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4. 제주도 푸른 밤-24-
그러나 남자를 많이 만나 본 귤희는, 도훈의 취향이 아주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맞다. 1년 전에 만난 그 오빠랑 비슷하구나.'
남자를 잘 사귀지 않는 귤희는 당시 10살 많은 오빠와 섹파를 하고 있었다. 나이차 때문에 사귈 생각은 안 들었지만, 속궁합이 워낙 잘 맞아 생각보다 오래간 경우였다.
하지만 남자를 자주 갈아치우던 귤희였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질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을 받은 이상 귤희는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섹파라는 건 언제든 수 틀리면 헤어질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간 만나 온 정이 있기에, 마지막 섹스를 끝으로 결별하고자 만난 날, 남자가 말했다.
-귤희 너 혹시 초대남 같은 거 불러 볼 생각 있어?
-뭐? 그게 뭔데?"
남자는 귤희에게 스와핑이란 성적 취향과, 네토의 세계에 대해 알려주었다. 사실 남자도 귤희에게 어느 정도 물린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그녀를 돌릴(?) 생각을 했던 것.
-미쳤어? 내가 왜 오빠 보는 앞에서 다른 사람이랑 자는데?
-한 번만 어떻게 안 될까? 어차피 너도 섹스 좋아해서 나랑 만나는 거잖아.
-그거랑 전혀 다르지. 내가 무슨 걸렌 줄 알아?
초대남을 부르자는 섹파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한 귤희는 그 날로 관계를 끊어 버렸다.
'그때와 똑같아. 어쩜 멀쩡해 보이던 도훈 오빠가 이런 취향일줄이야.'
"그, 그래도 싫어. 왜 하필 필두 오빠랑···."
"아까 아이스크림 주문 하러 갔다가 필두랑 얘기했는데, 필두가 너랑 한 번 자보고 싶어 하더라고."
"필두 오빠는 리나랑 엮어 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
"본인이 싫다는데 어떻게 그럼.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눈 딱 감고 대주면 안 될까? 니가 필두한테 안기는 모습 상상하니까, 나 막 잦이 터질 것 같은데."
도훈은 벨트 위로 솟아오른 귀두를 들이밀며 귤희를 유혹했다.
귤희는 자꾸 이상 성벽을 강요하는 도훈의 제안을 거절했다.
"진짜로 이건 아닌 것 같아. 물론 내가 밝히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사람하고만 했다고."
"정말 안 되겠어?"
도훈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혼잣말로 그러는 것이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나도 생각을 좀 달리 해보는 수밖에."
"오빠,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솔직히 난 아직도 리나가 궁금하거든. 리나도 나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고."
"자, 잠깐만. 그러니까 오빠 부탁 안들어주면 리나한테 가겠다는 거야?"
도훈이 뻔뻔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안 될 거 있어? 너랑 나랑 무슨 사이도 아니고."
"와, 오빠 진짜 못 됐구나. 오늘 새벽에 나랑 잔 건 뭔데 그럼?"
"그건 그거고."
[너무 뻔뻔하신 거 아닙니까?]
'나도 이렇게 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설득이 안 될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귤희양이 그런 얼토당토 않은 제안을 받아 들이겠습니까?]
'귤희는 눈 딱감고 필두랑 자면 잤지, 내가 리나랑 자는 건 죽기보다 싫을 걸? 둘이 앙숙이니까.'
[귤희양의 질투심을 이용하는 것이군요.]
'그렇지.'
[근데 전 아직도 이해가 안됩니다. 그냥 따로 흩어져서 리나양을 공략하면 미션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필두군을 끌어들이시는 게요.]
'공략만 했다고 끝이 아니니까 그래.'
[네? 무슨 의민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략만 했다고 끝이 아니라, 결국 두 사람을 원수처럼 만들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귤희양과 리나양을 원수처럼 만들기 위해서 필두군이 필요하다? 그냥 주인님이 리나양과 관계한 것을 귤희양이 알기만 해도 둘 사이가 멀어질 것 같은데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100프로 장담할 순 없거든. 그냥 중간에 나만 양다리 걸친 쓰레기 취급 당하고 끝날지도 모르니까.'
[필두군이 중간에 끼면 뭐가 다릅니까?]
'복수심을 극대화 시킬 수 있지.'
[복수심이요?]
'잘 봐. 귤희는 애초에 필두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그건 누가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섹스를 하게 된다면, 결국엔 나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거란 말이지.'
[아!]
'나 때문에 자신이 희생을 했는데도, 결국엔 내가 리나랑 자버렸다? 그럼 기분이 어떻겠어?'
[주인님을 죽이고 싶겠죠?]
'바로 그거야. 그리고 나랑 잔 리나도 죽이고 싶겠지. 배신감의 극대화. 그걸 위해서 필두가 꼭 필요한 거야. 단순히 내가 양다리 걸친 것보다 그게 더 열받거든.'
[주인님은 사람 빡치게 하는 법을 잘 아시는 군요. 이쯤 되면 리나양과 귤희양이 불쌍해 지는 데요.]
