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5. 여대 잠입-75-
'됐다!'
박회장의 항복선언이 나오는 순간 도훈은 질외 사정을 위해 지수를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적인 사정.
공교롭게도 사정액은 한창 방아 찧기에 열중이던 금자의 등판으로 흩뿌려졌다.
"큭!"
"앗!"
난데없이 정액을 뒤집어쓴 금자는 행위를 중단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쓸데없이 과몰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게 무슨 꼴이람?'
갑자기 현타가 온 금자를 고스케가 칼로 위협했다.
"넌 이제 필요 없다."
"아앗, 사, 살려주세요! 다시 할게요."
금자는 섹스를 중단한 것에 고스케가 화가 난 줄 알고 그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고스케는 아까 손목을 묶었던 빨랫줄을 가지고 금자를 꽁꽁 묶을 뿐이었다. 이어 유리까지 함께 포박한 고스케는 쓰러진 지수를 보살피고 있던 도훈에게 명령했다.
"넌 박회장의 딸을 데리고 나와 함께 지하실로 간다."
"지, 지하실이요?"
"가보면 알아."
고스케는 완전히 탈진해버린 박회장을 칼로 위협하며 지하실로 이동했다. 금자와 유리는 의자에 꽁꽁 묶인 채 지하실로 사라지는 네 사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하실로 내려온 고스케가 박회장을 향해 말했다.
"금고를 열어."
"······."
박회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지하실 비밀 통로를 열었다.
그러자 이번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우리 집에 이런 곳이!"
지하실에 거의 내려온 적 없던 지수는 박회장이 열어 보인 비밀의 공간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스케가 음흉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설마 제 딸에게도 안 알려줬나? 그러다 길에서 객사하면 유산도 못 물려줬을 것 아니야? 하여간 구두쇠 같은 노인네 같으니라고. 죽을 때까지 안고 갈 작정이었나?"
고스케는 인질들을 칼로 위협해 비밀 금고 안으로 몰아세웠다.
발가벗은 박회장과 도훈, 지수는 고스케가 시키는 대로 속절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금고방에서 고스케가 전등을 켰다. 그의 행동으로 보아 이미 사전에 금고방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놀라는 눈치군. 내가 어떻게 여길 알아냈는지 궁금한가?"
"······."
"박회장 당신은 늘 현금을 집으로 가져오게 했지. 언젠간 한번은 사과 2박스 분량의 현금이 통째로 사라지지 않겠어? 분명 이 집구석 어딘가에 돈을 보관하는 금고가 있다는 소리잖아?"
"······."
"그래서 철우가 돈에다 위치추적기를 설치했다고 하더라고. 추적기 신호를 따라가 보니 이런 곳이 발견되었고."
"네 놈들! 처음부터 나를 배신할 계획이었나?"
"쯧쯧. 불쌍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어차피 유리 정도를 제외하면 다 너를 배신할 생각 뿐이었어. 아, 죽은 운전수도 있구나. 어쨌든 그만큼 당신이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을 탓하라고."
"으으!"
"철우는 금고 형태가 범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오랫동안 설치한 회사를 수소문했더랬지. 알아보니 기가 막히더군. 이중보안 잠금에다가, 비번을 잘못 입력하면 그대로 폭발하도록 다이너마이 트가 내장되어 있다지 뭐야?"
"······."
"하지만 네 딸년까지 여기 데려온 이상 절대 자폭은 못 할 거야. 아직 창창한 네 딸년 인생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야."
고스케가 지수를 금고로 끌고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박회장이 금고를 여는 척하면서 동귀어진을 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봐, 대머리. 너도 살고 싶다면 그년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할 거야. 만에 하나 작당을 벌였다간 네 놈 목이 가장 먼저 떨어질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도훈을 데려온 이유는 지수를 감시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금고의 문이 열렸을 때 돈을 나르기 위한 짐꾼의 역할이었다.
"자, 이제 어서 금고를 열어라."
금고의 비번을 해제하기 전 박회장이 고스케를 향해 사정했다.
"고스케, 이것 하나만은 약속해다오. 안에 있는 것은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 하지만 내 딸 목숨만은 꼭 살려주겠다고."
"흥. 너 때문에 사채빚에 시달려 죽은 사람들도 그렇게 애원하지 않았던가? 난 네놈이 단 한 번이라도 인정을 베푼 역사를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 나는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아니, 죗값을 달게 받는다고 생각하겠다. 하지만 내 딸은 아버지를 잘못 둔 죄밖에 없지 않나?"
"…좋아. 약속하지."
고스케는 인정을 베푸는 척했다. 사실 박회장은 딸의 목숨이라도 살리기 위해 금고를 개방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론 헛짓을 한 셈이었다. 어차피 고스케는 여자들을 죽일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남자들은 모두 죽일테지만.'
