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 구원회-107-
영어를 쓰는 외국 경호원의 모습에 혜진이 대번에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야? 나 누군지 몰라?"
혜진은 너무나 황당했다.
경호팀이 자신들에게 월급 주는 고용주, 즉 장목사의 명령에만 따르는 무식한 자들이긴 하지만 적어도 혜진에게 버릇없게 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혜진은 명실상부한 장목사의 심복이었고, 구원회에 겨우 12명만 존재하는 12장로 중 한 명으로 어마어마한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에게 감히 한낱 보디가드가 앞 길을 막아서자, 혜진은 그녀답지 않게 곧바로 역정을 내고 말았다.
"너 지금 누구 몸을 수색하겠다는 거야? 너네 팀장 어딨어!"
혜진이 평소보다 오버해서 씩씩거리자, 출입구 경비 시설에서 군복을 입은 남성 한 명이 소총을 어깨에 메고 걸어 나왔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구혜진 장로님 아니십니까?"
구티 스타일로(콧수염과 턱수염이 연결된) 멋들어진 수염을 기른 사내는, 빨간 베레모를 빗겨 쓰고 있었는데 군인치고는 꽤 자유분방한 차림으로 보였다.
여장을 하고 구혜진 뒤에 붙어 있던 도훈은 갑자기 등장한 콧수염 사내를 눈여겨보았다.
'뭐야 저 건들건들 양아치 새끼는?'
[군복을 입긴 입었는데, 무슨 반군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복장이 몹시 불량하군요.]
'아, 그거구나.'
[네?]
'체 게바라 스타일.'
[예? 책에 봐라요?]
'아니 체 게 바라. 쿠바 혁명군을 이끌었던 그 반군 수괴.'
체 게바라처럼 외형을 꾸민 사내를 보자 혜진이 곧장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조 대위님. 이게 대체 무슨 경우죠? 갑자기 몸수색이라뇨?"
"이거참,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저 친구가 융통성이 없어서 전후 사정 설명도 없이 무작정 들이댔나 보군요."
"설명이라뇨?"
조 대위라고 불린 껄렁한 군인은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듯 손짓으로 제임스를 뒤로 물렸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저희 고용주께서, 아 죄송합니다. 장목사님께서 특별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특별 지시라뇨? 비서인 제가 모르는 지시도 있나요?"
"저도 한 시간 전에 전달받은 내용입니다. 듣기로는 장목사님께서 오늘과 내일 자택안에서 중요하게 처리할 일이 있으시다면서 최고수위 경계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뭐, 뭐라고요? 최고수위 경계 명령이요?"
"네. 오늘은 그래서 3교대가 아니라, 2교대로 돌아갑니다. 조금 이따 알파팀도 합류할 예정입니다."
혜진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평소엔 하지도 않던 몸수색을 하겠다는 것에서부터 수상했는데, 알고보니 그것이 장목사의 특별 지시였던 것.
혜진이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자, 체 게바라를 흉내내는 껄렁한 군인이 다시 말했다.
"에이, 실장님은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형식적인 절 차니까요. 다만, 저희 경호팀에는 여군이 없어 몸수색이 불편하실 수 있는 점은 미리 양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흐음."
"이런 중대한 일을 말단 졸병들 시킬 수도 없으니···. 제가 직접 수색해도 되겠습니까?"
"조 대위님이요?"
"아니면, 아까 그 친구 부를까요? 제임스?"
뒤로 물러선 외국 용병들은 구혜진의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대놓고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도훈은 늑대 같은 용병들의 눈빛을 보고 그들의 속내를 간파했다.
'참나. 혜진이가 저 새끼들 공식 딸감이었나 보네.'
[딸감이요? 딸로 삼고 싶은 여자란 뜻인가요?]
'아까부터 자꾸 뭔 삽소리야? 평소 장목사 옆에 있던 혜진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는 뜻이지. 혜진이는 누가 봐도 고저스한 미인이니까.'
[아하, 그럼 딸감이라는 말은···.]
'그래. 아마 저새끼들 머릿속에선 혜진이를 수십번 돌림빵 했을 걸?'
[이런.]
'근데 교주의 여자란 걸 아니까 입맛만 다셨던 거야. 잘못 건드렸다간, 직장을 잘릴테니.'
[그렇겠죠.]
'근데 교주가 마침 몸수색 명령을 내리니까, 그걸 핑계 삼아 혜진이를 한 번 더듬어 보려는 거지.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은 저 체게바라가 대신 나선 거고.'
[저 군인은 외형부터 몹시 거슬립니다.]
'조 대위라고 했나? 대위는 무슨. 딱 보니까 군대에서 사고치고 쫓겨나 용병으로 전향한 것 같은데. 군대에서 잘린 새끼가, 여태껏 군 계급으로 불리는 것도 병신같은 거지.'
