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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677화 (1,657/2,000)

1677. 빌드 업-12-

* * *

조교연구실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같은 층 맞은편에 있는 체육교 육과 학생회실로 향했다.

사범대 2호관 건물은 가운에 계단을 중심으로 오른편이 교수동, 왼편이 강의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학생회실은 강의동 중간에 있었다.

'지금쯤 서현이도 수업 끝났겠지?'

간만에 민주를 위로해 주고 오는 사이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서현이 먼저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학생회실 문을 여는데, 예상과 달리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반겼다.

"어? 도훈 오빠다!"

"꺄악, 회장님!"

"내가 그랬지? 오늘 돌아오신다고?"

학생회실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학생들은 효민과 나연, 그리고 항상 세트로 붙어 다니는 연두였다. 갑자기 후배들에 둘러싸이자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묻고 말았다.

"어? 서현이는?"

"서현이요?"

"오빠 서현이랑 보기로 하신 거예요?"

"뭐예요? 우리도 오빠 올 줄 알고 기다렸는데!"

셋은 서현을 먼저 찾는 나에게 실망한 듯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아차. 장소를 잘못 골랐구나.'

[학생회실은 원래 학생들이 공강 시간마다 들르는 곳이잖습니까. 당연히 다른 학생들이 와 있을 것을 예상했어야죠.]

'그러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는 후배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말했다.

"그게 아니라, 윤리교육과 사건 때문에 총무랑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어? 오빠가 그 사건을 어떻게 아세요?"

"그러게. 오빠 미국 갔을 때 터진 일인데."

"너희들도 알아?"

"당연하죠."

"요새 엄청 핫하거든요."

"여기서 효민이가 제일 많이 알걸요?"

연두와 나연이 이구동성으로 효민을 가리켰다.

효민이 뭔가를 안다는 듯 나에게 설명했다.

"저 실은 채은 언니랑 같은 동아리였어요."

"어? 강채은이랑 같은 동아리라고?"

"오빠가 채은 언니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아니, 조교실 들렀다가 방금 들었어."

"잘됐다. 효민아, 오빠한테도 알려드려. 어차피 대충은 알고 계신 것 같은데."

"그래 맞아."

"마침 저희 방금까지 그 얘기 하고 있었거든요. 효민이가 동아리에서 들은 이야기요."

"흐음. 그래?"

마침 깨톡이 와서 슬쩍 쳐다보는데, 미리보기 화면에 서현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수업이 늦게 끝나서 10분 후쯤 학생회실에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서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학생회실 소파에 앉아 세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빠 근데 이 얘기 어디 가서 절대 소문내면 안 돼요?"

"알았어."

꼭 저렇게 말하는 애들이 제일 많이 소문내고 다닌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채은 언니가 학과 통장 들고 나른 이유가 남자 때문이래요."

이미 민주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내용이라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근데 그 남자가 호빠 선수라지 뭐예요?"

"···그래?"

역시나 파악한 내용이다.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내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연두가 물었다.

"오빤 별로 놀랍지 않나 봐요?"

"뭐가?"

"아니, 대학생이 호빠 선수한테 작업당한 거잖아요."

"그런가? 난 그런 쪽은 잘 몰라서."

그때 효민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근데 더 놀라운 게 뭔 줄 아세요?"

어차피 이번에도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민주가 전해준 내용도 나름 고급 정보였는데, 학생들이 그보다 더 많이 알기는 쉽지 않겠지.

"뭔데?"

"알고 보니까 우리 학교에 채은 언니 말고도 당한 사람이 몇 명 더 있는 거 있죠?"

"···뭐라고?"

이건 완전히 새로운 정보였다.

나는 모처럼 흥미를 갖고 효민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우선 강채은은 첫 번째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선수에게 이미 당한 여학생이 두 명이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대학생을 노린 범죄란 소리야?"

"그렇다고 봐야죠. 앞선 피해자들도 삼백에서 오백 만원 정도 뜯겼대요. 물론 채은 언니가 제일 피해액이 크긴 하지만."

"근데, 대학생들은 돈도 별로 없을 텐데 왜 노렸을까?"

"그게···."

효민이 갑자기 연두와 나연의 눈치를 살폈다. 두 사람 앞에서 이런 얘기를 나에게 해도 될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나연이 괜찮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 말씀드려. 회장님 은근 개방적이라 다 이해하실 거야.

그쵸 회장님?"

그러면서 슬쩍 나에게 윙크를 하는데, 아무래도 말 못 할 내용이 성적인 주제 같았다.

나연과 연두는 나와 쓰리썸을 하고 있고, 효민 역시 따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사생활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벌어진 일이었다. 알고 있다면 굳이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겠지만.

