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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11화 (11/295)

< 시험 기간 >

스마트폰에서 찌릿한 전기가 느껴졌다. 왜? 갑자기? 나와라! 스마트폰.

추가 포인트가 들어 왔습니다.

특별한 섹스 : +100포인트, +1 크리스탈

잔여 포인트 : 600포인트

잔여 크리스탈 : 1개

크리스탈은 또 뭐지? 나중에 알 수 있겠지. 일단 패스.

-띠링

상점이 떴습니다.

1. 키+1cm : 1000포인트

2. 어깨 + 1cm : 1000포인트

3. 상점 칸 확대 +1 : 1000포인트

망할. 넥손에서 어플을 만들었나? 죄다 포인트를 써야 한다. 인간적으로 상점 칸 확대하는데 1,000포인트는 너무 한 거 아니야? 모바일 게임이었으면 쌍욕 먹었을 거다.

'600포인트 밖에 없구나.'

그나마 혜민이가 섹스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특별한 섹스면 100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니, 앞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섹스해서 포인트를 벌어야겠다.

"아씨!"

이 기분이 싫다. 섹스하면 돈이 생기는 건 좋다. 남자라면 누가 싫어할까?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 섹스하는 건 싫다. 이러면 섹스를 즐기지 못하고 일이 돼버릴 거 같다. 돈 벌려고 일하는 직장인과 다른 점이 없다. 이런 섹스는 싫다.

지지자는 불여호자지요, 호지자는 불여락자지니라.

섹마대사님 말씀. 알기만 하는 섹스는 좋아하는 섹스만 못 하고, 좋아하는 섹스는 즐기는 섹스만 못 하다. 즐기는 섹스가 최고다

즐거운 섹스를 위해서는 포인트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분명히 방법은 있을 거다. 풋볼매니지먼트의 사기 전술처럼 이 시스템을 붕괴시킬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다. 찾아내야만 한다.

-징~~~~

갑자기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임석훈이다.

-현찬아 당구 언제 칠 거냐?

-지금 갈게. 어딘데?

포인트도 포인트지만, 일단 이 소중한 자유 시간부터 즐기자.

요즘 나는 잉글랜드에 정복당한 스코틀랜드다. 잉글랜드는 바로 이혜민이다. 나만의 시간이 전혀 없다.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이 처형당하기 전에 자유를 외친 이유를 알겠다.

아임 프리! 당구치러 가자.

***

-땅! 턱 땅

"미친놈아 그게 쓰리쿠라고 친 거야?"

아이고 석훈아. 큐 질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어쩜 공을 저렇게 아메바처럼 생각 없이 칠까?

"와씨 너는 얼마나 잘 치는지 보자."

"이거 맞추면 형님이라고 부를래?"

공 두 개가 당구대 한쪽 모서리에 애매하게 모여있다.

"맞추면 형님이라고 부를게."

"오케이 접수 완료."

-땅! 다 다 다 땅

"와... 야 어떻게 친 거냐?"

"횡단 샷이라는 건데, 형님이라 부르면 가르쳐줄게.

"형님!"

부잣집 아들내미가 자존심도 없다. 사실 저런 성격이 좋아서 예전 삶에서도 같이 다녔다. 좋게 말하면 자존심이 없는 성격, 나쁘게 말하면 생각 없이 현재만 즐기는 성격이다.

한참 공을 가르쳐 주는데 갑자기 질문이 훅 들어온다.

"현찬아. 너 혜민이 많이 좋아해?"

"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친구라서 말해주는 건데, 너 그러다가 차인다."

임석훈의 말은 당구공에 히네루를 맥시멈으로 건 것만큼 내 머리를 굴리게 한다.

"알 다마 안 친다고 하는 말은 아니지?"

"정답! 농담이고. 그냥 너희 보면 조금 아슬해 보여서. 이혜민 인기 많잖아. 가슴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반면에 너는 얼굴이 잘생겼어? 키가 커? 그나마 축구 이야기는 이제 안 해서 다행이다."

"도라지 십장생 같은 놈아. 친구 여자 친구한테 가슴 크다가 뭐야?"

"아 쏘리. 여튼 그런 애인데 네가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같아서. 뭐랄까? 목적이 있어서 만나는 기분?"

"해달라는 거 다해줍니다. 걱정 마세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개인적인 생각이니깐 신경 쓰지 마."

"네가 관심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임석훈은 내 말에 몸을 꼿꼿이 세웠다.

"내가 여자를 좋아하지만, 친구의 여자를 뺏지는 않는다. 나를 박호빈 같은 새끼로 본 거야?"

장판파의 장비처럼 큐대를 들더니 땅을 찍었다.

- 찍

그러자 당구 큐대가 부서졌다.

"어?.. 어? 이게 왜 이래?"

"하하하 이 미친놈아. 큐대는 왜 부수고 지랄이야."

저렇게도 부서지는구나. 원래 썩어있던 큐대였는지 가운데가 부서졌다.

"아씨.... 사장님 죄송해요. 이거 물어드릴게요."

