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177)

Depravity (5)

이따금씩 카페 홀을 오가는 처제의 표정이 무척 어두워보였다.

처제의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침부터 머릿속을 짓누르던 통증이 더욱 심해져, 한쪽 눈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처제를 태우고 카페로 올 때, 처제는 예전과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내다봤다. 

무슨 고민이 있는 것처럼... 

“은설아....컨디션 안 좋으면 방에 들어가서 좀 쉬어....”

그런 처제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히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보던 내게, 처제는 못내 웃어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까지도 내겐 힘겨웠다.

“은설아...너 어디 아파? 얼굴이 왜 그래?”

미나도 평소완 다른 처제가 이상해 보였는지 거들었다. 

“아니야....”

나는 그런 처제를 뒤로하고 안쪽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위에 있던 하얀 약봉지를 들여다봤지만, 그곳에 들어있어야 할 알약은 보이지 않고 빈 껍질만 수북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한쪽 머리에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숨을 들이킬 때 조차 머리가 아팠다. 

오늘 새벽...

아내의 차에 앉아 있던 순간이 드문드문 떠오르기 시작했다.

박 선생을 태운 채 서둘러 학교 교문을 빠져 나가던 순간,

그리고 잠시 후 어느 한적한 곳에 멈추던 아내의 차...

동영상이 이미 끝나고 오랫동안 숨죽인 채, 검게 변한 스마트폰을 말없이 들여다보던 내 모습이 반복되어 떠올랐다.

그리고 아내의 차, 

데시보드 수납공간 안에 아무렇게나 널 부러진 그 신경안정제 빈 껍질과 액정에 길게 금이 가 있는 아내의 그 스마트폰 까지...... 

약이 필요했다. 

머리가 아플 때 마다 먹던 그 약이 필요 했다. 

“아이고. 치우 씨 왔어요?”

병원 냄새가 진동하던 신경정신과 진료실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들어와 나를 반겼다.

“요즘은 좀 어때요?”

“아....항상 같습니다. 약도 다 떨어졌고......”

“으음.......”

굵은 뿔테를 쓰고 있던 의사가 한동안 말없이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내 얼굴이 조금씩 달아올랐다. 

무엇인가를 그에게 들켜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불면증은 좀 어때요? 그리고 머리 통증은 항상 그런가요, 아니면 특정 시간 때가 있나요?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더 심하다든지......”

“불면증은 좀 나아 졌는데....가끔 새벽에 깹니다. 그러고 나면 머리가 좀 아프고요. 다시 자기도 힘들고.....”

의사가 테이블위에 있던 하얀 진료 차트에 갈겨쓴 영어로 무엇인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지난번처럼 기억이 나지 않거나 하는 경우도 있나요?”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 새벽.

아내의 차 데시보드 수납공간에 들어 있던 금이 간 스마트폰을 한참동안 만지작거리던 것이 기억났지만,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치우 씨. 이렇게 합시다.”

말없는 나를 지켜보다 더 이상 답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말을 이어갔다.

“치우 씨. 정밀검사 한번 받아 봅시다. 여기 대학병원에 잘 아는 뇌 전문의 후배가 있어요.”

“네? 정밀검사요?”

갑작스런 그의 말에 놀란 내 표정을 진정 시키려는지 그의 얼굴엔 차분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어...강 교수....잘 지냈어?”

스마트폰에서 그를 반기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요즘 바쁘지? 부탁 좀 하려고, 우리 환자분인데 정밀검사 좀 받았으면 해서....시간 좀 뺄 수 있어?

응.....응......그래....최대한 빨리.....

하하하.....알지...자네 요즘 티비에 나오고부터 명의로 소문나서 예약 밀려서 바쁜 거....

그럴 수 있겠어? 그래 고맙다. 조만간에 저녁이나 먹자.

그래 그래.....고마워.....”

그가 전화를 끊고 나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가 처방해준 약봉지를 약국에서 받자마자 하나를 뜯어 급하게 입에 털어 넣었다. 

