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74화 (1,554/2,000)

1574. 제주도 푸른 밤-4-

* * *

도훈이 택시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는 한창 파티가 진행중이었다.

바닷가 근처에 세워진 건물 앞 마당에는 포장마차에서나 볼 법한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 여러개가 설치되어 있었고, 오징어 잡이 배에서나 쓸 것 같은 전열등이 빨랫줄처럼 늘어져 밤을 환하게 밝혔다.

마당 구석에 설치된 대형 앰프에선 노래가 흘러나와 흥을 돋우었고, 모닥불이 피워진 주변으로 맥주 병을 든 젊은 남녀가 음악에 몸을 흔들며 선선한 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대부분 섬 밖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넘어온 뭍사람들로 이국적인 제주도의 풍광과 함께 새로운 연인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도훈은 게스트하우스 밖에서 파티 현장을 쳐다보다가 어이가 없었다.

'저러니 젊은 남녀가 몰려들 수 밖에. 완전히 야외 나이트나 다름 없잖아?'

젊은 남녀가 낯선 이성과의 만남을 주목적으로 모인다는 점에선, 유흥주점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제주도 여행으로 포장되면서 나이트에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을 들게 했다.

특히 파티 문화가 전무한 대한민국에서는,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맥주를 마시고 바비큐를 먹는 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산뜻함이 청춘들을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을 몰라보는 낯선 곳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과 아무렇게나 어울려도 상관없을 것 같은.

"참나, 이래서 아까 그 여자애들이 차를 안 돌렸구먼."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은 남성의 비율이 좀 더 많았다.

6:4? 심하면 7:3 정도 느낌이었는데, 남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여자들은 거의 남자를 골라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목적이 충실한 여자들이군요.]

'파티가 밤에만 열리니까 빠질 수 없었던 거지. 오늘을 놓치면 내일 저녁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정말 괘씸한데요? 얼른 짐만 돌려받고 상종도 안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려고. 근데 대체 어디 있는 거지?' 도훈이 계속 문밖에서 여자들을 찾기 위해 서성거리는데, 턱수염이 수북한 아저씨 한 명이 도훈에게 갑자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조금 늦으셨네요?"

"네?"

"투숙객 아니세요? 김정훈씨?"

"저요?"

도훈은 뭔가 오해가 있구나 싶었다,

"죄송한데 저는 김정훈이 아닌데요."

"네? 아니라고요? 아직 한 분이 안오셨는데?"

그때 털보 아저씨가 폰을 쳐다보더니 문자를 읽고는 갑자기 욕설을 지껄였다.

"아니, 뭐야 이건? 이 시간에 노쇼라고?"

"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혼자 오신다는 분이 갑자기 취소를 해버렸네요. 혹시 숙소 잡으러 오신거면 마침 한 자리가 비었는데···."

대충 상황을 보니 김정훈이라는 예약자가 방금 예약 취소를 알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묵을 생각이 없던 도훈은 곧바로 거절의사를 밝혔다.

"아뇨. 저는 잠깐 사람 좀 찾으러 왔는데요."

"사람이요? 저희 게스트하우스에 묵으시는 손님인가요?"

"네. 잠깐만 들어가서 찾을 수 있을까요?"

도훈이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털보 주인이 팔을 들어 막았다.

"워워. 외부인은 출입 금집니다."

"네?"

"손님처럼 몰래 들어왔다가 파티만 즐기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입장은 불가합니다."

"아니 5분이면 되는데요?"

"5분이고 10분이고 안 됩니다."

도저히 말이 안통하는 상대였다.

도훈이 어이없어 하자 주인이 말했다.

"정 그러면 찾는 분에게 전화해서 입구로 나오라고 하세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도훈이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화가 되지 않았다.

"전화를 안받아서 그러는데 잠깐만 들어가서 찾을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주인은 꽉 막힌 사람처럼 굴었다.

도훈은 점점 짜증이 났다.

가방이 바뀌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던 게스트하우스까지 택시를 타고 온 것도 모자라 문전박대를 당하는 상황에 너무나 열받았던 것이다.

'아오씨, 확 그냥.'

[참으십시오 주인님. 성질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뺑뺑이 돌아서 열받아 죽겠는데, 불난 집에 휘발유뿌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다고 무단으로 사유지를 침입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도 나름 사정이 있을테니까요.]

'흐음.'

[주인님께서 저번에 그러셨죠?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가장 쉬운 길이라고요. 그냥 돈 주고 입장 하시죠. 주인님은 부자시잖습니까?]

사실 도훈은 돈이 아까운게 아니라, 점점 꼬이는 상황에 화가 날 뿐이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밀려왔다.

"게스트 하우스 1박에 얼만데요?"

