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 구원회-91-
* * *
기사 호출을 지시한 혜진이 윗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신적으로 피로할 때면 나오는 그녀의 버릇이었다.
'마지막 두 명 남았군. 이제 두 명만 더 구하면 지긋지긋한 채홍사 노릇도 해방이야.'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은 예상했지만, 3년여를 매일같이 처녀를 바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죽하면 구원회 내의 처녀가 씨가 마를 지경.
더 정확히 말하면 처녀야 얼마든지 있었지만, 구원회 내의 일부 처녀들이 늙은 목사에게 첫날 밤을 바치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문제였다.
종교적 맹신이나 혹은 개인의 영달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기꺼이 처녀를 바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온갖 회유와 협박을 통해 겨우겨우 설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게다가 만에 하나 경험이 있음에도 고의로 처녀라고 속이거나, 혹은 처녀막 재생술로 기만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예비 인력을 동시에 준비해야만 했다.
지금도 마지막으로 나설 두 명은 진즉 확보된 상태지만, 추가로 예비 인력을 구하기 위해 분당 분원까지 직접 내려가는 것이었다.
'하아, 지긋지긋하구나. 이런 뚜쟁이 생활도.'
그녀가 직접 지방까지 출타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구원회 내에서 계급은 군대보다 더 철저한 편.
최고 권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장로가 몸소 설득을 위해 나서면 안 될 일도 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가 거절 못 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압박용이었던 것. 애초에 이를 위해 장목사가 그녀를 초고 속 승진시킨것도 있었다.
-이제 끝이 보이는 구나. 혜진이 네가 수고가 많았다. 하지만, 옛말에도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고 했었지. 방심말고 마지막까지 빈틈없이 임무를 완수하도록.
어젯밤 장목사의 신신당부를 떠올린 구 장로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내 팔자야."
혜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 도훈이 쏜살같이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뛰어내려갔다.
[뭐하시는 겁니까? 목표가 코너만 돌면 있는데요?]
'지금 분당엘 간다잖아.'
[그런데요? 설마 분당까지 따라가시려고요?]
'아니. 따라가는 건 아니고. 내가 데려가려고.'
[···예?]
혜진보다 빠르게 1층으로 뛰어 내려온 도훈은, 정문에서 대기하던 검은 색 세단을 발견했다. 값비싼 차종으로 보아, 장로급을 수행하는 차량으로 보였다.
'저 차겠지?'
[뭐하시려는 겁니까? 설마 차량을 탈취라도 하시려고요? 물리력을 썼다간 분명 들키고 말 겁니다.]
'물리력은 무슨? 말로 해야지.'
도훈은 대기 중인 차량에 다가가 차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젊은 기사가 도훈을 힐끗 쳐다보더니 차창을 내리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감사팀에서 나왔습니다."
"감사팀요?"
도훈은 아까 교회 본부에서 본 부서명을 떠올리며 거짓말을 시작했다.
"조사할 게 있으니 일단 내리시죠."
"네? 갑자기 무슨 조사요? 저한테 용무가 있는 것 맞습니까?"
"왜요? 설마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감사팀에서 찾아 왔을까봐서요"
도훈은 재빨리 운전기사의 정보창을 읽었다.
"···정지운씨?"
모르는 사람이 성까지 붙여 이름을 부르면 당황한다는 것을 이용한 전략이었다.
"어, 엇? 아니 감사팀에서 갑자기 왜 저를···."
기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비치자 도훈이 없는 말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서류를 확인해 보니, 교회 법인 카드로 긁은 유류비와 실제 주행 거리가 안 맞는 부분이 다소 있더군요."
"아니 그건 당연히···."
"지금 조사에 불응하시는 겁니까? 정지운씨?"
운전기사가 벙찐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조사에 불응하는 게 아니라, 저 지금 운행 나가야 하는데요?"
"도주 우려가 있으니 당분간 운행은 불가합니다. 대체 인력을 보낼테니 걱정말고 내리시죠."
기사가 억울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저기, 그쪽에서 뭔가 실수가 있나 본데 저는 절대 유류비를 삥땅친 적 없습니다. 하나님께 맹세코···."
"그건 조사받으실때 말씀하시고요. 저는 당장 데려오라는 명령만 받았습니다. 절 따라 오시죠."
도훈이 강압적으로 나오자 기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를 따라 건물로 들어갔다.
"근데 여긴 감사팀 건물이 아닌···. 켁!"
