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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10화 (1,690/2,000)

1710. 빌드 업-45-

망각의 라이터에 불이 붙는 순간, 라이터에 잔뜩 집중하고 있던 성희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그사이 도훈이 빠르게 컵을 들어 주사위 숫자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바꿨다.

"아···."

직전 10분 동안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간 성희가 몽롱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도훈이 자연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제 맞춰 볼까요?"

"···응? 아 네. 홀짝 중에 고르시면 됩니다."

"아예 숫자로 맞춰도 돼요? 주사위 숫자까지 알 것 같은데."

"풉-. 자신감 넘치시네요. 진짜로 숫자까지 모두 맞추면 제가 특별히 서비스도 해드릴게요"

"무슨 서비스요?"

"음, 키스?"

"진짜요?"

"당연하죠. 대신 틀리면 술에 안주까지 추가해 주세요. 제가 오늘 저녁을 빈약하게 먹어서 지금 배고프거든요."

"오케이. 나중에 딴말 하기 없기?"

"그래서 뭔데요?"

"하나는 6."

"6이랑 또 뭐요?"

"혹시 주사위 숫자 중에 9도 있나?"

"네?"

"숫자가 69같은데?"

다이스 게임에 쓰이는 주사위는 보통 주사위처럼 점이 찍혀있지 않고 아라바이 숫자가 적혀 있었다.

"풉- 음담패설 쩌신다. 그런 숫자는 없어요, 참고로."

"농담이에요. 6.6이네."

"진짜 6.6이라고요?"

"네. 어차피 제가 승부에서 이겨도 성희씨한테 술 사야할 운명인가봐요. 나와도 하필 그게 나오네."

"그럼 확인해 볼게요."

성희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컵을 들었다.

주사위 두개의 숫자 모두가 6.6이 나올 확률은 1/36.

이 정도면 카지노에 있는 어떤 게임보다 확률이 낮았다.

그러나 컵을 들고 주사위 숫자가 드러나는 순간 성희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컵 속의 주사위는 정확히 6.6을 가르키고 있었다.

심지어 주사위 숫자 하나가 거꾸로 뒤집혀 69처럼 보이는 66이었다.

도훈이 찍은 숫자가 맞은 것이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기가막힌 우연에 성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연이 아니고선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연이라고 해도 맞춘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았다.

도훈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소리로 들었다니까요."

"거짓말!"

"속고만 살았나?"

"잠깐만요. 말 돌리지 말구. 나 방금 진짜로 놀랐거든요? 혹시 몰래 봤어요?"

"제가요? 언제요?"

"아니 어떻게 숫자까지 정확하게···."

"궁금해요?"

"네. 진짜로 궁금해요."

"일단 칵테일 부터 가져와 봐요. 내기는 내기니까."

"아, 맞다."

성희는 그제야 생각났는지 칩 5개를 도훈에게 내밀었다. 도훈이 5개를 걸었기 때문에 똑같이 내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칩을 받은 도훈은 5개를 다시 성희에게 돌려주었다.

"왜 다시 줘요? 손님께서 이기셨는데."

"6.6이 나오면, 바텐더에게 술 사는 규칙이라면서요. 이건 성희씨 술값 대신이요."

"그렇다고 칩을 5개 씩이나."

"기왕이면 비싼걸로 드시라고요."

"어쨌든 감사해요. 대신 저도 내기에서 졌으니 손님에게 술 살게요."

성희는 10분 동안의 기억이 모두 날아가는 바람에 서준이라 알려준 도훈의 선수명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가 칵테일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이자 도훈이 불쑥 손목을 붙들었다.

"잠깐. 어디가요?"

"네? 칵테일 주문하러요."

"기억 안나나 보네? 숫자까지 맞추면 분명 서비스도 해준다고 했는데?"

"아, 맞다."

성희의 낯빛이 살짝 상기되더니 도훈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 했다.

쪽-.

"됐죠?"

"약속을 잘 지키는 바텐더시구나."

"별 말씀을."

"아참, 제 칵테일은 골라도 되죠?"

"네.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게 여기서 되나 모르겠네."

"어지간한 칵테일은 다 가능해요. 만드시는 분이 해외 대회에 출전해서 우승까지 하신 분이거든요."

"오, 잘 됐네. 그럼 전 그걸로 부탁해요."

"뭔데요?"

"섹스 온더 비치."

"풉-."

성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틀어 막았다.

아까부터 자꾸 69니 어쩌니 하는 걸 보면 생긴 것과 달리 능글능글하게 음담패설을 즐기는 부류 같았다. 그렇다고 도훈이 싫지는 않았다.

"가능해요?"

"알겠어요. 섹스 온더 비치로 한잔 드릴게요."

성희가 잠시 칵테일을 주문하러 간 사이 도훈이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음, 성희가 눈치가 빨랐으면 기억이 날아간 걸 눈치 챘을지도.'

[어떻게 말입니까?]

'분명 빈 재떨이였는데, 꽁초가 두개잖아. 재떨이를 봤다면 자신의 기억이 날아간 사이 내가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는 걸 알아챌 수도 있었겠지.'