"그래 뭐. 다들 성인이잖아."

효민이 그제야 안심하고 말을 이었다.

"음, 실은 그게, 영상을 찍혔나 보더라고요. 피해자들이."

"영상이라니?"

"호빠에 가서 놀 때 말이에요. 몰래 영상을 찍어서···. 아시죠?

몰카 같은."

"아···."

"그래서 나중에 돈을 안 가져오면 학교랑 부모님에게 다 퍼트리고 영상도 웹사이트에 팔아 버린다고 협박을 했었나봐요. 자막 달아서 소속 학교, 이름이랑 얼굴까지 싹 다 나오게."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요? 채은 언니가 하도 힘들어서 돈 들고 튀기 전에 동아리에서 가장 친한 언니한테 고민상담을 했었나 보더라고요. 돈좀 있으면 빌려달라고. 근데 그런 큰돈이 어딨겠어요. 끽해야 용돈받고 사는 대학생인데."

"참나."

[이건 진짜 계획범죄 아닙니까?]

'그래서 대학생을 노렸나 보군?'

[근데 돈을 요구하는 거였으면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 더 돈이 되지 않나요? 자칫 직장을 잃을 수 있는데요.]

'아니지. 언뜻 생각하면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돈이 될 것 같긴 하지만 막상 협박을 당했을 때 역으로 경찰에 신고할 가능성은 더 높거든. 사회생활을 어지간히 한 사람이 면 누군가 몰카로 협박한다고 해도 순순히 당해주지 않을테니까.'

[그럼 대학생은···.]

'끽해야 스무살 겨우 넘은 애들이 뭘 알겠어? 학교 동기나 선후 배들에게 그런 영상이 유포된다는 것만으로 패닉에 빠져 버릴걸?

창창한 젊은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버릴까봐 무서워서 어디 신고도 못 하고 말이야.'

[그걸 노린 거라면 정말로 잔인한 놈들이군요.]

'그나저나 우리 학교에서만 3명이 당했다면, 이건 작정하고 작업한 거 같은데?'

[작정하다뇨?]

'처음엔 우연히 우리학교 다니는 여학생이 걸려 들었겠지. 근데 협박이 의외로 쉽게 먹히다 보니까, 아예 노리고 덤벼든 거라고. 대학생들만 골라서.'

[이런! 천하의 극악무도한 녀석들이군요. 이대로 놔두실 셈입니까?]

'뭐, 강채은 건이 워낙에 커지는 바람에 경찰까지 달라 붙었다니까 내가 더 관여할 필욘 없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직접 피해 본 것도 없는데.'

[하긴 그렇군요.]

"야, 그 얘기도 마저 해드려."

"맞아. 이것도 회장님이 알아야지."

"응?"

연두와 나연이 자꾸 효민을 보챘다.

효민은 망설이다가 두 사람의 부추김에 결국 입을 열었다.

"실은, 저희 과에도 당할 뻔한 사람이 있어요."

"뭐라고?"

"주말에 정음이랑 아영이랑 둘이서 옷 사러 백화점을 갔었나 보더라고요."

"둘이 요새 엄청 친하잖아요."

정음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갑자기 대가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빨리 뛰는 걸 보니, 흥분으로 아드레날린이 급격히 분비되는 것 같았다.

"계속 말해봐."

"누가 갑자기 와서 말 거는데, 들어보니까 그 수법이 채은 언니 가 당했던 수법과 완전히 똑같더라고요."

"수법이라고?"

"자기가 폰 배터리가 떨어졌는데, 지방에서 올라오신 부모님과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해서 잠시만 폰 좀 빌릴 수 있겠냐고요. 채은 언니한테 접근할 때도 딱 그 멘트였거든요."

"그런 식으로 연락처를 받아낸 다음 작업하는 거래요."

"얼굴도 잘생기고 반반한 남자가 사정이 급하다고 부탁하면 대부분 폰을 빌려주니까요."

연두와 나연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머리 속이 분노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씨발, 놈들이 감히 누굴 노렸다고?'

[주인님. 진정하십시오. 조금 있으면 살기가 흘러나올 지경입니다. 후배들이 주인님 기에 눌려 겁먹을 겁니다.]

'아차.'

나는 겨우 감정을 억누르며 효민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연락처를 줬다는 거야?"

"아뇨. 그건 아니에요. 정음이가 되게 착하잖아요. 그래서 핸드폰 빌려주려고 했는데, 아영이가 그냥 무시하고 데리고 가버렸대요. 정 급하면 백화점 안내 데스크에 부탁하라면서."

