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2. 제주도 푸른 밤-92-
김 형사는 단 두 방으로 양아치들을 때려눕혔다.
퍽, 퍽-!
별다른 기술도 아니었다. 다만 상대가 너무 약했다. 김 형사가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양아치들을 향해 말했다.
“형이 오늘 기분이 무척 좋거든? 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술 처먹었으면 곱게 집에 들어가라. 알았지?”
“···씨, 씨발. 비겁하게 기습을!”
한 방에 제압당하고도 놈들은 실력의 격차를 알아채지 못하는 하수였다. 김 형사는 더 상대해봐야 자기만 우스워지겠다는 생각에 녀석의 뺨을 툭툭- 두들기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휴, 이 교도소 꿈나무 새끼들 같으니···. 다음에 나 다시 보면 오늘처럼 그냥은 안 넘어간다? 어디서 사람 얼굴에 담뱃재를 튀겨? 뒤질라고.”
김 형사가 화장실에서 용무를 마치고 나와 자리로 돌아가는데, 그에게 당한 양아치 둘이 굴욕감을 참을 수 없는지 씩씩거렸다.
“야, 형님한테 바로 전화해. 저 개새끼 조져 버리게.”
“뭘 형님한테까지 연락해, 쪽팔리게? 확 우리끼리 담가 버리자.”
두 사람은 김 형사가 봐준 것도 모르고 복수를 꿈꿨다.
그나마 한 명은 김 형사의 몸놀림을 보고 자신들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으나, 나머지 한 명은 여전히 불의의 일격에 당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형사는 진심으로 가격했다간 상대가 큰 부상을 당할까 봐 봐준 것뿐이었다.
“담글 거면 확실하게 담가야 한다니까? 그냥 연락해 인마. 횟집에 혼자 술 마시러 왔을 리도 없잖아.”
“일행이 있단 소리야?”
“일단 확인부터 해 보자.”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가 김 형사를 찾았다.
“저깄다. 저 씹새끼.”
“모두 3명인가? 옆에 여자라고 달고 다니는 것 좀 봐라. 존나 개빻았네.”
“근데 맞은편에 앉은 저 새낀 또 뭐냐? 아까 그놈보다 더 세 보이는데?”
양아치 둘은 김 형사보다 맞은편에 앉은 도훈의 험악한 인상에 주목했다. 어지간한 조폭보다 험상궂은 얼굴에, 근육질의 우락부 락한 덩치는 딱 봐도 일반인같지 않았다.
두 사람은 도훈의 떡대를 보고 더더욱 오해했다.
“저것들, 혹시 생활하는 새끼들인가?”
“조폭이라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
“다른 지역에서 넘어왔을 수도 있지. 아니면 이쪽 나와바리 염탐하러 왔거나.”
“어쨌거나 형님한테 알려야 한다니까? 상대는 셋이고 우린 둘이잖아.”
“양심적으로 여자는 빼자, 새꺄.”
“암튼 우리 둘이서 상대할 놈들은 아닌 것 같아.”
“알았어. 내가 형님한테 연락해 볼 테니까 넌 여기서 짱보고 있어. 저것들 못 도망치게.”
두 사람은 방에 들어간 도훈 일행을 보고 속닥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가게 소음에 섞여 전혀 들리지 않았어야 할 대화를, 도훈은 빠짐없이 엿듣고 있었다.
본래 도훈은 평소 남의 대화를 신경 쓰지 않지만, 묘하게 거슬리는 시선을 감지하고는 집중해 듣다가 양아치 놈들의 작당 모의를 엿들은 것이었다.
‘뭐야 저놈들은?’
[왜 그러십니까?]
‘날파리들이 꼬인 것 같은데?’
[파리는 전혀 안 보이는데요?]
‘아니, 양아치들 말이야. 벌레 아니라 사람. 그게 그거지만.’
[누가요? 어떤 겁 없는 놈들이 현직 형사 앞에서 시비를 건답니까? 사복이라서 모르는 걸까요?]
‘그게 아니면 관할 구역 강력반 형사 얼굴조차 몰라볼 정도로 좆밥들이란 뜻이겠지. 김 형사가 화장실 간 사이 달고 나왔나 본데?’
도훈은 놈들의 대화 내용을 엿들어 상황을 유추했다. 흐름상 화장실에서 김 형사에게 참교육을 당한 두 놈이, 자신이 알고 지내는 ‘형님’이라는 사람을 불러 모아 복수를 모의하는 중이었다.
‘웃기는 놈들이네. 김 형사가 이유도 없이 사람을 팼을 리는 없고 잘못을 했으니 처맞았을 텐데.’
[귀찮게 됐군요. 그냥 무시하십시오. 형사란 걸 밝히기만 해도 알아서 꼬리 내리고 물러날 놈들입니다.]
