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177)

Deception (15)

얼굴이 뜨거워졌다가 이내 다시 서늘해지기가 계속 반복됐다. 그러자 오랫동안 깊은 암흑에 빠져 있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힘겹게 뜬 눈꺼풀을 몇 번이고 깜빡이고 나서야 주변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누군가 침대 곁에 앉아 내 얼굴을 닦아내고 있었다. 들고 있던 하얀 무엇인가가 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열기로 달아오른 내 얼굴이 조금씩 식어가는 것 같았다.

하얀 수건으로 연신 내 얼굴을 닦아 내는 건 다름 아닌 미나였다. 그리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 주변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나를 보는 정 수연과 세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뒤돌아 서있는 진욱 형은 책상위에 내팽개쳐져있는 약 봉지를 들고서 그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왜......다들.....여기 있어?”

뻑뻑하게 잠긴 내목소리가 들리자 약봉지를 들고 진욱 형이 급하게 뒤돌아섰다.

“야! 너......”

그는 내게 무슨 말을 하려다 이내 말을 거두었다.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오빠.....왜 이래요....자꾸.....어디가 아픈데요?”

여전히 내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던 미나의 붉게 변한 눈망울이 나를 향해있었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듯 침대에서 한 번에 몸을 일으키려했으나 내 의지와는 달리 쉽지 않았다.

베게 옆에 있던 스마트폰이 오전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제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을 때가 오후 8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 

나는 13시간을 훨씬 넘게 정신을 읽은 채 잠에 빠져 있던 것이었다.

“너무 피곤했나보네....이제 괜찮아.....”

“오빠! 어제 퇴근할 때 주무시는 것 같아서 그냥 갔는데......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정신이 없는 사람처럼 계속 자고 있잖아요. 흔들어서 깨워도 일어나지도 않고.....그래서.........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아마도 미나가 아침에 나를 발견하곤 놀란 마음에 진욱 형을 부른 것 같았다. 미나의 표정에서 잠에 취해있던 나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충분지 짐작이 갔다.

“미나 씨. 세희야. 이제 좀 괜찮은 거 같은데.....너희들은 이제 나가봐.......카페 오픈 준비해야 되잖아...”

진욱 형의 말에 머뭇거리던 미나와 세희가 방을 빠져 나갔다. 방에는 진욱 형과 정 수연만이 남아 둘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책상위에 있던 약봉지를 들고 진욱 형이 침대로 다가왔다.

“야! 김 치우. 이 약 뭐야? 니가 왜 이런 약을 먹어?”

“아....그거....어제 잠이 안와서.....”

“너 이거 무슨 약인지 알고 먹은 거야? 어젯밤에 몇 개를 먹은 거야?”

다소 쏘아붙이듯 말하는 그에게 적적한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 약.....수면제하고 각성제인데....함부로 먹으면 안 돼......그리고 여러 개 한꺼번에 먹으면 위험하단 말이야....”

침대에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고 있는 나를 보는 그의 표정에는 걱정과 답답함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약국은 어쩌고 왔어요? 약 필요한 아픈 사람 괜히 기다리게 하지 말고 이제 가서 약이나 팔아요.......후훗....”

그에게 말을 하고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곤 그도 기가 찬지 나를 따라 웃었어.

잠시 후 진욱 형은 몇 가지 약을 내게 전해주고 방을 빠져 나갔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책상의자를 빼내어와 침대 곁에 앉은 정 수연이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응....이제 좀 괜찮아.”

내 말에 정 수연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 수연이 놀란 것은 아마도, 내가 반말을 한 것은 예전 파타야에서 그녀와 실랑이를 할 때를 제외하곤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 수연의 표정이 다시 변해 나에게 슬쩍 미소를 짓고 있었다.

편해 보이는 원피스에 가슴 수술을 한 탓인지 둥그런 젖무덤이 원피스 위로 도르라져 보였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원피스 위로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정 수연의 젖가슴을 보고 있으니, 허벅지위에 살며시 올려져 있던 그녀의 두 손이 포개어져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아.....”

