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 구원회-90-
도훈은 구 장로에 대한 정보를 캘 기회라고 여기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자세히 설명해봐."
"뭘?"
"구 장로의 모든 것에 대해."
"너···.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도훈이 어젯밤 모든 것을 꿰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예령은 당연히 도훈이 구 장로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다고 믿었다.
도훈이 이에 자연스럽게 둘러댔다.
"크로스체크 하는 거야."
"크로스체크라니?"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정보들을 비교하면서 검증하는 과정이지. 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봐. 확인해 볼 게 있으니까."
"아, 그렇구나."
예령이 구혜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혜진은 서울대 간호학과를 나온 수재라고 했다. 간호사에 만족하지 않고,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 미국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미국 간호사란 말이지?"
"응."
"미국에서 간호사 자격증을 딴 것을 보면, 아예 눌러앉을 생각이었는 데 왜 돌아왔지?"
"그거야···. 거기서 장목사님을 만났으니까."
"장목사가 미국에 갔었어?"
"몰랐어?"
"나도 모든 정보를 다 수집하진 못했어."
"암튼 4~5년 전이었을 거야. 당시에 우리 교회에서 선교활동에 매진했거든."
"선교라고? 구원회를 외국에까지 퍼트린단 말이야?"
"그땐 그랬다는 거지. 물론 장목사님이 직접 미국에 가서 지원설교까지 나섰지만, 성과는 크게 없었고."
[현대 기독교의 본산이 미국 아닙니까?]
'맞아. 유럽에서 박해를 받은 청교도들이 대거 이민을 오면서 시작되었지.'
[근데 한국에서 미국으로 선교활동을 간다고요?]
'한국식 교회가 또 색다른 맛이 있거든. 왜, 장만석 말고도 많은 한국인 목사들이 미국으로 넘어가서 포교했던 걸로 알고 있어. 일부는 크게 성공하기도 했고. 일종의 역수출 전략이랄까?'
[대단하군요.]
"그랬구나."
"근데 목사님이 미국에서 한 번 크게 사고를 당하셨다고 들었어."
"사고라니?"
"몰라 나도 잘은. 강도를 만났다던가? 아무튼 정말 크게 다치셨는데, 그때 우연히 미국에 가 있던 구혜진을 만난 거지."
"아하. 야근 병동 수법이구나."
"야근 병동이라니?"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야근 병동이 뭡니까?]
'왜, 병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담당 간호사 꾀는 거지. 나도 몇 번 보여줬잖아.'
[아하, 장목사도 대물이니까요.]
'장목사가 플레이어라면 아마도 나처럼 여자를 꾀는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암튼 그때 구 장로가 장목사님에게 흠뻑 빠져서 힘들게 얻은 미국 간호사도 그만두고 장목사님을 따라 귀국했었어."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
"응. 그렇게 발탁되면서 시작했지."
"그래서 개인비서 역할을 하는 거군, 지금까지."
"맞아. 장목사님 곁에서 수행하니까 진급도 엄청 빨랐지. 수호천사부터 시작해서 집사, 권사, 그리고 몇 해 전 장로까지. 엄청난 속도로 파격 승진했어."
"그럼 지금 나이가···."
"어려. 이제 서른인가? 암튼 장로 중에는 최연소야."
"장목사님은 환갑 넘은 거 아니야?"
"그렇지."
'환갑이 넘은 늙은이가 20대 어린 여자를 끼고 놀았다니. 기가 막힌 일이로군.'
[대단한 정력가긴 하네요, 장만석도. 저라면 도저히 힘들 것 같은데요.]
'넌 인공지능인데, 뭘 힘들고 말고야?'
[앗······.]
"그래서 구 장로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왜?"
"판단이 흐려진 장목사님을 치마 품에서 몰래 조정한다고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장목사가 반대로 구혜진을 세뇌시켜 착취하는 거겠죠.]
'암튼, 최측근이라는 소리는 맞겠네. 낮에는 수행 비서 역할이고, 밤에는 첩실 노릇을 할 테니.'
[하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뭐?'
[장목사가 밤마다 처녀들을 탐한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첩실인 구 장로가 그걸 용인한다고요?]
'그건 좀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세뇌를 당했으니 다른 여자를 데려와 같이 떡을 치든 콩을 볶든 무슨 상관이겠어? 철저하게 장목사의 노리개일 뿐인데.'
[그렇군요.]
'아무튼 예령의 설명대로면 현재 장목사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구혜진 그 여자겠군.'