[그 정도 정신은 없었을 겁니다. 설사 기억이 완벽히 지워진다고 해도, 편집된 화면처럼 깔끔하게 이어지지 못하거든요. 망각에 걸리면 대략 1-2초 정도 멍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 틈에 몰래 주사위 바꿔치기 했잖아.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설마하니 망각의 라이터를 이용한 트릭을 쓰실 줄이야. 예상 못 했습니다.]

'어차피 사람 많은데서는 못 쓰는 아이템이라 간만에 한 번 사용해 본 거야.'

[근데 주아양을 헌팅하러 오셨으면서 어째서 다른 바텐더를 꼬시는 겁니까?]

'꼬신 건 아니고, 잠깐 시간이나 때우려고 했는데 그렇게 됐네.'

[이렇게 된 거 아예 타깃을 바꾸시는 건?]

'주아에서 성희로?'

[네. 어쨌든 같은 바텐더지 않습니까?]

'직업이 중요한게 아니라, 대학생인게 더 중요해. 성희는 대학생은 아닌것 같거든. 나이를 봐선 대충 스물 다섯쯤?'

[아쉽군요. 성희양은 주인님께 벌써 넘어간 것 같던데요.]

'그러게. 아까 코인 계좌 보여주니까 남친 버리고 당장 갈아탈 기세더라.'

[근데 그거 원금에서 반토막 나신 거 아닙니까?]

'닥쳐. 존버는 승리한다.'

[······.]

'미안. 차라리 확인 안 하는 게 더 나을 뻔 했어. 직접 내 눈으로 보고나니까 갑자기 욱하네.'

[아닙니다. 화이팅입니다 주인님.]

로시와 노닥거리는 사이 성희가 칵테일 두 잔을 양손에 들고 왔다.

그런데 두개가 똑같은 술처럼 보였다.

"칵테일 가져왔습니다, 손님."

"어? 성희씨도 저랑 똑같은 거네요?"

"맞아요, 저도 좋아하거든요. 섹스."

성희가 야시시하게 웃더니 말을 중간에 끊었다.

"···온 더 비치."

"오, 같은 취향?"

성희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도훈에게 잔을 내밀었다.

"짠 할까요?"

"짠."

칵테일을 마신 도훈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진짜 잘만드시네. 이거 누가 만드시는 거예요?"

"저기 가운데 남자분이요."

성희가 손가락으로 남자 바텐더 한명을 가리켰다.

"성희씨도 같은 바텐더인데 칵테일 못 만들어요?"

"저흰 그냥 양주 정도만 따라드려요. 바텐더라기 보단 딜러에 가까우니까요."

"아하."

"칵테일 주문 오면 저분이 직접 다 만드시고요."

"실력 좋네요."

"그쵸? 저도 나중에 배워보고 싶어요."

"직업으로 삼게요?"

"그것도 괜찮겠네요."

"그럼 원래부터 이쪽 일 하시는 거예요?"

"딜러요?"

"네."

"아뇨. 저희 가게 일하는 바텐더들은 대부분 초보들이에요. 정식으로 배운 사람도 몇 명 있지만, 그냥 여기와서 배웠어요."

"본래 전공이 뭔데요?"

"전공요? 아, 대학 전공? 저 실은 전문대 나왔어요. 미용학과."

"미용사?"

"네. 근데 시다 1년 하다가 그만 뒀어요."

"왜요?"

"월급도 너무 짜고, 점장이 너무 부려먹더라고요. 막상 해보니까 적성에도 안 맞는것 같고."

"이 일은 잘 맞아요?"

"네. 재밌어요. 손님이랑 얘기하는 것도 좋고, 이렇게 술마시는 것도 좋고."

"천직이네."

'봤지? 학생은 아닌것 같다고 했잖아.'

[헌팅은 어렵겠네요.]

"맞다. 어떻게 주사위 숫자 맞췄는지 알려주신다면서요?"

"내가 그랬나?"

"뭐라고요? 설마 저 속이신 거예요?"

"흐음, 맨입은 좀 그런데?"

"와, 거짓말 쟁이!"

"농담이에요. 이쪽에도 뽀뽀해주면 진짜로 알려줄게요."

도훈이 반대쪽 볼을 내밀었다.

성희가 눈치를 보더니 재빨리 키스했다.

쪽-.

"아이참, 손님하고 이러다 걸리면 저 혼나요."

"누가요?"

"점장님이요. 손님이랑 연애 금지거든요."

"진짜로?"

"···바에서는."

"흐흐."

"근데 이름이 어떻게 돼요? 그쪽은 계속 제 이름 부르는데, 저는 아직 이름도 못 들었는데."

'아까 말했는데 진짜 하나도 기억 못하는 구나.'

[아이템이 그만큼 성능이 좋다는 뜻이죠.]

'근데 망각이면 완전히 까먹은 건 아니지 않나?'

[네, 술에 취해 블랙아웃 된 것과 비슷합니다.]

'필름 끊기는 거 말이지?'

[네. 성희양에게 10분은, 벌어지지 않은 것과 똑같습니다. 절대 기억을 못 할테니까요.]

'신기하네.'

