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177)

Variation (2)

마치 세상에 모든 언어들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식탁에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소 갈빗살구이, 해물순두부찌게와 반찬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식탁 한쪽 구석에는 조금 전 은설이 안방에 떨어트렸던 알록달록한 도넛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오랫동안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은비는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조심스레 반찬을 자신의 밥그릇으로 옮겨와 소리죽여 먹고 있었고, 은설이 또한 고개를 푹 숙이고 은비와 같은 모습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이 답답함을 깨트려야 했다.

“오늘 갈빗살 참 부드럽다. 어디서 산거야?”

적막을 깨트려버린 엉뚱한 나의 말에 두 자매는 젓가락질을 멈추고는 나에게 시선이 향해 있었다.

“아...이거....엄마가 며칠 전에 오빠....형부 오시면 드리라고 사놓고 갔어요.”

“은설아. 아직 형부라고 안 해도 돼. 불편하면 그냥 편하게 불러. 대신 아버님, 어머님 계실 때는 조심하고...”

“네. 오빠! 호호호...”

다행이 듣기 좋은 은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경직된 그녀의 표정 또한 조금씩 풀려갔다.

“은설아......미안해.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많이 놀랐지?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미안하다. 그런 모습.....보여서....”

그냥 넘어 갈 수는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지나간다면 앞으로 은설이와 더욱 불편하게 될 것 같았다.

“호호홋....에이...오빠도 뭐 그런 거 가지고 저도 남자친구하고......”

우리의 민망함을 배려한 은설의 너스레였다. 

은설이는 그 일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너스레를 떨어 보였지만, 그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해보였다.

그러자 은비의 못마땅한 시선이 은설이에게 꽂혀 있었다.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현관에 오빠 신발 보이길레....오셨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노크도 안하고......언니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

은설이가 은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하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은비가 비어있던 은설의 옆자리로 갔다.

“은비야. 많이 놀랐지? 언니가 미안해......앞으로는 조심할게.....”

은비가 은설이의 머리를 감싸않고는 그녀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은설의 눈시울이 불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색한 불편함이 사라지고 거실소파에 사이좋게 앉아 있는 우리는 다시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끼야약!.....너무 웃겨......언니 그래서? 오빠는 해외 처음 나가서 몰랐던 거야?”

은설이가 재미있는 듯 함박웃음을 짓고는 은비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래. 오빠가 이미그레이션에서 얼마나 얼어 있던지....이 표정 좀 봐봐....”

나는 은설이가 들여다보고 있던 은비의 스마트폰을 장난스레 뺏어와 확인을 했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의 이미그레이션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죄인처럼 서있는 내 얼굴이 보였다. 지금의 내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보여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크크큭.....이게 뭐야. 오빠 너무 귀여워. 불법체류자 같잖아요.”

은설의 웃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마치.....어린애 같았어. 입국할 때 계속 저 표정이었어. 공항에서 오빠가 계속 내손을 꼭 잡고 따라왔어. 왜 있잖아. 어린애가 엄마손 놓치지 않으려고 하듯이....“

“은비야....내가 언제 그랬어?”

“푸후훗.....하지만 나는 그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오빠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어서.....행복했어요.”

“참. 형부. 그리고 지금 얼굴이 더 좋아 보여요. 예전에도 괜찮았는데....지금은 살도 조금 빠지고 턱선이 더 선명하게 보여요. 그래서 더 어려 보여요. 언니. 조심해야겠어? 형부 언니 버리고 바람날라....크크큭...”

은비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내 어깨에 살며시 기대어 왔다. 

은비의 향긋한 살 냄새가 느껴졌다.

“오빠, 오빠. 오늘 자고 가요.”

은설이가 다 알고 있다는 듯 사뭇 비밀스런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은설이에게 들켜버린 침실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안 돼. 가게 마감하러가야지....”

“오빠. 자고 가요. 우리 이제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은비가 왼손에 끼고 있던 반짝이는 그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형부! 아빠한테는 비밀로 할 테니까. 자고가요. 대신......나 오늘 백화점에서 봐둔 예쁜 구두 있는데. 다음주에....”

“으이그....틈만 나면....이게......”

은비의 한 손이 은설에게 향하자 은설이가 은비에게 혀를 한번 내밀며 내 등 뒤로 숨어버렸다. 

은비와 은설이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오랫동안 거실에 은은하게 퍼져다.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에서 아름답게 재잘거리는 이름 모를 예쁜 새들처럼.... 

정말...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오니 침대시트 한쪽에 옅은 자국이 보였다. 

그 자국은 민망했던 그 상황에서 만들어진 나의 흔적이었다. 은비가 시트를 바꾼다고 하더니 깜빡 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 흔적이 묻어 있는 그 시트를 벗겨냈다. 그러자 아찔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아음....아음......아음....”

은비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터질 듯 발기한 내 물건을 맛있는 막대 아이스크림처럼 빨아먹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은설에게 향해 있었고, 은설이는 피가 쏠려 검붉게 변한 내 물건을 정신없이 핥아 먹는 은비의 모습을 흐릿한 눈동자로 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은비를 밀어내고 둘의 알몸을 이불로 감추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은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또 다시 눈을 감았다.

아찔했다. 그리고 몸이 불타오를 듯 단숨에 뜨거워졌다.

