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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평범한 남고생이던 나는 무협과 판타지등의 소설을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였다.
매일매일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과 새벽일찍일어나는 생활을 하는 지루하고도 힘든 일상에서 그것만이 나의 활력소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되어 나라면 이랬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나면 무거웠던 머리가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 취미를 반복한 결과 이제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런 기묘한 무협의 세상으로 환생할 줄은 말이다.
응? 무협세상이면 무협세상이지 왜 '기묘한'이라는 것을 붙였느냐고?
당연이 이 무협세상은 보통 소설에 나올법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남녀의 역할이 뒤바뀐 무협의 세상이라는 거다아앗!
황제나 고관대직들은 전부 여자들이고, 거칠고 힘이 필요한 곳의 일등등, 본래라면 남자들이 했어야하는 것들은 전부 여자들이 차지하고 남자들은 여자들이 하던 집안일이나 혹은 몸을 파는 일등을 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갈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바로 전생과는 다른 남녀의 육체적인 특징때문이다.
여자는 대체적으로 남자보다 키도 덩치도 크고 상당히 근육질인 몸인데, 덕분에 남자들보다 육체적으로 우수하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성향도 매우 육식스럽고 사나우면서 성욕이 강하다.
남자들은 반대로 무척이나 연약한 외모인데, 무슨 순정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전부 호리호리한 육체에 곱상한 얼굴, 매끈한 턱(수염이 없다), 어릴때 그대로인 미성(美聲)을 지닌 전생의 남자들과는 다른 종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에 신은 성적인 능력을 강화시켜주었는지, 매일 5번씩 사정하더라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을 만큼 대단했다.
그리고 여자들의 손길만 닿아도 벌떡설만큼 민감하고 팔딱거려, 발기부전이라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이곳의 아랫도리들은 축복받았다.
뭐, 그보다 더 많이 여자들에게 짜이다보니, 전생과 별 차이는 없어보이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런 세상에서 나는 고아로 태어나 지금, 어느 의방 겸 약재상에 의동으로써 살아가고 있다.
산골짜기마을의 단 하나뿐인 의방에서 단 한명의 의원이자 약재상의 주인인 독안파파에게 손에게 길러지면서 자란지도 10년 째, 내 부모라는 자들은 누구인지도 모른다.
젖먹이 시절 나를 안고 이곳에 쓰러진 남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앙앙거리면서 우는 아기였던 나를 거둬들인것은 자식한명 없이 쓸쓸히 늙어가던 독안파파였다.
비오는 날, 배에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진 남자를 치료하다가 결국 죽게 되었는데, 남자답지 않은 탄탄한 근육이나 나를 보고 도련님이라고 한것을 보면 어느 무림문파의 호위무사인듯싶다고 하였다.
죽은 남자에게서 나를 부탁받은 독안파파는 좀있으면 나를 찾으러 오겠거니하고 나를 돌보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오지않자 그대로 나를 양자로 삼아 자신의 의술이나 약재술등을 가르치면서 길러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시들시들하던 독안파파가 나를 기르면서 생생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나를 보면서 기뻐하였다.
이 산골마을에 다른 의원하나 없고 오로지 독안파파 하나뿐이었는데, 점점 해가 지날수록 시들거리던 독안파파의 모습에 마을사람들은 불안했었기 때문이다.
만약 파파가 죽는다면 의원을 부르기 위해 저 밑의 도시까지 내려가야 했으니까...
그 때문에 아이들을 맡겨 후계라도 이어보기위해 노력했으나 전부 재능이 없었기에 반쯤포기하고 있었는데, 나라는 존재 때문에 파파도 활기차게 움직이고 나도 빠르게 배워 어느정도 진찰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마니 아줌마와 누나들에게서 약초캐는 법이나 독버섯, 독초를 구별하는 법을 배우고 때때로 얼굴을 붉힌채 나에게 먹을것들을 나눠주는 여자아이들에게 웃어주면서(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어린것들이 발랑까졌다고 하였다.) 평화롭게 지내던 것도 그해 여름까지였다.
