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12화 (1,376/2,000)

1395. 대학 축제-20-

* * *

"오빠 차도 있어요?”

미리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꼭 저런 애들이 있다. 차 있는 남자만 밝히는 여자들.

"응.”

"와, 차도 있으시고···. 멋있다.”

"뭘, 그냥 오래된 차야.”

"그래두요.”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내가 파티룸 요금을 통째로 지불했을 때 부잣집 아들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백퍼 실망할 텐데.

"암튼 타자.”

차량을 주차해놓은 곳에 도착하자 다른 사람은 별 반응이 없는 반면 미리의 표정은 약간 어두워졌다.

'국산 차라 이건가.'

[그것도 중고차고요.]

'대학생이 그럼 외제차로 새 차 뽑을까?'

[주인님 돈도 많으시지 않습니까? 재벌이라고 봐도 무방할텐데요. 마음만 먹으면 오늘 당장도 가능하죠.]

'돈 많은 티 내면 불나방 같은 애들만 달려들 것 같아서. 딱 미리 같은 애들 말이지.'

"우아, 도훈이 너 차도 몰았구나.”

경영대생 범우는 대단하다는 듯이 차를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그는 국산 중고차라도 있는 내가 엄청 부러웠던 모양이다.

"별거 아니야. 아버지께서 새 차 뽑으시면서 폐차시키려던 거물려 주신 거야. 주행연습이라도 하라고.”

"그래도 유지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그냥 적당히 타는 거지. 용돈 아껴서. 일단 타.”

"어.”

범우가 보조석에 타고, 미리와 신아가 뒷좌석에 탔다. 신아는 별말 없이 핸드폰만 쳐다보는데, 미리는 이리저리 차 안을 둘러보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뒷문이 좀 뻑뻑한 거 같아요.”

"그래?”

"창문을 어떻게 내려요?”

"기다려봐. 에어콘 틀어줄게.”

"오빠. 그냥 아버지한테 차 한 대 뽑아 달라고 하시지.”

"엥?”

"오빠 돈 많지 않으세요?”

결국 조용히 타고 가던 범우도 나를 보며 되물었다.

"도훈이 너 돈 많아?”

"아니.”

"맞잖아요. 파티룸 비도 혼자 다 내셨으면서.”

"아니. 그걸 도훈이가 왜 혼자 내? 나중에 1/n 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에요. 도훈 오빠가 그냥 자기 돈을 예약하라면서 줬어요.”

"조모임 때문에 잡은 건데 같이 내야지. 각각 얼마씩 내면 되는데?”

"괜찮아.”

"그래도 그런 게 어딨어? 난 마지막에 한 번에 정산하는 줄 알고···.”

범우는 신세 지기 미안한 듯 계속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신아는 여전히 대화에 껴들기보다는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되는 범우의 요구에 결국 나는 다른 제안을 했다.

"이미 다 계산했으니까, 정 그러면 야식이라도 쏴. 그럼 되잖아.”

"그게 낫겠네. 다들 저녁 안 먹었지? 내가 가서 배달음식이라도 시켜줄 게.”

"와! 정말요? 역시 오빠들이랑 같은 조 하니까 너무 좋다.”

미리는 염치없게 굴었다. 남자들에게 얻어먹고 다니는 게 습관인 듯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차라리 신아처럼 말이라도 안 하면 덜 미울 텐데.

[미리양은 정말 성격이 뻔뻔한 것 같군요.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얻어먹는 것에 너무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러게. 진짜 내 타입은 아니다. 아까도 봤지? 혹시나 외제차라도 나오는 줄 기대하다가 국산 중고차 보고 입 툭 튀어나오는거.'

[너무 티를 내더군요.]

'이래서 내가 있는 척하기 싫다는 거야. 돈 많은 티 내봐야 저런 애들만 꼬일테니까. 사람 만나면 사람만 봐야지, 무슨 나이도 어린 게 속물티를 내고 있어?'

[미리양이 유난히 심하긴 합니다.]

'아마도 미리는 자기도 할만큼 했다고 생각할 걸?'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미리는 남자 만날 때마다 풀메이크업 하고 나오잖아. 화장품비도 만만치 않을테니까.'

[하지만 그건 다 자기만족 아닙니까?]

'아니지. 미리 같은 여자애들은 그걸 소위 꾸밈비라고 부른다더라고.'

[꾸밈비요?]

'응. 너를 만나는 데 이렇게 돈쓰고 공들여서 예쁘게 꾸미고 나왔으니까, 나는 충분히 대접받을 가치가 있다랄까? 전형적인 김치녀 마인드지.'

[으으, 미리양은 살짝 정떨어지는 타입이군요.]

'정보창 해시태그에 어장관리녀라고 뜰 때부터 마음에 만들었어. 미션만 아니었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걸? 어린 것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공대라는 특수한 환경의 영향도 있겠죠. 거기 남자들이 워낙에 떠받들었을 테니까요.]

'그것도 그렇겠지.'

"여긴가? 맞지? 애플 모텔.”

