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
성인용품 가게는 운전하면서 볼 때는 음흉해 보였는데, 막상 도착하니 생각보다 거부감이 심하지 않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갔고, 사장님 같은 분이 구석에서 나왔는데 낯이 익다.
설마?
"어서 오세요. 어? 니 저번에 금마 아이가?"
"사장님. 여기서 장사하세요?"
은미 수갑 살 때 사장님이잖아. 그때는 홍등가에서 장사하더니 왜 여기 계세요?
"아하하. 거기 단속 떠서 다 망해뿌따. 그래서 일로 옮겼다. 이제 나도 양지로 나와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고마 정상적인 가게로 하나 차맀다!"
"사투리는 여전하시네요. 여기도 그다지 정상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데 2년이나 지났는데 저 기억하시네요."
"당근 빠따지! 맨날 업소 애들 보다가 얼라 와서 얼마나 신기했는데. 마! 니 그거 우째 됐노?"
"어떤 거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링. 내가 미제 물건 이길 수 있다고 니한테 링 줬다이가. 마! 미제 이깄나?"
상대방이 미제를 경험했어야지 알죠...
이 아저씨는 여전하네. 빨리 사고 나가자.
"써보지도 못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거 사러 왔어요."
"이놈 봐라. 그때는 얼라였는데, 이제 여유도 있고 남자 다 됐네. 뭐 사러 왔는데? 돌기형 콘돔? 요거 쓰면 흑인 이길 수 있다."
"저... 이길 생각은 없고요. 어떤 거 있어요? 재미난 거 없어요?"
"잠시만 있어봐라. 내가 재미난 거 가져올게."
한쪽 구석에 가서 뭔가를 뒤지더니 커다란 박스를 꺼냈다.
내용물을 하나씩 테이블 위에 펼치는데... 오우! 물건은 제대로다.
절대 허접하지 않다. 대충 봐도 정품처럼 보인다.
아저씨는 씨익 웃으면서 흉측한 모양의 물건을 들었다.
"마! 딜도라고 들어봤나? 사람은 기계 못 이기는 거라. 흑인이고 미제고 나발이고 단단한 게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요거. 요거 봐라. 진동도 된다."
지이이잉.
버튼을 누르자 내 고추만 한 게 달달 거리며 움직였다.
...
어마무시하네.
아저씨는 이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걸 꺼냈다.
"이거는 뭔지 아나?"
"안마기 아니에요?"
"임마! 보통 안마기가 아니다. 클리 안마기다 클리 안마기! 니꺼 확 박은 다음에 클리에 이거 대고 틀잖아? 니꺼 생체 딜도 되는 거다. 생체 딜도."
이... 이거는 좀 끌리네요.
그 외에도 이것저것 꺼냈다. 노끈 같은 것도 꺼내고, 안대도 꺼내고. 가터벨트도 꺼내고.
"자 다음 거는 뭐냐면."
"아저씨.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습니다."
"그래? 전기 자극 주는 것도 있는데."
괜찮아요. 더 하드 해지는 건 제가 감당이 안 돼요.
이제 구매를 하자.
나는 테이블에 있는 거 전부를 손으로 넓게 가리켰다.
"이거 다 주세요."
"어? 뭐라 했노?"
"전부 다 달라고요."
"와. 처음 왔을 때 솜털 난 얼라 였는데, 이제 남자 다 됐네! 고마 남자는 직진으로 한 방에 가야지! 내가 특별히 이거는 공짜로 준다. 캬. 이거 구하기 힘든 건데."
"뭔데 그래요?"
"비아그라다 비아그라. 이거 먹잖아? 여자 손끝만 스쳐도 바로 고단봉 되는 기라. 니 고단봉 아나? 고향에 있는 봉우리 이름인데, 거가 경치가 직인다. 니 고단봉 가봤나? 내가 봉우리에 올라가서 여자한테 물건을 물렸는데."
아...
