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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00화 (1,780/2,000)

1800. 구원회-5-

"여기서는 좀 곤란한데···."

"그럼 어디 조용한 곳이라도 같이 가실래요?"

"진짜요?"

이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도훈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 따라오세요. 아는 곳이 있으니까."

도훈은 시건방진 이서의 태도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재밌네. 나를 아주 알로 보고 있군.'

[확실히 주인님을 물건만 큰 멍청이 취급하는 것 같긴 합니다.]

'하긴, 그런 이미지도 나쁘진 않지. 놈들의 의심을 피하려면 말이야.'

커피숍에서 나온 두 사람은 말없이 교회로 발걸음을 향했다.

교회 건물이 워낙에 컸기 때문에 입구에서 본관까지 펼쳐진 주차장의 규모도 광활한 크기였다. 도훈은 강남 한복판 금싸라기 땅을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자금력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 가늠해보다 혀를 내둘렀다.

'미친. 여기 평당 땅 값이 얼마야? 대체 얼마나 사기를 쳐댄 거지?'

두사람은 일행이 아닌 것처럼 이서가 앞서가는 가운데 도훈이 10M쯤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이서가 그렇게 하자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오라고 해놓고 왜 떨어져서 걷는 것일까요?]

'글쎄? 이서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 뒤로 미행이 따라붙은 거 같은데?'

[미행이라고요?]

도훈은 커피숍에서 나올 때부터 사내 두 명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들은 이서와 똑같은 검은색 정장 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사이코메트리 영상에서 보았던 남성 신도의 옷차림으로 보였다.

[혹시 위험한 거 아닙니까? 주인님을 왜 뒤쫓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 다만 저놈들이 처음부터 커피숍에 함께 있었다는 거야. 내가 앉아있던 뒤 테이블에 있던 놈들이거든.'

[설마 이서 양이 일부러 해당 커피숍으로 주인님을 유인했다는 뜻일까요?]

'흐음. 정황상 그리 보이는 군. 일종의 신고식 같은 게 아닐까?

어제 최번개의 정보원을 적발했을 때처럼, 새로 끌어들인 신자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거겠지.'

[흠, 의외로 꼼꼼한 놈들이군요. 단순히 미인계로만 접근하는 게 아니었다니.]

'일단 어찌 하는지 지켜보자고.'

그때 앞서가던 이서가 건물 모퉁이로 휙 돌았다. 90도로 꺾어진 각도 때문에 이서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지자 도훈이 발걸음을 빨리해 그녀를 뒤따랐다.

모퉁이를 돌았는데도 이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뭐야? 어디 갔지?'

도훈이 건물 옆에 난 쪽문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는데, 갑자기 쪽문이 열리더니 덩치가 큰 떡대가 등장했다. 성별로 보나 몸집으로 보나 이서가 변장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당했군. 나를 교회 깊숙한 곳으로 유인하는 거였어.'

[하지만 이서양은 분명 주인님께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설마 그게 다 연기였다고요?]

'그거랑 별도로 이루어지는 검증 작업일지도···. 놈들은 처음부터 커피숍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도훈이 덩치 큰 사내를 보고 쫀 것처럼 뒷걸음질 치자, 뒤따라 오던 청년부 사내 둘이 도훈의 퇴로를 막아섰다. 순식간에 낯선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도훈이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복장을 보아하니 우리 교회 신자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여기서 얼쩡거리는 거지?"

"네? 아니, 그건···."

"말로 해선 안 될 놈이네? 야, 잡아."

퇴로를 막고 있던 두 사람이 양팔에 팔짱을 끼며 도훈을 붙들었다. 도훈이 허둥대며 발버둥 쳤으나, 어찌나 세게 붙잡는지 꼼짝할 수 없었다.

"이, 이거 놔요!"

[캬, 연기력이 아주 물이 오르셨군요.]

'무슨 꿍꿍인지 모르니 순순히 당해주려고.'

"너 이 새끼, 센터 까서 뭐 나오는지 한 번 보자."

덩치 큰 사내가 불쑥 도훈의 바지 주머니를 뒤지더니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 펼친 덩치가 신분증에 적힌 이름을 되뇌었다.

"박민용, 성국 대학교, 00학번. 이거 맞아?"

"네. 이름 맞습니다."

"분명 대학생이라고 했었습니다."

도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팔을 붙들고 있던 두 사람이 대신 답했다.