"아, 네 맞아요.”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모텔로 들어갔다.

"저희 510호 예약했는데요.”

"손님, 혼숙은 불가합니다.”

"네?”

"커플씩 따로 방을 잡으셔야 한다고요.”

"아, 저흰 커플 아니고 파티룸에서 모임하려고 예약한 거거든요.”

"네? 510호 숙박으로 잡혀 있던데요?”

"숙박?”

"잉? 숙박이었어?”

다들 의아해하자 미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대실로 하면 4시간 밖에 못 빌리더라고. 혹시나 늦어질수도 있으니까 그냥 숙박으로 끊었어. 돈 차이도 얼마 안나고.”

"아···.”

"저, 사장님. 진짜 수업과제 때문에 온 건데 어떻게 안 될까요?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요.”

"아, 혼숙은 곤란한데. ···대학생들 맞죠?”

"네, 맞아요.”

"미안한데 학생증 좀 봅시다.”

"내가 꺼낼게.”

범우가 지갑에서 학생증을 꺼내 내밀었다. 모텔 주인은 학생증을 한참 쳐다보다가 이번엔 신아를 향해 물었다.

"그쪽 여학생도 학생증 좀.”

"저요?”

"좀 어려보이기도 하고.”

신아는 어려 보인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지 씩 웃으며 학생증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국성대 학생들이라고?”

"네.”

"스터디 때문에 파티룸 빌리는 거고?”

"맞아요.”

"흐음, 원래 혼숙은 안 되는데 그래도 학생들이니까 믿고 방 내 줄게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키를 받아 5층으로 향했다. 범우가 방금 전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근데 왜 혼숙이 안된다는 거야? 단체 손님은 안 받나?”

"아니, 남자들끼리나 여자들끼리 단체로 자는 건 상관없는데 남녀가 여럿 섞이는 건 안 된다는 걸 거야.”

"그니까 왜?”

거참,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이런 걸 또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나?

"법이 그런가 보지, 뭐.”

"됐어요. 어차피 주인 아저씨가 허락 했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파티룸은 확실히 달랐다. 침대가 양쪽에 각각 더블 베드로 놓여 있었고, 방의 크기도 보통의 방보다 1.5배이상은 더 큰 느낌이었다.

미리는 모텔방에 들어오자 마자 호들갑을 떨며 떠들었다.

"와, 저 모텔은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물론 누구도 미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본인도 딱히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나에게 자신은 모텔같은 데 드나든적 없는 처녀임을 어필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모텔 아니면 아다 못 떼는 것도 아니고.'

[하긴 그렇네요. 저번에도 모텔 예약 한번도 안 해봤다고 주인님한테 수작 부렸잖습니까?]

'제 입으로 나 처녀요 라고 말할 순 없으니 간접적으로 어필하려는 거겠지. 몸값 올리려고.'

"컴퓨터는 두 대 있네요?”

"잘됐다. 그럼 한 명은 자료 찾고, 한 명은 스크립트 짜고 천천히 준비해보자.”

"식사는 어떻게 할 거야?”

저녁을 쏘기로 한 범우가 물었다.

그러자 이제껏 별말이 없던 신아가 대답했다.

"어플로 주문하면 되죠.”

"여기까지도 배달되나?”

"안 될 건 뭐 있어요?”

신아는 모텔에서 배달요리를 시켜먹은 경험이 많은 듯했다.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더니 아차 싶었는지 뒷말을 덧붙였다.

"···아니면 카운터에 물어보던지요.”

[신아 양하고 약속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이쪽 동네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적당히 분위기 무르익으면 따로 불러내야지.'

오늘의 공략 대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 명은 주제도 모르고 어장관리하는 김치녀에, 또 다른 한명은 랜덤 채팅으로 원나잇을 즐기는 변녀. 거기에 호시탐탐 두 사람을 따먹을 생각만 하는 카사노바인 나까지 더하니, 이 모임에 정상인은 오로지 범우밖에 없는 것 같다.

'미안하다 범우야. 니가 다 해라.'

* * *

"야야! 용가자. 용 앞으로 모여.”

"한 타 하면 우리가 진다.”

"장판깔고 들어가서 적 딜러부터 물라고. 충분히 이긴다니까?”

"입롤 아닥하시고.”

국성대 체육과 1학년 5명은 귀에 헤드셋을 끼우고 왁자지껄 떠들었다. 헤드셋을 끼면 안 좋은 점이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로 못 듣는다는 점이다.

PC방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던 소연이 한숨을 쉬었다.

'아씨, 다른 손님들 불편해하는 데 말해야 하나?'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점점 대학생 무리를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이 늘어나고 있었다. 소연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게임 중인 대학생 무리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야야! 뒤, 뒤 봐주라고.”

"저 손님···.”

"네?”

게임에 열중이던 남학생은 느닷없이 미녀가 말을 걸자 크게 당황했다.

"목소리 좀 낮춰주세요.”

"아, 아! 넵 죄송합니다.”

