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ex wife-79-
"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을까요?"
도형은 자신이 너무 가슴쪽을 노골적으로 쳐다봤다는 걸 깨닫고는 급히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며 사무적으로 물었다.
"음, 뭐 이것저것 검사 좀 받을까 해서요."
"검사요?"
"네. 여기서 성병 검사도 가능한 거 맞죠?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비뇨기과에서 성병 검사도 해준다고 해서."
도형은 금테 안경의 콧대를 쓸어 올리며 세라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대충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연배였다.
30대 초중반?
몸 전체에서 농염한 색기가 느껴지는 걸로 봐선,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뭐하는 여자려나? 정마담이랑 흡사한 느낌인데···.'
도형은 가끔 제약회사 관계자로부터 접대를 받곤 했는데, 단골룸쌀롱의 정마담과 세라의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세라가 워낙 노출을 즐기고 화장을 짙게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오피스 레이디라고 하기엔 너무나 과했고, 엄격한 복장을 갖춰야 하는 공무원이나 전문직과도 거리가 멀어보였다.
'딱 보니 물장사하는 여잔거 같은데, 살짝 편하게 가볼까?'
"네, 맞습니다. 성병 검사도 저희 병원에서 다루는 항목이긴 합니다. 물론 산부인과에 가셔도 되지만, 아직 결혼은 안하신 것 같으니···."
"어머, 정말요? 제가 처녀처럼 보이세요?"
"아, 혹시 결혼하셨나요?"
"호호호, 젊은 선생님이 센스도 있으시네. 당연히 유부녀죠. 제 나이면."
"전혀 몰랐습니다. 워낙에 젊어 보이셔서요."
"고마워요."
두 사람은 죽이 맞아 진료는 안 보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몇마디 나눠본 도형은, 세라가 상당히 헤프고 쉬운 여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검사를 받으시려는 목적이··· 혹시 최근에 불편한 부분이 있으셨을까요?"
"뭐, 불편한 건···."
세라는 도형의 눈빛이 바뀐 걸 깨닫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짧은 치마로 앉아있다가, 반대로 다리를 꼰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팬티가 드러났지만, 조금도 조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음···."
치마 사이를 힐끔 훔쳐본 도형은 자기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세라의 팬티가 티 팬티에 가까운 망사 쪼가리였던 것.
'뭐, 뭐야? 방금 일부러 보여준 건가?'
"혹시 이런 것도 성병인가 해서."
"···무슨 증상이죠?"
"물이 너무 많아요."
"예?"
"거기에 물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이게 병인가요?"
노골적으로 성적인 의도를 드러낸 세라의 대답에 도형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러니까 혹시 물이라는 것이···."
"보짓물이요."
"커헙!"
끝내 천박한 단어까지 튀어나오자 도형은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크게 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단어를 언급하는 경우는 없었다.
"왜 그러세요? 혹시 위험한 병인가요?"
"아니요, 제가 잠깐 사레가 들려서···."
도형은 급히 책상 위에 있던 생수를 통째로 들이켰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급하게 물을 들이켜며 입가로 질질 흘릴 정도였다.
'미, 미친년인가? 방금 분명히 보짓물이라고 했지?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고.'
도형은 물을 마시며 벌렁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켰다. 이제껏 젊은 전문의인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며 먼저 추파를 던지는 여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환자로 찾아와 이렇게 직접적으로 유혹을 하는 경우도 처음이었던 것.
'대체 정체가 뭐지? 괜히 잘못 건드렸다 나만 좆되는 거 아니야? 요즘 같은 세상에 모르는 여자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바로 쇠고랑 찰텐데?'
환자들도 의사들의 변태적인 행위를 두려워 하는 것처럼, 의사역시 이성이 먼저 접근하는 것에 강한 부담을 느꼈다.
특히 멀쩡히 생긴 여자 쪽에서 대놓고 작업을 걸어오자, 도형의 경계심이 부쩍 올라갔다.
그 역시 의사라는 직업을 배경삼아 수많은 여자들을 따먹고 다니는 바람둥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여성은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의심부터 든 것이었다.
'아무래도 조심해야 겠어. 발정난 색녀라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작업하진 않을 거야. 잘 못 먹었다가 탈나면 나만 손해니까.'
물론 성추행으로 신고를 당하더라도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는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병원에 누를 끼치는 순간 현재의 직장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었다.
6개월 전 이적해 겨우 자리를 잡고 있던 도형에게는 그런 추문에 휩싸인다는 건 너무나 큰 리스크였다.
"···음, 환자분. 전문의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해당 증세만 듣고 어떤 질병에 걸렸다고 판단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건 단순히 체질적인 문제라거나···."