고스케는 최철우 일당이 밀항을 준비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전에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 놓은 상태였다. 저택에 일하는 늙은 하녀가 묶여 있는 지수와 유리, 그리고 금자를 발견할 시각에는 이미 그는 현해탄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차후 수배가 떨어지더라도 본토 일본인인 그는 충분히 잠적할 자신이 있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범죄를 가지고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했다.
박회장은 고스케의 말을 믿고 금고의 비번을 풀었다.
동시에 지문인식까지 하자 거대한 금고문이 덜컹 하고 개방되었다.
흥분한 고스케는 배의 타륜 같은 원형 손잡이를 힘차게 돌렸다.
이윽고 드러난 어마어마한 양의 재화에 고스케는 눈을 떼지 못했다.
"미친, 빠가야로···. 대체 얼마를 긁어모은 거야?"
금고 내부는 원룸 하나 정도의 사이즈였다.
정중앙에는 5만원권 현금 뭉치가 침대처럼 높게 쌓여 있었다.
그중 1/3가량은 한국 돈이 아닌 100달러짜리 지폐였다. 돈으로 된 침대를 건너 구석에는 뭉텅이로 된 다양한 채권증서와 1kg짜리 골드바가 벽돌을 쌓아논 것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백억은 넘어 보이는 거금. 심지어 죄다 현금이라 추적될 우려도 없었다.
"으하하하하!!!"
고스케가 미친 사람처럼 광소했다. 예상대로 어마어마한 현금이었다. 비록 박회장의 다른 재산들은 부동산이나 시중 은행권에 묶여 있겠지만, 이것만 해도 한 사람이 평생 놀고 먹기에도 부족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에잇!"
그때였다. 고스케가 금고로 들어가 정신이 팔린 순간, 갑자기 밖에 있던 박회장이 어깨로 금고 문을 들이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안에서 금고 문을 못 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고스케가 돈에 정신이 팔려 안으로 들어간 틈을 타 최후의 반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회장이 간과한 것은 문짝의 무게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과, 자신의 힘이 그에 훨씬 못친다는 것이었다. 문이 쾅- 닫히지 못하고 스스륵 밀리는 사이, 사태를 깨달은 고스케가 안에서부터 검을 밖으로 내질렀다. 검 끝은 하필 박회장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사채업자로 이름을 날려온 거물 박회장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푸욱-
"윽!"
그리고 닫히던 문은 고스케의 일본도에 튕겨 멈추었다. 등 뒤로 칼날이 뚫고 나오는 끔찍한 광경에, 충격을 먹은 지수는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비록 악인이라곤 하나 아버지의 충격적인 살해 장면을 받아들이기에 그녀는 너무나 나약했다.
도훈이 재빨리 쓰러지는 지수를 부축하는 사이 금고 문을 열고 고스케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는 심장을 관통 당해 즉사한 박회장의 주검을 향해 중얼거렸다.
"흥, 노인네 끝까지 발광하다 뒈지는군. 더 괴롭게 죽였어야 했는데. 퉷!"
고스케가 박회장의 시체에 악담을 퍼붓는 사이 도훈은 혼절한 지수를 구석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때 고스케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커다란 마대를 몇 개 꺼내 도훈에게 던졌다.
"이봐 대머리. 박회장처럼 칼 맞고 싶지 않으면, 안에 있는 돈여기에 싹 다 쓸어 담아. 양이 꽤 돼서 두 시간 이상은 차에 퍼 날라야 하니 서두르는 게 좋을걸?"
도훈은 말없이 빈 마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제껏 쩔쩔매던 모습과 달리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니가 담아, 씨발 놈아."
고스케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었다.
"뭐, 뭐라고?"
"니가 쳐 담으라고 좆같은 새끼야. 아놔, 씨발 진짜 가만히 있으니까 사람을 졸로 보나 쪽바리 새끼가."
도훈은 이제껏 참았던 울분을 쏟아내듯 험한 말을 내뱉었다.
내친김에 머리에 쓰고 있던 가발까지 벗어 던져버렸다.
"어디서 개새끼가 자꾸 대머리래? 지금도 내가 대머리로 보이냐?"
"너, 너 머리가· 어떻게··. 이 새끼, 너 정체가 뭐야?"
갑자기 도훈이 가발을 벗어 던지자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40대인 줄로만 알았던 도훈이 20~30대 정도로 확 어려진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훈은 홀딱 벗은 상태에 적수공권이었고, 칼을 쥔 쪽은 고스케였다. 그는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도훈이 겁에 질려 실성한 것으로 보았다.
가끔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눈 앞에서 사람이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을 보고 머리가 헷가닥 했다고 여긴 것이다.
