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 다영이 엄마. (33/50)

# 29. 다영이 엄마.

기울어져가는 달동네의 후미진 포장마차. 손님은커녕 인적조차 뜸한 그곳에 다영이 엄마와 내가 들어섰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동석. 딸아이가 내게 손과 발이 묶여 집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꿈에라도 알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중년의 여인은 술잔을 기울이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스스로 줄줄 쏟아낸다.

"낳았을 때부터 참 아무렇게나 키웠어요. 딸아이 말이에요. 돈도 돈이지만 내가 하는 일이란게 몸 팔고 웃음 팔고 술 따르는 일이니까 딸애도 좋은걸 보고 배우진 못했겠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다영이한테 대충 들었지요?"

"아.. 아니요. 처음 알았습니다."

엉겁결에 끌려와 공손한 태도로 술잔을 받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가장하며 나는 여인의 푸념을 가만히 들었다. 보아하니 이전에도 이미 약주를 몇 잔 했던 상태인지 잔을 비우기도 전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반딧불처럼 희미하고 몽환적인 포장마차의 전구불 아래 취기 오른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술기운의 영향인지 원래도 거리낌이 없는 사람인지 그녀는 상당히 노골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 얽힌 치부를 만난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나에게 털어놓는다.

"......그렇게 그 사람이 나와 갓난배기 딸애를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간 후로 나는 정말 짐승처럼 악착같이 돈을 벌었죠. 더럽고 때 묻은 돈이었지만 상관 없었어요. 남들은 술집 작부년이 기분에 욱해서 애를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걸로 봤지만 그것도 상관 없었어요. 난 여러 남자들을 상대하며 돈을 벌었고 덕분에 딸애를 학교에 보냈으니까요."

그녀의 가정사와 지난 20년간의 고초. 다영 엄마는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미 다영이네의 속사정을 훤히 꿰고 있다. 그 사정 때문에 그녀가 내 노비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아이 아빠로부터 버림 받았을 때 생각했어요. 그 남자가 일본사람이긴 했지만 난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난 딸애 인생에 간섭할만큼 똑똑하고 좋은 어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딱 하나 원하는게 있다면 책임감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 남자 같은 사람이 아닌."

지난날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취기로 풀린 눈이 잠시나마 반짝이며 빛났다. 입가엔 허술한 미소 한 줄기를 띄우며 술잔을 비우는 중년의 여인. 벌써 그녀 혼자 11잔을 마시고 있었다.

"당신은 어떻죠? 그저 한순간의 젊은 연애감정으로 딸애를 만나는 건가요? 그게 아니면 미래를 생각한 진지한 만남?"

참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다영 엄마가 이야기하는 두 가지 선택지 중 지금 내게 부합하는 것은 없었다. 내가 자신의 딸애를 대하는 마음이라면 노리개를 대하는 주인의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여인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선은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화제를 흐리며 나는 그녀에게 다시 술잔을 채워준다. 왠지 이 여인을 잔뜩 취하게 만들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처음엔 연애감정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미래도 어느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 소리가 듣지 좋은지 다영 엄마가 호호 웃으며 채워준 술잔을 망설임도 없이 쭉 들이킨다. 아까부터 포장마치의 주인이 자꾸 다영 엄마를 흘낏거리며 보는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남자로서의 본능으로 알 수 있다. 거무튀튀한 성욕이 뒤섞인 그 은근한 시선. 왠지 모르게 뇌리에 그런 의문이 스치고 지나간다. 과연 저 포장마차 주인과도 몸을 섞었을까?

"내 딸의 어디가 좋았던 거죠?"

지금껏 늘어놓은 이야기에 비하면 조금은 가벼운 질문. 나는 잃을게 없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작을 부려보기로 했다.

"저도 남자다보니 아름다운 여자한테 호감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죠. 평소 다영이가 제 이상형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이제보니 어머님을 닮아서 그렇게 예뻤나 봅니다."

말의 내용만 놓고보면 겉치레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아주 노골적으로 다영 엄마의 곱게 주름 잡힌 얼굴과 헐렁한 원피스 앞섶을 받치고 있는 깊고 거대한 가슴골에 눈길을 주었다. 마치 훑는 듯한 시선. 다영 엄마도 그것을 충분히 느낀 것 같았다. 어쩌면 소싯적 했던 일이 일이니만큼 그 사실을 느꼈다는 티를 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가슴을 가릴 생각도 않고 더욱 내 쪽으로 몸을 틀어 앉는 그녀였다. 

수수하면서도 곱게 나이가 들어 반반한 구석이 남아있는 얼굴. 자기 딸아이보다도 더 엄청난 거유. 몸짓 하나하나에도 색기가 묻어 나오는 듯한 전형적인 창부의 분위기.... 그 애엄마 답지 않은 요염함이, 그리고 이 상황이 나는 무척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술잔과 넋두리. 더불어 연거푸 들이켜지는 그녀의 작은 술잔.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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