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39)

날씨가 더운데다 시간대도 꽤 어중간했지만 미용실이 유명해서 그런지 부산스러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가게 안에 손님들이 꽤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녀의 동생, 윤아의 모습은 특히나 눈에 띄었다.

물론 쉽게 볼 수 없을만큼 귀엽게 생긴 깜찍한 외모도 눈에 띄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모라면 거의 절정을 달리는 그녀의 언니도 있는데다가, 

윤아가 가지고 다니는 어떤 '물건' 이 자꾸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깜찍하고 귀여운 윤아의 외모와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그런 물건이었다.

"그런데 윤아야... 저건 왜 계속 들고다니는거니?"

그녀의 언니도 그것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이 은근히 집중되는 것이 신경쓰였는지 

윤아가 항상 밤낮으로 들고 다니는 그 특이한 '물건' 을 가리키며 물었다.

목검. 그것은 길다란 한 자루의 목검이었다.

게다가 상당히 고풍스럽게 보이는 것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연습용 목검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목검을 마냥 귀여워보이는 웬 여자애 하나가 마치 우산처럼 자연스럽게 들고다니는 그 모습은

누가봐도 썩 어울려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긴, 그래서 이렇게 시선을 끄는 것이지만.

"아, 저거? 저건 호신용이야."

"호신용이라니... 너한테 위험할게 뭐가 있다고?" 

"그건 모르는 소리야, 언니. 몇일 전에도 어떤 스토커같은 남자 선배 하나가 자꾸 졸졸 쫓아다녔다구."

정확히 말하면 '그리고 그 남자 선배를 신나게 후려패줬어.' 까지 붙여야겠지만 윤아는 일부러 생략해버렸다.

"으흠... 아무튼,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지도 않니?"

"꽤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뭐... 들고다닐만해~"

싱긋 웃는 윤아의 모습에 그녀의 언니는 그저 옅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동생이지만 귀엽기 그지없는 외모에 비하여 너무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가졌다.

뭐, 밝고 씩씩하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머리 손질과 마무리까지 다 끝나자 윤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나 가볼게~"

"그래, 집에 들어가서 공부 좀 하구."

"알았다니까~ 헤헤. 계산은 안해도 되지?"

"뭐? 이게!"

"나중에 봐, 언니~~"

그녀가 미처 잡을 새도 없이 윤아는 혀를 쏙 내밀고는 도망치듯 가게 밖으로 쪼르르 뛰어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도망치는 동생의 모습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계산은 꼼짝없이 자신의 봉급에서 빠져나가게 될 듯 하다.

"못 말려 진짜... 응?"

방금 전 동생의 머리를 손질할 때 바닥에 흩어진 윤아의 머리카락들을 쓸어담으려고 빗자루를 꺼내던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윤아가 앉아있었던 자리에 윤아가 항상 들고다니는 예의 그 목검이 그대로

세워져있었던 것이다.

"어휴. 얘도 참, 항상 들고다닌다고 말할 땐 언제고."

계산도 안하고 튀어버리느라 그 와중에 까먹고 가져가지 않은 것 같았다.

정말 못말리는 동생이다.

그녀는 그 목검을 챙겨 미용실 건물 윗 층에 위치한 보관함으로 올라갔다.

여기에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집에서 건네줄 생각이었다.

거의 창고처럼 쓰이는 이 윗층은 옥상 바로 밑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용도는 거의 없고 

개인 물품을 보관하거나 때로는 탈의실로 쓰이는 그런 곳이었다.

목검의 길이 때문에 보관함에 넣지는 못하고 구석에 비스듬히 세워둔 그녀는 문득 옥상 쪽의 창문이 

약간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창문을 닫으려고 다가섰는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본 밑의 거리에서 자신의 동생이 눈에 띄었다.

방금 가게를 나갔던 윤아가 어쩐 일인지 다시 가게로 되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옥상 바로 밑이라 상당히 높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약간 목소리를 높여 윤아를 불렀다.

"앗, 언니! 내 목검 어쨌어?"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창문을 올려다본 윤아는 자신도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높여 언니를 불렀다.

길거리와 옥상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목소리를 높이는 자매의 모습에 길을 걷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윤아는 남의 시선 따위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 내가 가지고 있는데?"

"아~ 다행이다~! 그럼 이리 던져줘!"

"뭐? 여기서?"

"응!"

목검을 이리로 던지라는 듯 손짓을 하는 윤아의 모습에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과연 이 높이에서 던져도 될까 싶었던 것이다.

"다치면 어쩔려구 그래?"

"괜찮아~ 안 잡을거야. 땅에 떨어져도 상관없거든!"

"으흠.."

건물 자체가 높지 않았기에 그렇게 썩 높이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위에서 밑으로 목검같은 것을

내던지려니 뭔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윤아가 자꾸 손짓을 하며 재촉하는 탓에 어쩔 수 없이 

구석에 세워두었던 목검을 쥐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지금 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몇몇 있기는 했지만 윤아 쪽의 방향을 피해서 건물 바로 옆으로 떨어뜨리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조심해! 여기다가 떨어뜨릴게!"

"응!"