이 아저씨 삼천포로 잘 빠지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등산하면서 여자랑 했던 썰을 푼다.
"네. 네. 알겠습니다. 어서 포장해주세요."
"아. 내가 말이 길었네. 알았다. 좀만 기다리라."
그래도 물건은 확실하게 파네.
나한테 보여줬던 거는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새 제품을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잘 써라. 고장 나면 연락하고."
"앓겠습니다. 여기서 계속 장사할 거예요?"
"왜? 사람들 소개해 주게?"
그런 건 아니고요.
지금은 음지에 있지만, 나중에는 진짜 양지로 올라올 수도 있거든요.
여튼 물건은 확실한 아저씨잖아? 내 근처에서 장사했으면 좋겠다.
"그냥 여기서 계속 장사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 들어서요. 혹시 알아요? 여기서 봄이 필지?"
"와? 여기 홍등가 생긴다나?"
"...아닙니다. 여튼 물건 감사해요. 다른 데로 옮기시면 연락주세요."
"알았다! 나도 간만에 얼라 보니깐 좋네. 오늘 밤에 코피 나도록 달리 뿌라."
오늘은 아니에요.
이거 꺼내는 순간 아무리 이용권 있다고 해도, 선미 성격상 내 엉덩이에 박아 버릴 거다.
천천히 함정을 파자. 제발 걸려들어라!
- 이 새끼 또 선미한테 이상한 거 들이밀고 욕 처먹으려고 하네. 다시 시베리아 경험하려고 하는 거야?
훗훗. 호구신님. 예전의 민현찬 아입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할 겁니다.
- 너 선미한테 욕 처먹는다는 것에 내 오른손을 건다.
그거는 두고 보면 알겠죠.
기다려라. 이선미!
*
선미도 왔고, 이세연도 왔고. 올림픽도 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건 또 야구가 꿀잼이지.
오늘은 미국과 1차전이 있는 날이다.
빌라는 잔칫날인지 오래간만에 사람이 북적북적한다.
소파에는 선미가 드러누워 있고, 한쪽에는 이세연이 등을 기대고 있다.
두 사람을 물끄러미 보자 선미가 발을 동동 굴리며 말했다.
"야! 현찬아! 나 만화책 좀 줘. 가방에 있어."
"너는 야구 보러 와서도 만화 보려고 하냐?"
"킥킥. 오빠! 선미 언니 같이 있는 것만 해도 좋은데 왜 그래요?"
"이세연 선미 왔다고 기 산 거 봐라. 임석훈. 어떻게 생각해?"
"안 본 지 오래되기는 했지만, 저 둘 너무 붙어있는데. 너 애들 관리 어떻게 한 거야?"
"뭐래? 석훈 오빠 동사무소에서 여자 직접 거리다가 욕먹었다면서요? 나 다 들었어요."
"어? 너 누구한테 들었어?"
"학교에 소문 다 난 거 몰라요? 학과 사무실 언니가 동사무소 언니랑 친구래요."
"그럼 정확하게 소문 내달라고 해. 양다리 걸치다가 걸려서 욕먹은 거야."
"와... 오빠는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야! 임석훈!"
"왜? 이선미."
"너 이번에는 티비 안 때웠어?"
"현찬이네 집 티비도 이제 크잖아. 때 와서 뭐 해. 대신 옷은 사 왔어."
임석훈이 가방에서 붉은 악마 티셔츠를 꺼냈다.
...
석훈아. 야구는 이거 입는 거 아니야.
"임석훈 이 미친놈아. 야구 하는데 무슨 붉은 악마 티셔츠를 사 와? 구한 게 더 신기하다."
"뭐 어때? 재밌으면 장땡이지. 자 여자분들 어서 가서 입으세요!"
"안 입는다. 나 이제 그런 거 입을 짬밥 아니다."
"기분 내자고 입는 거지! 자! 어서 가서 입어! 이세연 너도!"
