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24화 (224/295)

< 부산 >

1월 중순의 부산은 따뜻하구나.

부산의 한 호텔에 도착하자 정오의 따뜻한 태양이 우리를 쬐었다.

차에서 내린 이세연은 깊은 호흡을 하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흐으읍~ 이게 부산인가?"

"너 처음 와봤어?"

"어릴 때 말고는 처음 와봤어요."

"어때?"

이세연은 후드 점퍼를 벗은 뒤, 한 손에 들었다.

"오빠 너무 더워요. 왜 여기만 봄이에요? 같은 한국인데 이렇게 온도 차가 크게 나요?"

"그러게. 나도 이렇게 더운 줄 몰랐어."

진짜 덥네. 두꺼운 코트 안에서는 몸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를 주차하고 호텔로 들어갔다.

키를 받고 위로 올라갔는데, 방은 하나씩 나란히 배정되어 있었다.

"킥킥. 그래도 오빠랑 방이 붙어 있어서 다행이네요."

"귀신 나올까 봐 무서워서 그래? 세연아~ 그럼 우리 같은 방에서 지낼까?"

"됐거든요. 귀신보다 오빠가 더 무섭거든요. 우리 일단 조금 쉬었다가 봐요. 먼 길 운전했더니 피곤하네요."

"이번에는 인정. 대구까지는 네가 운전했으니, 고생 많았어. 그럼 딱 한숨만 자고 보자."

"네. 오빠~ 일어나면 전화할게요."

이세연은 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보름 동안 머무는구나.

깔끔한 호텔 방을 보자 묘한 기분이 든다. 한국이 아니라 해외로 출장 온 느낌이다.

나는 한쪽에 옷 등의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피곤함에 그대로 잠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 떠보니 밝았던 유리 창문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시불. 밤 11시 이런 건 아니겠지?

화들짝 놀라서 시계를 봤는데, 다행히 저녁 여섯 시다. 밖에 나가서 놀기 딱 좋은 시간이다.

어차피 행사는 내일부터니 오늘은 가볍게 부산 구경하고 오자.

나는 휴대 전화를 들어서 이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디리리링

-.... 하... 여보세요?

"세연아 아직 자고 있어?"

- 하응~~ 조금 전에 일어났어요.

"내 전화 받고 이제 일어난 거겠지. 정신 차리고 밥 먹으러 가자."

- 네에... 아자자자! 오빠! 나 씻고 준비 다 하고 다시 전화할게요.

아마도 씻고, 옷 갈아입고, 머리 말리고, 화장하면 내일쯤 연락 오겠지?

먼저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쯤 지나자 이세연에게 전화가 왔다.

- 오빠! 준비 끝났어요.

"이제 다시 서울 올라가면 돼?"

- 네?

"하도 오래 걸려서 농담 해본 거야. 지금 나갈게. 방 앞에서 보자."

가벼운 코트를 몸에 걸치고 호텔 방을 나갔다.

조금 있자 옆방 문이 열리며 이세연이 나왔는데.

"야. 너는 무슨 준비하는데 한 시간... 이 걸릴 만하네."

"킥킥. 나 예쁘죠?"

어. 졸라 예뻐.

체크무늬 코트에 안에는 검은색 니트를 입었는데, 내 시선이 가는 곳은 다리다.

검스라니!!! 왜 이때까지 안 신어주다가 이제야 신은 거니!

"세연아. 나 오늘 네 방에서 잘게."

"...오빠?"

"아니, 우리 이대로 어느 방이든 같이 들어가자."

"헤헤헤. 오빠~"

이세연이 씨익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향긋한 향수 냄새에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내 귀가 잡아 뜯겼다.

"야! 야! 민현찬! 아니, 예쁜 화장을 했으면 얼굴을 봐줘야지 왜 다리만 보는 건데? 뭐 그리고 방에 들어가자고? 왜? 들어가서 뭐 하게? 응? 응?"

아. 화장을 예쁘게 했구나? 미안. 전혀 몰랐어.

"세연아. 예쁘게 화장한 거 알고 있었어. 오늘 화장 진짜 예쁘게 됐다. 너무 예뻐!"

"뭐예요? 그럼 화장 안 하면 못생긴 얼굴이란 말이에요?"

젠장. 오래간만에 함정 카드 밟았네.

"아니 그건 아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예쁘다는 소리지! 그러니깐 그만 귀 좀 놓아줄래? 복도에서 떠들면 신고 들어와."

"아! 맞다. 여기 사람들 많지."

이세연은 황급히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자 다시 검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

하... 저... 스타킹을... 하...

한참을 넋 놓고 있는데, 세연이가 웃으며 나에게 팔짱을 꼈다.