그리고 그녀는 인기척이 없는 텅 빈 건물 구석 쪽으로 목검을 쥐고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그녀의 손을 떠난 길다란 목검이 빠른 속도로 낙하했지만 윤아가 있던 자리에서 꽤 멀찍이 떨어져있었고

인기척도 없어보이는 곳이었다.

'뭐 별 일 없겠지?'

사실 윤아가 재촉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위험해보이는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찌됐건 별 일이야 없을 것 같으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퍼억.

"...!?"

어디선가 터지는 정체불명의 타격음.

그녀는 막 창문에서 고개를 뺄려다 황급히 다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윤아가 맞은건가 싶어 순간 심장이 철렁했지만 다행히도 내려다본 윤아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 대신...

'에휴..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나는 미용실의 유리로 된 벽 너머로 미용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지나가다 먼 발치에서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려고 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미용실 내에서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잠시 어디간걸까? 아니면 오늘은 나오지 않은건가?

어찌됬든 실망감이 마음 속을 가득 메우다 못해 한숨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일부러 버스에서 두 정거장 일찍 내려서 이 더운 땡볕 속에서도 힘들게 걸어왔건만 보람이 조금도 없지 않은가.

얼굴이라도 한번 봤다면 이렇게 손해보는 느낌은 들지 않을텐데!

'제길, 집에 가자, 가. 고 3이 되가지고 뭐하는 짓이냐 이게.'

실망감과 허무함으로 한숨을 쉰 나는 다시 집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간 낭비를 했다는 느낌 때문에 어쩐지 짜증까지 솟구쳤다.

몰래 그녀를 훔쳐볼 생각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구석에서 유리창을 들여다보던 나는 

미련을 접고는 건물 구석을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나오려고 했다.

슈우우우웅.

...... 위에서 떨어져내리는 알 수 없는 물체의 낙하음만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뭐, 뭐지?'

불길하게도 그 낙하음은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재빨리 고개를 위로 번쩍 들어보았다.

그리고.......

퍼억!!!!

'....어... 라?'

나는 어쩐지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뜻밖의 사고란 항상 그런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다보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사고라는 것 때문에 당황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 

반사신경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것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실로 섬뜩한 경험이었다.

만약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머리에 직격으로 떨어지는 것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으윽."

왼쪽 어깨에서 일어난 극심한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엄습해왔다.

머리로 떨어지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지만 대신 한쪽 어깨에 정통으로 내리꽂혔던 것이다.

눈 앞이 핑 돌아가며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둔탁한 충격이었다.

이걸 머리로 받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황천길에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취한, 무의식적으로 나온 회피 본능이었다.

'고, 골로 갈 뻔 했다. 고개를 꺾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며 온 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치명상을 피했다는 안도감보다는 갑자기 난데없이 허공에서 이런 둔탁한 물체가 떨어져내린 이 상황이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워서 어안이 벙벙했다.

"으윽...! 젠장."

부딪힌 어깨가 부서질 듯이 욱신거렸다.

제기랄, 설마 탈골은 아니겠지? 

어깨 근육과 팔을 움직여보니 다행스럽게도 어렵사리 움직이긴 했지만 뼈마디가 더럽게 아팠다.

통증이 가시지 않는 어깨를 부여잡고 고개를 휙 들어 건물 위를 올려다보았다.

"제기랄! 도대체 누구야!?"

이런 위험한 물건을 건물 위에서부터 떨어뜨린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는 몰라도,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리라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까딱했다간 나이 스물도 안되서 저승행 티켓을 끊을 뻔 했던 것이다!

"어떤 놈이야!? 가만 안 둘..."

"죄, 죄송합니다! 많이 다치셨나요?"

허공에다 무작정 고래고래 고함을 치던 나는 도중에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이 괴상한 물건을 저 위에서 떨어뜨린 장본인 같았다.

제길, 그래, 어디 어떤 사람인지 얼굴 한번 보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 엉?"

버럭 화를 내면서 돌아본 나는... 

미처 하려던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일순간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던 고함소리가 거짓말처럼 다시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건 환상인가, 신기루인가, 아니면 꿈인가.

"저,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옥상에서 한걸음에 뛰어내려왔는지 숨이 흐트러져 있는 듯 했고, 

당황했기 때문인지 목소리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비록 단 한번의 만남이었음에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있는 그 아름다운 음율의 목소리였다.

'그녀...'

도저히 믿을 순 없었지만... 

눈 앞에는 내가 아까 전까지만 해도 머릿 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천사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창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상완골과 극상근을 포함해서 구와관절에 타박상을 입으셨습니다. 견갑근의 인대 부분에도 충격이 있었군요. 

심각한 충격은 아닌 걸로 보이지만 어쨌든 머리를 피해갔다는 점이 다행입니다."

"......"

인근 병원에서 엑스 레이를 찍고 진찰을 받은 나는 이어지는 의사의 설명에 

안도인지 탄식인지 모를 한숨을 푹 쉬었다.

"물리치료를 받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의사의 말에 허탈하게 대답하고는 터벅터벅 진료실을 걸어나오니 아까부터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여인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저기... 죄송해요, 정말.. 제가 실수로.."

"하, 하하...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뭐..."

누군지 몰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다짐 따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내가 더럽게 운이 없는 놈일 뿐인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과에 사과를 연신 거듭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저 어설프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아직 이 상황이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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