종합병원 정밀검사를 받으려면, 기초검사를 받은 후 예약을 잡고 1~2주 후에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왜 이렇게 내게 이런 편리를 봐주는지 궁금했다. 단지 자신의 병원과 거래하는 승호의 친구라는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병원 주차장에 서있던 차에 올라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스마트 폰에는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가득했다.

[치우야? 너 괜찮니? 

미나씨 한테 연락하니까 너 나갔다더라.

메시지 확인하면 연락해라] 

진욱 형이었다.

[김 사장님.

내가 마음이 영 좋지 않아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연락한번 줘요] 

장 실장이었다.

[오빠. 오늘 조금 늦을 거 같아요.

학교에서 행사 있어요.

오늘은 은설이하고 카페서 저녁 드세요.]

그리고....아내였다.

조금 전 먹은 약기운이 벌써 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몸이 나른해지고.....한 쪽 머리를 짓누르던 통증이 조금씩 옅어져갔다.

반면에 희미하던 기억.....바래진 흑백사진이 천연색 컬러 사진으로 변하는 것처럼 짙어갔다.

학교를 급하게 빠져나가던 아내의 차가.......정지된 것처럼 멈춰있던 그 차가 다시 플레이되었다.

그 사각거리던 소리가 엔진 소음에 묻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박 선생의 한쪽 손은 여전히 운전석에 앉아 있는 아내의 몸 어딘가 박혀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차창에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과 붉은 꼬리 불을 뿜어내는 차의 뒤쪽만 이 한동안 반복되어 보였다. 

[이 선생. 어디 조용한데 차 좀 세우지]

아내에게로 향해 있던 박 선생의 한쪽 팔이 힘을 주는 듯 도드라지게 몇 번 움직였다.

그러자 잠시 후 차의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환하게 불을 밝히던 아파트 상가를 지나 인적이 드문 곳에 차가 정차했다. 

차 라이트가 비추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과 비어있는 그네, 미끄럼틀이 섬뜩하리만큼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핸들을 꼭 쥐고 있던 아내의 손이 움직이자 잠시 후 라이트가 꺼졌다. 그리고 낮게 울어대던 엔진의 소음도 멈췄다.

차는 다시 적막에 빠졌다.

하지만 다시 그 적막을 깨어버린 것은 사각거리는 그 소리였다.

[박 선생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떨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아내의 몸 어딘가를 쓰다듬던 사각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어...응?]

박 선생의 목소리 또한 아내와 같이 미세하게 떨렸다. 

[박 선생님이 조금 전에 했던 그 말요.....]

[아.....이 선생 애인 있냐는 그 말? 하하하....왜? 이 선생 겁나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차분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변해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박 선생의 시선은 정확히 아내의 한쪽 얼굴에 향해 있었다. 

[이 선생. 겁나면 그런 짓을 왜했어요? 나는 사실 양 선생이 이 선생에 관해서 뭐라고 이야기해도 절대 믿지 않았어요.

근데 내가 이 선생 실체를 알고 나니까.....그게 아니더라고.....흐흐흐.....

아무리 남자가 좋아도.....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 선생이 그러면 쓰나...]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아내의 숨소리에 지금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아내의 몸에 박혀 있던 박 선생의 손이 스르륵 빠져 나왔다. 

아내의 몸을 쓰다듬던 그 손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잠시 후 아내의 얼굴에 그것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줄 곳, 박 선생의 시선을 피한 채, 정면을 향해 있던 아내의 얼굴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밝은 스마트폰 불빛이 아내의 화사한 얼굴에 반사되어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박 선생의 손가락 하나가 일정한 텀을 두고 스마트폰 액정을 쓸어내렸다.

박 선생이 아내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작은 화면 때문에 무슨 사진인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전에 학교에 등록된 내 계정으로 메일이 한통 왔어요.