"오빠~ 다리 그만 보고 우리 밥 먹으러 가요~ 헤헤헤."

그 순간 검스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환하게 웃으니 더 예쁘네. 오늘 이세연은 연예인 뺨 때릴 정도로 예뻐보였다.

"너. 이렇게 예뻤어?"

"아하하. 오빠 장난치지 마요."

"아니. 진짜 너무 예뻐. 현기증이 날 거 같아."

"립 서비스는 이미 늦었거든요. 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요."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팔짱을 끼고 나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끌고 간다.

끌려가는 동안 향긋한 샴푸 냄새와 향수 냄새. 그리고 팔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이세연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오빠 부산에 뭐가 맛있어요?"

"글쎄? 먹고 싶었던 거 있어?"

"음... 국밥이랑 밀면 맛있다면서요? 뭐가 더 맛있어요?"

"그걸 먹기에는 오늘 네가 너무 예쁘네. 어차피 일하면서 많이 먹게 될 거고. 딱히 먹고 싶은 거 없으면 오늘은 광안리 가자."

"거기 맛있는 데 있어요? 아니면 횟집?"

"아니. 풍경이 좋아서 그래. 거기서 광안대교 보면서 밥 먹자."

이세연. 내 제안이 마음에 드나 보다.

"헤헤헤. 네 오빠. 광안리 가요."

세연이가 나에게 팔짱을 낀 채, 우리는 광안리로 향했다.

광안리 길을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본다.

- 머고? 연예인 이가?

연예인이 아니냐는 말도 바닷바람을 타고 와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빠 여기 연예인 왔어요?"

"네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연예인인 줄 아나 봐."

"에이 설마. 내가 보기에는 오빠 때문인 거 같은데요? 오늘 진짜 분위기 있어요. 맨날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지 말고 이렇게 좀 입어요."

간만에 구두에 코트를 입었더니 이세연이 멋있다고 호들갑이다.

"너도 오늘 장난 아닌데? 너야말로 진짜 예쁘게 입었구만."

"그냥 대학 합격도 했겠다 기분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해운대 안 가고 광안리로 왔어요?"

"해운대는 바다랑 식당가가 멀어서 밥 먹으면서 바다를 보기 힘들거든. 광안리가 바다랑 식당가가 가까워서 보기는 더 좋아. 그리고 저기 봐."

"어? 다리에 불 들어와 있다."

광안대교에 별처럼 반짝이는 조명이 켜져 있다.

"어때? 예쁘지?"

"헤~ 진짜 예쁘다."

이세연은 넋을 놓고 광안대교를 봤다.

참. 내 인생에 여자랑 둘이서 광안대교를 보는 날이 올 줄이야.

감회가 새롭네.

우리는 잠시 구경한 뒤, 근처의 파스타 집에 들어갔다.

맛있는 게 뭐 중요하겠어? 분위기가 중요하지.

파스타랑 스테이크, 맥주를 시켜놓고 광안대교를 구경하는데, 이세연이 기분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빠. 그런데 여기 어떻게 알아요?"

"응? 뭐가?"

"보통 초행길이면 길도 잘 모르고 그러는데, 단번에 저 데리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솔직히 말해봐요! 부산에 숨겨놓은 사람 있죠?"

"숨겨놓은 사람은 없고, 나 여기서 살았었어."

"정말요?"

"그래. 이 가시나야. 그래서 내가 마. 이 말투 쓰는기라!"

"나 전혀 몰랐어요! 언제 살았던 거예요?"

"중학교부터는 부산에서 살았었어."

"헤헤헤. 신기하다. 추억 같은 거 없어요?"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깡통시장인가? 중학교 때 거기 가서 무서운 형들에게 둘러싸여 싸구려 옷 비싸게 산 적 있고, 서면 지하상가에서 씨디플레이어 돈 두 배로 주고 산적 있어."

"진짜요? 오빠 어릴 때 바보였어요? 아니. 어떻게 그런 걸 속아요!"

그렇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릴 때도 호구였구나.

크흐흑!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게 말이야. 생각해보면 지금은 다 추억이지. 맥주 왔다 우선 한잔하자."

테이블 위에 요리와 맥주가 세팅됐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맥주를 한잔했는데, 로맨틱하다.

가게는 따뜻해진 날씨 때문인지 바닷가를 향한 문을 오픈해 놓았는데, 포근한 바닷바람이 불어와서 세연이의 노란 머리를 휘날렸다.

"겨울인데도 안 추워서 좋다. 내일 행사 어떤 건지 이야기 좀 해줘요."

"일단은 과학 행사인데, 뭐 별거는 아닐 거야. 그냥 아이들 상대로 설명해주고 같이 놀아주는 게 다일 거야."

