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177)

Reunion (3) 

고통스러웠던 어제의 하루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그렇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홀에서 미나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나는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카페에 왔다. 그리곤 오랫동안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곳저곳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오빠! 어제 잠 못 잤어요? 어제보다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여요. 어디 아파요?”

미나는 바삐 움직이던 발길을 멈추고서 안쪽 방에서 나오던 나를 보곤 물었다.

“아....어제 밤에 정리 좀 한다고.....”

그렇다. 

나는 어제 밤 은비가 떠나가고 나서 내 스스로의 방법으로 정리를 했다. 밤새도록.....한 숨도 못자고...

본격적으로 손님이 몰리는 시간이 되자 언제나 그렇듯 카페는 사람들로 들어찼다. 

사람들로 북적되는 이 카페가 나에게는 말 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행복 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빠. 피곤하면 조금 쉬어요.”

미나가 나를 보고 이따금씩 물었다.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 오후 1시...

콧물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계속 훌쩍였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콧물은 그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내 얼굴이 확 달라 올랐다.

코에서 뜨거운 그것이 흘러내려 아래로 떨어졌다.

싱크대에 있던 새하얀 머그잔에 그것에 떨어져 내렸다. 한번....두번......

“아......오빠!!!”

테이블에 있던 빈 머그잔들을 정리하고 나에게 전해주기 위해 Bar 로 오던 미나가 소리쳤다. 항상 미소가 가득하던 미나의 얼굴이 한없이 찌푸려져 있었다. 

미나의 그 소리에 테이블에 있던 몇몇 손님들이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봤다. 

싱크대에 있던 머그잔에.....생전 처음 보는 검붉은 핏 덩이가 여러 군데 떨어져 내렸다. 내 코에서 여전히 뜨거운 그것들이 천천히 흘러내리는게 느껴졌다.

나는 급하게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어떡해....”

미나가 내가 있던 Bar 안쪽으로 들어왔다. 나는 미나를 보며 말없이 한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가렸다. 

“손님 본다.....조용히.....”

나를 내려다보는 미나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미나는 서둘러 Bar에 있던 냅킨 여러 장을 뽑아서 내 코를 급하게 막았다. 

“괜찮아.....미나야. 괜찮아......”

“아........병원.....병원.......오빠......”

미나의 눈가에 맺힌 굵은 방울이 아슬하게 그곳에 걸려 있었다. 미나는 너무 놀라서인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미나야....그냥...코피야.....손님들 있으니까....나 안에서 잠깐 씻고 올게.....”

“안돼요.....안돼......너무 많아....피가.......어떡해.......”

냅킨으로 내 코 주위를 닦고 있던 미나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미나가 더 걱정이 되었다.

코에서 이따금씩 왈칵 쏟아져 내리던 것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내 바지와 홀 바닥에는 짙은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미나야. 진정해. 안에서 좀 씻고.....계속 그러면 병원에 갈 거니까. 홀 잠깐 혼자 볼래? 그리고 너 지금 얼굴 엉망이니까....너도 얼굴 정리 좀하고....”

소리 없이 흐느끼던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용히 방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가관이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내 꼴을 보고 있자니......미나가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봤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하고나자 그새 지혈이 된 건지 더 이상 코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방으로 나오자 머리가 핑....돌았다. 어지러웠다.

‘침대에서 조금만.....조금만 누워있자.....’

침대 위......예전에 은비가 나에게 주었던 조 말론, 그 향기가 느껴지자마자 내 눈이 스르륵 감겼다.

나는 기다란 홀 중간에 서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모습이 익숙했다.

그 홀에 있던 모든 룸이 검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안쪽 마지막 방. 그 방에서만 알록달록한 빛들이 연신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방 앞에 잠시 서있다 문을 열었다.

희뿌연 연기가 자욱한 그 방 소파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맞은편으로가 소파에 앉았다.

그 곳에는 술집 여자들이 입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홀복을 입고서, 너무나 화려하게 화장을 한 은비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남자의 손이 은비의 몸에 닿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은비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남자가 은비에게 바싹 달라붙어 은비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기 시작했다.

은비가 입고 있던 그 말도 안 되는 옷이 남자의 손에 풀려 아래로 내려갔다. 은비의 뽀얀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아....아앙!!!]

남자의 손이 은비의 부풀어 오른 그 가슴을 쥐어짜듯 움켜쥐자.........뜨거운 신음을 토해내며 은비의 몸이 단번에 뒤로 휘어졌다.