"아씨. 귀찮은데. 언니 가서 입어요."
"에휴. 어쩌다가 저런 게 친구라고. 그래 입어주자."
선미와 세연이는 옷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임석훈도 한 장씩 들었는데, 가방에는 티셔츠가 한 장이 더 남아 있다.
나는 임석훈에게 마지막 남은 티셔츠를 건넸다.
"안 갖다주고 뭐 해?"
"쓰읍. 나는 초면이어서 불편하다. 네가 갖다줘."
"천하의 임석훈이 여자 보고 불편하다니. 별일이네."
"쟤 조금 무서워. 뭔가 나랑 비슷한 냄새가 나."
...
그래. 유소라가 여자 임석훈이긴 하지.
마지막 티셔츠를 들고 주방에 갔다.
오늘의 요리사인 유소라는 즐겁게 요리를 만들고 있다.
뒤에 가서 머리에 붉은 악마 티셔츠를 덮자, 소라가 귀여운 목소리를 낸다.
"헤헤헤~ 선배님! 잠시만요~ 앞이 안 보여요."
"현찬 선배거든요. 어디서 착한 척이야?"
"뭐야? 오빠였어? 빨리 치워. 고기 타!"
태세변환 보소. 우디르 인줄 알았네.
붉은 티를 치우자 소라는 다시 요리에 집중한다.
"음식 다 했어?"
"응. 고기만 구우면 다 됐어. 치킨도 왔고. 이제 먹으면 되겠네."
"누가 보면 장금이인 줄 알겠다. 왜 이리 열심히 해?"
"내가 막내잖아. 원래 막내들이 이런 거 하는 거야."
"아이고. 나랑 둘이 있을 때도 좀 착해 봐라."
"키키키. 착하게 대주잖아. 실컷 즐길 때는 언제고 무슨 소리야? 그런데 나 지금 너무 재밌다."
"뭐가?"
"사람들 모여서 같이 야구 보는 거 너무 재밌어. 이렇게 붐비는 것도 신나. 오빠 언니들은 항상 이렇게 놀았어?"
"우리야 매번 이렇게 놀았지."
"부럽다. 다들 재밌게 지내는구나."
소라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너도 이제 재밌게 놀면 돼."
"응. 알았어."
"그런 의미에서 옷 갈아입고 와. 내가 마무리할게."
"오빠 요리할 줄 모르잖아."
"최소한은 할 줄 알거든. 어서 갈아입고 와."
"알았어."
소라는 옷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 깜짝이야! 임석훈인 줄 알았어.
- 헤헤헤. 선미 선배님 죄송해요.
- 아니야. 괜찮아.
사락. 사락
- 응? 와~ 너 엄청 크다. 세연이 보다 더 커!
- 언니! 밖에 변태 오빠들 있어요! 다 들리겠어요!
- 괜찮아. 저 발정 난 놈들 들으면 뭐 어때?
그래. 들으면 뭐 어떻겠니?
나와 임석훈은 어느새 문 앞에 귀를 대고 있다.
"야! 민현찬. 고기 탄다."
"몰라. 이미 다 탔어. 너 옷 사이즈 어떤 거로 사 왔어?"
"당연히 타이트하게 사 왔지."
"잘했다. 맞기는 네가 맞고 구경은 내가 할 악!"
시불. 갑자기 문이 확 열렸다.
알파벳인가?
B컵 C컵 D컵의 여인들이 나왔는데, 옷이 타이트해서 가슴이 확 커져 있다.
이선미는 자빠진 임석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머리를 획 당겼다.
"미친 새끼야. 이번에도 작은 사이즈로 사 와?"
"악! 이거 놔라! 여자 옷 사이즈를 몰라서 아무거나 산 거야."
"지랄. 맨날 여자 선물 사주는 사람이 잘도 모르겠다."
옆에 있던 이세연은 임석훈을 밟는다.
