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77)

욕망의 도시 (8)

내 몸을 짓누르는 갑갑한 느낌에 천천히 눈을 떴다.

호텔 룸이었다. 

이른 새벽인지 창밖에서 옅은 빛이 새어 들어와 룸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내 몸 위에 올라타 움직이는 실루엣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깨어지듯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여자의 살 오른 엉덩이가 보였다. 여자의 얼굴은 나의 발쪽을 향해 있었고, 여자가 움직일 때 마다 긴 머리가 부드럽게 출렁이고 있었다. 

“아....아...아.....”

귀가 막힌 듯 먹먹한 여자의 짙은 신음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려왔다.

여자의 움직임에 따라 발기된 나의 물건이 여자의 속살을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박혔다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여자의 구멍에서 끈기 있는 허연 물들이 흘러나와 내의 물건 뿌리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은....은비야......”

힘겹게 내뱉은 나의 말에 여자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

여자의 등이 천천히 나의 가슴으로 다가와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여자가 나의 몸 위에 눕자 그 무게가 완전히 나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여자가 나의 한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이끌었다. 나는 그 가슴을 꼭 쥐어 잡았다. 내 손에 느껴지는 가슴의 촉감이 내가 알던 것이 아니었다. 유두가 조금 더 거칠었고 가슴이 더욱 커져 있었다.

“아.....아앙......”

여자가 허리를 살살 돌려 자신의 몸속에 박혀있는 나의 물건을 더욱 깊은 곳으로 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눈이 떠졌다. 

커튼 사이로 이전보다 밝은 빛이 들어와 있었다. 여전히 머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제 그 클럽에서 내가 어떻게 호텔에 와있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은비야,,,,”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어깨를 잡고 나에게 끌어당겼다.

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내 옆에 알몸으로 자고 있는 여자는 은비가 아니었다.

정성 들여 선탠을 한 듯한 까무잡잡한 피부에 한쪽 젖가슴 언저리에는 커다란 장미 문신이 보였다. 

여자가 잠에서 깨어났는지 팔을 뻗어 나의 목을 둘렀다.

“으음.....”

“누구야!”

놀란 내 목소리에 그 여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짙은 화장이 조금 번져 있었고, 붉은 립스틱은 무엇 때문인지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오빠....I want fuck now....” 

여자가 나의 목을 끌어않고서 자신의 얼굴로 당겼다. 여자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자, 조금 건조한 그녀의 혀가 내 입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만 같았다.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지만, 그중에 하나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었다. 

말라있던 나의 입속이 그 여자의 혀 놀림으로 조금씩 젖어 갈 때 즈음 나는 그녀를 밀쳐냈다.

“너 누구야!”

조금 흥분한 나의 목소리에 나를 보는 여자의 눈이 점점 또렷해져 갔다. 

순간 이 여자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이 여자는 어제 클럽에서 내가 화장실에 갈 때 나의 손을 잡아 끌던 여자였다. 검은 원피스에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있던 그 여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룸 이곳저곳을 살폈다. 은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침대 옆 바닥에는 하얀 정액이 담긴 콘돔 몇 개가 널 부러져 있었다. 

여자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자 이불 속에 숨겨져 있던 큰 가슴이 완전히 드러났다. 

“니가 왜 여기에 있어?”

“기억 안 나요?”

여자가 조금 어색한 영어로 말했다.

“은비는? 내 여자친구....”

“어제 당신은 술에 잔뜩 취해서 구석 테이블에 혼자 있었어요. 다른 사람은 없었어요. 당신 가방에 있던 호텔 카드키를 보고 내가 이쪽으로 데리고 왔어요. 나 어제 정말 당신 때문에 힘들었다고요.”

나는 여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테이블에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은비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꺼져 있었다.

“아.......”

나는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 띁었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여자가 알몸인 채로 소파로 다가와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를 보는 그 여자의 눈빛에는 단 하나의 거짓도 숨겨져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기억을 되돌리려 노력했다.

클럽에서 우리 테이블에 합석한 여자가 은비와 춤을 추고 있었고, 다른 여자는 나에게 다가와 내 몸을 너무나 자유롭게 만지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춤을 추며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은비의 모습도 떠올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미안해.....지금 당장 나가.....”

“네?”

알몸의 여자가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급하게 옷을 챙겨 입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여자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하나 은비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여자가 옷을 모두 챙겨 입고 내가 앉아 있던 소파에 다가왔다.

“당신은 참 무례한 사람이군요.”

“미안해....그리고 연락처 좀.....”

어제 있었던 일들을 다시 그녀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머뭇거리다 자신의 백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나는 지갑에서 5,000바트를 꺼내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그 돈을 나의 얼굴에다 집어던지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태국 말로 크게 소리치고는 룸을 빠져나갔다. 

나는 은비에게 계속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꺼져있었다.

어제 클럽에서 갑자기 시야가 흐려져 은비의 얼굴이 보이던 것이 생각났다. 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비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마트폰에서 AM 9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 끝에 경태 형에게 전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저장된 그 번호를 찾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찰칵]

그때 카드 키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렸다. 나는 급하게 문을 향해 달려갔다. 

문 앞에는 은비가 서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깔끔하던 옷이 조금 구겨져 있었다.

“은비야!!!!”

나의 외침에 은비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 주위가 조금 부어 있었으며,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오....빠......”

은비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은비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않아 주었다. 은비는 내 품에 안겨 한참 동안을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어제의 일에 대해서 은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욕실에 들어간 은비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샤워를 마치고 큰 호텔 수건을 몸에 두르고 나온 은비의 모습이 조금 전보다는 다행히 나아 보였다.

“오빠.....불 좀 꺼주세요......”

은비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나는 룸을 불을 모두 끄고 환한 빛이 들어오던 창가의 커튼도 닫았다. 그리고 침대에 스탠드 하나만 켜 놓았다.

은비가 침대로 다가가다 이내 멈추고는 시선이 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나의 정액이 담겨 있는 콘돔들이 그대로 있었다.

은비가 수건을 그대로 두른 채 말없이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나는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은비가 나를 불렀다.

“응....”

“이리로....오세요”

나는 은비가 있는 침대로 들어가 그녀 곁에 누웠다. 그러자 은비는 몸을 돌려 나의 품으로 바싹 다가왔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은비의 몸에서 너무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아악!!!!”

은비의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어엉......오빠.....오빠.....무서워요......흐흐윽......”

은비는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져 금세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괜찮아....괜찮아....꿈이야.....오빠 여기 있어....”

나의 말에 은비는 내 품으로 더욱 파고들어와 안겼다. 나는 그런 은비의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은비는 한참 동안 잠을 뒤척였다. 갑자기 몸을 떨기도 하고 숨소리가 가빠지기도 했다.

‘은비야! 도대체 어제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나는 은비에게 전할 수 없는 이 말을 수백 번 혼자 되뇌고만 있었다.

내 몸이 달아올라 온몸에 불이 붙을 것만 같았다. 마치 예전 지독한 독감을 앓을 때와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침대 시트와 이불에는 내 몸에서 흘러나온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넓은 침대 옆이 허전했다.

은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 은비가 없었다. 

오후 10시 45분.....

은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신호가 갔지만 은비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있었다. 

‘지금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내 가슴이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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