10살때의 가을, 눈매가 날카로운 쌍둥이 여무사들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2명의 무사들은 똑같은 검은색 무복을 입고 기름을 먹여 맨들거려보이는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스스로를 사천당문의 무사 당사독, 당초독이라고 하였다.
의원일을 마치고 약재정리를 하려던 때, 갑작스럽게 들어온 그들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갑자기 오체투지를 하면서 도련님이라고 하더니 자신들을 따라 사천당가로 가자고 하였다.
그 모습을 보던 독안파파는 둘은 안방으로 들이고 차를 대접하면서 그동안 나를 찾지 않은 이유나 이제와서 나를 데려가려는 이유를 물었다.
"왜 이제와서 우리 연이를 데려가는 게요. 쿨럭. 혹시라도 계속 찾고 있다고는 하지마시오, 사천당문이라면...아무리 늦어도 3년이면 찾았을 거 아니오. 쿨럭쿨럭."
"하, 할머니..."
요즘따라 기침이 잦은 할머니에게 미리 준비해둔 흰손수건을 내어놓았다. 그 손수건을 받은 할머니는 카악-하는 소리와 함께 누런 가래를 뱉고는 닦고 손에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초독이라는 여자가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더니 말을 했다.
"먼저, 저희 도련님을 돌봐주신 은공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은공께서 저희 당문을 높게 생각해주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만..."
초독이라는 여자의 말에 의하면 10년전, 신강의 마교와 동맹을 맺은 서장의 소뢰음사의 탕녀들이 사천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당가는 한번 무너졌었다고 한다.
그 때, 싸울수 있던자들은 남은 식솔들이 당가타라는 비밀 은신처에 도망치기위해 동귀어진을 했었다고 하던데, 그 틈에 아버지인 당수련과 데릴부인이자 어머니인 이강도 같이 있었다고 하였다.
각 지부의 당가타로 이동하던 식솔들중에 이쪽....그러니까 귀주쪽으로 도망치던 자들은 소뢰음사의 졸개들에게 덜미를 잡히게 되었는데, 덕분에 당일은 나를 안고서 이런 산골짜기의 마을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에야 당문을 다시 세워 남은 식솔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식솔들은 다행히 당가타에 머물러 쉽게 모셔올수 있었으나, 도련님은..."
"...그렇구려..쿨룩...미안하오, 이 늙은이의 속좁은 마음을 용서해 주시구려.."
그런 당초독의 말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고개를 수그리면서 사과를 하였다.
10년이나 감감무소식이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나를 데려가려는 여무사들에게 미운감정만 들었지 그런 사정이 있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 무인들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는 그녀들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오랫동안 살아온 할머니는 주위의 사람들이 놀라울정도로 속마음을 읽고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재주가 있었기에 나도 그런 할머니를 믿고 그동안 눈을 피해온 그녀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까부터 말을 해온 초독이라는 여자는 땀을 흘리면서 안절부절해했는데, 사독이라는 여자는 그저 조용히 앉아서 차만 들이켰다.
"아, 아닙니다. 은공, 저희 도련님을 이렇게 키워주신 은혜에 비하면, 겨우 이정도 일쯤은...그리고 저희가 너무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한 것도 있고...."
"하지만 이 아이는 데려가지 못할것이오."
할머니의 딱 끊어진 말에 어쩔줄몰라하던 초독도, 말없이 차만 들이키던 사독도 눈을 동그렇게 뜨고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쭈글거리는 얼굴과 하나밖에 없는 눈에 힘을 주고서 담담하지만 힘있게 그녀들에게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신들이 연이를 찾느라 고생한것도 알겠고, 당문에 그런 사정이 있었다는 것도 알겠소, 하지만 연이는 이미 내 손자나 다름없는 아이요. 이곳보다 당문이 살기는 편할 것이나, 평범한 산골짜기 소년이 갑작스럽게 귀공자가 될 수 있겠소이까?"