"아···."

"아영이가 좀 눈치 빠르잖아요. 양아치같이 생긴 선수를 보자마자 본색을 알아 본거죠."

"월요일날 1학년 전공 수업 때 우연히 윤리교육과 얘기를 하다가 저희도 아영이한테 듣고 알았어요."

"천만 다행이지 뭐예요? 뭐, 근데 둘 다 나중에 연락이 왔다고해도 안 받긴 했을 거예요."

"맞아, 맞아. 그 두 사람이 뭐가 아쉽다고 호빠 선수를 찾겠어?

괜히 외모에 혹한 애들이나 당하는 거지."

[아, 그래서 어장관리 경보가 안 뜬 거군요. 상대의 음흉한 시도가 미수에 그치는 바람에요.]

'미수?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것이 살인 미순데 그래도 괜찮겠지?'

[네? 갑자기 왜 급발진 하십니까 주인님?'

'내가 원래 내 일 아니면 신경 안 쓰는 거 알지?'

[그쵸.]

'근데 놈들이 정음이랑 아영이까지 작업하려고 했다니까 갑자기 빡 도는데?'

[주인님. 어쨌든 별일은 없었고···.]

'아니지. 그게 별일이지. 감히 누구 여자를 건드려? 내가 이것들을 살려둘 이유가 있을까?'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PK단의 감시도 심해진 마당에 굳이 주인님과 관계도 없는 사건을···.]

'관계가 없다니? 이게 왜 관계가 없어?'

[앞선 피해자들이나 윤리교육과 강채은양이나 주인님은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잖습니까?]

'그 여자애들도 어쨌든 우리 학교 학생이야.'

[그건 그렇죠.]

'그리고 우리학교 여자애들을 멋대로 따먹고 협박하는 건, 잠재적인 내 소유물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해.'

[아, 아니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국성대 다니는 여학생들이 모두 주인님 여자도 아닌데요?]

'이제부터 그럴 생각이야.'

[그럼 과CC나 현재 남친을 사귀고 있는 여자들은요?]

'그건 상관없어. 정상적인 연애의 범주니까. 근데 이건 추접스러운 범죄야. 그것도 우리 학교 여대생을 타깃으로 한. 내 나와바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안 이상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진정하시고 좀 더 차분히···.]

'차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정음이랑 아영이가 당할 뻔했다고! 감히 내 여자에게!'

[결과적으론 아무 일도 없었고, 어차피 연락처를 받아간들 둘 다 무시했을 겁니다. 두 분에겐 주인님밖에 없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럼요?]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존나 열 받았다는 거야.'

[아, 이런···.]

나는 잠시 화장실 다녀온다고 학생회실을 빠져나온뒤 곧바로 최번개에 연락을 때렸다. 인벤토리에 대포폰을 꺼내 전화를 걸자 번개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행님, 안녕하셨습니까? 요새들어 자주 연락하시네요.

"번개야. 잔말말고 신상 하나만 따와라."

-네? 누구를 알아볼까요?

"너 호빠 쪽으로 인맥 좀 있냐?"

-호빠요? 남자 창부 말씀이시죠? 네. 마담 몇명이 저희 단골이긴 합니다.

"단골?"

-가끔 가게에 외상 올려놓고 잠적한 손님들을 찾아달라는 의뢰가 오거든요. 저희야 사람 찾는 데 전문이니까요.

"그래? 그럼 니가 아는 마담들한테 바로 연락 돌려서, 요새 대학생들 공사하는 선수 있는지 알아봐. 한 두놈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대학생이요?

"번개야. 형 질문 싫어하는 거 몰라?"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 근데 현재 착수금이···.

"얼마면 돼? 아니다. 내가 지하철 로커에 현금 2억 넣어놓을 테니까 1시간 뒤 챙겨가."

-이, 이억이나요? 너무 많습니다 행님. 저번에 주신 돈에서 살짝 부족한 정돈데···.

"잔말 말고 받기나 해. 그 돈이 너희들 부조금 안되게 하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행님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도 않겠습니다.

"잘 알고 있네. 그럼 바로 진행 시켜. 시간은 빠를 수록 좋아."

-돈 아끼지 않고 내일까지 바로 알아 오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번개와 통화를 마친 나는 내침김에 퀵서비스 기사까지 불렀다.

요샌 어플이 잘 되어 있어서, 근처에 있는 퀵 기사가 10분안에 사범대 2호관 앞으로 도착 예정이라고 했다.

건물 복도에서 이런저런 일처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집행부 총 무를 맡고 있는 박서현이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올라는 게 보였다.

"서현아.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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