“하아....하아....하아.....”

내 눈이 번쩍 떠졌다. 방안에는 스탠드 조명만이 은은하게 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오빠...괜찮아요?”

침대 곁에 미나가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하얀 수건이 들려 있었다. 

“땀을 왜 이렇게 흘려요? 정말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병원 같이 가요.”

“몇 시야...지금 몇 시야?”

“7시 조금 넘었어요.”

“미나야...핸드폰 좀 줄래?”

내말에 미나가 침대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을 내게 건네 줬다.

승호의 앞 번호를 누르자 자동으로 이름이 떴다.

[변태 승호 오빠]

[어이~ 조 미나. 니가 웬일이냐?]

활기찬 승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반가웠다.

[승호야. 나다.]

[어? 미나 오늘 출근했어?]

[응. 그래.....너 오늘 시간 있냐?]

[으하하하.....자식....술 땡기는구나]

[하하....그래. 니가 하도 안와서 새끼....]

[이제 퇴근이야. 가게로 갈게]

[아니...밖에서 보자. 상태 형 가게서....]

[어?]

[그리고....병도는 요즘 뭐하냐? 갑자기 그 새끼도 보고 싶네....]

[병도? 그놈은 점심 시간때 가끔 보지.....지점 우리 회사 근처로 옮겼잖아] 

[그래? 그럼 니가 병도한테 연락해서 오랜만에 같이 보자. 내가 쏜다.]

[허허....이노무새끼. 오늘 이상하네.....알았다. 내가 연락해보고 다시 연락할게....]

“오빠. 미쳤어요? 지금 왜 이러는 건데요? 병원도 안가고.....오늘 술 마셔요?”

미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쏘아붙였다. 

나는 그런 미나의 뺨을 찬찬히 한번 쓰다듬었다.

“고맙다. 미나야. 나는 괜찮아. 오늘은 가게 8시까지만 하자....”

잠시 후 승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병도도 시간이 된다고 하여 둘이 같이 출발한다고 했다. 

나를 걱정하던 미나를 어렵사리 보내고는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거울 속에 들어가 있는 또 다른 내가 조금 창백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FOX...]

상태 형의 가게...

또다시 그 촌스런 간판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서오세요. 어...형님....승호 형님 좀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김 부장이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나는 무표정하게 그를 훑어보고는 지나쳤다.

홀에서는 보도 아가씨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는 꿈에서 보았던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왔어? 가게는?”

소파에 혼자 앉아있던 승호가 나를 반겼다.

“빨리 왔네? 가게는 일찍 닫았지. 너 보고 싶어서....”

“하하하...이 새끼 요거.....좋아.....아주 좋아. 오늘 맘에 들어....”

“근데 병도는? 같이 안 왔어?”

그때 문이 열렸다.

“어? 김 치우.....인마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냐?”

문 앞에는 까만 정장을 입은 병도가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병도. 오랜만이다. 새끼....요즘 잘나가는가 보네. 얼굴 보기 좋다?”

“하하하.....잘 나가긴.....”

테이블에 술이 깔리고 아가씨들이 들어왔다. 김 부장이 룸에 들어 올 때마다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흘깃 보는 것 같았다. 

“인마, 치우. 너 연락 좀 자주해라. 승호는 회사근처라 가끔 보는데...너는 참 보기 힘들다.”

“새끼...너도 가게 해봐. 정신없다.”

병도와의 대화에 옆에 있던 여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오빠. 오빠. 무슨 가게 하는데요?”

“카페.”

“우와...나 커피 좋아하는데....어디서?”

여자가 내 팔을 바싹 끌어안자 내 팔에 여자의 젖가슴이 깊게 닿았다. 

급하게 술이 들어가니 속이 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간단한 아침을 먹고선 아무것도 먹지 못했었다. 

옆에 있던 승호가 몇 번이고 의심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앞에 나가 있던 병도가 파트너와 춤을 추다 키스를 하려했다. 하지만 여자가 몇 번 고개를 돌려 피하자 강제로 입을 맞췄다. 병도의 혓바닥이 여자의 빨간 입술 속을 파고 들었다. 여자는 눈을 질끈 감고서 그의 혓바닥을 받아들였다.

“오빠? 우리 두 시간 지났는데.....더 놀아요? 나는 오빠하고 더 있고 싶은데....”

