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ravity (7)
노란 불빛이 가득했다.
어딘지 모를 천정에 달려있는 카메라가 크지 않은 룸 내부를 완벽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닥 전체에 아이보리 빛깔의 카펫이 깔려 있었다.
안쪽에 짙은 갈색의 목재로 된 중역 책상이 놓여있고, 중앙에는 새것같이 잔뜩 부풀어 오른 검은색 가죽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반 사무실에 있는 임원실이나 대표이사실 같이 보이기도 했으나, 내가 알던 그런 곳과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졌다.
[좀. 어수선 하죠? 들어와요. 어서....]
몸에 붙는 바람막이 같은 것을 입은 남자가, 문 앞에 서서 불안하게 내부를 둘러보던 여자에게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청색 바탕에 짙은 자가드 무늬가 둘러싸고 있는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냥 가만히 서있어도 여자의 몸매가 어떨지 충분히 알 수 있는 그런 원피스였다.
[아직 정리가 다 안돼서...하하하.....은설 씨 어서요. 안 들어오고 뭐해요?]
황 경태의 재촉에 그제야 처제가 조심스레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어 룸 안으로 들어왔다.
황 경태는 입고 있던 곤색 바람막이 재킷을 벗어재끼곤 중역 책상위에 던지듯 아무렇게나 올려놓았다.
그리곤 룸 중앙에 여전히 서서 불안하게 주위를 살피던 처제를 지나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그 소리 놀랐는지 처제의 어깨가 한번 들썩였다.
황 경태가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곤 긴 숨으로 내뱉었다.
[앉아요. 여기]
황 경태의 말투가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듯 한 명령조였다.
잠시 머뭇거리든 처제가 황 경태 맞은편 소파에 조심스레 앉았다.
하지만 무엇인가 모를 불안함 때문인지 처제의 엉덩이가, 잔뜩 부풀어 올라 있는 새 소파의 가장자리에 살짝 걸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이 열리고 검은 스커트에 자줏빛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가 입은 옷이 유니폼 같아 보였다.
여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화장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짙은 눈매와 뺨에 붉은 색조가 짙었다.
한국 여자가 아닌 것 같았다.
[사장님. 차는 어떡할까요?]
[나는 언더락으로 술 한 잔 줘....은설 씨는?]
처제는 여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이 분은....달달한 라테 같은 거 가져와.]
처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지만, 황 경태가 말하자 여자는 인사를 하곤 곧바로 룸을 빠져 나갔다.
[여대생들 달달한 거 좋아하잖아. 안 그래요 은설씨?]
방에 들어왔던 여자가 룸을 빠져 나가자마자 황 경태가 말했다.
[저기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처제가 맞은편에 있던 황 경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황 경태는 대답은 하지 않고 처제를 빤히 보며 능글맞은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
황 경태가 피워대는 담배 때문인지 깨끗하던 방안이 조금씩 뿌옇게 변해갔다.
[후우.....]
황 경태가 필터 끝까지 피운 담배를 몇 번을 반복하여 재떨이에 꼼꼼하게 비벼 껐다.
[언니하고....참....똑같네.....흐흐.....]
미소만 머금고 있던 황 경태의 입이 열려 치아까지 드러나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보던 처제가 갑자기 소파에서 일어나자 길게 뻗어 있던 검은 머리칼이 춤추듯 흔들렸다.
[내가 아저씨를 여기 따라온 건, 언니와 관련된 일이 있다고 해서......그래서 왔어요]
[뭐가 그렇게 급해?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이야기 다 해줄게.....앉아요 앉아.]
다시 문이 열리고 좀 전에 들어왔던 여자가 테이블 위에 언더락 잔과 머그컵 잔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여자가 선체로 황 경태를 내려다보고 있는 처제를 한번 훑어보더니 다시 룸을 빠져 나갔다.
처제의 몸이 다시 소파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되나......좀 지루한 이야긴데....]
황 경태가 앞에 있던 진한 갈색 술이 담긴 잔을 들고 음미하듯 천천히 마시곤 다시 내려놓았다.
