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77)

불행의 씨앗 (2)

“아버님, 어머님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그래. 치우야. 우리 이제 자주 보자.”

어머님이 차에 올라타자 검은색 세단이 호텔 로비 앞을 빠져나갔다.

“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빠. 이제 우리 가요.”

은비가 나에게 팔짱을 끼며 나를 살며시 끌어당겼다.

“어? 어디?”

은비는 말없이 나를 이끌고 다시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예약했어요. 이 은비.”

은비가 프런트에 있던 올림머리를 한 여직원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카드키 두 장을 은비에게 내밀었다.

“뭐야? 언니. 오늘 여기서 오빠하고 잘 거야?”

“이 은설. 너 왜 집에 안가?”

“나 오늘 약속 없다고 저녁에 언니, 오빠 친구들하고 같이 놀 거란 말이야.”

“쪼그만 게.....누구 마음대로! 좋은 말 할 때 집에 가세요.”

은비에 말에 은설의 입술이 삐죽대기 시작했다.

“그래? 알았어. 아빠한테 다 말해야지.”

은비가 반짝이는 은색 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려 하는 것 같았다.

“은비야. 그렇게 해. 있다가 친구들 저녁에 오면 은설이도 같이 밥 먹자.”

나의 말에 은비는 못마땅한 눈으로 은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은설이 나의 곁에 다가와 은비를 보며 놀리듯 장난스럽게 혀를 삐죽 내밀어 보였다. 

깔끔한 객실이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룸이었다.

“은비야. 아버님 아시면 어떡하려고.....나에게 미리 말도 안 하고....”

“오빠. 우리 오늘 약혼했어요. 우리는 이제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구요.....호호호...”

“웃기시네!”

은설의 핀잔에 은비가 그녀의 머리를 지어 박으려 다가가자 은설이 기분 좋은 소리를 지르며 침대 속으로 숨어 버렸다.

나는 화장대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주일 앞으로 남은 태국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오빠...아니 형부. 이거 뭐예요?”

“태국 여행 일정 확인 좀 하려고....”

“언니는 좋겠다. 10일 동안이나 태국 여행도 가구,,,,,,”

은설이 나의 뒤에 바싹 다가와 노트북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은설의 향기는 은비의 그것과 같았다.

은설의 오른손이 화장대 테이블 귀퉁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가 않은 의자를 잡고는 자신의 상체를 나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있었다.

나의 오른쪽 어깨에 은설의 가슴이 닿아 점점 짓누르는 강도가 강해졌다. 

내 시선은 노트북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고 간간이 마우스가 딸깍 소리를 내거나, 휠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뒤에서 전해지는 열기에 나는 화면에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다.

“형부. 방콕에서 1박하는 호텔이 수쿰빗에 있는 소피텔이에요?”

“으응...”

은설의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의 모든 신경이 아찔해졌다.

나의 오른쪽 귀 바로 옆에 은설의 얼굴이 다가와 그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오른쪽 어깨에 닿아 있는 은설의 가슴 또한 그대로였다. 이 와중에도 나는 어깨에 느껴지는 은설의 가슴이 은비의 것보다 조금 더 크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휴우,,,,”

은설의 짧은 숨소리에 따뜻한 바람이 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가자 옅은 소름이 내 몸에 돋기 시작했다. 

“근데 형부. 언니하고 피임은 어떻게 해요?”

“뭐?”

바짝 긴장해 있던 내 신경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은설의 말에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갑자기 돌렸다. 

나의 입술이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은설의 입술 한쪽에 살짝 닿아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다시 고개를 돌려 화장대 거울을 봤다. 은설이 무표정하게 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리더니 잠시 후 방긋 웃어 보였다. 

나는 은설이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하지 않은 행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지금 이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은설의 이런 행동이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상한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보았던 일본 야동에서 여자 친구 모르게 그녀의 예쁜 여동생과 질펀한 비밀 섹스를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래전 한 대학 선배가 술자리에서 후배들을 모아 놓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너희들 말이야 잘 들어....결혼해서 예쁜 처제 못 따먹으면 병신이야. 알았어? 세상에서 가장 따먹기 쉬운 여자가 바로 처제야. 명심해!]

그 당시에 나는 속으로 그 선배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머릿속의 생각과 내 몸이 전혀 다르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화장대에 고스란히 비치는 나와 은설의 모습을 보았다. 은설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에 머물러 있다가 나의 움직임이 없자 그녀의 시선도 화장대 거울로 이동해 나에게 머물러 있었다. 나와 눈을 맞추는 그녀의 당당한 눈빛은 당돌해 보이기까지 했다.

은비보다 조금 큰 키에 무용으로 달련 된 날씬한 몸매, 22살이라는 나이보다는 좀 더 성숙해 보이는 깊은 눈매....그리고.....탄력이 그대로 전해지는 가슴....

지금까지 여자 친구의 동생. 그리고 아이로만 생각했던 은설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한순간에 날아 가버린 순간이었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은설의 입술이 다시 나의 얼굴에 닿을 것 같아서였다.

욕실에서 나온 은비가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 

“으이구....”