도형이 한발 빼는 기색을 보이자, 세라가 더욱 대담하게 들이댔다.
"아니, 선생님. 증상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나요? 저는 진짜로 걱정돼서 비뇨기과까지 제 발로 찾아온 건데요."
"네? 아니 저는 전문의로서 소견을···."
"그럼 보여 드릴게요? 마침 증세가 시작되었거든요."
"아, 아니 그럴 필요는···."
"못 믿으시는 거 같은데, 잠시만요."
세라가 다짜고짜 보조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팬티를 끌어내렸다. 당황한 도형은 감히 저지할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순식간에 망사 T팬티를 발목까지 끌어내린 세라는 하이힐의 한 발을 뒤로 접더니 흠뻑 젖은 팬티를 집어 들어 도형의 얼굴로 들이밀었다.
"아, 아니!"
"봐요. 가운데 흠뻑 젖은 거 보이죠. 그냥 맨날 이렇다니까요?"
팬티를 내밀던 세라는 당황하는 도형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몹시 실망했다.
'뭐야? 완전 좆병신 새끼잖아? 대놓고 떠먹여 주는데도 이걸 못 받아먹어? 존나 실망스럽네.'
축축하게 젖은 팬티에서는, 특유의 알싸한 애액냄새가 퍼져나왔다. 당장 노 팬티로 서 있는 세라를 보면서 도형은 계속 스스로를 강하게 자제시켰다.
'정신차려, 김도형! 여기서 말려들면 이곳에서 편한 병원 생활도 끝이야.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뭣하러 나한테 들이대겠어? 저러다가 막상 내가 덮치면 성폭행을 당했느니, 변태 의사라 느니 낙인 찍어서 합의금 받아내는 꽃뱀이 분명하다고. 말려들면 진짜 좆된다!'
세라의 적극적인 공세를 꽃뱀의 유혹으로 오해한 도형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화, 환자분. 일단 내려놓고 얘기하시죠."
"한 번 보라니까요? 제가 거짓말한 게 아니라고요."
"알겠으니까. 제발 치우세요."
"······."
소극적인 도형의 태도에 잔뜩 실망한 세라는 김이 팍 새고 말았다.
'하-. 씨발 진짜 병신같은 새끼였잖아? 어휴, 됐다 씨발. 내 구멍 채워주려고 대기하는 사내새끼가 한 트럭인데···. 젊은 놈이 저렇게 숫기가 없어서 어차피 제대로 섹스도 못 해먹겠네. 꼴에 의사라고 컬렉션에 넣어볼까 했더니, 완전 짜증 제대로네.'
세라가 팬티를 손으로 구기더니 의료용 폐기물함에 처박았다.
"흥! 됐어요. 무슨 진료를 이 따위로 본담?"
"환자분, 일단 진정하시고. 우선 종합진단에 준하는 검사를 추천드릴테니 검사결과 보고 얘기하시죠. 혹시라도 뭔가 발견되는 게 있다면···."
"됐어요. 저랑 지금 장난해요? 검사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진짜로 성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보여요?"
세라는 팔짱을 낀 상태로 도형을 째려보며 말했다.
"···지안이가 소개팅 안 하길 천만 다행이지. 무슨 저런 병신 같은 새끼를 소개시켜 준담?"
"네? 방금 뭐라고."
"거지 같아서 여기서 다시는 진료 안 받을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세라는 그 말만 남기고는 곧바로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쾅-!
어찌나 문을 세게 닫는지 문 닫는 소리가 한참을 울릴 정도였다.
이유도 모르고 잔뜩 욕만 처먹은 도형은, 폐기물 함에 처박힌 세라의 망사팬티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여자가 성질머리 하고는···. 하, 그냥 눈 딱감고 해버릴 걸 그랬나? 아니야. 괜히 아무 구멍이나 쑤셨다가 인생 망칠 일 있어?
어차피 의사 면허증만 있으면 어지간한 여자들은 프리패스니까.
근데 소개팅 얘기는 갑자기 뭐람? 내가 언제 소개팅을 받기로 했던가?'
도형이 의문에 빠진 사이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온 세라는 짜증이 제대로 폭발해 있었다. 간만에 의사 애인 만들어 보나 했는데, 면전에서 거절당한 셈이었다.
"아씨 짜증나. 여기 담배 어디서 태워요?"
"네?"
"흡연실이 어디냐고요?"
"병원 건물은 절대금연구역이라 밖으로 나가셔야···."
"뭐라고요? 무슨 거지같은 법이···. 진짜 별. 어휴."
세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고 하자 접수처의 직원이 그녀를 붙잡았다.
"저, 손님. 진료비 계산부터···."
"진료? 계산? 저런 돌팔이한테? 참나."