[내가 파타야에 오래 살았어요.
거기서 한식당을 했지. 지금은 모두 정리하고 한국으로 넘어 왔지만.....
내가 작년에 파타야에 있을 때, 은설씨 언니를 만났어요.
여행을 왔다더군요.
아니지....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약혼하고 왔다니까, 약혼여행이라고 해야하나...]
가만히 듣고 있던 처제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져 있었다.
[어느 날 언니가 파타야 센트럴 비치에서 가방을 날치기 당했어요. 어린 현지인 놈이었는데.
마침 그때 내가 운동하면서 그걸 봤지. 그래서 간신히 쫓아가서 가방을 찾았지.
그 가방을 돌려주면서 보니까. 한국 사람이더라고요.
하하하....나도 한국 사람을 도와줬다는게 반가운 마음에 기분이 좋았고, 은설 씨, 언니하고 남자친구도 너무 고마워하더라고.....아니지.......남자친구가 아니라 형부라고 해야 되나.....흐흐.....
그 날 이후로 우린 친해졌지. 둘이 우리 식당에 와서 밥도 먹고, 내가 관광지하고 맛 집도 안내해주고. 언니가 일주일 정도 파타야에 머물 때 거의 매일 매일 만났어요.
보통 인연이 아니지.
내가 파타야에 오랫동안 살면서 한국 사람들 수없이 만나봤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보고 있으니까 둘이 참 잘 어울리더라고, 언니 참 예쁘잖아 몸매도 좋고.....예의도 바르고......섹시하고....지금 보니까 동생이라서 그런지 은설 씨도 그 못지않네.....]
황 경태가 말을 멈추고 머리까지 조금씩 아래위로 움직여가며 처제의 몸 구석구석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처음과 다르게 황 경태의 얼굴색이 조금 붉게 변한 듯 보였다. 그것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처제의 얼굴 또한 그와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내가 언니 가방을 찾아주고 난 후 며칠 후에 언니가 울면서 밤늦게 혼자 가게로 찾아왔더라고. 놀라서 내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까.
남자친구하고 싸웠다고 하데?
둘이 워킹스트리트에 있는 클럽에 갔는데.
글쎄. 언니가 화장실 간 사이에 남자친구가 다른 현지인 여자들하고......좀 그랬나봐.
뭐 그런 거 있자나 춤추면서 들러붙어서 몸 부비고 키스하고, 요즘 젊은 애들 클럽에서 그러는 거.....
치우라고 했나? 참....그 친구 그렇게 안 봤는데.....
그래서 언니를 계속 달랬지. 치우한테 연락을 해도 뭘 하는지 연락도 안 되고, 호텔에 바래다준다고 해도 단단히 화가 났는지 언니가 안 간다고 하고....
가게서 밤 12시 동안 그러고 있다가 할 수 없어서, 우리 집으로 언니를 데리고 갔어요.
집에 오니까 그제야 언니가 좀 진정 되더라고...
언니가 술 마시고 싶다고 해서 둘이 치우 연락기다리다가 술을 한잔했지.
새벽 한시...두시가 지나도 치우가 연락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언니를 우리 집에 재우고 내일 아침에 언니를 호텔에 바래다주기로 했어.
그렇게 둘이 소파에서 술 마시다가 언니가 나한테 스윽 붙어서 내 팔을 안더라고....
언니가 좀 취한 거 같아서 안 되겠다 싶어, 언니를 부축해서 방 침대에 뉘는데...
갑자기 나한테 안기더니 키스를 막 하더라고.....
처음엔 놀래서 간신히 밀쳐냈는데, 언니가 자기 취한 거 아니라고 하면서 오늘 같이 자고 싶다고는 거야.
은설 씨. 생각해봐요.
언니 같이 생긴 여자가 앵기면서 자자고 하는데, 남자들이 어떻게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옷 다 벗기고....그 방에서 바로 했어.
은설씨...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둘이 정신없이 한 번하고 땀범벅이 되서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데, 언니가 다시 내 몸에 올라타는 거야.