"오빠. 아니, 이게 옷이에요? 무슨 배꼽티도 아니고!"
"세연아. 아니다. 그거 민현찬이 고른 거다. 어? 야! 민현찬! 너 혼자 도망가기야?"
"무슨 소리야? 나 고기 굽고 있는데."
미안. 살 사람은 살아야지
나는 넘어지는 순간 주방으로 뛰었다.
악!
시불 누가 내 발을 밟았다.
소라가 어느새 옆에 와서 노려보고 있는데, 붉은색 티셔츠에 볼록 튀어나온 가슴만 보인다.
···
가슴 진짜 크네.
"오빠."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다."
"아무 짓도 안 하면 어떡해요! 고기 다 타잖아요!"
응? 어라? 붉은 제육볶음에 간장이 들어갔나? 검은색이 곳곳에 보인다.
소라는 내 손에서 뒤집개를 뺏었고, 나는 그대로 주방에서 쫓겨났다.
거실에 가자 임석훈은 벌러덩 누워서 쓰러져있고 선미와 세연이는 붉은 옷을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다.
임석훈 어깨를 발로 툭툭 치자, 눈을 뜨고 나를 본다.
"인간아. 인간아. 그러게 애들 옷 사이즈는 맞춰서 사 왔어야지."
"미친놈아. 너도 좋다고 킥킥거렸잖아!"
"내가 언제? 어? 너희 둘 그렇게 보지마! 나는 전혀 상관없어."
이선미는 목을 까딱거리고, 이세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잘도 그러시겠네. 이것들 발정 듀오는 언제 정신 차리려나."
"오빠! 어서 상이나 차려요! 조금 있으면 야구 시작해요!"
"알았다. 어서 준비하자. 임석훈 그만 일어나. 어서 술이나 가져와."
"네."
"웬일로 고분고분해?"
"내 분수를 깨달았어. 나는 여기서 최하층민이야."
부엌에서 소라 목소리가 들렸다.
"석훈 선배님이 무슨 최하층민이에요. 제가 막내죠. 어서 상 펴주세요~ 요리 다 됐습니다!"
드디어 다 됐구나. 소라가 구수한 냄새와 함께 커다란 냄비를 낑낑거리며 들고나왔다.
우리는 서둘러 상을 차렸다. 소라는 냄비를 올리고, 세연이는 치킨을 올리고, 임석훈을 술과 술잔을 꺼내고, 이선미는 숟가락을 놓고.
캬 잔칫날 맞네.
팔짱 끼고 구경하는데 숟가락 놓던 선미가 나를 빤히 봤다.
"너는 뭐해? 같이 안 차려?"
"나는 집주인이잖아. 그러니깐 축구로 치면 감독 같은 거지."
"감독은 무슨. 어서 음료수나 가지고 와."
후후후. 내가 왜? 막내가 있는데.
"막내야~!"
"네! 선배님!"
유소라가 생긋 웃으며 나를 본다.
저! 저! 저! 연기하는 거 보소. 그래 계속 연기해라. 나는 계속 부려먹을 테니깐. 으하하하!
"저기 냉장고에 콜라랑 사이다 있거든. 좀 가져와 줘."
"알겠습니다~"
"드디어 말 잘 듣는 후배 생겼네. 확실히 08학번이 착하단 말야. 07학번 싸가지랑은 달라."
"현찬 오빠. 그 싸가지가 설마 나는 아니겠죠?"
"무슨 소리! 세연이 너는 싸가지가 아니야!"
"그럼요?"
"개 싸가지지. 아! 야! 술잔 내려놔라. 그거 던지는 거 아니다."
"아! 진짜! 아니 오빠는 왜 나이가 들수록 개구쟁이가 되어가요?"
전생에 못 해봐서 그래.
이런 장난쳐도 욕 안 먹다니. 좋네.
"재밌잖아. 어? 경기 시작한다!"