그들은 도훈의 새로운 가명도 알고 있었고, 심지어 대학생이라는 것도 진작 파악한 눈치였다.

"야, 가방도 뒤져."

"아니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건데요?"

"이 새끼가, 가만히 좀 있으래도!"

덩치가 갑자기 주먹을 뻗더니 도훈의 복부를 올려 쳤다.

퍼억-!

"윽!"

배를 얻어맞은 도훈이 허리가 굽은 새우처럼 바짝 수그렸다.

입에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주인님은 맞는 연기도 정말 실감나게 잘하시는군요. 맨날 때리기만 해서 맞는 연기는 잘 못 할 줄 알았는데.]

'원래 때려 본 놈이 맞는 것도 잘하는 거야. 근데 덩치에 비해 너무 물 주먹이네. 주먹을 아예 쓸 줄도 모르는 초보같은데?'

"가방 안에 책밖에 없습니다."

"9급 행정직 수험서입니다."

"그래? 다른 특이사항 없어?"

"자기 입으로 공무원 수험생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딱히 수상한 점은 안 보입니다."

신상을 탈탈 털린 도훈이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니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냐고요!"

도훈의 신원을 확인한 덩치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갑자기 다른 사내들에게 명령했다.

"야. 풀어줘라."

"흑, 배야."

풀려난 도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배를 어루만지자 덩치가 건성으로 사과했다.

"미안하게 됐어. 요새 수상한 놈들이 교회 주변을 기웃거려서 말이야. 그러게 왜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 교회 신도가 아닌 사람들은 원래 못 오는 곳인데."

"저 혼자서 온 게 아니라, 이서라는 신도 분을 따라온 거라고요! 아니 왜 사람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때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쪽문에서 이서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가증스럽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도훈에게 물어왔다.

"어? 민용 오빠 안 따라오고 여기서 뭐해요?"

"이서, 이 사람 네가 데려왔어?"

"네. 제가 오늘 전도하신 분인데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그랬구나. 난 또 사복 입고 혼자서 교회 알짱거리길래 수상한 사람인 줄 알았지 뭐야. 암튼 미안하게 됐어."

놈은 다시 건성으로 사과하더니 물러났다. 도훈이 씩씩거리며 놈들의 뒤통수를 노려보자 이서가 놀란 척 물었다.

"왜 그래요? 혹시 맞았어요?"

"몰라. 갑자기 양 팔을 붙잡더니 지갑이랑 가방 뒤지고 배를 막 때리더라고."

"아아···. 정말요? 미안해요. 나쁜 오빠들은 아닌데, 요새 수상한 사람들이 자꾸 교회로 찾아와서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거든요.

그래서 그랬을 거예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정말 가증스럽게 연기하는군요. 처음부터 주인님을 유인한 거면서.]

'그래도 미리 대비를 해놓길 다행이야.'

도훈은 교회로 출발하기 전부터 철저하게 위장 신분을 만들었다.

가명을 댔는데, 신분증에 적힌 실명과 다르면 놈들이 의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공시생처럼 보이기 위해 오는 길에 수험서를 미리 구매한 것이 주효했다.

[하여간 머리도 좋으시단 말이죠. 놈들이 신분을 확인할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최번개의 정보원이 어젯밤 걸렸다길래 대비를 했지. 이렇게 길가에서 얻어 맞으면서 센터 깔 줄은 예상 못 했지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작정하고 시비를 건 것 같습니다. 낯선 사내 셋이 갑자기 둘러싸면 평범한 사람들은 겁을 집어 먹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공포 분위기는 무슨? 덩치값도 못하는 물주먹에 옆에 붙잡고 있던 놈들은 한 방 갈기면 그대로 사망할 것처럼 비쩍 말랐던데?

내가 사정 안 봐줬으면 그 새끼들 오늘 부로 하느님 영접하러 갔을 걸.'

"아씨, 치사하게 세 놈이 동시에 덤비지만 않았어도···."

"네?"

"내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사람은 절대 아니거든. 확 그냥 바로 봐주지 말고 선빵 갈겨버리는 건데."

도훈은 일부러 찐따미를 풍기며 허세를 부렸다.

이서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깐 아무 말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다가 왜 자기 앞에서 갑자기 유난을 떠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주인님을 약간 경멸하는 것 같은데요.]

'의도했던 바야.'

[연기가 아니라 실제 아닙니까?]

