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2003화 (1,983/2,000)

2003. ex wife-78-

* * *

"안녕하세요."

겨우 정신을 차린 은정이 지안과 세라에게 꾸벅 인사했다. 비뇨기과에 젊은 여자 손님이, 그것도 두 명이서 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뭐하는 여자들이지? 직업여성인가?'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창녀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몸을 파는 창녀들은 주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기도 했던 것.

세라는 커다란 가슴을 과시하는 깊이 파인 V넥 니트를 입고 있어서 그런 추측이 그럴싸 했지만, 지안은 워낙에 생김새가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은정은 혹시나 이들이 창녀라면, 사창가 같은 곳에서 몸을 파는 여성들이 아닌 고급 요정에서 일하는 에이스라고 생각했다.

"특별 검진 받으러 왔습니다."

"특별검진 이시라고요?"

그제야 두 사람의 정체를 파악한 은정은 무척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훈을 보낸지 얼마 안되서 또 다른 특별검진 대상자가 방문할 거라곤 생각을 못 한 것이었다.

'예약이 잡혀 있었나?'

은정이 급히 사무용 컴퓨터로 예약 내역을 확인했다.

그러자 불과 한 시간 전 원무과장이 보내온 사내 메신저 메시지가 있었다.

<금일 특별검진 대상 추가, 최지안>

"아! 죄송해요. 방금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최지안 씨가 누구실까요?"

"저예요."

고급스럽게 생긴 여자가 손을 들었다.

"일행분은 그럼···."

"저도 같이 검진 받을 수 있을까요?"

딱 보니 친구를 따라 온 모양이었다.

"죄송하지만, 특별 검진의 경우는 미리 예약된 손님만 가능합니다. 별도의 검사를 원하시면, 접수처에서 따로 검사요청을 하셔야 합니다."

"앗, 그래요?"

세라가 다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접수처로 안내해드릴까요?"

"어떡하지?"

세라가 지안에게 묻자 지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편할대로 해. 기다리기 지루하면 병원 온 김에 검사나 한 번 받아보든지."

"그럴까?"

"음, 그럼 이쪽 환자분은 접수처로 안내해드릴게요."

세라를 접수처 쪽으로 안내한 은정은 이어서 지안에게 말했다.

"이쪽분이 최지안 환자분 맞으시죠?"

"네."

"혹시 신분증 좀···. 앗!"

미리 예약이 되어 있지만, 환자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적인 절차였다. 하지만 은정은 최지안의 신분증을 확인할 때쯤에야 뒤늦게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맞다. 이도훈 환자 신분증 복사해 놓는 걸 깜빡했잖아?'

특별 검진 대상자는 원무과장이 메시지로 당일 예약이 잡히지만, 신분증을 확인하고 그 사본을 복사해 놓는 것은 기본적인 프로세스 였던 것.

아주 기본적인 절차를 깜빡해버린 은정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당황했다.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건네던 최지안이 당황하는 은정을 보고 설명했다.

"원래 이름은 최윤하예요. 현재 법원에 개명신청을 해놔서, 여기 서류도 함께 첨부할게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은정은 지안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을 잠시 보류하고, 급히 원무과장의 사내 메신저로 메시지를 남겼다.

-과장님! 제가 실수로 앞에 이도훈 환자 신분증 복사하는 걸 깜빡했습니다. 혹시 연락처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과장은 잠시 자리에서 부재중인지 메시지 확인이 바로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지안이 답답한 듯 은정에게 따졌다.

"뭐 문제있어요?"

"아, 아뇨. 죄송해요. 손님 때문이 아니라···."

과장에게서 바로 답신이 오지 않자 답답해진 은정은 일단 지안의 신분증과 개명신청서를 받아들고 그녀를 탈의실로 안내했다.

"일단 검진복으로 갈아입으셔야 해요. 신분증은 사본을 복사하고 나가실 때 드릴게요."

"그래요. 어디로 가면 되요?"

"이쪽으로···."

윤하를 여성 탈의실로 안내한 은정은 급히 1층의 원무과로 달려갔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던 중년의 원무과장이 은정을 보고 물었다.

"뭘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다녀?"

"과, 과장님. 제가 메시지 보냈는데 못 보셨죠?"

"어. 잠깐 휴게실에서 담배 피우고 오는 길인데?"

"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앞에 이도훈 환자분 있잖아요."

