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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667화 (1,647/2,000)

1667. 빌드 업-2-

아무튼 미호는 나의 성생활에 대해선 딱히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쿨하다면 쿨하고, 다르게 말하면 보미와는 다르게 철저한 동업자(?) 관계로 인식하는 느낌이다.

"특임대는 어떻게 된 거야?"

미호가 통닭을 뜯으며 지난 일주일간 벌어진 일을 요약해 설명했다.

"일단은 물러난 것으로 보여."

"일단은? 그럼 언제든 또 다시 올 수 있다는 거야?"

"나도 이유는 잘은 모르지만, PK단에서 성녀의 신탁은 절대적이야. 예언이 한번도 틀린 적이 없거든."

"흠."

"성녀가 이곳에서 대적자가 출현한다고 했으니, 아마 경계를 쉽게 풀진 않을 거야."

"근데 그 대적자가 나라고 의심하는 거야? 근거도 없이?"

"정확히 말하면 도훈이 널 대적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그럼?"

"우리 지부 감시망에 걸려든 플레이어 중에서 오직 너만 행방이 묘연했거든. 그래서 혹시나 싶은 마음에 찾으려 했던 거야."

"나를 찾는 건 그렇다 치고, 너는 왜 감시를 받은 건데? 전혀 연결고리가 없잖아?"

"플레이어가 종적을 감춘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 거 같아. 물론 그것도 추측이지만."

"누군지 몰라도 상상력이 기발하네."

"김태홍이라는 특임대장의 짓이야."

"김태홍?"

"무시무시한 놈이니까 절대 상대할 생각 마. 문자 그대로 괴물이니까."

"괴물이라고? 미호 너보다?"

"회동 때 직접 만났는데 도저히 도력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였어. 나랑은 비교도 안되는 마도사라는 뜻이지."

"흐음···. 혹시 너처럼···."

"전생자라는 소문이 있어."

"전생자?"

"윤회자라고 말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윤회? 달라이라마처럼 말이야?"

"맞아."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불가능할 건 없지. 플레이어도 그렇지만, PK단도 저마다 특기가 달라. 김태홍은 우연히 전생자의 특성을 갖고 태어난 거야. 그 말은 죽어도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지."

"헐. 일종의 불사신인 셈인가? 그럼 실제론 몇살인거야?"

"몰라."

"모른다고?"

"본인은 한번도 전생자라는 걸 인정한 적 없거든. 하지만 갖춘 도술과 능력으로 봐선 최소 천년 이상 거듭해 살아온 것 같아. 어쩌면 고대부터 일지도 모르고."

"······."

고대부터?

갑자기 팔에 소름이 확 돋았다.

당장 눈 앞의 미호만 해도 조선시대부터 살아온 것이 실감이 안나는데, 고대면 대체 언제를 말하는 걸까?

삼국시대?

어쩌면 고조선?

'이게 말이 돼?'

[네?]

'전생자라는 게 그렇게 무한한 존재라고?'

[이론상 가능은 합니다. 말 그대로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능력이니까요. 주인님이 만약 어린 아이에게 빙의 되셨으면 일종의 전 생자인 셈이죠.]

'그건 그런데···.'

따지고보면 나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아류 전생자라고 불릴 수 있었다. 그런데 수십번 죽고 다시 태어난 사람이란 대체 얼마나 강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걸까?

'잠깐만, 근데 전생자가 과거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나? 그러니까 도력 같은 걸 계속 유지한 채로 이어가는 거야?'

[그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 그럼 전생자라고 해봐야,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잖아? 시작은 똑같고.'

[꼭 그렇게는 볼 수 없죠. 주인님만 해도 전생의 기억으로 다시 대학생활을 하신 것만으로 엄청난 이점을 누리셨잖습니까?]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실수했던 걸 미리 알고 피하게 되고, 또 젊은 애들한테 없는 연륜이란게···. 아!'

말하다 보니 전생자의 엄청난 잇점을 알게 되었다.

연륜이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두번째 인생을 다시 살게 하면 실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실패를 하지만, 대부분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해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어린 시절부터 다시 한다?

단지 그 가능성만으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태홍이란 사람은 그런짓을 무려 수백 혹은 수천년 반복해 왔다는 뜻이었다.

[스킬이나 도력이 초기화 되더라도, 과거에 한 번 이뤘던 것을 다시 채워나가긴 훨씬 쉽습니다. 전생에서 실패했던 것들이 일종의 반면교사가 되어 최고로 효율적인 방식을 따를 테니까요. 그리고 그 경험이 한 번이 아니고, 수십번이라면···. 그야말로 동나이 대에선 이룰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경지에 오르게 되는 거죠.]