기사가 어리둥절하면서 도훈에게 따지려는데 순간 눈 앞이 번쩍하더니 기사가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설마 죽이신 건 아니죠?]
'아니. 혈도를 눌러 기절만 시킨 거야. 저녁쯤엔 알아서 깨어날걸. 힘조절을 제대로 했다면.'
[근데 깨어나도 문제 아닙니까? 나중에 주인님에 대해 불면 어쩌려고요?]
'꿈꾸었다고 믿게 만들면 그만이지.'
[꿈이요?]
도훈은 꿈속에서 알약을 기사의 입에 밀어 넣으며 그를 건물 외진 곳의 창고로 데려갔다. 굳게 잠긴 문이었으나, 만능 열쇠를 지닌 도훈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시건 장치에 불과했다.
기절한 기사를 창고 구석에 숨긴 도훈은, 그의 재킷을 벗긴 뒤 자신이 대신 걸치고는 다시 차로 돌아갔다. 도훈이 헐레벌떡 차로 뛰어가는데, 이미 차에 도착해있던 여성이 그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차를 비워 놓고 대체 어딜 다녀온 거예요? 바빠서 미리 대기시킨 건데?"
도훈이 깜짝 놀란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배탈이 나가지고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
도훈이 급히 차에 타려고하는데 여자가 물었다.
"잠깐, 고개 들어봐요."
눈썰미가 예리한 구혜진이 도훈의 얼굴을 보고 의심했다.
도훈 역시 그제서야 혜진의 용모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한 번도 못 본 얼굴인데? 제 기사가 바뀌었나요?"
"아ㅡ 정기사님은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고향에 내려가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대타로 왔습니다. 부사수 박민용이라고 합니다."
"부사수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혜진의 얼굴을 보며 도훈이 속으로 감탄했다.
'이햐, 참으로 기가 막힌 미인이구나.'
[여기는 미모로 계급을 정하나 봅니다.]
'정말로 그럴지도. 권권사나 임집사, 아니 수호천사들도 저마다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구 장로는 아예 다른 클라스에 살고 있었네.'
미리 구 장로의 이력을 알고 있던 도훈은, 그녀가 간호사 출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국내 최고의 대학을 나와 미국에 가서 간호사 자격증을 땄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저런 얼굴로 뭐하러 의료 기술을 배웠지? 바로 연예계로 데뷔했어도 될 미모인데.'
[얼굴이 예뻐도 자기 직장은 있어야죠. 너무 외모지상주의적인 발언 아닙니까?]
'그런가? 암튼, 장목사가 왜 그녀를 미국에서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아. 진짜로 깜짝 놀랐어. 일반인의 아우라가 절대 아니야.'
구장로는 살짝 찜찜한 표정이었으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 하더니 바로 뒷좌석에 올랐다.
"일단 출발부터 해요. 오전에 분당 찍고 바로 돌아와야 장로 회의에 늦지 않을 있을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도훈이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운전석에 앉았다.
룸미러로 다시 구혜진의 얼굴을 힐끔 확인하는데, 다시 봐도 미인이었다. 수많은 미인을 만나고 먹어본 도훈이었지만, 구혜진의미모는 절정에 올라 있었다.
'헐, 젠장. 장막석 이 개새끼, 죽여야 할 이유가 한가지 더 늘었는데.'
[무엇때문에요?]
'그러니까 이 미친 영감탱이가 20대 시절의 구혜진을 실컷 따먹었다는 소리잖아? 그것도 병원에 입원해서 꼬셔가지고.'
[뭐, 그렇겠죠.]
'하-, 늙어빠진 새끼가 감히···. 저런 미인을 혼자 독차지했다고 생각하니 좆나 꼴받네 씨발.'
[주인님은 해도 되고, 장목사는 안되는 뭐 그런 겁니까? 내로남불이 패시브세요?]
'당연하지.'
"···정기사, 부사수라고요?"
목적지가 이미 찍혀 있었기 때문에 도훈은 내비게이션을 확인 하면서 서서히 차를 몰았다.
"네. 맞습니다. 한 달 전 수습으로 들어왔습니다."
"한 달 전? 흐음. 운전 경력은 충분한 거죠? 기사를 하기엔 너무 어려보이는데···."
"걱정마십시오, 장로님. 제가 또 운전병 출신입니다. 전역 후엔 카레이서가 되려고도 했고요. 저 운전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 합니다."
"카레이서까진 필요 없으니, 안전하게만 가 줘요."
"알겠습니다, 구 장로님."
"정기사한테 인수인계는 제대로 못 받았나 보네요?"
