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77)

욕망의 도시 (9)

늦은 밤.

호텔 로비에는 여전히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늦은 체크인을 하려는 사람들과 편안한 로비 소파에 앉아 한가로이 그들만의 여행을 즐기는 듯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기분 좋은 미소가 머물러있었다. 

경태 형으로부터 여러 차례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치우 야? 연락이 안 되네? 무슨 일 있어? 걱정되니까 메시지 확인하면 연락 주라.]

호텔 로비 한 중간에 멀뚱히 서서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넓은 회전문을 통해 한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룸에서만 입던 편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은비였다.

“은비야!”

나의 외침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게 느껴졌다. 

은비가 걸음을 멈춘 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걱정했잖아”

“오...빠...미안해요. 룸이 답답해서 잠깐 산책 나왔어요.”

“그럼 전화라도 받아야지....몇 번을 연락했는데....”

“미안해요....”

은비가 또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은비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처절한 은비의 표정을 봤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욕실에 있던 은비가 다시 침대로 들어왔다. 나는 침대 곁에 앉아 은비의 이마에 손을 대어 보았다. 뜨거울 정도의 열기가 느껴졌다.

은비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고, 많이 피곤한지 금방 잠들어 버렸다. 

나는 경태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형님. 연락 못 받아서 죄송합니다. 일이 좀 있어서.....]

메시지를 보낸지 1분도 되지 않아 그에게 답장이 왔다.

[그랬구나? 걱정 많이 했어. 마감하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잠깐 볼까?]

나는 한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침대에 있는 은비를 보니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호텔 34층. 루프탑 Bar 에서 바라본 파타야의 야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치우 야. 너 표정이 많이 안 좋다. 은비 씨. 하고 다퉜어? 무슨 일 인데?”

녹색으로 둘러싸인 모히또를 한 모금마신 경태 형인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어제...일이 좀 있었어요. 그 클럽에서....기억이 나지 않아요....은비가......”

나는 어제 있었던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그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한 여자가 내 몸에서 그 짓을 하고 있었던 것 까지도..... 

나의 말이 끝나자 경태 형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갈증을 느꼈는지 다시 앞에 있던 모히또를 들이켰다.

“약이다.....”

경태 형이 말했다.

“네?”

“그 여자들이 술잔에다 약을 태웠어. 나쁜 년들.....그 여자들 얼굴 생각나? 혹시 같이 사진 같은 건 찍은 건 없고?”

“네. 얼굴은 둘 다 또렷이 기억이 나요. 같이 찍은 사진은 없었어요.”

“파타야에서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관광객들에게 현지인이 접근해서 약을 태운 음료수나 술을 먹이고.......범죄.......”

경태 형이 말을 이어가다가 나의 표정을 보고는 멈췄다.

“그....렇군요.......”

“은비 씨는 괜찮아?”

“네.....은비한테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볼 수가 없어요. 그냥.....그냥....너무나 나쁜 일이 있었다는.....예상만.......휴우.....”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태 형의 한 손이 내 어깨에 올려져 부드럽게 감쌌다.

“치우야.....잊어버려. 그냥 사고라고 생각해. 너무 깊게 생각하면 너도 은비 씨도 힘들어 질 거야....”

우리는 한동안 마무 말도 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파타야의 야경만을 보고 있었다. 

“이제 3일 남았네....떠나기 전에 다 같이 저녁이나 먹자.”

자신의 승합차에 오르던 경태 형이 내게 말했다. 그의 차가 환한 불을 밝히며 야외주차장을 급하게 빠져나갔다. 나는 멍한 시선으로 그 불빛을 따라 움직였다.

그때. 

주차장 구석에 뜻밖의 물체가 보였다.

빨간 불이 환하게 반짝이다 사라졌다.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엉클어진 머리......그 새끼다....

클럽 화장실에서 나에게 이상한 말을 했던 그 새끼....

내 발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사내가 급하게 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타이어가 바닥에서 헛도는 굉음을 내며 그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차를 쫓아 도로까지 달려 나갔다.

흰색 도요타 4864...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멀어져 가는 그 차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은비와 나는 온종일 호텔 밖을 나가지 않았다.

은비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은비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경태 형과의 저녁식사 자리에 대해서 말했지만, 은비는 망설이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하루가 꼬박 지난 후 은비는 같이 저녁을 먹겠다고 말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레스토랑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경태 형과 수연의 모습이 보였다. 

수연은 오늘 우리와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준비라도 한 듯 짙은 화장과 몸매가 드러나 보이는 붉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얼마 전 경태 형의 집에서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우리가 좀 늦었네요.”

“아니야. 우리도 방금 왔어.”

경태 형과 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은비가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몸이 안 좋은지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은비야? 너 많이 아팠다면서? 지금은 좀 괜찮아?”

수연이 은비에게 다가와 걱정스런 표정을 하며 물었다.

“네...언니....이제는 좀 괜찮아요...”

스테이크 접시와 와인잔이 놓이자 테이블이 가득 찬 듯 보였다.

“이제 이틀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네? 참....아쉽다.....”