"흐음. 그럼 전부 다 부산 사람이겠다. 우리 두 사람 표준어 하면 사람들 놀라는 거 아니에요?"

"아인데? 니만 놀라겠제. 오빠야는 사투리 할 줄 아는디~"

"진짜 할 줄 아네요."

"그럼. 영어는 못 해도 사투리는 할 줄 알아."

"킥킥킥. 나중에 취직할 때 영어 못해서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나 하지 마세요. 잠시만! 그런데 영어 하니깐 왜 갑자기 뭔가를 놓친 기분이 들지?"

"그래? 사실 나도 그런데. 우리가 뭘 놓친 게 있나?"

"흐음... 아무래도 없는 거 같은데."

나와 이세연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에이. 별거 아닐 거야. 맥주나 한잔하자."

"네 오빠. 헤헤헤. 그래도 오빠랑 둘이서 여기 있으니깐 좋다."

"나도. 진짜 제대로 놀러 온 거 같아. 앞으로 보름 동안 잘 부탁합니다. 이세연 씨."

"아하하. 저도 보름 동안 잘 부탁합니다. 민현찬 씨."

우리는 잔을 마주친 후, 맥주를 천천히 마셨다.

부산에서의 첫날밤은 맛있는 맥주와 로맨틱한 분위기에 지나갔다.

밥을 다 먹은 우리는 광안리를 걸으며 조금 더 구경한 후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와 이세연은 8시쯤 벡스코에 도착했다.

조용한 벡스코 안을 구경하다가 '과학 놀이'가 붙어 있는 전시장 입구에 섰는데, 20대 후반의 여자가 궁금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행사 참가 신청하신 분들인가요?"

"네. 민현찬과 이세연입니다."

"잠시만요."

잠시 종이를 훑어보더니, 궁금한 얼굴이 미소로 바뀌었다.

"멀리서 오느라 늦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일찍 오셨네요. 저기 부스 뒤쪽으로 가시면 돼요."

꾸벅 인사를 하고 이세연과 함께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행사 규모는 생각보다 크다.

각 과학 체험관의 크기는 10~20평 사이로 다양했는데, 그런 체험관이 대여섯 개가 넘게 있었다.

그런데 왜 이리 익숙하지? 체험관들이 대부분 낯이 익다.

"오빠. 여기 진짜 큰 행산가 봐요."

"정부에서 해서 그런지 작지는 않네. 저 안쪽으로 가자."

"응? 길 알아요?"

"바로 앞에 사람들 들어가는 거 봤어."

나와 세연이는 부스 뒤편으로 갔다. 거기에는 이미 자원봉사자가 40~5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그중에 30대로 보이는 형이 우리를 바라봤고, 나는 이세연을 데리고 와서 그 사람 앞에 섰다.

"여기 행사 책임자시죠?"

"아. 네. 혹시 두 분은?"

"책임자 맞구나. 경기도에서 온 민현찬 이세연입니다."

"멀리서 오기로 한 두 사람이군요. 반갑습니다. 김민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세연입니다."

"저는 민현찬 입니다. 저희 아직 스태프 목걸이 못 받았는데요."

"안 그래도 지금 막 나눠주는 중입니다. 보자. 여기 두 사람 거 있네요. 이거 없으면 못 들어오시니 잊어버리지 마세요. 그런데 혹시 저 아시나요?"

"네?"

"하하하.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서요."

"비슷한 사람을 본 적 있습니다. 보름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저희로서는 봉사활동 해주시는 분이 이렇게 적극적이면 고맙죠. 저야말로 보름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전부 다 왔으니 이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였고, 행사 총책임자인 김민우는 앞으로 나서서 모두에게 설명했다.

뭐. 간단한 설명이다. 담배는 꼭 밖에 나가서 피워야 하고, 사람들한테 친절해야 하고, 아프거나 힘든 일 있으면 말해줘야 하고, 시급은 2,500원이고.

...

레알 2,500원요? 봉사활동 개념으로 증서가 나오는 대신 2,500원이란다.

참. 이 사람들 아직 과거니깐 욕 안 먹지, 미래에 정부 행사가 이랬으면 SNS 올라오면서 여럿 모가지 날아갔어.

뭐 어차피 나는 상관없다.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스펙 쌓으려고 하는 거니깐.

대부분 같은 마음인지 아무도 불만 표시를 안 했다.

"네. 지금까지 말한 거 외에 궁금한 거 있나요?"

몇몇이 질문을 하는데, 밥은 어디서 먹냐? 이런 기본적인 질문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혹시 아는 사람이 없는지 바라보는데, 이세연이 내 팔을 잡았다.