하지만 도훈은 곱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다른 것보다 보미를 보고 개빻았다고 빈정거리는 모습에 짜증이 치민 것이었다. 자기 여자를 무시하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세상엔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놈들도 있기 마련이지. 간만에 갱생 좀 시켜줘볼까?’
도훈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못 참겠네. 저는 나가서 담배 한 대만 태우고 오겠습니다. 술 마셨더니 담배가 당기네요.”
“동석이, 내가 같이 가줄까?”
같은 흡연자인 김 형사가 따라나선다고 했지만, 도훈이 사양했다.
“형님까지 나가시면 윤 경위님 혼자서 심심하시니까 그냥 계세요. 마침 담배 떨어져서 편의점도 들렀다 와야 할 것 같거든요.”
“뭘 또 편의점까지? 내 거 펴, 그냥.”
김 형사가 자기 담배를 건넸지만, 도훈은 연거푸 사양했다.
“하하, 제가 입맛이 좀 까다로워서 항상 피우던 것만 피우거든요. 후딱 다녀올게요.”
도훈은 동시에 보미에게도 넌지시 눈치를 주었다. 둘이 있는 동안, 아까 말했던 입장 정리를 마무리하라는 신호였다.
“그럼 전 잠시만.”
도훈이 밖으로 나가자 가게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던 양아치가 따라붙었다. 혹시나 그가 혼자 도망가는 줄 알고 미행하려는 수작이었다.
도훈은 일부러 횟집 옆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뒤따라온 양아치도 눈치가 보였는지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척했다.
“이런, 라이터를 안 가져와버렸네?”
도훈이 멀찌감치 떨어진 문신충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여어.”
“뭐야? 지금 나 부른 거야?”
문신충은 건방지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도훈을 보고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팔에 새겨놓은 문신만 보고도 겁을 먹고 눈도 못 마주쳤는데, 도훈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자신을 오라가라 하는 것이었다.
“그래. 불 좀 빌릴 수 있을까?”
“씨발, 나한테 뭐 맡겨놨냐?”
양아치가 갑자기 자신감을 드러내는 데는 근거가 있었다.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형님들이 전화를 받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놈은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것처럼 기세가 등등해졌다.
“씨발? 애새끼가 말 하는 싸가지 보소?”
도훈은 일부러 거들먹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워낙에 인상이 험악했기 때문에 양아치도 살짝 쫄았는지 슬슬 뒷걸음질 쳤다.
“뭐, 뭐! 씨발! 니가 먼저 시비 털었잖아?”
“하-. 어린놈의 새끼가 겁대가리가 없네?”
그때 또 다른 문신충이 합류했다. 김 형사에게 함께 얻어맞았던 다른 친구였다.
“너 여기서 뭐해 새끼야? 형님들 거의 다 왔단다. 어?”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온 그는 도훈과 함께 있는 친구를 보고 놀라 물었다.
“니가 이쪽으로 유인했냐?”
“아니. 갑자기 혼자 나오더라고. 나머진 아직 식당에 있고. 도망칠까봐 따라 나왔지.”
친구가 합류하자 뒷걸음질 치던 놈이 자신감이 붙었는지 다시 도훈에게 욕지거리를 시작했다.
“야이 씨발놈아. 너 지금 사람 잘못 건드린 거야. 오늘 뒤졌다고 복창해라.”
“오늘? 뒤져? 내가?”
도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었다.
그의 표정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그때 골목 입구에서 또 다른 사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몇 놈은 손에 각목까지 들고 있었는데, 숫자가 제법 많았다.
“누가 우리 동생들을 건드렸어?”
“혀, 형님!”
“너냐?”
‘너냐?’라고 외친 사내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안에 꽃무늬 남방을 받쳐 입은 폼이 영락없는 3류 양아치였다. 그 밖에 그를 따르는 무리 들도 하나같이 시시껄렁한 불량배들이었는데, 그 거리 좀 뛰었다고 육수를 줄줄 흘려대는 돼지 몇 놈에, 반항적으로 머리를 삭발한 사회 부적응자들, 혐오스러울 정도로 피어싱과 문신으로 도배한 문신충들이었다.
도훈은 지원군이라고 도착한 인원들의 면면을 살펴보고는, 한 심함에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아 놔, 어디 촌 동네 양아치 새끼들도 아니고. 조폭이 몰려와도시원찮을 판에 무슨 떨거지들만 잔뜩 모아놨네.’
“각목은 또 뭐냐? 어디서 노가다 뛰다 오셨어?”
도훈은 숫자에 주눅들지 않고 여전히 빈정거렸다.
“하, 면상 좆같이도 생겼네. 저 새끼가 니들 때린 놈이야?”
“아닙니다 형님. 그놈은 아직 가게에 있습니다.”
“그래? 그럼 모두 두 놈?”
“여자까지 셋요.”
“에이씨, 여자는 빼라니까?”