'불쌍하긴 뭘. 둘 다 어차피 즐기러 제주도 왔으니, 목적에 맞게 놀아주는 것 뿐.'
"오빠 진짜 나한테 이럴 거야? 지금 농담하는 거지?"
"싫으면 그냥 없던 일로 해. 나도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나 역시 너를 선택한다고는 장담 못 하겠어. 리나도 낮에 보니까 괜찮은 것 같더라고."
"오빠!"
"같이 돌아가면 의심받으니까 나 먼저 올라갈게. 마쎄로 사와라."
"아, 아니!"
도훈은 일방적으로 할말만 마치더니 다시 뒤로 돌아서 브런치 카페로 되돌아갔다. 길 중간에 홀로 남은 귤희만 벙찐 얼굴로 멀어지는 도훈을 쳐다볼 뿐이었다.
"와씨, 좀만 늦었으면 바지에 지릴 뻔."
초인적인 스피드로 다시 루프탑에 올라온 도훈은 화장실에 들른 것처럼 젖은 손을 바지에 닦았다.
"속은 좀 괜찮아?"
"어. 내가 원래 아침에 꼭 모닝 똥을 싸야 직성이 풀리거든, 근데 제주도 왔다고 패턴이 흐트러졌나봐."
"근데 도훈이 넌 후식 먹는데 자꾸 그런 얘기를···."
필두는 스스럼없이 똥 얘기를 하는 도훈이 민망했던지 화제를 돌렸다.
"맞다. 방금 리나한테 들었어. 어제 가방 바뀐 게 리나 가방이었다며?"
"어. 정확히는 귤희가 잘못 들고 간 거지. 여권이랑 지갑이랑 거기 다 들어있었는데."
"정말? 그럼 어제 어떻게 게하까지 왔어? 택시 타고 왔다며?"
"혹시 몰라서 여행 가면 비상금을 현금으로 항상 챙겨 다니거든. 지금도 있어."
도훈이 손을 뒤로 돌리더니 허공에 손을 쑥 집어 넣어 5만원 몇 장을 뽑았다. 그리고는 뒷주머니에서 꺼내는 척 현금을 내밀었다.
"자 봐."
"와, 오빠 현금 부자구나."
"그냥 핸드폰으로 페이 결제 하면 되지 않아?"
"난 그런 거 안 써. 맞다, 팬티 안 쪽에도 몰래 숨겨 놨는데. 볼래?"
도훈이 장난스럽게 바지를 들추려고하자 리나가 민망했는지 고개를 돌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뭐, 뭐하는 거야. 부끄럽게."
"아니 도훈아!"
필두는 아무말이나 마음껏 지껄이는 도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급똥을 싸러 가는 행동이나, 여자들에게 당당히 더치페이를 강요하는 모습, 그리고 이번엔 팬티에 비상금을 숨겨놨다는 것까지 자신이 볼 땐 너무 진상같은 행동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행동 하는데, 여자들이 좋아할 수가 있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도훈은 여자들을 휘어잡아 놓은 상태였다는 사실이었다. 설사 그가 더 심한 짓을 해도, 어차피 결론은 바뀌지 않는 다는 것.
'필두는 절대 이해 못 할 거야. 매너로 여자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니까.'
[보통은 그게 맞지 않습니까? 주인님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요.]
'사람이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1초면 충분해. 어차피 외모랑 분위기에서 먹고 들어가는 법이거든. 그 뒤부턴 그냥 스스로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정해놓은 결론에 이유를 붙이는 것에 불과 하거든.'
[알것도 같지만, 필두군으로서는 너무 억울하겠군요.]
'물론 필두같이 자상한 남자가 먹히기도 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다가가는 경우라면 말이야. 그게 아닌 이상 외모가 전부지.'
[주인님이 너무 외모지상주의자인 건 아니고요?]
'그럼, 여행지에서 잠깐 보고 원나잇 하는데, 진득하게 성격 파악하고 있을까?'
[그것도 그렇네요.]
세 사람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담배를 사러 다녀온 귤희가 땀을 흘리며 루프탑 계단을 올라왔다.
"어, 귤희 왔다."
"고생했어."
"편의점이 바로 앞이라면서? 엄청 멀구먼."
골이 잔뜩 난 귤희가 투덜거렸지만, 도훈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녀에게서 담배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귤희도 왔으니 슬슬 출발해 볼까?"
"잉? 아이스크림 아직 남았는데? 귤희도 먹어야지."
"어차피 다 녹았네 뭐. 우도 가려면 배 편도 끊어야 해서 지금 출발해야 돼. 얼른 나가자."
"아, 아니 그래도."
필두가 만류하는데도 도훈은 마치 의도적으로 귤희를 무시하는 것처럼 내려가 버렸다. 리나는 귤희가 괄시받는 모습에 통쾌해하며 곧바로 뒤따랐고, 중간에 필두만 난처해하며 귤희에게 대신 사과했다.