'뭔 소리야? 나 누군지 몰라?'

[그게 아니라 주인님 안에 또 다른 자아가 숨어 있는 것 같달까? 마치 전생의···.]

'닥쳐. 그냥 연기 하는 것 가지고 오버는.'

"미안해요 오빠. 사람들이 수상하게 볼까 봐 일부러 떨어져서 걸었는데, 오빠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계속 앞만 보고 걸었지 뭐예요? 제 잘못이 크네요. 저한테 화내세요."

"됐어. 어차피 별일 아니었으니까."

"역시 민용 오빠는 성격도 쿨하다니까?"

"근데 어디로 가면 돼?"

"저쪽 문으로 들어가면 돼요."

"저기가 어딘데?"

"성가대 악기 보관실이요."

"악기 보관실?"

"저도 성가대 소속이라 자주 들르거든요. 지금 시간엔 아무도 없어요."

"오호."

도훈이 방금 전 일어난 일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입을 헤벌쭉벌리며 이서를 따라 쪽문으로 들어갔다.

* * *

멀리서 도훈을 지켜보던 덩치가 이서와 함께 쪽문으로 들어가는 도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쟤들 저기로 왜 들어가지? 저 쪽은 악기 보관실 아니야?"

덩치의 물음에 커피숍에서부터 두 사람을 미행했던 사내 중 한 명이 뻘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둘이서 한따까리 하려나 보던데요?"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놈은 아직 우리 신도가 되지도 않았잖아?"

"몰라요. 뒤에서 대충 훔쳐 들었는데, 이서가 저 새끼를 엄청 꼬시더라고요."

"저 놈도 엄청 여자를 밝혔어요. 이서가 그걸 보고는 몸 전도 하려나 봐요."

"참나. 저 새끼, 복도 많네. 이서도 나름 맛있는데."

"동주형 이서랑 해봤어요?"

"와 부럽다. 난 아직 못 해봤는데."

"자주 했었지. 청년부 한창 나갈 땐."

"아···. 전 타이밍이 안 맞았나 봐요."

"근데 저흰 언제 다시 청년부 예배 나갈 수 있어요?"

"몰라 인마. 시킨 일만 열심히 하면 권사님이 알아서 챙겨 주신다고 했어. 뭘 나한테 묻고 있어? 나 벌써 1년째 좆뱅이 치는 거 안 보여?"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덩치가 혀를 끌끌 차더니 두 사람에게 다시 명령했다.

"너희들은 밖에 순찰 돌면서 수상한 놈들 있으면 곧바로 나한테 연락해. 요새 기레기 새끼들이 하도 기웃거려서 골치 아파 죽겠다."

"네, 동주 형."

"이따 점심시간에 봬요."

"그래. 수고해라."

두 사람을 돌려보낸 동주는 도훈과 이서가 사라진 악기 보관실 쪽문을 아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하-. 씨. 나도 교회 막 들어왔을 때가 좋았는데···.'

동주는 벌써 6개월 째 청년부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청년부는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교회에 막 들어온 어린양 시절-전도사는 목자, 포교자는 어린 양이라고 불렀다.-에만 한시적으로 허용되는 특혜였던 것.

주말마다 청년부에서 벌어지는 떼씹에 한창 맛들일 때가 되면,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는 양 권사가 조용히 퇴출 대상을 따로 부른다.

-자네는 신실함이 부족해서 청년부에 있기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네. 당분간 교회를 위해 사역하게. 그럼 다시 청년부에 넣어 줌세.

동주는 그때까지만 해도 금방 청년부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6개월이 훌쩍 넘어가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청년부의 문턱도 밟지 못했다. 양 권사는 조금만 더 고생하면 꼭 청년부에 들여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공수표처럼 번번히 무산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주는 그때의 강렬했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씨발, 갑자기 또 생각나네. 이서 따먹던 거.'

한창 청년부에 다닐 적 이서와 섹스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동주의 얄팍한 양물이 불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요샌 시도 때도 없이 잦이가 꼴리는 걸 보면, 너무 오랫동안 섹스를 참은 것 같았다.

'좆 됐네. 일해야 되는데···. 얼른 화장실 가서 한 발 뽑고 와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던 동주는 결국 참지 못하고 혼자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과거의 추억을 딸감삼아 시원하게 한 발 뽑아내야 들끓는 기운이 잠잠해 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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