‘소린중학교 1학년 2반 영어 선생,

이 은비는 아무 남자한테 몸 대주 걸레니까 

잘 구슬려서 알아서 먹어라...’]

이런 메일이 왔더라고요. 

나는 꼴통 학교 애들이 장난치는지 알았지요. 왜 가끔 이런 경우 있거든요. 학교에 선생 욕하는 메일 보내는 미친 새끼들이.....

근데 메일에 압축파일이 첨부되어 있더라고요.

열어보니 사진파일인데 정학하게 10장이었어요.

내가 교무실에서 그 사진 열어보고 얼마나 놀랐는지.......잘 못했으면 옆에 있던 최 선생도 볼 뻔 했다니까...]

아내의 얼굴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이밀고 있던 박 선생의 손이 아래로 내려왔다. 

아내의 얼굴이 처음과는 다르게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조용한대가서 다시 사진을 봤어요. 

이 선생이 알몸으로 남자하고 성교하는 사진들이더군요. 

이 선생 위에 남자가 올라 타있고, 

이 선생 보지에 자지가 박혀 있고, 

이 선생이 남자 자지를 빠는........ 

나는 처음에 이 선생이 남편하고 섹스하는 그런 사진들이 유출된 건지 알았어요.

근데....사진을 보니까.....씨발.....남자들이 다른 거야......흐흐흐.....

이 선생. 언제부터 그렇게 찐하게 놀았어요? 사진보니까 보통 아니던데? 이 선생 몸도 참 예쁘고 특히 거기.....거기가 참 대단하던데.....]

언제 부터였는지, 박 선생을 향해 있던 아내의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제발.....이러지 마세요]

차 속에서 나지막이 울리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절망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아니....이 선생. 자꾸 이러니까 내가 좀 이 상한 사람 같잖아요. 

내가 이걸 이 선생 남편한테 전해 줄까봐 그래요? 아니면 학교나 다른 곳에 유포할까봐 그런가? 

또, 아니면 내가 이 선생한테 돈을 달라고 하겠어요? 

이 선생. 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

박 선생의 손이 아내의 뺨을 살며시 가리고 있던 머리칼을 천천히 뒤쪽으로 쓸어 넘겼다. 그러자 가로등에만 의지한 어두운 차 속에서 아내의 얼굴 윤곽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박 선생의 손이 아내의 뺨을 감싸곤 잠시 머물렀다.

아내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오던 그 손은 아내가 입고 있던 회색 정장 상의 속으로 사라졌다.

천 조각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장위로 아내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음!]

아내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 선생. 무슨 사연인진 모르겠는데, 만약 협박을 당하고 있다면 내가 도와 줄테니, 우리 같이 잘 해결해 봅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이 선생하고 계속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겁니다. 

가끔 만나서 외로운 사람들끼리 이렇게....]

아내의 상의에 머물던 그 손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내의 몸을 타이트하게 감싸고 있던 정장 상의가 빠르게 풀어헤쳐져 느슨해졌다.

[후.....]

박 선생의 입에서 깊은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숨소리가 더욱 잦아졌다.

블라우스 단추를 푸는지 아내의 턱 바로 밑에서 움직이던 손이 아래쪽으로 급하게 파고 들었다. 

[으음....]

아내의 몸이 갑자기 앞쪽으로 움츠려 들었다.

[이....이 선생.....학교에 술집년처럼 야한 옷 입고 와서 가끔 교무실에서 니 팬티 볼 때, 내가 얼마나 이러고 싶었는지 알아?

그럴 때 마다 화장실에 가서 니 몸 생각하면서 자위했어. 

너.....너 보지...보고 싶다......

너 그래줄 수 있어?]

아내가 몸을 움츠리고 있는 운전석으로 바짝 다가간 박 선생의 입에서 굵은 혀가 삐져나왔다.

그 혀가 아내의 뺨에 닿아, 미끄러지듯 천천히 위쪽으로 핥아 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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