경태 형이 잘 익은 티본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담아 씹으며 말했다.

“다음에 올일 있으면 연락해. 우리도 한국에 들어갈 일 있으면 연락하게”

“네네...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무슨 그런 소릴.....이런 게 다 인연이지 뭐...”

은비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나는 은비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았다. 약을 먹었는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은 거 같았다.

은비의 눈에서 투명한 보석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내려 테이블을 덮고 있던 새하얀 테이블보를 적시고 있었다.

“어머!!! 은비야? 괜찮아. 많이 아파?”

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있든 은비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은비의 눈에는 더욱 많은 뜨거운 보석들 맺히고 있었다.

“오빠...미안해요....저....먼저 들어가 좀 쉴게요.....”

은비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룸에 데리고 들어가 봐야겠네요....”

“아니 아니....오빠 식사하세요....”

은비가 조금 다급하게 나에게 말했다.

“치우 씨. 제가 룸에 같이 갈게요. 식사해요....”

수연이 은비의 어깨를 감싸고 레스토랑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으음.....은비 씨.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있다가 가서 잘 챙겨줘. 여행 와서 몸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게 없어.”

“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태 형과 나는 말없이 식사를 하며 이따금씩 와인을 마셨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 입에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종이를 씹어 먹고 맹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30분쯤 지났을 때 수연이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녀의 표정은 은비와 함께 이곳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걱정이 가득했다. 

“은비 이제 겨우 잠들었어요. 어떡해요? 너무 안타까워.....”

마시던 붉은 와인이 가슴에 깊게 들어와 심장을 터트려 뜨거운 피와 섞여 버린 듯했다.

우리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이렇게 끝났다.

경태 형과 수연은 호텔을 떠나면서 은비를 잘 챙기라는 말을 나에게 여러 번 당부했다.

저녁 식사를 제대로 못한 은비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케익을 사서 룸으로 향했다. 나는 은비가 이 달콤한 케익을 먹으며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좋지 않은 기억들을 모두 잊기를 바랬다. 

“은비야? 자니? 좀 괜찮아?”

호텔 룸이 너무나 조용했다. 룸 안에는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은비의 룸 카드키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내가 가지고 있던 키를 그곳에 꼽았다.

룸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은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에 A4 사이즈의 호텔 메모지가 올려져 있었다.

“오빠....오빠.....

너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나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요.

정말 미안해요.

너무 너무 힘들어요.

제발 제발....이런 나를 이해해주세요....“

메모지에는 은비의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무엇인가로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나는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은비는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은비에게 전화를 했다. 꺼져 있었다.

나는 룸에 있는 미니바에서 위스키를 꺼냈다. 

뚜껑을 열어 그대로 마셨다. 목이 뜨거운 열기에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밖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테이블에는 술병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헛구역질이 나서 화장실로 달려가 모두 토해냈다. 

스마트폰이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지저분하게 어질러진 내 꼴을 정리하고서야 소파로 향했다.

[부재중전화 은설] 

메시지가 도착했다.

[형부. 어디에요? 언니하고 무슨 일 있었어요? 언니가 좀 전에 집에 왔는데....지금 많이 울어요] 

은비가 한국에 도착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나의 만신창이가 된 몸은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홀로 남겨진 호텔 룸에서 24시간을 꼬박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은 멍했다.

[치우야. 조심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라....]

경태 형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프런트로 내려갔다. 

“손님. 우편물이 와있어요.”

프런트에 있던 매력적으로 생긴 여자가 생글거리며, 나에게 노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것을 받아 쥐고서 서둘러 호텔을 빠져나와 택시에 몸을 실었다.

나는 한순간이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파타야를 벗어나고 싶었다.

택시가 방콕 수완나폼 공항으로 향하는 7번 고속도로를 한동안 달리고 있을 때 나는 봉투를 열었다.

그곳에는 한글로 휘갈겨 쓴 메모지가 보였다.

[니가 이것을 확인하든지 그렇지 않든지....선택은 니가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니가 만약 이것을 확인한다면 앞으로 니 인생은 아주 많이 변할거야.

행운을 빈다.] 

봉투 깊숙한 곳에는 은색의 USB메모리가 들어있었다.

수완나폼 공항 4층 출국장에 인파들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 층을 더 걸어 올라가 활주로 전망대로 갔다.

몇몇 백인들이 벤치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갔다.

나는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USB 메모리를 그곳에 꽂았다.

나는 이어폰을 내 귀에 꼽고는 몇 개의 동영상 파일이 보였다. 그중 하나를 실행했다.

화면이 흔들렸다. 

호텔 룸인 것 같았다. 고급스런 소파가 보였다. 화면 가까이 한 태국 남자의 얼굴이 크게 보였다. 카메라가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화면에는 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가지 또각 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몸이 축 쳐진 은비가.....

두 여자의 부축을 받고 룸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은비를 부축하던 두 여자는 클럽에서 우리 테이블에 합석했던 그 여자들이었었다.

“이....이 씨발년들!”

순간 내 목소리가 공항 전망대에 크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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