그제야 잘못을 깨달은 남학생이 소연에게 몹시 미안해하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야야. 목소리 좀 낮춰라.”

"한타 졌다.”

"좆망이구요.”

"대체 몇 연패냐 진짜.”

캐릭터가 죽어 회색화면으로 변한 게임창을 바라보며 다들 푸념했다. 이미 끝난 게임이라 생각하는지 항복 투표를 던진 상황이었다.

"야, 근데 아까 알바가 뭐라는데?”

"우리 목소리 졸라 크다고 조용히 좀 하래.”

"그니까 아까 내가 말했잖아. 헤드셋 꼈으니 조용히 말해도 된다고.”

"그러려고 했는데 니들이 워낙에 똥을 싸질러서 흥분 안 할 수가 있냐.”

"괜히 미안하네 알바생한테.”

"그나저나 배도 고픈데 저녁이나 먹고 할래?”

"김밥헤븐이라도 갈까?”

"뭐하러 밖에서 먹어? 그냥 여기서 시켜먹자. 아까 보니까 메뉴도 학교 앞보다 훨씬 싸더만.”

대학생 일행은 연패 중인 게임을 잠시 중단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가 정해지자 론처 메뉴에서 주문하려는데 주문하기 기능이 없었다.

"어? 여긴 왜 컴퓨터로 바로 주문이 안 되지?”

"니가 못 찾는 거겠지.”

"아니야. 봐보라고. 주문은 카운터에 직접 말하라는데?”

"헐. 여기 가맹점 아닌가 보네.”

"뭔 소리야?”

"원래 가맹점은 구동 프로그램이 다 똑같거든. 근데 사장이 직접 운영하는 곳은 시스템이 다르기도 해.”

"아, 그래서 여기가 요금이 싼거구나?”

"솔직히 시설도 좀 구리긴 한 듯.”

"뭐 어때. 싸면 장땡이지. 내가 다녀올게.”

대표로 총대를 멘 혁준이 메뉴를 받아 카운터로 향했다. 아까 태영의 수신자 전화를 받기도 했던 그는 태영의 말을 떠올렸다.

-거기 여자 알바 졸라 이뻐.

'새끼. 그래도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혁준이 보기에도 소연은 엄청 예뻤다. 저런 얼굴로 왜 PC방에서 일하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저··· 식사 좀 시키려고요.”

"네, 말씀하세요.”

소연은 목소리도 예뻤다. 숫총각인 혁준은 부끄러워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씨, 졸라 부담스럽게 예쁘네. 그래도 찐따같아 보이면 안되니까.'

"스팸김치 볶음밥 3개랑요. 컵라면 2개. 하나는 짜장으로요.

어, 물만두도 2개요.”

"잠시만요···. 음,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데 괜찮으시죠?”

"네. 상관없어요.”

"네. 17800원입니다.”

"여기요.”

음식비는 선불이었기 때문에 혁준이 먼저 계산했다.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혁준이 아까 시끄럽게 떠들던 것이 생각 나 소연에게 사과했다.

"떠들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헤드셋 끼고 하다보면 가끔 그러시는 손님들이 있어요.”

"실은 저희가 대회를 준비하고 있어가지고요.”

"대회요?”

"네. 학교 축제 때 E-SPORTS 대회가 열리는데, 거기 참가하기로 했거든요.”

"아!”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 여기서 거의 합숙할 것 같아요.”

"그러시구나. 알겠어요. 나중에 사장님 오시면 말씀드려 놓을 게요.”

"네 감사합니다.”

혁준이 주문을 하고 간 뒤 소연은 바로 카운터 뒤편 주방으로 가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상 레토르트로 이루어진 간편식이라 딱히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5인분을 준비하는 것은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었다.

'오늘부터 일요일까지면 2박 3일 간 훈련을 한다는 건가? 어휴, 음식 주문받는 것도 일이겠네.'

어느덧 알바가 익숙해진 소연은 빠른 동작으로 음식을 준비해 갔다. 한쪽에선 라면 물을 끓이고, 다른 한 쪽에선 커다란 프라이 팬에 계란을 깨뜨려 넣고, 전자레인지에선 스팸김치볶음 밥을 데 우는 식이었다.

'근데 어디 대학에서 축제를 하는 거지? 이 근처면 북일대? 아니면 국성대인가?'

소연이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일을 마치고 창범이 가게로 들어왔다. 창범은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소연을 향해 말했다.

"어? 나 올 줄 알고 저녁 차리고 있었어? 안 그래도 되는데?”

"뭐래? 왔으면 13번 자리 좀 치워줘요. 음식 5개 한번에 들어와서 힘드니까.”

두 사람은 이제 꽤나 친해져서 서로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야. 나 여기 알바 아니야. 너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손님도 아니잖아요? 맨날 공짜로 게임하는 주제에.”

"하! 소연이 너까지 날 괄시하냐? 진짜 일끝나고 왔는데 또 일을 시키는건···.”

"그러니까 볶음밥 먹기 싫다는 거죠? 창범 오빠 올 줄 알고 같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몇 번 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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