잠시 후 은비의 소리와 함께 은설의 왼쪽 볼이 내 오른쪽 볼에 닿았다가 이내 떨어졌다.

“아...언니. 왜!”

“오빠. 일하는데.....방해할래? 너 진짜 이러면 집으로 보내버린다.” 

은비가 은설의 한쪽 머리를 지어 박은 것 같았다.

“내가 뭐! 방콕 호텔 보고 있었단 말이야! 언니 짜증 나!”

은설은 투덜대며 창가 쪽의 소파로 걸어가 풀썩 주저앉은 후 은비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와 은설의 짧은 시간의 긴장이 풀리자 갑자기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잠깐 동안이지만 은설의 몸에서 전해진 열기를 느끼고 있던 내가 몹시 부끄럽게 느껴졌다.

은비가 뒤에서 나의 목에 두 팔을 두르고 안겨왔다. 

“오빠. 호텔 부킹 했어요?”

“응. 일단 방콕만 해뒀어. 한번 볼래?”

나는 노트북으로 방콕에서 우리가 묵을 객실 사진을 은비에게 찬찬히 보여줬다.

“우와....좋다. 뷰도 너무 좋아요. 비싸지 않아요? 나는 작은 호텔도 괜찮은데.....”

“아니야. 지금 프로모션 중이라서 원래 가격보다 많이 저렴해.”

은비의 부드러운 뺨이 내 얼굴 닿아 이곳저곳을 꼼꼼히 부비고 있었다. 

마치 자신만의 향기를 나에게 남겨 두듯이....

오후 6시가 되자 우리는 객실을 나와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일식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약혼을 축하하기 위해 친한 친구들과 저녁식사가 선약되어 있었다.

직원으로부터 안내받은 창가의 룸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오.....새 신부, 새 신랑 왔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내 친구 승호였다. 그의 말에 먼저 와있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한동안 들렸다. 

그의 ‘새 신부. 새 신랑’ 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들렸다.

“고맙다. 바쁠 텐데. 멀리 와주고.....”

친구들 중에는 3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이곳에 찾아온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오빠. 축하해요.”

“어떡해. 둘이 너무 잘 어울려요”

은비의 친구들도 우리를 보며 반갑게 맞았다. 

앙증맞은 접시에 담긴 깔끔한 음식들이 하나씩 나오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했다. 

은비친구 넷, 내 친구 넷, 의도치는 않았지만 모두 미혼이었고 마치 단체 미팅을 나온듯한 그런 긴장감 있는 분위기였다. 때로는 내 친구들이 선을 넘나드는 짓궂은 농담을 은비 친구들에게 던졌지만 그녀들 또한 유괘하게 받아넘기며 이 자리를 즐기는 듯이 보였다.

내 친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달콤하고 알싸한 건수를 만들고 싶은지 은비 친구 하나 하나를 탐색하고 분석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 친구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바로 은설이였다. 

은설은 남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랫동안 머물렀다 떠나는 것을 알고 잘 있는 듯했다. 때로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느긋하게 하나하나 맞춰주기까지 했다.

“저기...은설씨. 올해 22살이라고요? 이야.....아기네 아기.....근데...은설 씨는 당장 결혼해도 되겠다. 어쩌면 언니 동생 둘 다 이렇게 분위기가.....훌륭해요. 훌륭한 집안이야! 이런 집안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대대손손 유전자를 보존해야 돼.”

와인을 몇 잔 마신 승호가 참고 있던 입이 간질거렸는지 기어코 쓸 때 없는 입을 나불대기 시작했다.

“네? 호호호...정말요? 우리 언니보다 내가 더 괜찮지 않아요? 나는 더 어린데? 호호호....”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뻔뻔하게 말하는 은설의 말에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은비는 웃으며 그런 은설의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엄마가 딸에게 그렇게 하는 것처럼.... 

메인 음식이 모두 물러가고 와인과 간단한 안주가 남았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깔끔하게 걸려있던 나의 코트로 향했다. 나는 코트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그것을 꺼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은비 앞 테이블에 살며시 놓아두었다. 

“어? 오빠 이거 뭐예요?”

“풀어봐.”

일시에 모두의 시선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고급스러운 푸른빛의 케이스에 집중되었다. 그것에 다가가던 은비의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가느다란 은비의 손이 몇 번의 시도 끝에 케이스를 열자 그 속에는 너무나 찬란히 반짝이는 은색 반지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은비의 깊은 탄식이 들렸다.

나는 은비에게 그 케이스를 전해 받아 반지를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었다. 다행히 헐겁지도 조이지도 않는 딱 맞아떨어지는 정확한 사이즈였다.

“우와.....뭐야 이게? 다이아야?”

“너무 예쁘다.....”

“은비는 너무 좋겠다.”

은비의 손이 조심스레 움직일 때마다 반지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던 3.2부 다이아 반지가 실내조명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많이 비싼 거 아니야. 유명한 회사 제품도 아니고.....결혼할 때 정말 좋은 걸로 해줄게....”

나의 말에도 은비는 부드럽게 뻗은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그 은색 반지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반지를 낀 그녀의 손등에 다이아와 비슷한 반짝이는 물방울 몇 개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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