[처음부터 구 장로를 팠으면 더 빨랐을 것을 괜히 권 권사에게 접근한 셈이군요.]
'빙 돌아가도 결국엔 목적지를 향해 가면 되는 거야. 권 권사가 나를 탐했기에, 능력을 강화할 수 있었잖아.'
[이번엔 정말로 죽을 뻔하셨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봐야죠.]
'어차피 인생사 새옹지마라니까? 권 권사 덕에 죽을 뻔했지만, 더욱 강해졌고 그 덕에 합숙소까지 흘러들어와 임예령을 내 편으로 만들었잖아.'
[결국엔 구 장로에게 접근하면 주인님의 목적에 가까이 갈 수 있겠군요.]
'문제는 구 장로가 장목사 옆에 늘 붙어있다는 건데···.'
임 집사의 설명을 들은 도훈은, 왜 구장로에게 몰래 접근하는 것이 어려운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수행비서라도 24시간 함께 붙어있진 않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럼 구혜진은 장목사님과 늘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거야?"
"어···. 꼭 그건 아니긴 한데."
"응? 무슨 소리야. 좀 더 설명해봐."
"구 장로가 따로 하는 일이 있어. 나한테도 한 번 협조를 부탁한 적이 있거든."
"그게 뭔데?"
"잘은 모르는데 인사계 쪽에 자주 연락하는 것 같았어. 나한테 부탁한 것도 새로 들어온 여신도에 대한 정보를 달라는 거였고."
[여신도라면···. 혹시 처녀를 찾는 걸까요?]
'그런 것 같은데? 세상에. 첩실로 들어앉은 구혜진이 장만석의 채홍사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그럼 이제껏 장만석에게 처녀를 뽑아다 올린 사람이 구 장로라는 말입니까?]
'아마도. 현재로선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야.'
"그래? 그럼 구 장로가 혼자서 일할 때도 있단 소리지?"
"그렇지? 비서팀을 운영하고 있으니까."
"비서팀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뭐?"
"알려줘. 내가 직접 구 장로를 만날 명분이 필요해."
"아, 아니 그건···."
예령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장로와 집사는 둘 다 간부라고 해도 하늘과 땅만큼의 간극이 존재했다.
특히 12장로는 구원회 내에서 장만석과 그의 동생, 그리고 아들을 제외하면 최고 서열에 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집사인 임예령의 힘이 닿지 않았다.
도훈이 손을 들더니 임예령의 다리 사이로 쑥 밀어 넣었다. 레깅스를 입은 예령은 도훈의 손가락이 밑으로 파고들자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구부리며 신음을 토해냈다.
"흐, 흐읍!"
"생각해. 구 장로가 있는, 비서팀으로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야."
"아, 아니 아무리 해도 그건···."
문질문질.
도훈이 손가락으로 봊두덩이 주변을 살살 긁어대며 약을 올렸다.
레깅스 안에 팬티를 입지 않은 예령은 갑작스러운 자극에 밑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아, 아···. 아침부터···."
"아침부터 꼴리게 만들 거야."
"뭐, 뭐?"
"잔뜩 약만 올리고 안 박아주면 어떨까?"
"아니! 그게 무슨!"
"그러니까 쥐어 짜보란 말이야. 구 장로에게 접근할 방법을."
도훈이 손가락으로 계속 긁어주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자극을 주다 끊어버리자, 예령은 더더욱 속이 타들어 갔다.
벌써 밑이 흥건해지고 꼭지가 발딱 섰는데, 도훈이 외면하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계속해주지."
"바, 방법이 있을지도."
"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인사팀에 합숙소 현황을 갱신 제출해야 해.
인원 관리가 철저한 편이라, 실시간으로 맞아 떨어져야 하거든."
"그래서?"
"원래는 전산으로 자료를 넘기는데, 만약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고 하면···."
"호오, 서류를 뽑아 인편으로 비서팀에 전달한다?"
"그렇지. 그때 민용이 너를 보내면···."
문질문질.
"아, 아아···."
도훈이 또다시 애무해주며 임예령을 칭찬했다.
"역시 우리 예령이는 머리가 좋단 말이야."
"그, 그럼 상을 줘."
"무슨 상?"
"아니···. 아까 분명···."
"그게 통할지 안통할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상을 줄 순 없지."
도훈의 기만에 놀아난 임 집사가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대신."
"응?"
"오늘 일이 잘 풀리면 저녁에 다시 올 때 기대하고 있으라고.