티비에서 올림픽 야구 첫 경기인 미국과의 경기가 시작됐다.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가 이렇게 재밌었나?
흥미진진하다.
한국은 봉미미... 아니라 봉중근을 선발로 정대현 김광현까지 가면서 8회까지 4실점으로 막았다. 타자 진도 만만치 않다 야구주머니가 작던 이대호 형님이 큼지막한 홈런을 쳐 주시고 다른 타자들도 분발하면서 6점을 뽑았다.
적절한 투수전에 적절한 타격이 있는 재미난 경기다.
경기가 길다 보니 음식은 이미 다 먹었다.
다들 배를 두드리며 야구를 보고 있는데, 이세연이 소파에 누워 있는 선미를 보며 말했다.
"언니 어디가 이길 거 같아요?"
"나한테 물어본 거야? 너 솔직히 말해. 자는 줄 알고 물어봤지?"
"킥킥. 들켰네. 너무 말 없어서 물어봤어요."
"내가 너보다는 야구 더 많이 알거든. 흐음. 한국이 이기지 않을까? 미국은 프로 선수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현찬아 누가 이길 거 같아? 너 이런 거 도사잖아. 2006년 월드컵도 다 맞췄잖아."
"글쎄? 한국이 이기지 않을까?"
"스포츠광이 웬일로 자신 없어 해?"
"내 주 종목은 축구거든."
기억이 잘 안 난다.
준결승전인 한일전하고, 결승전인 쿠바전만 기억난다. 뭐 이기겠지.
이번에는 선미가 소라에게 말을 걸었다.
"소라야. 너는 누가 이길 것 같아?"
"네? 아! 선배님! 저는 한국이 이길 거 같습니다!"
풉. 푸하하하하.
초등학생이 선생님께 대답하는 줄 알았네.
유소라는 이선미한테 잔뜩 쫄아있다. 20살 때 두 살 차이는 크기는 하지.
그 모습을 본 선미는 피식 웃었다.
"누가 보면 내가 너 때린 줄 알겠다. 저번처럼 장난만 치지 마. 그럼 나는 아무 말도 안 해."
"네? 아! 네! 죄송합니다!"
"선미 언니. 그거 이미 우리 둘이서 풀었어요."
"그래? 그럼 됐어. 한국 투수 교체된다. 저 사람 누구야?"
9회 초에 한국 마무리가 투수가 올라왔다.
한기주라는데 누구더라.
아! 99.9의 꽉 찬 남자! 108번뇌의 사나이! 불기주 한작가 형님이잖아!
내 얼굴은 굳었고, 맞은 편에 앉은 유소라가 궁금한 얼굴로 나를 봤다.
"왜요 선배님?"
"한국 역전당할 거 같아."
"네? 에이 설마요. 한기주라면 지금 기아 최고 마무리인데요. 어? 선미 언니랑 석훈 오빠는 왜 그래요?"
내 얼굴을 본 임석훈과 이선미도 얼굴이 굳었다.
소파에 누운 이선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경기에 집중했다.
"민현찬 스포츠에서는 도사야. 저 새끼가 실점한다면 백프로 실점해. 석훈아 우리는 경험이 있잖아."
"맞아. 2006년 월드컵을 다 맞춘 놈이야. 아씨 불안한데."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한기주는 그대로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윤석민이 올라왔지만 결국 실점을 하고 역전당했다.
빌라에 모인 모두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이세연은 조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오빠! 어떻게 돼요? 다시 역전할 거 같아요?"
"응? 나 몰라."
"스포츠광이잖아요! 이것도 몰라요?"
사실 진짜 기억이 잘 안 나. 전승 우승했나? 그랬던 거도 같은데.
하지만, 모르니깐 더 재밌네. 쫄깃쫄깃하게 보고 있는데 티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대쓰요! 대쓰요!
정근우와 김현수가 진루한 상태에서 이택근이 땅볼을 쳤다.
"쳤다 쳤어! 동점이다!"