들리듯 말 듯한 작은 숨이 정 수연 입에서 새어나왔다.

“수연아....너 그때.....”

“네?”

내 입을 벌써 떠났지만, 내 머리 속에선 이것을 그녀에게 물어봐야할지 말지를 긴박하게 다투고 있었다. 

“너 그때.....그 승합차.....색깔이 뭔지.....기억나?”

의아하게 나를 보던 정 수연의 얼굴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흰....색.......흰 색요.....근데.......그건 왜.......”

나는 정 수연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 수연의 떨리는 눈빛이 내 얼굴로 향해 소리 없이 그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물러가고 혼자, 오후 시간 내내 방을 벗어나지 않았다.

미나와 세희가 번갈아가며 먹을 것을 챙겨왔다. 지난 밤 먹었던 약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자 컨디션도 점점 괜찮아 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시종일관 몇 가지 생각만이 머물러, 어서 결정을 내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오후 4시......

나는 샤워를 하고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평상시에 잘 쓰지도 않던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거울에 비친 핼쑥한 또 다른 내가,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거리의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에 힘없이 뒹굴어 다니는 모습이 다소 스산하게 느껴졌다. 

나는 종종 지나다니면서 봤던 어느 매장에 들어갔다.

“사장님. 어세오세요.”

매장에 들어가자 30대를 갓 넘어 보이는 남자가 내게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얼굴이 서글서글하니 그에게 이런 일이 잘 어울릴 것 같아 보였다.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차를....한대 사려고요...”

“하하하...네네.....생각하신 모델이 있으신가요?”

생각지도 않은 그의 물음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냥....튼튼한 차....수리 안하고 지금 바로 탈수 있는 차면됩니다....그리고 SUV가 좋겠네요.....”

“아......”

싱글벙글 웃기만 하던 남자의 표정이 변해 나를 아래위로 찬찬히 살피는 것 같았다.

“아....그러시군요.....음....가격대는......”

“대충 알아서 적당한 차로 해주세요.”

그와 단 둘이 앉아 있는 사무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고민에 빠진 듯 한동안 조용히 내 눈치를 살피던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조 부장. 어제 빼놓은 차 있잖아. 

그 차 준비 다됐어? 블랙박스하고 선팅.

그래? 알았어. 

사무실 앞으로 몰고 올래?]

그는 전화를 끊고서 처음 내가 들어올 때 나를 맞았던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사장님. 차 가지고 왔어요. 사촌동생 왔어요?”

잠시 후 유리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오자마자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그 차....이 분한테 보여드리려고.....”

“네? 이 차 사촌동생한테 주려고 빼놓고 작업한 거 아니에요?”

“사장님. 나가서 한번 보시죠.”

내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방금 들어와 자신에게 질문한 남자에게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 앞에는 은색 SUV 한 대가 서있었다. 

방금 세차를 했는지 새 차같이 반짝였다. 차 내부가 보이지 않는 짙은 선팅 또한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할게요.”

나는 차를 보자마자......그리고 차문을 열어 보지도 않고 그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계약하시죠.”

그 또한 나를 이해한다는 듯 서둘렀다.

사무실 앞에 차를 가지고 왔던 남자는 나와 그 사장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그 사장은 내게 모든 편의를 봐줬다. 

토요일이라 차량등록이 되지 않음에도 추가보험으로 내가 차를 몰 수 있게 해주었고, 다음 주 월요일 모든 서류를 처리해 내게 보내준다고 했다.

입금까지 모든 것이 끝나고 그에게 스마트키를 받아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그가 내게 말했다. 

“사장님. 이 차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촌동생한테 넘기려고 고르고 고른 차입니다. 연식도 얼마 안됐고, 무사고에.....어디하나 손 볼 곳도 없는 차입니다.

잘 타십시오. 그리고......급해도.....천천히 안전 운전하십시오......”

엑셀에 따라 아무런 잡소리 없이 부드럽게 나가는 차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운전한지 5분도 되지 않았지만 마치 오랫동안 내가 몰았던 차처럼 느껴졌다.