설명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경지였다.

어째서 PK단 놈들은 이런 괴물들 밖에 없는 걸까?

"그럼 놈의 능력은 뭔데?"

"빙결계 마도사."

"빙결계?"

"가령 나는 화염계에 속하지."

"그건 무슨 기준으로 나뉘는 거야?"

"마도사는 음양오행의 법칙을 따르는 술사를 말해. 크게는 음과 양으로 한 번 나뉘고, 그 뒤로 오행의 기운 중 어떤 것을 주로 다루느냐로 계가 정해져."

"빙결과 화염 말고 다른 오행은 뭔데?"

"목토금화수. 각각은 상성이 있어서 물고 물리는 관계야."

"상성이라고?

"가령 대지는 금속에 상하고, 금속은 불에 녹고, 불은 물에 꺼지는 식이지."

"잠깐 그러면···."

"맞아. 빙결계는 화염계에 상극이야. 같은 도력이라면 상대도 안되는 수준이지. 하물며 김태홍은 나보다 윗줄이니···."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잠깐 그럼 바람은 뭐야?"

"뭐?"

"바람을 다루는 마도사는 없어?"

보미는 바람 마법을 주로 다뤘다.

하지만 오행의 기운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도사가 아니라 마법사겠지. 마도사는 오행의 기운을 다룬다고 했잖아. 마법사도 자체적인 구분이 있겠지만, 어쨌든 도가 계열은 아니야."

"아···."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아, 아니야. 잘 몰라서 물어봤어. 영화에 보면 바람을 다루는 히어로도 있으니까."

"마도사든 마법사든 종류는 무궁무진해. 그런 계열이 아니더라도 마법을 쓸 수 있는 클래스는 많고.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모르니까 네가 알려줘."

"특임대에는 김태홍 말고도 다른 능력자들이 많아. 가령 나를 감시했던 임시연의 특기는 배속이야."

"배속? 2배속 3배속 그런 뜻이야?"

"맞아. 엄청 빨라. 듣기론 순간 스피드가 마하에 이른다고 하더군."

"마하? 초음속 비행기 속도라고?"

"어."

"미치겠군."

"또 있어. 미스터 엑스라고, 투명화 능력자도 있지."

투명인간이라면 나도 되어 본적 있었다.

그래서인지 앞선 두명의 능력자에 비해 살짝 약해 보였다.

"투명화 능력이면 안 보이는 것 말곤 딱히 특이할 게 없는 거 아니야? 암살자의 일종인가?"

"단순한 투명인간이 아니야. 자신이 다루는 모든 물건을 투명화 시킬 수 있거든."

"뭐? 그게 가능해?"

"응. 그래서 위험한 자야. 가령 너에게 투명화된 총탄이 날아온다고 생각해봐.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예상할 수 없는 탄도로."

"······."

"그리고 이번 특임대에는 합류하지 않았지만, 두명이 더 있어."

"그런 괴물들이 둘이나 더 있다고?"

"통상 기수단위로 소집되고 해제되는 특임대 숫자는 적게는 다섯, 많게는 7명이야. 나머지 둘은 외국에 파견 나가 있어서 이번에 못 왔다고 들었어."

"미치겠군."

정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미호를 포섭하고, 보미를 동료로 삼았다고 좋아했는데, 상대는 그 규모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괴물들의 집단이었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미호가 나를 달랬다.

"걱정마. 플레이어는 너 말고도 많고, 너 하나 잡으려고 PK단의 에이스들이 총출동 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치만 내가 대적자로 의심받고 있다며?"

"확신하는 건 아니야. 미약한 가능성 중 하나로 보는 거지. 그래서 바로 물러난 거야.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확인해야 하니까."

"아···."

"그러고 보니 신탁이 좀 이상하긴 했어."

"이상하다니?"

"언젠가 대적자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거라던가?"

"스스로?"

"응. 굳이 애써 찾지 않아도 나타날 거란 거지. 본부에선 아마 미연에 싹을 자르고 싶었던 모양인데, 신탁대로라면 애초에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였어."

"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진 못 찾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

듣고보니 정말로 그랬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끼워맞춘 말이지만, 신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내가 정말 저들이 말한 대적자인지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우연히 장소가 겹치게 활동하는 플레이어 일수도 있었다.

내가 아닌 제 3자.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혹시 내가 대적자···."

"뭐?"