내 품에 안겨 있던 여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 또한 술기운에 달아올라 있었다.

“조금 나가 있을래? 이야기할게 있어서.....있다가 부를게...”

여자가 내 볼에 입을 살짝 맞추고는 룸에 있던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이씨.....한참 좋은데........”

안고 있던 여자가 자신의 품을 빠져나가자 병도의 표정이 불편하게 변했다. 

여자들의 재잘거리던 소리가 사라지자 우리는 조용히 술을 마셨다. 알고 싶지도 않은 서로의 잡다한 일상들에 관해 말하면서.....

“야. 근데 너는 은비 씨하고 약혼도 했으면서 언제 결혼하냐?”

병도가 말했다. 그의 얼굴이 적당하게 취기가 오른 듯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이 순간을..... 그의 입에서 은비가 튀어 나오길..... 

나는 말없이 병도를 보고 웃어 보였다. 그러자 승호가 난처한 듯 나를 바라봤다.

“야......정말....은비 씨.....치우야. 나는 니가 너무 부럽다. 학교 다닐 때 여자한테 별로 관심도 없던 놈이 어떻게 은비 씨 같은 여자를 낚아서 이제 결혼까지.....

나 말이야. 정말 지금까지 본 여자들 중에 은비 씨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그 얼굴에......얼굴만 해도 감지덕진데......그 키에 몸매까지.......나는 언제 그런 여자 만나냐?”

나는 한동안 병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새끼....보험 영업 관리하는 놈이.......저번에 보니까 여자들 줄을 달고 다니두만......나도 가만있는데. 여자 타령은....술이나 마시자.”

승호가 화제를 전환하고자 내 눈치를 보며 병도에게 말했다.

“하하하....요즘 여자들....대단해......요즘 출근해 있으면 내가 회사를 다니는 건지.....술집을 다니는 건지.....회사서 여자들 짧은 치마입고, 위에 잘 보이려고 살랑거리면서 다니는 거 보면 참 기도 안차. 어떤 년들은 대놓고 저녁에 따로 만나서 술 마시잔다......흐흐흐......개 같은 년들......”

“어제....헤어졌어. 은비하고.....완전히......”

술잔을 들이키던 승호가 놀라 나를 봐라봤다. 병도 또한 그러했다.

“야. 은비 씨 어제 만났어? 어디서? 가게서?”

“응. 어제 밤에 가게에 왔더라고....”

“어휴......”

승호가 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너희들 기억나냐? 내가 처음 은비 소개시켜주던 날? 그때도 아마 여기였지?”

“음....그랬지....우리 보쌈집 갔다가....2차로........야...인마 그건 그렇고........은비.....”

나는 승호의 말을 끊었다.

“근데 말이야....그날. 여기...이방에서....은비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봐.”

순간 맞은편에 있던 병도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다....내 잘못이지....그때 우리 술 많이 마셨잖아. 내가 이방에 있다가 담배 사러나간 사이에.....”

순간 술기운으로 흐트러져 있던 병도의 눈빛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하하......씨발.....좆같네......”

나도 모르게 갑자기 웃으며 욕이 튀어나왔다,

“야...인마....너 왜 그래?”

휘둥그레진 승호의 두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내가 나간 사이에 미친놈이 은비.....은비를.....건드렸나봐.”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 룸은 조용해졌다. 

나의 시선은 그를 향해 있었다.

“아이....미안하다. 내가 괜한 소리했다. 오랜만에 보는데.....술이나 마시자......”

내가 잔을 들어 내밀자 그들은 엉겁결에 나를 따라 술을 마셨다.

“야. 치우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은비를......건드리다니.....무슨 말이야.”

승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게....어느 개새끼가.....다른 사람들 노래 부르고 있을 때 은비 옆으로 가서 은비를 만졌대. 가슴을 한참동안......”

테이블위에 있는 비워진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술이 넘쳐 바닥을 적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술잔을 들고 병도 옆으로 갔다.

“병도야 미안하다. 분위기 좋은데.....이 술 마셔라......”

나는 넘칠 듯 찰랑거리는 술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야이 새끼야. 이 술 처먹으라고!!!”

내 고함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아악....”

나는 그의 얼굴에 술을 거칠게 뿌렸다.

그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이 개새끼야!!!”

몇 번을 크게 휘두른 내 손 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짝!!! 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소파에 올라가 그의 얼굴을 한 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윽....아악.....흑!!”

내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입에서 경박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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