"네?"
"나를 구장로님이라고 부르라던가요?"
"앗, 죄송합니다. 저도 갑자기 명령을 받는 바람에···. 혹시 호칭을···."
"실장님이라고 부르세요."
"아, 넵 구실장님."
"······."
구혜진은 별다른 말 없이 다시 핸드폰을 들더니 혼자 뭔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그녀의 핸드폰은 노트필기가 되는 기종이었는지, 운전 중에도 끊임없이 뭔가를 기록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주인님. 차에 같이 타기는 했는데, 다가서기 쉽지 않은 스타일로 보입니다.]
'내가 봐도 그래. 은근히 깐깐한 편인 듯.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장목사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것 같아.'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호칭을 장로보다, 보직인 비서실장으로 부르라잖아. 자기가 장목사를 모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같아서.'
[장목사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다 보니, 세뇌가 강하게 된 걸까요?]
'그럴지도.'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오가는데, 구혜진이 도훈에게 물었다.
"근데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예?"
"아니, 장기사님 한동안 못 나올거잖아요. 서로 호칭은 알아야 죠."
"아, 넵. 박민용입니다."
"박민용?"
"네."
"흐음, 그렇군요."
도훈은 한낱 운전수의 이름까지 기억하려는 구혜진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신기하군.'
[뭐가 말입니까?]
'보통 저렇게 낙하산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면 시건방이 하늘을 떨것 같은데,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라서.'
[그래요?]
'아까도 처음에 장기사님이라고 불렀잖아. 끽해야 운전수인 부하를 존칭으로 불러주는 거 보면, 원래부터 사람이 겸손한 타입일지도 몰라.'
[그냥 예쁘게 생겨서 주인님이 괜히 좋게 봐주시는 것 아닙니까? 아직 누군지도 정확히 모르는데요.]
'하긴. 정보창부터 확인해보자. 약점을 찾아야 공략을 시작할 수 있을테니.'
도훈이 룸미러로 혜진을 힐끔거리며 정보창 스킬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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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구혜진 (비처녀, 25살 3개월)
나이 : 30 #구원회 장로 #간호사 출신 #네토성향
호감도 : 56/100
개방성 : C
성감대 : 질, 클리토리스, 대음순
*애무 포인트 : 자신의 남자가, 눈 앞에서 다른 여자와 섹스하는 것을 보면 극도로 흥분합니다.
성욕지수 : 높음.
공략팁
-그녀는 구원회의 12장로 중 한명입니다.
-장만석의 미국 선교활동 중 우연히 발탁되었습니다.
-그녀는 학생때부터 종교적 신념이 강했던 인물로서, 목사인 장만석의 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모든 걸 바치고 말았습니다.
-장만석에 의해 철저하게 길들여진 그녀는,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수도 있을만큼 충성심이 강합니다.
-장만석의 조교에 의해 그녀는, 독특한 성벽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장만석이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할 때 엿보기 구멍을 통해 훔쳐보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거부하던 그녀도, 점점 변태적 성향에 눈을 떠 장만석의 섹스를 매번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관계도 거의 하지 않지만, 장만석이 다른 여자랑 섹스할 때면 늘 근처에서 그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조금씩 반항심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장만석이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세뇌되어 감히 거부하지 못합니다.
-추천 멘트 : "장로님도 즐기고 싶을 때 없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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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모두 확인한 도훈은 충격을 받았다.
'헐, 여자 네토 성향이라고?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놀랍군요. 조교를 어떻게 했길래 저런 미모의 재원이···.]
'대단한 새끼였구나, 만석이 이 새끼.'
[네?]
'존경스러울 정도야. 아니면 세뇌의 힘이 저정도로 강력하다는 말인가?'
[흐음, 아무튼 공략은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 군요. 구혜진은 장만석의 심복중의 심복입니다. 그에게 배신을 당해 돌아선 권미숙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것 같습니다.]
'아니지. 정보창 설명에도 나오잖아. 아무리 그녀가 심하게 가스라이팅당했다 하더라도, 결국엔 그녀도 사람이야. 자기 남자가 매일 다른 여자랑 뒹구는 걸 뒤에서 훔쳐보고 있다 보면 분노가 켜켜히 쌓이지 않겠어?'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녀를 개안시켜 줘야지. 세상엔 장만석 말고도 훌륭한 사내가 있다는 걸. 늙어빠진 잦이만 보다가 젊고 싱싱한 잦이를 만나면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지는 군.'
도훈이 룸미러로 구혜진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