"개인 룸은 다 나가고 4인실만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까 그 분이 예약한 자리가 4인실 한 자리였거든요."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곧바로 태도가 돌변하더니 상냥하게 대답했다. 도훈은 귀찮아서 빨리 치우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대답했다.

"상관없고요, 얼만데요?"

"3만원입니다."

"네?"

"3만원이요. 그나마 요즘엔 비수기라 가격을 낮춘 겁니다."

도훈은 게스트 하우스 가격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크게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택시비에 이 돈까지 싹 다 그 여자들한테 받아내면 되지.'

"알았어요. 그럼 3만원 드리고 들어가면 되죠?"

"혹시 맥주 파티에도 참여하십니까?"

"네?"

"그건 추가요금이 붙거든요. 대신 맥주 1병은 제공해드리고, 안주는 무제한입니다."

"아니 아까는 그냥 숙소만 잡으면 들어갈 수 있다면서요?"

"파티에 참여하려면 추가요금이 붙는 다는 말입니다. 안 하시면 바로 방에 들어가서 주무시면 됩니다."

"아니···. 파티 참가비는 또 얼만데요?"

"5만원입니다."

"아니 무슨."

저렴한 1박 요금에 비해 파티 참가 비용은 바가지 수준이었다.

도훈은 점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4인실 기준 3만원이면 싼 것도 아니잖아?

딱보니 싸구려 2층 침대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랑 하룻밤자라는 걸텐데.'

[살짝 너무한 감이 있네요.]

그러나 고작 몇 만원 가지고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기에는 도훈은 너무나 피곤한 상태였다. 도훈은 뒷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는 척 하면서 인벤토리로 손을 넣어 잔뜩 쌓아둔 현금을 뽑아냈다.

"여기요."

도훈이 5만원 짜리 두장을 내밀자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잠시만요 손님, 2만원 거슬러 드릴게요."

"아니에요. 남은 돈으로 맥주나 더 주세요."

"한병에 5,000원이니까 그럼 4병 더 드릴게요. 방에 가셔서 짐부터 푸시겠습니까?"

"아뇨. 방 위치만 알려주세요. 사람부터 찾을게요."

"네. 2층 203호실입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우여곡절 끝에 게스트하우스에 입장한 도훈은 머리 끝까지 빡이 친 상태였다.

바뀐 가방을 찾기 위해 계획에도 없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온 것도 모자라, 숙박비에 파티 비용까지 떠안은 것이었다. 그에게 돈 10만원이 비록 큰 돈은 아닐지언정, 자기 잘못도 아닌데 쓸데없이 지출을 했다는 것에서 몹시 화가 났다.

"이것들 찾기만 해봐, 확 그냥."

파티가 열리는 마당으로 들어온 그는 술마시고 떠드는 여자들 얼굴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러나 비성수기라고 했는데도 숙소 방이 꽉찰 만큼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쉽게 찾기 어려웠다. 술을 마시고 노는 남녀는 얼추 50여명은 넘어 보였다.

'택시 기사님이 핫플레이스라고 하더니 진짜로 사람 많네. 바캉스 시즌도 아닌데 무슨 놈의 사람이 이렇게 많담?'

도훈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에 리나와 귤희를 보는 순간 마구 퍼부어버릴 생각이었다.

"저기 있군."

도훈은 마침내 두 사람을 찾았다. 그녀들은 구석 테이블에 남자 둘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꼴을 보니 오늘 여행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 같았다.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두 사람을 보자 도훈은 눈이 뒤집혔다.

'이 씨발년들이 누굴 뺑뺑이 시켜놓고 지들은 남자들 꼬셔서 술이나 처먹고 있네?'

도훈은 두 사람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등에 멘 백팩을 내려놓았다.

쿵-

"가방 줘요."

"누구세요?"

"뭔데?"

리나와 귤희는 도훈이 다짜고짜 찾아와 가방을 내려놓자 깜짝놀란 표정이었다. 특히 영문을 모르는 상대 파트너 남성들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도훈에게 따졌다.

"어? 벌써 오셨어요?"

"전화를 하시지."

"장난해요? 그쪽이 전화 안받아서 내가 지금···."

도훈은 연락이 안되서 돈을 내고 입장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구차하고 싶지 않아 그 말은 생략했다.

"암튼, 가방이나 줘요. 나 지금 가봐야 하니까."

"짐은 방에 있는데···."

"아니, 직접 가방 가지러 오라면서요. 지금 왔으니까 당장 가져오라고요."

도훈이 계속 깽판을 치며 짜증을 내자 두 여자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파트너들도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야, 니 뭔데?"

"말로 해라. 괜히 깽값물지 말고."