은설 씨, 그날 아침까지 언니하고 섹스를 몇 번이나 한지 알아요?
둘 다 한 숨도 못 잤어. 아침 9시까지 둘이 들러붙어서 미친 듯이 그 짓만 했다니까....]
황 경태의 손이 갑자기 바지춤으로 내려 와, 뭐가 불편한지 바지 위 성기주위의 몇 번 만지작거렸다.
그의 붉은 얼굴에는 지금까지 시종일관 머물러있던 웃음기가 싹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아침까지 그 짓하고 둘이 바로 샤워만하고 언니를 호텔에 바래다줬어. 저녁까지 언니한테서 아무런 연락이 없더라고...
근데 말이야.....내가 못 견디겠더란 말이야. 계속 생각나더라고 은비가........나하고 속궁합이 너무 잘 맞았어.
내가 수많은 여자들......파타야에 현지인들......양년들.....그리고 한국에 여행 온 여대생들까지 심심찮게 따먹어 봤는데, 은설 씨 언니는 그런 거하고 비교도 안 될 만큼.....맛있었어.
그래서 은비한테 연락했지. 지금 호텔에 치우하고 같이 있는데, 내가 보고 싶다고 하니까 잠깐 오라는 거야.
밤에 호텔에 찾아 갔더니 언니가 주자장으로 바로 내려왔어. 화해를 했는지 치우는 룸에서 자고 있다면서......우리는 또 내 차에서 뒤엉켜서 그 짓을 했지.....흐흐흐....
그날 이후로는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둘이 잘 지내는 것 같더라고, 마지막 날 은비하고 치우하고 저녁도 같이 먹었어.
은설 씨, 언니 참.....대단한 여자야.
약혼하고 여행 와서 모르는 남자하고 그렇게 수 없이 떡을 치고......마지막 날 저녁 먹으면서 옆에 치우 있는데도 살살 끼부리고, 치우 화장실 간 사이에 나하고 키스 존나게 하고...
은설 씨 언니는 보통 여자가 아니야....]
황 경태가 목이 탔는지 다시 술잔을 집어 들고 급하게 마셨다.
룸 안이 멈춰버린 듯 잠시 조용했다.
[하아. 이봐요. 아저씨! 지금.......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상기된 얼굴로 말없이 가만히 듣고 있던 처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황 경태에게 쏘아붙였다.
[은설 씨! 언니가 파타야에서 돌아와서 좀 이상한 거 없던가?
왜 자매들은 비밀이 없다고 하잖아. 그런 이야기 안 해요? 말하자면.....피임약을 먹었다던가, 낙태를 했다던가.....
파타야에서 은비하고 할 때 우리 피임 안했거든.....은비가 콘돔을 안 좋아하더라고...그래서 할 때마다 안에다 쌌어.
그 정도면 타이밍만 맞으면 바로 임신 될 만한도 한데....
은설 씨는 언니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면서 지금까지 언니가 어떤 여잔지 모르는 거 같네.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뭐야?
언니 학교 다닐 때 남자 문제없었어요?
말하자면 남자 선생들이 언니를 건드렸다는 그런 소문이라든지....뭐 그런 거......]
[미친새끼!!!]
매서운 처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처제는 소파에서 일어나 있었다.
갑작스런 처제의 행동에 황 경태도 놀라는 눈치였다.
몸을 획하고 돌려선 처제의 발걸음이 들어왔던 문으로 향 했다.
[내가 오늘 은설 씨 보자고 한건 따로 이유가 있는데. 갈 땐 가더라도 이거는 한번 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마도 이거 안보고 가면 평생 후회 할 건데......]
황 경태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중역 책상에 아무렇게나 높여 있던 바람막이 재킷을 집어 들고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소파 끝에 있던 대형 TV 앞 이었다.
문고리를 잡은 채,
이제 막 문을 열고 나가려던 처제의 얼굴이 서서히 뒤로 돌려지더니, 시선이 황 경태가 쥐고 있는 그것에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