미호가 먹던 통닭을 내려놓고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민망해진 내가 급히 말을 바꿨다.

"···는 아니겠지, 당연히?"

"풉-.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겠는데, 후보군에 들어간다고 다 대적자는 아니지."

"그, 그렇지?"

"지금 실력으론 어림 없는 소리야. 넌 우리 지부 단원들도 못이겨낼 걸?"

"정말?"

"난, 그렇다고 생각해."

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미호가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오해는 하지마. 도훈이 네가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지부가 좀 특별해서 그러니까."

"특별하다니?"

"지부장을 맡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가 사실 상당한 실력자거든."

"대머리 아저씨?"

"있어 그런 사람."

미호가 갑자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남자들은 참 불쌍해."

"갑자기 뭔 소리야?"

"실은 알고 지낸지 십년도 넘었거든. 머리가 안 벗겨진 젊었을 땐 그럭저럭 잘생겼었단 말이야? 근데 30대 중반 넘어서 갑자기 이마가 까지더니···."

"아···."

"암튼, 지부장에 머무를 실력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계속 맡고 있는 거라서."

"그러니까 제 실력을 인정 못 받고 있다고?"

"일종의 징계나 다름없지."

"징계라니?"

"굳이 깊이 알려고 하진 말고."

"먼저 말 꺼낸 건 너잖아?"

"그게 아니라, 나랑 관련이 있어서 그래."

"음,"

"지부장 말고도 다른 능력자 둘도 만만치 않을 거야."

"또 누가 있는데?"

"마인드 컨트롤 능력자랑, 염동술사."

"모두 4명이야?"

"응."

"마인드 컨트롤은 무슨 능력이야? 세뇌로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건가?"

"맞아.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자살까지 시킬 수 있지."

"와, 미쳤네."

"염동술사는 이번에 새로 온 신참인데 경험은 없지만 능력은 상당해."

"거참, 하나같이 쉬운 상대가 없구나."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도훈이 너라도 우리 지부 상대하는 것은 벅찰거라고."

"무슨 죄다 괴물들밖에 없네."

"너도 괴물이잖아."

"뭐?"

"특히 아랫도리 만큼은 세계 최강자지."

'어? 잠깐만 미호가 저런 말을 한다고?' 문득 대화를 하다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미호는 동물친화패시브 때문에 나에게 완전히 복속되어 있다. 감히 주인에게 대들거나 도발하지 못한다.

"너, 미호 아니지?"

"히히. 너무 눈치 없는 거 아니야?"

미호가 짙게 눌러쓴 모자를 벗었다.

그녀의 눈동자 색이 짙푸른 남색을 띄고 있었다.

미호는 분명 검은 동자였다.

"···누구야 넌?"

"맞춰봐."

"장난 치지 말고. 얼른 신분을 밝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도훈이 네 부하가 아니야."

"음···."

"두나?"

"틀렸어. 벗어."

"뭐라고?"

"틀리면 벗어야지."

"참나."

[이런, 미호양에게 들러붙은 영혼들이 또 장난을 치는 군요.]

'어쩐지. 순순히 묻는 질문에 대답해 준다 싶더니, 정기 뽑아먹으러 왔구나.'

"얼른. 벗어."

"내가 왜?"

"글쎄? 내 정보가 유용하지 않다고 느낀다면야, 나도 앞으로 협조해줄 필요 없지."

미호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모자를 눌러쓰고 나갈 채비를 했다. 당황한 내가 그녀를 붙잡았다.

"자, 잠깐. 가려고?"

"놔. 말했지만 난 미호처럼 네 펫이 아니니까. 오가는건 내 맘이야."

"아, 알았어. 벗으면 되잖아."

나는 청소하느라 갈아입었던 티를 벗었다.

미호가 벗은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

"네 놈 몸뚱이는 언제봐도 멋지네."

"칭찬은 고마워."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맞춰봐."

'젠장. 대체 누구지? 말투만 봐선 전혀 모르겠는데.'

[작정하고 숨기고 있으니 알아내기 어려울 겁니다.]

"미향?"

"땡-. 그 기생년이랑 재미가 좋았나 보지?"

"아니야?"

"아니야. 또 벗어."

"잠깐만. 이건 불공평해."

"왜?"

"네가 거짓말을 해도 내가 알아차릴 방법이 없잖아?"

"난 거짓말 안 해. 네가 맞추면 나도 벗을 거야."

"뭐라고?"

"너는 틀릴 때마다 하나씩 벗지만, 나는 한 번에 다 벗을 거라고. 그럼 공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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