"응. 임선생님이 본 환자? 왜 무슨 문제있어? 임 선생님이 특별검진을 안해보긴 했지만, 딱히 못 할 것도 없을텐데? 최선생님이 인수인계 잘 해놨다고 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검사는 잘 하고 가셨는데···."

"근데?"

"저, 제가 깜빡하고 신분증을···."

"···뭐?"

"죄송합니다. 신분증을 복사해 두는 걸 깜빡했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정신을 어디다 두고!"

호탕하게 말하던 원무과장이 버럭 화를 냈다.

그는 다소 다혈질인 편이었는데, 한번 화를 내면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아니 대체 그런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못 챙기고 뭐하자는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장난해? 데스크 앞에서 이리가라 저리가라 안내만 하는 사람이 특별 검진 대상자를 그렇게 처리했다고?"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 특별 검진이 누구 오더로 내려오는지 몰라서 물어? 병원장님이 가장 챙기는 일이 바로 그거 잖아! 수술 그딴 거 안 받아도 되니까, 특별 검진 쪽에서 빵꾸 내지 말라고!"

"······."

은정이 거듭 사과를 했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원무과장은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한번 화를 내면, 제 스스로 더욱 흥분해서 계속 목소리를 높이는 타입이다 보니, 원무과에서 일하던 다른 직원들도 힐끔거리며 입구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볼 정도였다.

"이제 어떡할거야? 오늘 검진 받은 환자가 이도훈 환자라는 건 뭔 수로 증명하냐고?"

"제, 제가 수습해 보겠습니다."

"수습? 뭘 어떻게?"

"이도훈씨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다시 연락해서 방문을 요청드려보겠습니다."

"참나, 아주 그냥 뚫린 입이라고···."

씩씩거리던 원무과장은 다른 직원들의 이목이 몰리자,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봐, 은정씨. 이거 빵구나면 나까지 시말서야. 무슨 말인지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원무과장이 목소리를 낮추더니 은정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똑바로 하라고. 얼굴마담으로 그 자리에 대신 앉힐 계집애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씨, 뽑아준 은혜도 모르고."

"정말 죄송합니다."

원무과장에게 한바탕 깨지고 겨우 도훈의 번호를 받아온 은정은, 한숨을 푹 내쉬고 곧바로 탈의실로 올라갔다.

마침 타이밍 맞게 검진복으로 갈아입은 지안이 밖으로 나왔다.

헐렁한 검진복을 걸치고 있는데도, 몸매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은정은 살짝 놀랐다.

'뭐야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안 예쁜 구석이 없지?'

은정은 워낙에 몸매에 자부심이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여자 환자를 보고 부러워 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처음으로 지안에게 살짝 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굴도, 피부도, 심지어 몸매도.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여자여자한 미인의 표본이었다.

"음, 그럼 검진하는 의사 선생님께 안내해드릴게요. 다행히 검사하는 분께서 여자 선생님이라 딱히 거부감은 없으실 거예요."

"비뇨기과에 여자 의사라고요?"

"네? 무슨 문제라도?"

은정의 반문에 지안이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그냥 신기해서요."

"네. 최근에는 여의사선생님들도 비뇨기과 전공을 많이 하시거든요. 이쪽입니다."

똑똑-.

임희경 선생의 진료실 문을 대신 노크한 은정이 지안에게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지안이 진료실로 들어가자 은정은 다시 후다닥 데스크로 돌아왔다. 원무과장에게 된통 깨지긴 했지만, 어쨌든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곧바로 도훈의 폰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 다행이다. 바로 받으셨네요. 여기 병원인데요, 대물비뇨기과."

-조은정?

"네네, 저예요."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특별 검진 대상자는 신상 정보가 저희쪽으로 자동으로 넘어와요."

-설마 거기서 내 번호를 보고 사적으로 연락했다는 거야? 그 병원은 개인 정보 관리 개념이 없나?

도훈의 쌀쌀한 반응에 은정이 움찔 놀랐다.

그가 보기와는 다르게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고 있던 것이다.

"저, 그런게 아니고···."

-야. 내가 너랑 잤다고, 우리가 무슨 특별한 관계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쿨하지 못한 스타일인 줄은 몰랐는데?

"아, 아니에요, 도훈씨 그게 아니라···. 제가 실수로 신분증을 ···."

-신분증이라니?

은정이 자조치종을 설명하자 그제야 도훈도 피식 웃으며 앞서 일을 사과했다.

-진작 그렇게 말하지, 난 또. 미안해. 괜히 예민하게 반응해서.

"아니에요, 제 실순데요."