“우읍....웁.....푸하.....하....하...하...”

숨이 막힌 듯 답답해하는 은비의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은비의 입속에 쏟아 부은 내 정액이 넘쳐 더 이상 담을 수 없는지 내 물건을 물고 있던 그녀의 입술이 떠나 있었다. 

은비가 자신의 입에 가득 차 있는 그것을 힘겹게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꼿꼿이 서있는 내 물건에서 마지막 남은 진한 한 줄기의 정액이 빠져 나갔다. 그것은 침대에 기대어 있던 은비의 얼굴을 아슬하게 타고 넘어 뒤쪽 새하얀 시트위에 흩뿌려졌다. 

온통 하얗게 변한 내 물건 기둥을 타고 끈적한 것들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를 보는 은설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오빠? 뭐하세요?”

침대 시트 한쪽을 들고 그것을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던 나에게 은비가 다가와 물었다. 그녀도 그 흔적을 보았는지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뽀얀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내 몸에 닿아 있는 은비의 맨살 느낌이 좋았다.

‘어쩌면 이렇게 부드러울까?’

하늘하늘한 실크가 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은비의 맨살을 어깨에서 허리를 타고 엉덩이가지 여러 번 쓸어내렸다.

은비는 그런 나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은비의 탐스런 입술에서 떠나온 그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와 따뜻한 흔적을 새겨놓았다.

“나도 보고 싶었어.”

“나....사랑해요?”

“응. 많이 사랑해....”

“밉지 않아요? 나 그렇게 멋대로 돌아 왔는데두?”

“응. 밉지 않아.” 

은비가 자신의 표정을 숨기려는 듯 그녀의 얼굴이 급하게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내 가슴에 닿아있는 은비의 얼굴이 뜨거웠다.

“은비야. 나는....항상 니가 그리워. 보고 싶고,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만약 니가 내 곁에 없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해. 

니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항상 함께 할 거야. 이것만은 내가 약속할게.....”

내 품에 안겨 있는 은비의 머리를 세상에 하나뿐인 너무나 소중한 보석처럼 찬찬히 쓰다듬었다.

은비의 몸이 조금씩 들썩였다. 

그리고....내 가슴에 은비의 얼굴에서 전해진 뜨거운 것이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루...이틀....

일주일....그리고.....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승호는 한동안 파타야에서 있었던 일을 집요하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더 이상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자 포기하고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다.

그것은 여자였다.

은비 친구들 중에 가장 예쁜 여자를 소개해 달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승호는 매일을 찾아와 나를 들볶아댔다.

그런 승호를 미나는 한심스러운 듯 보곤 했다.

그와 정 수연에게서 이따금씩 전화와 메시지가 왔다. 하지만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메시지는 대부분 연락이 없는 나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은비와 나는 완벽하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발령을 기다리던 은비는 예상보다 빨리 학교를 배정받았다. 부촌으로 알려진 도시 중심에 위치한 대학부설 중학교였다.

그 소식에 은비는 기뻐했다. 발령받기까지 6개월 이상 대기를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은비는 친구, 선후배와의 이런저런 모임과 술자리가 잦아들었다. 은비는 항상 나와 함께 모임에 가고 싶어 했지만 가게 때문에 자주 그럴 수는 없었다.

은비는 모임이 끝나면 항상 가게로 찾아 왔다. 예전에 항상 그녀가 앉던 자리에서 턱을 괴고는 생글거리며 나를 보거나, 내가 일할 때 몰래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주곤 했다.

가끔은 모임이 끝나고 늦은 시간 조금 술에 취한 채 찾아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노골적으로 나를 유혹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은비는 항상 나의 아지트에서 자고 갔다.

은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예뻐졌다. 아니....엄밀히 말하면 더 이상 예뻐질 때도 없었다. 

은비가 예뻐진다고 생각된 것은 아마도 그녀의 얼굴에 점점 더.....여자의 색이 짙어져 갔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냉혹하기만 했던 겨울바람이 서서히 줄어들고 따뜻한 햇살이 비춰....마치 봄날 같은 어느 날이었다. 

“사장님. 오늘 날씨 너무 좋다. 그쵸?”

오후 3시. 

분주했던 시간이 물러가고 한가한 틈을 맞아 창가자리에 앉아있던 미나가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따스한 햇살이 미나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오늘 은비언니 모임 있다면서요? 오늘 여기서 맥주마시면서 사장님 욕하기로 했는데. 배신자.......치이~”

“알바가 잘하는 짓이다. 가게서 술이나 마시고 사장 욕이나 하고.....그건 그렇고 조 미나 너는 남자친구 안 만나냐?”

“남자친구요? 그딴 거 필요 없어요. 귀찮아. 너무 애들 같아서 흥미 없어요. 나도 은비 언니처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람 만날 거예요.”

“바보야.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같은 남자를 만나야지.....”

“깔깔깔....사장님.....뭐라고요?”

미나가 나를 보며 놀리듯 웃어 댔다. 

얼마 전 새로 한 그녀의 굵게 웨이브진 펌이 어깨 바로위에서 부드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햇살에 비친 미나의 얼굴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어서 오세요!”

미나의 예의바르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원두를 정리하다가 가게 입구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깔끔한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서있었다. 그 여자가 신고 있던 갈색 스타킹이 햇볕에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에 보라색 캐리어가 가지런히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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