"미안. 아이스크림도 못 먹었을텐데."
"···됐어요."
귤희는 도훈이 왜 자신에게 막 대하는 지 짐작했기 때문에, 군말이 없이 다시 내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필두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아씨, 뭐지?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매너없이 해도 되는 건가?"
오토바이가 주차된 곳으로 도착한 네 남녀는 다시 짝을 이뤄 오토바이에 나누어 탔다.
필두가 준성에게 빌린 오토바이를, 도훈이 필두의 오토바이로 바꾸고 처음 태웠던대로 도훈과 리나가 짝을, 필두와 귤희가 짝을 이루었다.
"우도 선착장 앞에서 보는 걸로 하자. 괜히 나란히 가다가 사고 날 수도 있으니까, 따로 가더라도 지금부터 한 시간 뒤에 도착하는 걸로."
"그러자. 도훈아, 조심히 와라."
도훈은 씩씩거리며 필두 뒤에 타는 귤희를 향해 의미심장한 멘트를 남겼다.
"그럼 두 사람 오붓한 데이트 즐겨!"
"뭐, 뭐라고요?"
"우린 먼저 출발한다."
도훈은 헬멧도 쓰지 않고 리나와 함께 먼저 출발해 버렸다.
쌩하고 사라진 그를 향해 귤희가 나직하게 욕을 퍼부었다.
"···씨발."
"어, 어?"
갑자기 욕을 지껄이는 귤희의 모습에 필두가 당황해서 눈만 끔뻑거렸다.
"규, 귤희야."
"뭐해? 우리도 출발해."
"어, 어 그래."
귤희는 처음과 다르게 뒤에 오르자마자 필두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필두는 등판에 귤희의 탱탱한 젖가슴이 닿자 자기도 모르게 아빠미소를 지으며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귤희랑 아까보다 훨씬 친해진 느낌인데?'
하지만 정작 필두의 뒤에 탄 귤희는 똥씹은 표정이었다.
'진짜 열받네. 내가 무슨 자기 장난감이야? 뭐? 내가 필두 오빠랑 안 자면 리나랑 자겠다고? 그걸 협박이라고 지금.'
귤희는 여전히 도훈의 제안에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게 몸을 주는 건 짜증나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디서 이런 개 뼈다귀 같은.'
솔직히 귤희 입장에서는 필두와 한 번 자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금껏 셀 수도 없는 남자와 섹스를 해보았고, 그렇게 많은 사람중에는 술에 취한 김에 어쩌다보니 모텔까지 직행한 경우도 더러 있었던 것.
하지만 그때는 술이 만땅으로 취해서, 인사불성 상태로 모텔에 입성한 것이고 지금은 백주 대낮이라는 점이 달랐다. 심지어 새벽에 도훈과 이미 정을 통했기 때문에, 섹스에 대한 욕구도 어느정도 해소된 상태.
이런 멀쩡한 상태로 마음에도 없는 필두와 몸을 섞는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기분이었다.
'···씨발 변태 새끼. 어떻게 나한테 이런 요구를.'
그러나 무작정 거절했다간 도훈이 리나를 선택할 것이 분명했다. 아까 거절했을 때 곧바로 안면몰수 하던 그의 냉정한 모습이 떠오른 것이었다.
'부탁 안들어줬다간 분명 오빠는 리나를 고를 거야. 그건 진짜 죽기보다 싫어.'
귤희는 오랫동안 리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껴왔다. 제주도 와서부터는 사이도 더 안 좋아진 리나에게 도훈을 뺏긴다면 그땐 정말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 진짜 미치겠네. 솔직히 필두 오빠는 내 취향도 아니란 말이야.'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귤희에게 필두는 조금의 매력도 어필하지 못했다. 게다가 호구처럼 여자에게 휘둘리는 스타일은 더더욱 싫었다. 그가 아무리 매너를 보이고 노력한다고 한들, 자신의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가만. 근데 도훈 오빠가 이상한 얘기를 하긴 했었는데···.'
필두의 매력을 찾아보려던 귤희는 문득 도훈이 필두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체가 아주 실하다니까? 나보다 더.
'정말일까? 도훈 오빠도 엄청 났는데, 그런 도훈 오빠보다 더?'
솔직히 남자의 잦이는 복불복이었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사람과 자게 되었는데, 팬티를 내려보니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올 수 도 있고. 마음에 안 들었는데 어쩌다 모텔각이 잡혀서 가서 보니 대물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닳고닳은 귤희의 입장에선 큰 쪽을 선호하는 편이었고, 도훈과의 섹스가 너무나 좋았던 이유도 그가 보기 드문 대물이기 때문이었다.
'···물건이 크다면 그것도 나름 매력이긴 한데.'
보통이라면 예선에서 탈락시켜 본선에 오를 일도 없었겠지만, 이번은 특별한 경우였기 때문에 귤희는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인이나 해보자.'
마음을 먹은 귤희가 갑자기 필두의 허리를 꽉 껴안는 척 하더니 두 손을 바지춤으로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