[근데 경호팀은 죄다 외국계 용병 출신으로 이루어진 PMC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저 사람은 한국인으로 보이는데요.]
'한국인 용병도 있을 걸?'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은근히 외국 군대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 특히 PMC는 다국적으로 구성되니까. 팀장까지 맡고 있는 걸 보면 실력도 제법 있나 본데.'
[그나저나 혜진양이 곤란해졌군요. 덩달아 주인님까지도요.]
'나?'
[몸수색을 설마 혜진양만 하겠습니까? 더구나 혜진양은 구원회의 장로이고, 주인님은 지금···. 누가 봐도 수상하게 생겼는데요.]
'수상한 게 아니라 그냥 못 생긴거야.'
[어쨌든요.]
'그러네. 저 좆같은 새끼가 설마 몸을 더듬다가 내 좆이라도 만지는 날엔 진짜로 좆되는 거잖아?'
[억! 그럼 생각보다 큰일 아닙니까?]
'수틀리면 그대로 저 새끼 목을 180 돌려서 꺾어버린다음···.'
[자중하십시오. 지금 정체가 탄로났다간, 암습은 실패로 돌아 갑니다. 만에 하나 장만석이 스킬이나 아이템을 이용해 잠적해 버리면 어쩌시려고요?]
'최대한 빨리 방안으로 뛰어가면 되지 않을까? 1분이면 여기 애들 싹 쓸어버리고, 장목사 그 반송장 새끼, 진짜 송장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흡혈귀로 변신하기 전에 말이야.'
[그다지 좋은 전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내가 못 할 것 같아? 3갑자가 넘는 내공 덕분에 지금 내 실력이면 진짜 총알도 피할 수 있을걸?'
[그 뜻이 아닙니다. 만약 장목사에게 주인님이 가진 '마법의 문고리' 같은 아이템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대처하시려고요?]
'마법의 문고리?'
[해당 아이템이 주인님의 전유물만은 아닙니다. 그 밖에 몸을 은신하거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수많은 아이템과 스킬이 존재합니다. 주인님이 장목사를 찾기 전에, 장목사가 먼저 숨어 버리면, 지금까지 공 들인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겁니다. 오늘 내로 못 찾으면, 장목사는 길가는 여잘 강간 해서라도 제물로 삼을 처녀를 다시 찾을 거고요.]
'끄응. 좆 같네 진짜. 그렇다고 몸수색을 고분고분 당해줄 수도 없고···.'
도훈이 진퇴양난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혜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음험한 눈으로 자신의 몸매를 위아래로 훑고 있는 조 대위가 자신을 희롱하는 것보다, 여장을 한 도훈이 수색당하는 게 더 신경이 쓰였다.
'어쩌지? 가슴에 넣은 뽕도 그렇고···, 만에 하나 밑에 달린 흉측한 물건을 들키는 날에는···.'
도훈의 잦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 이번에는 단점으로 다가왔다.
보통 사람이면 숨길 수 있는 것도 너무 대놓고 티가 나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지만, 양팔을 벌려주십시오. 금속 탐지기 수색 좀 하겠습니다. 왜, 공항에서 자주 해보셨죠?"
"······."
혜진은 장목사를 수행하는 비서팀의 수장으로 경비팀 소속 간부들의 신상을 모두 꿰고 있었다.
각각 알파, 브라보, 찰리로 이루어진 팀의 팀장급 중 브라보 팀을 이끄는 조 대위는 최악으로 평가받았다.
'···쓰레기 새끼. 듣기론 장군의 딸 셋을 돌아가면서 건드리다 그게 걸려서 군에서 불명예제대 했다지? 그 뒤로 프랑스 외인부대로 옮긴 뒤 지금은 PMC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고. 실력은 나무 랄 데 없는데, 너무 여잘 밝혀서 문제라더니···.'
혜진은 조 대위가 굳이 직접 나선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조 대위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몸매를 힐끔거렸던 것.
'하지만 여기서 싫어하는 티를 내거나, 거부했다간 민용이가 위험해질 거야. 목사님 때문에 나한테는 함부로 못 하겠지만, 새로 데려온 처녀에게 성가시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혜진은 내키지 않았지만 도훈을 위해 몸수색에 최대한 협조했다.
혜진이 좌우로 팔을 넓게 벌리는데, 조 대위가 다시 요구했다.
"실장님 죄송하지만 머리 뒤로 두 팔을 깍지껴서 올려주시겠습니까?"
"뭐라고요?"
"별건 아닙니다만 완벽한 수색을 위해 군방식 대로 하겠습니다. 저흰 그렇게 배웠거든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군대라고 금속탐지기로 몸 수색을 하는 방식이 굳이 다른 곳과 다를 리 없었다.