"죽고 싶나? 너 아니어도 여기 있는 돈 내가 못 옮길 거 같아?"
"씨발 거 존나게 말 많네. 너 잠깐만 기다려. 옷 좀 입고 보자."
도훈은 계속 홀딱 벗고 있는 것이 거슬렸는지, 로시를 향해 아이템을 전송 받았다. 도훈이 갑자기 등 뒤에서 마법처럼 팬티를 꺼냈다.
"어엇? 뭐, 뭐야?"
해당 팬티는 정액양을 늘려주는 아이템이었는데, 도훈은 급하게 입을 것이 없어 그것이라도 걸쳤던 것이다. 팬티를 다 입은 도훈은 본격적으로 고스케와 대치했다.
"아무튼 박회장의 복수는 네 놈이 대신해준 셈이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뭐, 뭐라고? 너 이 자식 누가 보냈어?"
도훈이 칼 앞에서 너무나 침착하자 고스케도 점점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대신 복수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도훈이 단순한 대머리 과외 선생이 아닌 신분을 위장하고 숨어있던 첩자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래도 새끼야, 어디서 요즘 같은 시대에 칼을 들고 설쳐? 미쳤냐?"
"이, 이 새끼가 감히!"
계속되는 욕설에 고스케가 끝내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그는 도훈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지만, 아까 등뒤에서 불쑥 팬티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그가 다른 무기를 숨겨놓았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더 줘선 안된다. 속전 속결!'
도훈이 시간을 끈다고 생각한 고스케는 비천류 검술에서 가장 빠르다는 수직 베기를 통해 도훈을 일도양단하려고 했다.
두꺼운 대나무도 단숨에 쪼개버리는 굉장한 검격이 날아오는데도 도훈은 무사 태평이었다. 오히려 그는 날아오는 칼날을 보면서도 느리다는 생각을 했다.
'느려터졌어.'
실로 눈깜짝 할 사이, 고스케의 검이 도훈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도훈은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합장을 하듯 공중에서 검날을 잡아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반사신경이었다.
"으읏!"
이쯤되자 오히려 당황한 쪽은 고스케였다.
내리치는 검날을 맨손으로 잡다니! 듣도 보도 못한 무위에 고스케가 재빨리 검을 거두었다. 아니 거두려했다.
하지만 도훈의 손에 붙잡힌 고스케의 검은 나무 기둥에 박힌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팬티만 입고 있던 도훈이 씩 웃더니 팔을 옆으로 비틀었다.
깡-!
그러자 검날이 옆으로 툭 부러져 버렸다.
무기의 절반은 잃은 고스케는 멘붕에 빠졌다.
"빠, 빠가야로!"
고스케의 검은 수백년 째 일본도를 만들어온 장인이 벼룬 명품이었다. 그것도 가장 강도가 뛰어나고 절삭력이 우수하다는 다마스커스 강을 수천번 내리쳐 만들었다. 도훈은 그것을 수수깡 부러뜨리듯 반으로 부러뜨린 것이었다.
"당황했니?"
"뭐, 뭐라고?"
"넌 당황하면 일본말 하더라. 쪽바리 근성 어디 못 가네."
"이잇!"
절반 밖에 안남은 검이었지만, 고스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소태도라 불리는 검신이 짧은 호신용 검술도 연마했기 때문에 장검이 아니어도 공격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도훈도 더 이상 봐주지 않았다.
부러뜨린 검 조각을 암기처럼 뿌리며 고스케를 공격했다.
날아오는 총알도 쪼갠다는 고스케였지만, 도훈이 뿌린 암기의 속도는 총알보다 빨랐다. 쳐낸다고 휘두른 순간 이미 부러진 검날은 고스케의 명치를 꿰뚫고 반대편으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쿠헥!"
가슴이 뻥 뚫인 고스케가 말을 잇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총만 아니면 상대가 없다고 생각했던 고스케였다. 아니, 총을 든 자라도 지금 거리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검귀라 불리던 고스케는 도훈의 일격에 즉사했다.
도훈은 무릎 꿇고 죽은 그를 보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이건 분명 정당방위였다고. 알지?"
[고스케가 먼저 살수를 날렸기 때문에 정당방위가 인정됩니다.
]
고스케를 처리한 도훈은 바닥에 쓰러진 박회장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미쓰리의 숙원이었던 대리복수는 고스케가 해준 셈이 되었다.
'흠. 악인의 최후란 늘 이렇게 허망하구만. 저 많은 돈을 그냥 가다니.'
도훈은 금고 안을 슬쩍 확인하고는 마법의 문고리로 내부를 연결했다. 그리고는 다시 금고 문을 닫았다.
"그나저나 슬슬 깨어날 때가 됐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