세라가 거칠게 백을 열더니, 안에 든 지갑을 들어 카운터로 내던졌다. 접수처 직원이 엉겁결에 지갑을 공중에서 받아들자, 세라가 소리쳤다.
"거기 카드 꺼내서 알아서 계산해요. 난 열뻗쳐서 밖에 나가서 담배 피우고 올테니까."
"아, 아니 손님···."
갑질에 항의할 새도 없이 세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가버리자 남은 직원들끼리 웅성거렸다.
"왜 저래, 저 여자?"
"미친 사람인가봐."
"방금 김도형 선생님 진료 받고 나온 환자 아니야?"
"안에서 무슨 일 있었나?"
"쉿-. 그냥 모른 척 해. 괜히 일 키우지 말고. 우린 진료비 계산만 문제 없으면 되니까."
베태랑 직원의 정리에 따라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한편 건물 밖으로 나온 세라는 수중에 담배가 떨어진 걸 깨닫고 근처 편의점까지 가서 담배를 사왔다.
한동안 안피우던 담배였는데, 방금 전의 일이 너무 쪽팔리고 화가 나서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미칠것 같았다.
"씨발, 진짜 개 좆같은 새끼가 사람을 뭘로 보고."
원래는 팬티를 벗고 환부를 보이면서 유혹하려던 속셈이었지만, 대번에 거절을 당한 세라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막말로 의사라는 타이틀만 아니었어도, 자고 싶은 생각도 안드는 외모였다.
"좆같은 새끼가 진짜. 한 번 대주려고 했더니, 사람을 무슨 미친년 취급이나 하고."
담배를 사 병원 앞으로 온 세라는 가방에 라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평소에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담배와 라이터를 함께 사야하는 것을 깜빡한 것이었다.
"씨발 진짜 오늘따라 되는 일이 없네! 겨우 주름 펴고 왔는데 씨발!"
담배를 태우기 위해 라이터가 필요해진 세라가 다시 편의점으로 향하려는데 병원 앞에 차가 한대 멈춰섰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에서 내린 청년을 보니, 아까 차에서 우연히 본 잘생긴 학생이었다.
세라는 갑자기 그 학생이 담배를 태우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맞다. 저 청년에게 불 좀 빌리면 되겠다. 히히, 뭐하면 좆도 한번 빌리고.'
"저기요."
상대는 세라를 보더니 움찔 놀란 표정이었다.
세라는 상대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흥, 내가 예쁜 줄은 알아가지고. 하여간 사내 새끼들은다 똑같다니까?'
세라가 평소 노출이 심한 의상을 즐겨 입는 이유는, 남자들의 은근한 시선을 즐기는 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가슴을 은근슬쩍 드러내놓고 다니면, 지나가는 남자들은 자석에 끌린 것처럼 그녀의 가슴에 시선을 보냈다.
가끔 대놓고 입맛을 다시는 사내들도 있을 정도로, 세라의 커다란 가슴은 훌륭했다.
"저, 저요?"
"그럼 그쪽 말고 거기 누구 있어요?"
"···무슨 일이신지."
"불 좀 있어요? 편의점 가서 담배를 샀는데, 라이터를 깜빡했지 뭐예요?"
"불은···."
청년은 별것도 아닌 일에 무척이나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세라는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방금전 자신을 거절한 김도형이 오버랩되며 버럭 짜증이 올라왔다.
'아니, 요새 사내 새끼들은 죄다 숫기라곤 없어서는···.'
"담배 피우시잖아요? 아까 다 봤거든요?"
"예?"
세라가 갑자기 청년의 바지주머니로 허락도 없이 손을 넣었다.
라이터를 안 빌려주면 강제로 꺼내서라도 피우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뭉클-!
호주머니로 손을 넣는데, 묵직한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남자 경험이 많은 세라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옆으로 휘어진 잦이라는 걸 깨달았다.
'뭐, 뭐야 이 새끼? 잦이가 왜 이렇게 커?'
문득 병원명을 떠올린 세라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대물 비뇨기과. 여기서 수술받았나보네.'
"지금 뭐하시는 거죠?"
세라가 급히 주머니에서 손을 빼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나는 안에 라이터가 있는 줄 알고···."
"라이터가 있든 없든, 초면에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청년이 짜증을 내자 세라의 호감은 더욱 올라갔다. 인상을 구기며 목소리를 높이는데, 남자다운 박력이 느껴진 것이었다.
'성깔 좀 있는데? ···의사 놈은 실패했으니 급한대로 이 자식이나 꼬셔볼까?'
세라는 청년에게 본격적으로 작업을 해볼까 마음을 먹었다. 그 청년은 병원에 신분증을 제출하러 다시 돌아온 도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