할머니의 말대로다.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는 보통의 꼬마라면 모를까, 환생이라는 것을 겪은 자이기 때문에 상류층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전생의 나의 삶은 평범했지만 각종매체에 따르자면 상류층들의 삶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대단해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부치는지, 사랑없는 정략혼을 했다가 마음고생하고, 때로는 재산을 차지하기위해 가족들도 죽이는 골육상쟁을 벌이는지..알고있다.
물론 전생에서는 내가 말한 만큼 심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내가 말한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독한 일도 일어난다.
특히 암살같은 경우는 무척이나 빈번하게 일어난다. 저 멀리 어느 마을의 부잣집에는 재산을 차지하기위해 자신의 자매들을 독살했다더라, 암살자를 고용했다더라등등.
그리고 정략혼을 했다가 바람피면서 얼마나 악독한 보복을 당하는지 등이 이야기도 풍문으로 들려오는 것을 보면, 역시 당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좀 거북하다.
내가 지금 당문으로 들어간다면 분명히 당문에 걸맞는 귀공자의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무공이라든가 여러가지 잡기, 학문등을 익히고 기품있게 웃는 법이나 밥먹는 법등 하나하나 생활에 참견을 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사천당문에 걸맞다고 혹은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가문의 여자에게 장가들거나 데릴부인으로 들여오거나 아주 운이 없는 경우에는 다늙은 할망구에게 첩으로 팔려 갈 수도 있다.
....생각만해도 더럽네.
어찌됐든 이런 것 때문에 난 당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내용을 대충 알맞게 바꿔서 조리있고 알아듣기 쉽게 그녀들에게 말하자 어리벙벙한 표정을 하더니 "이렇게 영명하시니 분명 당가에서도...."라는 되도않는 소리로 설득하려고 하였다.
"...당가의 성을 사용하지 않고 제가 당가의 자손임을 말하지도 않을 것이니, 돌아가 주세요. 저는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내가 고개를 조아리고 공손히 말하자 둘은 조용히 있더니, 그 동안 입을 다물던 사독이라는 여자가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미련이 남은듯한 초독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여기서 주무시고 가시지요. 아무리 무인들이 몸이 튼튼하다고 하나, 여인된 몸으로 차가운곳에서 노숙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역시, 그문의 아드님이시군요."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초독, 포기해라. 도련님께서도 그걸 바라시지 않은가?"
"응..."
둘은 입원환자들이 자는 곳에서 내가 미리 펴둔 이부자리에 잠들더니 새벽일찍 이불을 잘 개켜놓고 사라졌다.
"후회하지 않느냐?"
오후 쯤, 점심으로 송홧가루떡과 차를 마시던 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작게 뭉친 송홧가루떡을 오물거리던 나는 차를 들이키면서 대답하였다.
"뭐...약간 미련이 남긴하지만, 거기에 가면 이렇게 느긋하게 있지 못하잖아요? 저는 조금 고생할지언정 마음편하게 살고싶어요."
"....크흠, 속늙은것, 어찌이리 되었는지, 몇년전만해도 귀여웠거늘..."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내심 자랑스러운듯한 어조가 풍겼다.
...다 늙은 할머니가 츤인가?
"후르릅. 겉늙은 할머니밑에서 자라면 이렇게 속이 늙어버렸죠. 뭐. 큰일이네요. 이대로 10년이 지나면 골골대지 않을까나?"
"헐헐. 요 맹랑한 것."
내 말에 할머니는 웃으면서 잠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약초다듬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며칠동안 약초를 말리거나 비상용 환단을 만들면서 지내던 어느날 밤, 여느 때와 같이 의서나 약초에관한 책을 보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누군가 나의 입을 가로막고 몸을 쿡쿡 지르더니 커다란 포대자루에 나를 뒤집어씌우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어둡고 공기도 희박한 포대자루에 있다보니 점점 머리가 몽롱해지면서 정신을 잃기 사라지는데 아무리 저항하면서 일어나 있으려고 해봐도 연약한 남자의 몸으로는 너무나도 한계가 명확하였다.
'저, 정신을 잃으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