김 형사에게 맞은 문신충 둘이서 옥신각신하자 형님이라 불리는 꽃남방 사내가 대번에 역정을 냈다.
“에라이, 병신새끼들아. 족보도 없는 새끼한테 처맞아 놓고 무슨 자랑이라고 떠드냐?”
“족보? 어디 그래, 넌 족보 좀 있고?”
도훈이 일부러 이죽거리며 물었다.
녀석이 대답했다.
“어이, 덩치. 나 은갈치파 식군데, 좋은 말로 할 때 무릎 꿇고 빌면 내가 살려는 드릴게.”
“살려는 드린단다 인마.”
“얼른 무릎 꿇지 않고 뭐하냐?”
“새끼 딱 보니까 쫄았네. 쫄?”
수적으로 우위를 차지한 놈들이 영화 대사를 따라 하며 낄낄거렸다. 도훈은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무공을 익히기 전에도 조폭 행동대장과 맞다이를 떴던 그였다.
지금 그에게 3류 건달들은 그야말로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주먹이 아까웠다. 도훈이 다시 물었다.
“너희들 혹시 이청준 선생님이라고 들어는 봤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불량배 패거리들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학은 커녕 대부분 고등학교 중퇴가 최고 학벌인 이들은 당연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청준? 그 양반이 니가 모시는 형님이냐? 처음 듣는데?”
“아니. 소설쓰시는 분인데, 그 소설가 쓴 작품 중 지금 니들한테 마침 어울리는 제목이 떠올랐거든.”
“그게 뭔데?”
“병신과 머저리.”
“뭐, 뭐?”
“저 새끼가 방금 우리보고 병신이라고 했냐?”
“아주 돌았구나 니가?”
“형님, 진짜 말로 해선 안 될 놈인데요?”
“어디서 좆같은 면상 믿고 까불어? 좆도 아닌 새끼가!”
다들 흥분해 한마디씩 거드는 모습을 보며 도훈은 자신의 판단이 정확했음에 감탄했다.
‘말 한마디로 자기소개를 완벽하게 해내는구나. 저것도 어찌보면 재능인걸까?’
그때 각목을 든 녀석이 도훈을 향해 기습적으로 내리쳤다. 비겁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 몰래 옆으로 돌아와 선빵을 날린 것이었다. 도훈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팔에 내공을 둘러막았다.
빠각!
각목이 부러지며 파편이 튀는데도 도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무식한 대응에 다들 움찔하며 주춤거렸다.
“미, 미친놈···.”
“이러면 정당방위 성립된 거네?”
“뭐라고?”
“야, 씨발 그냥 다 같이 조져!”
순식간에 건달패가 달려들었다. 도훈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건 의식했지만, 어차피 쪽수에 기대 집단 린치를 시작한 것이었다. 한두 놈 쯤 다치겠지만, 결국 다구리엔 장사 없었다. 이제껏 대부분의 싸움이 그랬다.
‘쯧쯧. 날파리가 뭉쳐봐야 파리떼지.’
내공을 쓸 필요도 없는 놈들이었다.
도훈이 팔다리를 몇 번 휘젓고 나니 순식간에 다섯 놈이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 쓰러진 놈들은 신음도 못 질렀는데, 모두 한 방에 기절해 버린 탓이었다.
“뭐, 뭐야 저 새끼?”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싸움 실력에 은갈치파 식구라던 형님이 몹시 당황했다. 과장 섞인 액션 영화도 저런식의 연출이면 욕먹기 딱 좋았다. 그것이 현실로 펼쳐진 것이었다.
하지만 동생들 앞에서 자존심을 구길 수 없었던 놈은, 끝내 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칼을 펼쳐 손에서 휘두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여간 명을 재촉하는 새끼들은 어디에나 있단 말이지? 내가 오늘 너 담그고 학교 간다 새끼야.”
멋들어지게 잭나이프를 휘젓는 놈을 보며 다른 양아치들이 환호를 보냈다.
“보내버려요, 형님!”
“들어는 봤냐? 우리 형님이 그 유명한 서귀포 잭나 형님이시다 새끼야!”
하지만 도훈은 칼을 보고도 시큰둥할 뿐이었다. 설사 카타나를 들고 왔더라도 코웃음을 쳤겠지만, 과도보다 짧은 잭나이프는 소꿉놀이용 장난감처럼 보일 뿐이었다.
‘흉기를 꺼내는데 어떤 처분을 내려줘야 하나? 이 정도면 죽여도 무죄 아니냐?’
[적당히 하십시오. 괜히 사고 치지 마시고요. 괜히 김 형사나 윤 경위 입장만 곤란해 질겁니다.]
‘사고는 무슨. 농담 한 번 한 거야. 그나저나 보미가 김 형사랑 잘 얘기하고 있으려나?’
도훈은 눈앞의 칼을 보고도, 보미의 일부터 걱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