"꺄!!!!!! 누구야?"
"현찬아 우리 이긴 거야?"
"아직 아니야! 동점이야!"
"대박! 선배! 진짜 재밌어요!"
"야! 야! 어서 다 모여! 우리 기도하자!"
소라, 선미, 세연, 나, 석훈 순으로 우리는 나란히 섰다.
세... 세연아. 너무 당기는 거 아니니? 팔꿈치가 뭉클해서 봤는데, 세연이 가슴과 내 팔꿈치가 맞닿아 있다.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은 야구가 더 중요하다.
현재 3루에 이택근이 있고 이종욱이 올라왔다.
긴장해서 보는 순간 이종욱이 쳤고, 공은 하늘 높이 떠 올랐다.
-대쓰요! 대쓰요! 들어와! 들어와!
"쳤다!"
"이거 희생플라이다!"
"희생플라이면 좋은 거예요?"
"달려! 빨리 달려!!!!"
"개새끼야 빨리 달려!!!!"
...
소라야. 개새끼라니. 저거 스포츠 앞에서는 본성이 나오네.
하지만, 아무도 신경 못 쓴다.
이택근은 홈으로 달렸고! 한국은 9회 말 끝내기로 역전승을 했다.
"와!!!!!! 시발! 미국놈들아! 이게 대한민국이다!"
"석훈아. 욕은 좀 하지 마라."
"존나 재밌잖아. 오늘 경기 대박이다. 응? 그런데 아까 누가 욕하지 않았어? 여자 목소리 들렸는데?"
"아하하. 선배님이 잘못 들으신 거예요."
"소라 너 목소리랑 비슷한데."
"아니래도요. 헤헤헤."
소라 맞아.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우리는 어깨동무 하고 기쁨을 나눴다.
캬! 때로는 미래를 모르는 것도 좋구나! 간만에 야구 재밌게 봤네.
흥분한 마음으로 담배 피우러 나왔는데, 선미가 따라 나왔다.
우리 둘은 담배를 하나씩 물고 흥분을 나눴다.
"현찬아! 진짜 재밌다."
"오늘 경기 대박이다. 진짜 재밌었어!"
"그런데 별일이다? 네가 모르는 경기도 있고."
"그거 다 알면 토토 해서 떼부자 되지. 나도 다 아는 건 아니야."
"아하하. 진짠가 보네. 다음 경기 중국 경기지? 내기할래?"
"응? 갑자기 무슨 내기?"
"저번에 월드컵 때 너한테 오랄 당한 거 복수해야지."
호오. 그래?
저절로 함정에 들어와 주네.
"어디에 걸 껀데?"
"다음 중국 경기니깐 나는 한국이 이긴다에 걸게."
잠시만. 이러면 내가 지잖아. 아마 한국이 이길 건데.
"선미야. 그럼 나도 한국이 이긴다에 걸게."
"싫은데. 넌 한국이 진다에 걸어."
"야 그런 게 어딨어? 한국이 백프로 이겨!"
"백프로 이기는 게 어딨어? 네가 지면 한 달 동안 내 동생 하는 거다."
"만약 내가 이기면?"
"글쎄? 원하는 거 다 해줄게."
"나는 저번에 키핑해놓은 거 있잖아."
"키핑은 무슨. 그거는 그냥 하는 거고. 노예? 부하? 원하는 거 다 해줄게."
이기면 이득이고 지더라도 이용권 쓰면 되겠네.
연상의 누나와 섹스 하는 컨셉도 나쁘지는 않다.
까짓거. 콜 하자.
"그럼 이렇게 하자. 그날 승리 말고 모든 다른 결과는 내가 이긴 거다. 불만 없지?"
"너무 자신 있는데? 설마 한국이 중국에 지겠어? 그래 콜!"
그래. 혹시나 한국이 질 수도 있잖아.
한 번 운을 믿어 보자.
< 올림픽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