-내가 좀 여자들 달라붙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거든. 무슨 뜻인지 알지?

"네, 네. 근데 저 혹시 멀리 안가셨으면 병원에 다시 와서 신분증 복사 한 번만···."

-근데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돼? 귀찮은데.

"정말 죄송해요. 저도 어지간하면 이런 부탁 안 드릴텐데, 절차상 이도훈 환자분이 저희 쪽에서 검사를 받았다는 증빙이 그것밖에 없어서요. 다른 사람이 대리로 검사를 받게 되면 그게 더 큰 문제라."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고···. 이런 거면 진작 말하지. 이미 집에 거의다 왔는데.

"귀찮게 해드렸네요. 제가 대신 다음에···."

-다음에 뭐?

"···원하시는대로 저 다루셔도 돼요."

-뭐?

수화기 너머로 도훈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호탕한 웃음이 끝난 후 도훈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그걸 너한테 허락받아야 하는 입장이야?

"예, 예?"

-내가 너 따먹고 싶으면 먹는거고, 따먹기 싫으면 안 먹는 거 아니었어?

"아, 그거야···."

-알았어, 아무튼. 사정이 급하긴 급한가 보네. 지금 바로 차 돌릴게. 30분 안에는 도착할 거야.

"네, 정말 고마워요 도훈씨. 여러모로."

-탕감해준 빚이나 잘 갚아. 거기 의사를 꼬셔서 취집을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네."

-이따 봐.

통화를 끝낸 은정은 이마에 흘린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짧게 통화만 했는데도, 진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움찔그때 은정이 자기도 모르게 허벅지를 붙이며 다리를 오므렸다.

'뭐, 뭐지?'

도훈과 통화를 하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주륵, 애액을 흘려버린 것이었다.

'방금 도훈씨한테 혼날 때, 나 느껴버린 거야?'

이유를 찾던 은정은 자동으로 반응해버리는 몸에, 스스로 소름끼치게 놀랐다. 섹스 한 번으로 곧바로 도훈에게 완전히 종속되어버린 것이었다.

'하아-. 미치겠네. 제멋대로 구니까 오히려 저항을 못 하겠어.

하앙···.'

다시 성욕이 올라간 은정은 데스크 의자에 앉아 엉덩이를 꿈틀거렸다.

* * *

"성병 검사 예약은 당일에는 조금 어려우신데···. 일단 확인해 볼게요."

"어떻게 안 될까요? 부탁드려요."

접수처로 간 세라는 직원에게 계속 사정했다.

그러면서 시선은 계속 병원 소속 의사들의 프로필을 프린팅해 놓은 벽면 장식을 보고 있었다.

약력과 나이가 적힌 프로필에서 누군가를 찾던 세라는 그중에서 가장 어린 비뇨기과 전문의의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물었다.

"그리고 혹시 가능하면 김도형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싶어요."

"김도형 선생님이요? 음, 오늘 진료가 가능하시긴 한데, 잠시 만요."

접수처 직원은 진료 현황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럼 8진료실 앞으로 가서 대기하세요. 지금 예약환자가 캔슬돼서 진료 가능하실 거 같아요. 검사항목은 선생님께서 진단 내리신 항목으로 결정할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세라가 기쁜 표정으로 8진료실로 안내받았다.

총 5층을 통째로 쓰는 병원 건물 중 의사들의 외래진료실은 주로 2층에 몰려 있었다.

8진료실 앞의 대기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모니터에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히히. 이렇게 쉽게 만나게 될 줄이야. 역시 난 운이 좋다니까?

근데 사진만 봐서는 딱히 내 취향은 아니긴 한데···.'

의사 프로필에서 증명사진으로 얼굴을 미리 확인한 세라는 김도형이란 젊은 외과의가 딱히 잘생긴 편은 아니라는 걸 알고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나이도 어린 전문의가 잘생기기까지 하다면, 뭣하러 30대 중반의 유부녀인 자신을 만나주겠냐고 합리화 하면서 진료를 기다렸다.

띵동안내음과 함께 모니터에서 진료실로 입장을 알렸다.

세라는 일부러 가슴이 더 노출되도록 V넥 니트를 밑으로 끌어내리고는 진료실로 입장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도형은 세라를 쳐다보더니 노골적으로 가슴골에 시선이 머물렀다.

'훗-. 하여간 사내들이란···..'

시선을 끄는데 성공한 세라가 보조 의자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다리를 꼬았다. 짧은 치마를 입고온 그녀의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며 아슬아슬 팬티를 가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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