사만 잠시 했어요! 그런데 진짜 현찬이가 대표님 조카예요? 모터쇼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 대했잖아요."

"···어! 그때는 너희들 있어서 일부러 그랬어. 아 맞아. 깜빡했네. 나 회의 있어."

"지금 이 시간예요?"

"여튼 있어. 나는 갈게 두 사람 이야기 나눠요. 현찬아~ 나는 네 부탁 들어줄 테니까 설득하는 건 네가 알아서 해~"

박인혜는 말이 꼬이자 잽싸게 도망갔다.

이렇게 나를 버리고 가시는 겁니까!

어색한 얼굴로 도망가는 박인혜를 보는데, 혜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현찬아 뭐야? 너 진짜 대표님 조카야? 그런데 왜 성이 달라?"

"어. 조카 맞아. 조금 먼 조카여서 그렇지. 아마 한 7촌 정도 될걸?"

"뭐야. 그 정도면 남이잖아."

"···그럼 6촌인가 보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해?"

"잘 지냈어?"

"뭐···? 아하하하 뭐야~ 나는 잘 지냈지~ 서울 오면 연락한다더니, 이렇게 볼 줄 몰랐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예상 못 했었어."

"그런데 부탁은 뭐고 설득은 뭐야? 대표님은 사인해달라고 해서 왔는데, 느낌이 사인은 아닌 거 같은데. 혹시 데이트 신청이야?"

왜 그렇게 환히 웃으며 말하니.

미안, 일 이야기야.

"그게 말이야···. 너 혹시 아르바이트 잠시 안 할래?"

"아르바이트? 나 안돼. 대표님이 알면 죽어."

"대표님은 허락했어. 부탁 들어준다고 했잖아. 그게 아르바이트거든. 이제 너만 나에게 설득당하면 돼."

"그래? 현찬이가 나를 설득한다라. 재밌겠다. 그래! 한번 들어볼래."

나는 이혜리에게 소라라는 후배가 신생 쇼핑몰을 연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2억 가까이 투자한다는 것도 말했고. 이래야 있어 보이잖아.

혜리는 처음에는 웃으며 듣다가,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표정이 진지해졌다.

···

그런데 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갑자기 현자 타임 오네.

말은 끝낸 나는 될 대로 되라는 표정으로 혜리를 봤다.

"어때? 할 거야? 이게 이제 갓 시작하는 거여서 너 커리어에 큰 도움은 안 될 거야. 용돈도 얼마 안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사실 귀찮기만 한 일이잖아. 그래! 안 하는 거로 하자!"

"할래."

"오케이 안 하는 거로 알고···. 뭐 한다고?"

"응. 나 할래!"

"왜? 심심하니?"

"자기가 하자고 해놓고는. 그리고 심심해! 모터쇼 끝나고 할 일이 너무 없어."

"그럼 롤이라는 게임을 하는 게 인생에 더 도움 될 수도 있어."

"그게 뭐야? 나 게임 안 해. 하여튼 나 방금 그 일 할래. 하고 싶어."

"하자고 해놓고 이런 말 하는 게 조금 이상한데, 왜?"

혜리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재밌을 거 같아서!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모델 생활해서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봤거든. 왠지 말로만 듣던 조별 과제 하는 기분이야."

"보통 조별 과제 하면 사이 틀어지는데···."

"아하하. 그럴 리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현찬이 너랑 같이하고 싶어."

"나랑? 뭘?"

"쇼핑몰 말이야~ 너도 하는 거 아냐?"

응. 아냐. 나 바빠.

젠장,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하는 건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뭐 발가락 두 개는 걸 치고 있을 건데···"

"그럼 됐어. 우리 한 팀이 된 거네. 잘 부탁해 현찬아~"

혜리는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가볍게 시작한 일이 창업 동아리가 된 거 같지?

별수 있나? 발목 정도는 담그자.

나는 혜리 손을 잡았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할게."

"너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기분 탓이야 기분 탓."

"아하하하 그런데 진짜 재밌겠다. 나 안 그래도 친구 없었는데, 네 덕분에 많은 사람 알게 되겠어. 사실, 그게 너무 기분 좋아."

아. 혜리는 친구가 없지.

그래서 이번 일을 받아들였나 보다. 전문적인 일과 대학교 동아리 모임의 중간 같은 모습이잖아.

그 마음을 아니 무릎 정도까지는 담가 봐야겠다.

"그래. 내 주위에 괜찮은 사람 많아. 소라라는 애는 미친년이지만, 꽤 괜찮은 애야."

"네가 미친년이라고 했다고 소라 언니란 사람한테 일러바쳐야지."

"너보다 두 살 어리거든."

"진짜? 그렇게 어린데 사업하겠다는 게 대단하다. 아! 잠시만! 나 갑자기 같이할 사람이 한 명 더 생각났어!"

"누구? 엘레나? 아니면 최혜승 누나?"

"뭐야? 너 지금 모델은 나 하나로 부족하다는 거야?"

"그럴 리가. 차고도 남지. 그럼 누가 생각났다는 거야?"

"모델이 있으면 뭐가 있어야 해?"

"옷이 있어야지. 설마 너 아는 디자이너 있어?"

"전혀 없어. 디자이너 말고! 뭐가 있어야 해?"

"···매니저?"

"아하하하. 사진작가가 있어야 하잖아. 나 아는 사람 한 명 있어."

"누구? 누구? 유명한 사람이야?"

"유명하지는 않은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람이야."

"누군데?"

"민 다희~ 다희 씨한테 부탁하자!"

···

저기요. 저 그래도 여기 2억 넣었어요.

왜 점점 사업이 동아리 모임이 되어가냐.

그래! 아직은 모른다. 다희랑 소라가 거절할 수도 있잖아.

"그래. 일단은 부탁은 해보자. 그런데 다희랑 소라가 거절할 수도 있어. 두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고 판단하자."

"그래. 다 같이 하면 재밌겠다. 나 너무 설레."

미안 혜리야.

아마 힘들 거야. 다희는 한다고 쳐도 소라는 자기 사업인데 이렇게 아마추어를 쓰겠어?

내일 소라랑 이야기해봐야겠다.

< 쇼핑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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