조 대위는 일부러 하지 않아도 될 자세를 시킨 것이었다.
혜진은 순간 욱하는 반발심이 들었지만, 지금 조 대위를 자극했다간 도훈이 곤란해질 것이라고 보고 군말 없이 협조했다.
두 팔을 들어 깍지를 낀 채 뒤통수를 받치자, 혜진의 커다란 가슴이 위로 업되면서 부쩍 돌출되었다.
살짝 붙는 옷을 입고 있던 혜진은 해당 자세에 마치 발가 벗겨 지는 듯한 수치심이 들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넓적한 막대 같은 금속탐지기를 든 조 대위가 혜진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겨드랑이부터 허리까지, 또 다시 반대쪽으로 스캔하는데 일부러 자꾸 탐지기로 혜진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고의적이었으나, 혜진은 꾹 참았다.
오히려 그 모습을 본 도훈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다.
'저 씹 새끼가!'
[대놓고 혜진양을 희롱하는군요. 감히 경호팀 소속의 일개 팀장 따위가 구원회 장로를 저렇게 희롱해도 되는 겁니까?]
'저 새끼 알고 뻗대는 거야.'
[네?]
'혜진이 불쾌해하면 장목사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한 번 찔러 보는 거라고.'
[찌르다뇨? 뭘요?]
'내가 볼 때 저 새낀, 기회만 주어지면 혜진이를 어떻게 자빠뜨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아.'
[그게 느껴지십니까?]
'관상이 딱 그렇게 생겼잖아. 존나 호색한처럼.'
[그건 주인님이 더···.]
'어쨌든 마음에 정말 안 드는 새끼야. 나한테도 저러면 확 눈알을 쏙 뽑아 버려? 어디서 개수작을.'
[곤란합니다. 그건 싸우자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싸우면 뭐? 진짜 1초면 저 새끼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중하십시오. 제가 볼 땐 혜진양도 희롱당하는 걸 알면서도 억지로 주인님을 위해 참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혜진이가?'
도훈이 다시 혜진을 쳐다보는데, 혜진이 조 대위에게 조심스럽게 속삭이고 있었다.
작은 소리로 하는 말이었지만, 도훈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조 대위님. 저기, 수색은 저까지만 하고 들여보내 주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같이 온 저분도···.
-그게 아니라, 제가 중간에 일이 생겨서 도착이 늦었거든요. 장목사님이 안에서 기다리실 거예요. 아까 역정내시더라고요.
-흐음, 그건 곤란합니다. 저는 장목사님에게 저택에 드나드는 모든 이들을 몸수색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니까요. 알만하신 분이 왜 그런 말씀을···.
-제 사정 한 번만 봐주세요. 네?
혜진이 그녀답지 않게 애교섞인 목소리로 조 대위에게 지분거렸다. 일부러 몸을 접촉하며 굳이 안 해도 될 스킨십으로 조 대위를 유혹했다.
조 대위의 입이 귓가에 걸렸다.
-허허, 자꾸 곤란한 부탁을 하시네요. 예외가 있으면 안 되는데.
-보시다시피 분당지부에서 막 데리고 올라온 애예요. 준비시키는데 시간이 제법 걸려서···.
-흠. 그럼 구 실장님 저랑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실래요?
-예?
-아니 뭐, 사적으로 말씀드릴 것도 있고···. 왜요? 저 별로 마음에 안 드세요? 저는 구실장님 되게 좋게 봤는데.
도훈이 대화 내용을 엿들으니, 모처럼 건수를 잡은 조 대위가 이 기회를 틈타 혜진에게 작업을 거는 중이었다.
듣고만 있어도 귀가 썩을 것 같았지만, 혜진은 의외의 연기력을 발휘하며 끝까지 조 대위에게 비위를 맞췄다.
-어머, 그러셨어요? 난 전혀 몰랐는데···.
-제가 티 엄청 많이 냈는데, 모르셨다니.
-저야, 뭐, 항상 장목사님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좋아요, 그럼 언제 한 번 날 잡죠.
-정말입니까?
-왜요? 구원회 장로쯤 되는 제가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할 것 같아요? 저 그렇게 가볍게 말하는 사람 아닌 거 아시죠?
-아뇨 그런 뜻이 아니고···.
혜진은 결국 비장의 무기까지 꺼냈다.
-실은 제가 요즘 외롭거든요. 친구가 필요했는데, 마침 조 대위님이 제안을 하시니.
-아!
조 대위라 불리는 체 게바라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도훈은 당장이라도 놈의 몸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혜진의 희생(?)으로 조 대위가 몸수색을 중단하더니, 뒤에 철문을 막아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야. 대충 몸수색 끝났으니까 구실장님 안으로 들여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