"오빠. 그런데 행사가 어떤 내용인지는 왜 말 안 해줘요?"

"나중에 조별로 나누고 나서 조장이 따로 설명해줄 거야."

내 말이 끝날 때쯤, 김민우가 사람들 이름을 부르며 조를 나눴다.

우리 조는 여섯 명인데, 남자 둘 여자 넷이다.

조장은 25살 누나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는데, 키 167 정도에 얼굴은 동글동글하고 몸은 탄탄해 보이는 누나였다.

"안녕하세요. 조장 황예슬입니다. 혹시나 짜장면 좋아하는지 물어보지 마세요. 저는 한예슬이 아니라 황예슬이니깐요. 호호호!"

"아하하."

"꺄하하하."

황예슬 말에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

아. 환상의 커플 끝난 지 2년밖에 안 됐지?

나름 개그였구나.

"그리고 저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행사 주최 측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 혹시나 여러분들 중에서 불편한 사항이 생기면 저에게 바로 말해주세요. 제가 전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씩씩하게 말하는 모습이 신뢰가 간다.

이세연도 마음에 드는지 웃으며 내 팔을 잡았다.

"오빠. 저 언니는 봉사활동 아닌가 봐요."

"아마 조마다 회사소속으로 행사 진행하는 사람들이 한 명씩 들어가 있을 거야. 그 사람들이 메인 스탭이고, 우리처럼 봉사활동 하는 사람은 보조 스탭이 되는 거지."

"헉. 그럼 어느 조에는 막 싸이코 같은 놈이 갑질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지는 않을 거야. 최저시급 안 주는 대신에 봉사활동 참가자들 존중은 확실하게 해주거든. 이제 부스로 가나 보다. 우리도 조장 따라가자."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부스로 이동했고, 도착하자 기다란 테이블이 세개 정도가 놓여 있었다.

황예슬은 테이블 한가운데서 행사에 관해 설명을 해줬다. 과학적 이론도 설명해 줬는데, 몇몇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세연은 킥킥거리면서 내 팔을 잡았다.

...

너 무슨 어린아이니? 왜 계속 팔을 잡아?

이런 곳에 둘만 동떨어지다 보니 나를 의지하나 보다.

"아. 오빠 어떡해요. 하나도 모르겠는데."

"간단하네. 나를 봐. 그리고 눈치껏 따라 해."

"피. 말도 안돼."

그때 황예슬이 나를 불렀다.

"저기 뒤에 떠드는 잘생긴 친구~ 혹시 내 설명 다 들었나요?"

"네. 다 들었습니다."

"아닐 텐데. 진짜요?"

"그럼요. 노 프라블럼 입니다."

"아하하. 넉살은 좋네! 그럼 한 번 설명해 볼 수 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시비 같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뭐, 사람 말하는데 떠든 나와 이세연이 잘못하기도 했고.

저 사람으로서는 행사를 잘해야 하니 소란스럽지 않게 주의를 준 거겠지. 무엇보다 말투가 밝고 다정하다.

내 옆에 있는 이세연은 황급히 나 대신에 손을 들었다.

"저기 스탭님! 제가 대신 설명할게요."

"세연아 괜찮아. 이번 행사에서 우리가 설명해야 할 내용은 뭐냐면요."

나는 세연이를 다독이고 앞으로 나가서 전자레인지에 손을 올렸다.

"우리가 하는 것은 압화입니다. 플라워 공예인데, 그걸 체험하게 해주고 어린아이들한테 과학 원리를 설명해주는 거죠. 압화는 꽃 속에 있는 물을 다 증발시켜서 말리는 건데, 원리는 전자레인지에 꽃잎을 넣고 돌리면 물 분자가 진동하게 되고 전부 다 증발하게 되죠. 그래서 결국 물기가 없는 꽃잎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황예슬 스탭님 이게 맞나요?"

나는 황예슬을 보며 웃었고, 황예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돌아오자 이세연이 놀라서 팔을 잡았다.

"오빠. 어떻게 알았어요?"

"뭐 그냥. 내 팔 떼서 들고 갈래? 킥. 이 정도는 기본이지."

세연아. 나, 이거 전생에 했던 행사였어.

체험관에 들어올 때부터 뭔가 조금씩 익숙하다 싶었지.

그리고 김민우를 보자 낯이 익기도 했고.

그때는 군대 갔다 오고 나서 했었는데, 매년 하는 연례행사 였구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황예슬을 보자 확신이 들었다. 역시 나는 여자는 절대 안 잊어!

황예슬 누나. 오래간만이네요. 잘 지냈죠?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반갑네요.

< 부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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