"나 봐. 씨발, 좆같네 진짜. 니 뭐하는 새낀데?"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옆 친구가 오히려 흥분한 친구를 부추기는 꼴이었다. 도훈이 혼자인 걸 안 두 사람은 여자들 앞에서 괜히 객기를 부리고 싶었는지 허세 가득한 목소리로 도훈을 위협했다.

"안 끄지나? 씨발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새끼가 여자들이 싫다는데 찝적거리노? 확 마!"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갑작스럽게 전개된 살벌한 분위기에 여자들도 당황했는지 쉽게 끼어들지 못했다. 겨우 인내하고 있던 도훈은 점점 이성의 끊이 놓일 지경이었다.

'아오, 한 줌도 안되는 새끼가 지금 여자 앞이라고.'

[주인님 참으셔야 합니다.]

'아니, 좆같이 행동한 건 저 년들인데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하냐고!'

[주인님이 민간인을 치면 저 사람들은 진짜로 죽습니다. 자중하시죠. 또 신벌을 받고 싶으신 건 아니죠?]

로시의 충고에 도훈은 겨우 화를 식혔다.

"···그쪽은 참견할 바 아니니까 좀 빠지시고."

"뭐? 그쪽? 니 몇살인데? 니 지금 나한테 그쪽이라캤나?"

도훈은 되도록 말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술까지 먹은 경상도사내는 여자 앞이라고 오히려 더욱 성을 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변 사람들까지 하나둘 쳐다보는 상황이 되자 도훈은 얼른 상황을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얼른 치워야겠다.'

도훈은 흥분한 사내 앞에 다가가더니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잠시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말로 하시죠,"

"뭐? 하, 이 새끼가 진짜···."

하지만 도훈의 눈빛을 쳐다본 상대는 갑자기 말끝을 흐리더니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도훈의 눈동자에서 광기를 본 것이었다.

사람을 당장 죽일수도 있을 것 같은 눈빛에, 가짜 광기는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아니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껴드시니까."

"그러니까 그 부분은 제가 오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그래요. 오해가 있었나 보네."

"제가 이쪽분들하고 잠깐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자리 좀 비켜 주실 수 있을까요?"

도훈은 정중히 말하는 것 같았으나 사실상 살기를 내뿜으며 상대를 압박하고 있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그대로 주저 앉을 정도로 강렬한 기운에, 경상도 사내는 그대로 물러났다.

"아, 알겠습니다. 야 무빈아 가자."

"지금 뭐하는데?"

"그냥 가자고."

친구를 끌고 도망친 그는 뒷마당까지 줄행랑을 친 다음에 친구에게 말했다.

"왜 갑자기 도망친 건데?"

"와 씨, 너 방금 그 새끼 눈빛 못 봤노?"

"눈빛이라니?"

"새끼야. 진짜 사람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다고. 완전 또라이네 저거."

"난 모르겠던데?"

도훈이 특정인에 한정해 살기를 쏘아낸 덕에 주변에선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와, 니 진짜 그 새끼 눈빛을 봤어야 한다니까? 다리가 막 후들 거리더라."

"니 쫄았나?"

"쫄았다 씹새끼야. 여자가 걔들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애들 찾으러 가자. 괜히 미친놈이랑 엮이지 말고."

두 사람을 떠나보낸 도훈은 방금 전 사내들이 앉았던 테이블에 앉았다. 이미 이렇게 된 거 좋게 말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접은 상태였다.

"당장 방에 가서 가방 가져와요."

"지금 뭐하시는 건데요?"

"가방 가져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테니까 얼른 가져오라고요."

"아니, 왜 갑자기 껴들어서 깽판 치시냐고요. 짜증나게."

"뭐라고요?"

"그 쪽 솔직히 저희한테 관심있죠? 그러니까 지금 이러는 거잖아요!"

적반하장에 도훈은 기가 막혔다.

'이 미친년들이 진짜?'

[뭔가 단단히 오해한 것 같은데요?]

'살기를 한 놈한테만 집중시킬 게 아니라 확 터뜨렸어야 했나?

계집애들이 진짜 남자 무서운 줄 모르네.'

[함부로 힘 쓰지 마십시오. 방금은 잘 하신 겁니다.]

'저렇게 나를 좆밥 취급하는데도 참으라고? 내가 부처인 줄 알아?'

[그렇다고 여자를 때리기라도 하실 겁니까?]

'못 때릴 건 뭔데? 남자한테 안 맞아봐서 저렇게 설치는 거라고.'

[아니 주인님.]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맞네. 참나, 그냥 관심있으면 관심있다고 말하면 되지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이대시면 어떻게 해요?"

"······."

'로시, 안 되겠다. 나 진짜···'

그때였다.

갑자기 도훈의 머릿속으로 띠링- 하는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이, 이 타이밍에 미션이라고?'

도훈이 황당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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