길게 줄 서있는 차들 꼬리 끝에 멈춰 섰다.

‘왜 차를 파는 그 젊은 사장은 내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을 이해했던 것일까?’

룸미러를 내려 그곳에 비친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독한 약을 먹고 13시간을 죽은 듯 잠만 잤지만 내 눈이 퀭하게 변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내 얼굴에 나는 일부러 입술을 슬며시 올려 웃어보았다.

하지만 룸미러에 비친 내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슬퍼 보이기만 했다.

룸미러를 통해 차 뒤쪽의 넓은 실내공간이 보였다.

좌석을 젖히면 몇 사람이 누워도 될 만큼 실내가 넓었다. 

룸미러를 통해 보이는 새 차처럼 반짝반짝 광이 나던 뒷공간이 갑자기 변해, 참혹한 환영들로 가득 채워졌다, 

젖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가냘픈 여자의 몸이 우악스런 두남자의 손길에 이끌려 마치 인형처럼 이리저리 힘없이 딸려 다녔다. 

[아...아...아......아.....아아.......]

[아아......하.....지마.....아흑....]

여자의 양다리를 활짝 벌리고서, 여자의 허벅지를 두 손으로 터질 듯 쥐어 잡은 사내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의 그런 움직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내의 입에서 끝을 알리는 다급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씨발새끼야. 안에다 싸지마!!!]

여자의 젖가슴을 자유롭게 만지며 여자의 얼굴를 자신의 얼굴로 뒤덮고 있던 사내가 급하게 몸을 일으켜 여자와 붙어 움직이던 사내의 가슴을 발로 찼다.

[허억....]

그러자 여자의 다리사이에 바짝 붙어, 자신의 터질 듯 빳빳한 성기를 여자의 속살에 반복적으로 밀어 넣던 남자가 여자의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뒤로 꼬꾸라졌다.

[아아.....이....씨빨.....아으....아으.....]

다른 사내의 방해로 달라붙어 있던 여자와 떨어진 남자가 최후의 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하얗게 젖어 있는 자신의 성기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기에서 쏘아진 누런 정액이, 여자의 허벅지와 배.....여자의 몸 이곳저곳에 떨어져 내렸다.

[이....개...개새끼가.....]

또 다른 사내의 얼굴로 완전히 감춰져 있던 여자의 얼굴전체가 드러나 보였다. 

사내가 여자의 얼굴을 얼마나 핥아댔는지 여자의 얼굴은 사내의 타액으로 뒤덮여 곱던 화장이 엉망으로 번져 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미친 듯 빨던 사내가 하이힐이 위태롭게 걸려있던 여자의 한쪽 발목을 잡고 자신에게로 끌어당기자 여자의 몸이 단번에 힘없이 끌려갔다.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는 사내의 성기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빨갛게 변해 있었다.

또다시......사내가 여자의 벌어진 다리사이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하체를 활짝 열린 붉은 꽃봉오리 같은 여자의 몸속에 단번에 밀어 넣었다. 

[으아!!!]

[아.......아앙!!!]

겁에 질린 눈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여자의 입에서 다시 신음과 비명이 뒤섞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방금 사정을 한 남자가 정액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성기를 잡고 멍한 표정으로 여자의 얼굴 쪽으로 기어갔다. 

여자의 눈이 꼭 감겼다.

여자의 눈 속에 담겨있던 굵은 물방울이 위로 길게 뻗은 속눈썹을 타고 아래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빠아아앙...........]

커다란 경적소리가 들렸다. 

룸미러를 통해 보이던 그 환영들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룸미러에는 뒤에 있던 검은색 세단에서 쏘아진 하이빔이 연신 내 차 뒤를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내 차 앞에 줄서 있던 차들은 이미 벌써 저만치 사라져, 자신들만의 길로 분주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

굉음을 내며 차가 앞으로 튕기듯 달려 나갔다.

나는 지금.....

아내가 있는 경주로.....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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