사장님은 그냥 껄껄 웃고는 큐대 값 대신 앞으로 이 당구장만 오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도 오래간만에 뵙는구나. 예전에 짜장면도 사주시고 했는데. 옛날 사람을 이렇게 보는 것도 다시 태어난 삶의 하나의 재미다.

나는 마지막 큐를 끝내고 석훈이랑 나란히 앉아 담배를 하나 물었다.

"석훈아 너는 부자잖아. 하나만 물어보자."

"왜? 돈 빌려 달라고? 말 만해. 지금 당장 쌍욕하고 절교해줄게."

"너라면 뭐로 돈 벌겠냐?"

"돈 필요해?"

"어. 많이. 100억 정도."

"브라보. 제일 좋은 방법은 한강에 뛰어드는 거지. 죽고 환생하면 되잖아?"

이미 죽고 환생했다 이 새끼야.

"고맙다. 유서에는 네가 나보고 한강에 뛰어드는 걸 권유했다고 적어줄게."

"유서에 적힐 정도면 존나 베프라는 뜻인데. 고맙다."

이런 생각 없는 낄낄댐도 좋다.

20살로 돌아가면 섹스가 최고의 기쁨인 줄 알았는데, 담배 물고 당구 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낄낄대는 이런 상황도 너무 행복하다.

"현찬아! 아니면 그 뭐지? 또또인가 그거 해봐. 너 축구 잘 알잖아."

미친놈. 전생애서 또또로 날린 돈이 중형차 한 데값이다. 그 지랄을 또 해라고?

"이거 정신병자네. 친구한테 도박이나 하라고 하고."

"그거 도박 아니지 않나? 참 결과만 미리 알면 좋을 텐데. 짝짝 다 맞추고."

"그렇지. 결과만 미리 알···. 아!"

"왜? 갑자기 일어나? 꼬추 섰어?"

맞다! 축구 결과! 전부다는 아니지만, 큰 경기 결과는 알고 있다. 왜 생각을 못 했지?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사랑한다 석훈아. 고맙다."

"엉덩이 대주면 돼?"

"미친 새끼. 가자."

"벌써? 한 겜 더치자."

"파이브앤 하프 시스템이나 인터넷에 검색해서 공부하고 와."

미안하다 석훈아. 형이 지금은 분석하러, 아니 돈 벌러 가야 한단다.

***

- 혜민아. 오늘 미안한데,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 쉴게.

- 알겠어. 나도 공부하고 있을게.

오케이.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가지자. 우선 기억 나는 경기를 하나씩 적었다. 생각보다 꽤 많다.

그중에 절대 잊을 수 없는 경기도 있다. 스칠아사건. 2010년 월드컵 때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 승리가 확실시되었다. 모두다 스칠아에 돈을 던졌고, 결과는 스칠아 이긴 한데 스페인 대신 스위스인 스칠아가 되었다. 나도 여기에 200만 원 꼬라박았다. 역시 또또는 결과를 모르면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결과를 아는 상태다. 돈 벌어보자.

내일 있을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2005-06 준결승전으로. 아스날과 vs 비야레알. AC 밀란 vs 바르셀로나 경기다. 눈을 감자 결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1:0은 아스날 승리, 0:1 바르셀로나 승리. 접수 완료. 나는 당장 복권방으로 달려갔다.

"학생 이렇게 많이 사?"

"네? 아. 제가 촉이 좋아서요."

규정 위반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흠. 알겠어. 뭐 다들 이렇게 하니깐."

구매 완료. 가지고 있는 포인트 전부를 현금화해서 또또를 샀다.

설마 미래가 바뀌지는 않겠지?

믿을 수 없는 아스날이어서 걱정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졌다.

집에 돌아가는 길, 원룸촌 근처의 먹자골목이 밝게 빛나고 있다.

내 미래인가 보다.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틀 뒤에 5000만 원이 들어온다. 그 돈으로 뭘 할까? 소중이를 키울까? 아니면 키를 키울까?

외면을 키워서 새로운 여자와 합체하느냐? 아니면 내면을 키워서 현재 여자친구를 더욱 기쁘게 하느냐? 겉만 멀쩡한 허우대는 싫으니, 일단 소중이부터 키우자.

"야! 민현찬!"

깜짝이야. 혜민이 목소리인데?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호프집 앞에 이선미와 같이 있는 게 보인다.

혜민이는 쪼르륵 나에게 달려오고, 선미는 한 손으로는 담배를 물고 다른 손으로 나에게 인사한다.

그 옆에는 박호빈이 있다. 저 새끼는 왜 여기 있지?

"어? 혜민아 너 공부 안 하고 뭐 하고 있어?"

"나 선미가 맥주 한잔 먹자고 해서 나왔어."

박호빈은 왜 옆에 있지? 조금 찝찝하다. 어떻게 모였는지 한 번 물어볼까?

내 표정을 본 이선미가 짜증 나는 말투로 박호빈을 쏘아붙였다.