오늘은 침대 위에서 아주 조져버릴 테니까."
"아···."
"오케이. 알았어. 나머진 저녁에 와서 하는 걸로. 준비하자."
* * *
갈색 서류 봉투를 든 도훈이 평신도 복장으로 구원회 내부를 걸어갔다. 넓은 부지 안에 큰 건물들이 들어선 모습이, 흡사 종합대 학교를 방불케 했다.
'진짜 미친 스케일이구나. 이놈의 교회는.'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예배하러 오는 신도들을 제외해도 상주 인원이 거의 2,000명은 넘겠는데요?]
'그렇겠지. 방금 나온 합숙소에만 1,000명의 신도가 살고 있으니까.'
[이런 스케일의 교회가 존재할 수 있다니 정말로 놀랍습니다. 그것도 서울 강남 한복판에요.]
'그만큼 장만석이 착취한 돈이 상상을 넘어서는 단위라는 거야.
종교인이니까 세금도 제대로 신고 안 했을 테고.'
주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던 도훈은, 교회 본부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건물로 진입했다.
따로 보안을 필요로 하는 공간도 아닌데, 입구에는 검색대 시스템이 갖추어 있었다.
도훈이 문을 들어가려고 하자, 경비 복장을 한 사람이 용무를 물어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은 제한 구역입니다. 패용증 없이는 못 들어옵니다."
"아, 합숙소장님 심부름으로 왔는데요."
"임 집사님이요? 잠시만요."
경비는 생각보다 철저했는지, 합숙소에 전화를 걸어 직접 확인 하기까지 했다.
"···예, 예. 인편 제출이요? 제가 대신 받아서 전해드릴까요?
아···,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경비가 서류를 내밀었다.
"이곳 방문자란에 기입하고, 방문 패용증 받아 가세요."
"알겠습니다."
도훈은 종이에 이름과 소속, 전화번호를 적으면서 생각했다.
'뭐가 이렇게 까다롭지? 무슨 군 보안시설도 아니고 말이야.'
[그만큼 숨길 게 많다는 거 아닐까요?]
'교회 내에 행정만 처리하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비밀리에 작업하는 걸 보면 이곳에 온갖 부조리의 증거들이 넘쳐난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도훈이 작성한 서류를 내밀자 경비가 방문 패용증을 건넸다.
"여기 바코드 부분을 출입구에 찍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도훈은 고분고분 지시를 따르며 최대한 순응하는 척했다. 괜한 의심을 사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훈은 쓱 주변을 둘러보며 건물 전체의 구조를 파악했다.
'5층짜리 건물, 비서팀이 위치한 곳도 5층이군.'
[출입이 제한되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들어가시려고요?]
'방법을 찾아봐야지.'
도훈은 인사팀으로 가서 임 집사가 건넨 서류를 내밀었다.
"합숙소장님이 전달하라고 보내서 왔습니다."
"거기 인터넷 지금 고장났다면서요?"
"네. 수리업체 불러서 보수 작업 중입니다."
"귀찮게 됐네요. 총무팀에서 유지보수비 든다고 싫어하겠는데 ···. 거기 놓고 가요. 수고했어요."
"네, 감사합니다. 혹시 건물 내에 화장실이 어딜까요?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복도 끝으로 쭉 가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서류를 건넨 도훈은 화장실로 가는 척 빠지면서 재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랐다.
엄청난 속도로 오르는데도, 발걸음 소리 하나 나지 않아 그가 지나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순식간에 5층에 도착한 도훈은 고개만 살짝 내밀어 5층을 살폈다. 장목사를 수행하는 전담 비서팀이 위치한 곳이었는데, 비서실 장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저곳이구나. 구 장로가 일하는 곳이.'
[무턱대고 쳐들어갔다간 정체를 들킬 우려가 있습니다.]
'흐음, 투명 인간으로 변신이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그 모습으로 구 장로를 만난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요? 얼굴 구경하려고 가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직접 나올 때까지는 방법이 없는 건가.'
도훈이 구 장로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해 망설이는데, 비서실장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도훈은 혹시나 들킬까봐 급히 머리를 밀어 넣고 귀를 기울였다.
멀리 떨어진 거리였지만, 그의 청력은 모든 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성남 분원으로 이동해야 하니까 조 기사에게 차량 좀 준비하라고 해줘요."
"네, 장로님."
명령을 받은 사내가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자가 구혜진이겠군. 구 장로.'
[마침내 등장했군요. 장만석에게 접근할 마지막 퍼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