"서준이에요. 제 이름. 하서준."

"하서준? 어디서 들어본 이름같아요."

"흔하다는 뜻인가?"

"아, 아뇨. 잘 어울린다고요. 얼굴하고."

"제 얼굴이 왜요?"

"잘 생기셨잖아요."

"제가요?"

"일부러 그러는 거죠? 본인도 잘 생긴 줄 다 알면서."

"흐음, 어쨌든 칭찬 고마워요. 성희씨도 예뻐요."

"풉-. 작업 너무 티나게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

"암튼 얼른 비밀이나 알려줘요. 궁금해 죽겠어요."

"음,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드리죠."

도훈이 갑자기 허공에서 아까 인벤토리에 넣어둔 마술 카드를 꺼냈다.

아무것도 없던 손에 갑자기 카드 더미가 나타나자, 성희는 아까 주사위를 맞춘 것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 세상에! 방금 어떻게 한 거예요?"

"마술이예요."

"마술요? 진짜 감쪽 같았어요. 또 해봐요."

"뭐, 이런거요?"

도훈이 재빨리 왼손에 카드를 옮기더니 빈 허공에서 카드를 한장씩 떨어뜨렸다. 손등 뒤에 카드를 숨겼다가 뽑아내는 기술로, 각도만 잘 조절하면 허공에서 카드가 하나씩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묘기였다.

"우아아아! 진짜로 신기하다."

"신기하죠?"

"서준씨 그럼 진짜로 마술사예요?"

"마술사까진 아니고, 그냥 취미?"

"취미인데 이렇게 잘한다고요?"

"네.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도훈이 바닥에 뿌려진 카드를 한데 모으더니 셔플을 시작했다.

착착착 소리와 함께 섞인 카드를 반으로 가른 도훈이 두개를 겹쳐 촤르륵- 소리가 나게 섞었다.

"어, 그건 저도 할 수 있어요."

"그럼 이건요?"

도훈이 셔플이 끝난 카드를 바 위에 가로로 펼쳤다.

일정한 간격으로 카드가 펼쳐지자 도훈이 마지막 카드를 반쯤 뽑아들더니 반대로 넘기기 시작했다. 카드는 마치 파도를 타는 것처럼 일어섰다가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우아!"

도훈이 다시 카드를 한 손에 쥐더니 바닥에 4장의 카드를 차례로 내려놓았다.

"이것도 마술이에요?"

뒤집힌 카드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성희가 그 중 한장을 뒤집었다.

"스페이드 에이스?"

"나머지도 모두 뒤집어 봐요."

성희가 차례로 카드를 뒤집는데 모두 에이 카드였다.

"A포커!"

"역시 딜러라 잘 아시네."

"진짜로 마술사셨구나. 너무 신기해요."

"이제 아셨죠. 주사위도 그래서 맞춘 거예요."

"근데 어떻게요? 분명 제가 굴렸었는데? 손 댄적 없으시잖아요."

"영업 비밀을 알려 드릴 순 없고."

"아잉, 알려줘요."

"흐음, 이번에도 맨입으론 곤란하겠는데?"

"아이참, 또 어디 키스 하면 돼요?"

성희는 도훈에게 푹 빠진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그녀에게 호감을 산 도훈은 너무나 쉽게 풀리는 작업에 살짝 당황했다.

'이건 마술의 효과일까?'

[네?]

'여자에게 호감을 사는데 마술이 은근 도움이 되는 것 같은데?'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신기한 장면을 보면 호기심이 생기니까요. 잘생기고 실력좋은 마술사라면 더더욱 관심이 생기겠죠.]

'시간 들여 익혀두길 잘했네. 이건 개인기로 써먹을 데가 많겠어.'

[그나저나 언제까지 노닥거리실 생각입니까? 헌팅은 안 하실겁니까?]

'주아가 출근을 해야 시작을···.'

도훈이 바텐더들을 쭉 훑어보는데 반대쪽 끝에 주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성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출근한 것이었다.

[이미 왔는데요?]

'왔으면 왔다고 나한테 알려줬어야지.'

[반대편에 있어서 저도 몰랐습니다.]

'흐음, 어쨌든 이걸로 장난은 끝이군.'

"여기서는 곤란할것 같고."

도훈이 카드를 모으더니 등뒤로 돌려 인벤토리에 갈무리했다.

"왜요? 이번엔 또 어딘데요?"

"말하면 해주려고?"

"음, 서준씨 하는 거 봐서?"

"일단 짠이나 한 잔 더 하죠."

"넹."

웃음이 많은 성희가 연신 생글거렸다. 도훈은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오늘밤 당장 눕힐 수 있을것 같았지만,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기로 했다.

"오늘 근무 몇시에 끝나요?"

"전 새벽 3시요."

"그럼 퇴근할 때 다시 봐요. 어차피 여기선 눈치가 보여서 곤란할 것 같으니까."

"저 기다리시게요?"

"네. 게임하다보면 시간 잘 가겠죠."

"무슨 게임 하시려고요?"

도훈이 쌓아둔 칩을 한손에 쥐고 물었다.

"여기서 제일 돈 많이 따려면 어떤 종목을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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