"박호빈 이 새끼는 길 가다가 우리가 맥줏집에 있는 거 보고 들어왔어. 너는 여자들끼리 이야기하는데 왜 눈치 없이 대가리 밀어 넣냐?"

"야! 넌 말을 왜 그렇게 해? 그냥 동기들끼리 맥주 한잔하는 거지."

"그래 선미야. 호빈이 너무 뭐라고 하지 마. 현찬아 너 몸은 괜찮아?"

이혜민은 내 옆에 착 달라붙는다.

"괜찮아. 조금 쉬니깐 나아졌어."

"그런데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 그리고 어디 갔다가 온 거야?"

헉. 또또 샀다고 말해야 하나? 숨기고 싶은데.

"다른 여자 만나고 온 거 아니야?"

숨 막히게 하는 이혜민의 압박 수비, 말디니-스탐-네스타-카푸 로 이어지는 AC 밀란 수비라인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데, 갑자기 박호빈이 나를 도와준다.

"혜민아 너무 걱정하지 마. 너니깐 현찬이 만나주지, 다른 아이들은 현찬이 안 좋아해."

이 샹놈의 어린 자식은 입에 구렁이를 넣었나? 깐족거리는 레벨은 이세돌 님과 동급 수준인 9단으로, 알파고와 붙어도 이기겠다.

"그래? 하긴 우리 현찬이가 나 놔두고 한눈팔겠어?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는데 말야."

"당연하지. 혜민아. 꿈이 좋아서 복권 사러 갔다 온 거야."

"그럼 복권 보여줘."

잉글랜드가 다시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멜 깁슨이 죽은 이상 복종할 수밖에 없다.

복권은 안 샀는데, 또또 보여줘야 하나? 이거 맞추면 가르쳐달라 할 것 같은데.

"야! 나를 빼놓고 너희들끼리 맥주 마시냐?"

"너희들 여기서 뭐 해?"

그때 누군가가 우리를 보며 큰소리쳤다.

살았다. 고개를 돌리자 탑 라인에서 텔레포트 쓰고 나타난 것처럼 임석훈이 서 있다. 옆에는 긴 생머리에 174cm의 여자가 같이 서 있다.

"석훈아, 은미야 너희는 어쩐 일이야?"

하은미. 우리 과 여신으로 불리는 아이다.

키는 174cm의 예쁜 얼굴에 하얀 피부, 짧은 치마 밑으로 쫙 뻗어있는 각선미를 가졌는데, 길을 걷기만 해도 모든 남자의 시선이 집중된다. 성격은? 싸가지없다. 예전 삶에서도 나에게 명령조로 부탁했다.

"우리? 현찬이 너 찾으러 왔어."

하은미가 나를 보며 말했다.

과 여신 하은미가 나를요? 이게 인싸의 삶인가?

하은미 옆에 서 있던 임석훈은 갑자기 나를 끌고 최대한 박호빈에게서 멀리 떨어진다. 이혜민은 하은미가 나를 찾았다는 말에 신경 쓰였는지 따라 왔다.

"족보 내놔 개새끼야."

"아까 당구장에서 네놈 가방에 쳐넣어 놨다."

그럼 그렇지. 그냥 나를 찾을 리 없지. 임석훈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가방을 뒤진다.

"하하하. 있네. 있다 은미야."

"너 죽을래?"

임석훈을 노려보는 하은미와 머리를 긁적이는 임석훈, 거기에 박호빈이 눈치 없이 낀다.

"너희 둘이 사귀는 거야?"

이렇게 병신이었나? 이 분위기에? 이 자식은 머리에 여자밖에 없구나. 임석훈이 어이없는지 웃는다.

"야. 은미랑 나는 초등학교부터 동창이야. 쟤랑 사귈 바에는 자살한다. 다들 이렇게 모인 김에 맥주나 한잔하자. 우리 둘도 끼어도 되지?"

"콜! 은미.. 아니 언제든지 환영이지."

박호빈은 기뻐하고, 이혜민은 표정이 안 좋다. 하은미 때문인가? 이유는 모르겠다.

"다 같이 맥주 한잔하자."

어둠의 리더 이선미의 용단으로 술판이 벌어졌다.

이게 시험 기간의 묘미구나. 예전 삶에서 얘네들은 이렇게 놀았겠지? 나는 축구 좋아하는 애들이랑 자취방에서 프리미어리그 보면서 술 마셨는데.

바뀐 내 삶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안녕."

"어? 현찬아 너 뭐해? 왜 여기서 담배 피고 있어?"

"얘들이랑 술 한잔하고 있어."

"좋겠다. 내일 보자."

같이 축구 봤던 애들이 지나가면서 나에게 인사한다.

저게 다시 태어나기 전 내 모습이다.

혼자 집에 가면서 술 마시는 친구들에게 인사했던 게 나의 과거다. 지금은? 여자애들과 같이 호프집에서 술을 먹고 있다. 게다가 오늘 혜민이는 안전한 날, 술 먹고 혜민이 자취방에 같이 가기로 했다.

아. 행복한 삶이다.

< 시험 기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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