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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73화 (1,340/2,000)

1356. 여대 잠입-56-

* * *

아영을 무사히 바래다준 도훈은 잠시 차를 정차하고 인도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피해가지 않게 구석으로 걸어간 다음 담배를 꺼내 물었다.

[왜 차 안에서 안 피우시고요?]

'방금 떡쳐서 그런가 영 답답해서. 환기도 좀 시키고.' 도훈은 차량 네 쪽의 창문을 모두 내려놓은 상태였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놨기 때문에, 곧 내부 공기가 순환될 예정이었다.

담배를 꺼내문 도훈은 그답지 않게 살짝 현타가 밀려왔다.

'와, 근데 연속으로 떡을 쳐서 그런가 간만에 현타좀 오네.

'[두 번 연속이라서가 아니라 아직 한 번이 남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하긴.' 끝이 보일 때 사람들은 최후의 힘을 쥐어짠다.

하지만 끝내도 끝낸 게 아닐 적에는 기운이 빠지고 만다.

도훈은 지금 자신이 처지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간만에 서현이랑 아영이 돌려줬으니 오늘은 그만할까?'

[희주양이랑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약속이야 깨라고 있는거고.'

[주인님, 현타가 제대로 오신 것 같군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셔야 합니다. 주인님에게 섹스는 곧 내공수련이니까요.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힘들어도 묵묵히 정진하셔야 죠.]

로시의 격려에 도훈도 점점 마음을 다잡았다. 현타는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정력이 강한 도훈이라도 감내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맞지.'

[그리고 주인님이 저번에 수탉 이야기도 해주셨지 않습니까?]

'수탉?'

[왜 양계장에 암탉은 여러마리고 수탉은 한 마린 줄 아느냐고요.]

'아.'

[파트너가 바뀌면 수탉도 곧잘 힘을 낸다면서.]

'그런 농담을 하긴 했었지.'

하지만 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그 수탉은 매일 파트너라도 바뀌지, 나는 돌려막긴데.'

도훈은 심적으로 지친 근원적인 원인이 반복되는 섹스에 있다고 보았다. 차라리 미션 같은 것을 수행하면서 여자라도 바뀌면 새로운 여자를 맛보는(?) 즐거움이라도 있겠지만, 비슷한 여자들과 반복적인 로테이션을 수행하는 것이 내공증진에는 도움은 될지언정 굉장히 지루하고 고난한 과정이란 걸 인식한 것이었다.

특히 본인이 업적 수행에 바빠 로테이션 좀 밀렸다고, 징징대고 투정부리는 후배들을 보자 약간의 염증도 느끼고 있었다.

'…아니야. 아무리 힘들어도 이건 나를 위해서니까. 해보자고 또.'

겨우 현타를 물리친 도훈이 차에 올랐다.

그 사이 공기순환이 끝났는지 차량 내부에 냄새도 모두 빠져 있었다.

'하여간 차에서 떡치면 이게 문제라니까. 뭔가 미묘한 냄새가 차에 남아버려서.'

[희주양에게 들킬까봐 그런 건가요?]

'희주가 바보가 아닌이상 바로 눈치챌 거야. 그래도 이제 정화를 시켰으니 덜하겠지만.'

도훈은 차를 타고 이동하며 희주에게 연락했다.

"어디냐?"

-옵빵! 이제 수업 끝났어요? 기다렸잖아요.

"수업은 아까 끝났는데, 끝나고 잠시 조모임 좀 들르느라고. 아직 학교야?"

-전 점심 먹고 집에 왔지요. 오빠가 오늘 보자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용.

희주는 무척 텐션이 올라간 상태였다.

아마도 도훈이 불쑥 연락해서 수업 끝나고 보자고 할 때부터 기대감이 가득 찬 것 같았다.

"뭐해? 저녁이나 먹을래?"

-저녁이요? 오빠 저녁은 저 아니었어요?

희주가 농을 던지며 깔깔댔다. 잠시 현타에 빠졌던 도훈은 희주의 활기찬 태도에 점점 기운을 되찾았다.

"뭐래 이게. 혼나려고."

-그럼 저희 집으로 오실래요? 제가 오빠 저녁 차려드릴게요.

"너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에요. 저 자취하는 여잔데요?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여자. 히히.

'하긴 희주가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었던 건 자취를 했기 때문이겠군.'

"알았어. 그럼 집 주소 불러."

-학교에서 별로 안 멀어요. 아, 근데 집이 엉멍인데…. 오빠 최대한 천천히 오세요?

"뭐래. 밟으면 10분이야."

-그니까 천천히 오시라고요. 청소 좀 하게.

희주가 문자로 주소를 알려준다면 전화를 끊었다.

[역시 희주양은 언제나 생기발랄하군요.]

'저래서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미워하긴요? 사실상 주인님이 가장 아끼시는 분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나는 정음이가 최앤데.'

[라고 하기엔 희주양만 지나치게 편애하신 것 같은데요?]

도훈은 로시의 지적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마법의 정액을 가진 그였지만, 얼굴을 업그레이드 해준 건 희주가 거의 유일했다. 몸매는 워낙 좋았던 그녀이기에, 얼굴이 바뀌자 순식간에 정음을 위협할 만한 미녀로 거듭났다.

'음…. 좀 그런가?'

[당연하죠. 다른 8선녀들과 점점 급차이가 나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해줄거면 모두 해주시던가, 아니면 모두 안했어야 죠.]

'8명을 모두 얼싸를 해주란 말이야? 얼싸는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본인이 싫다면 그만이지만, 최소한 희주양과 같은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긴 그것도 좀…. 그 부분도 일단 생각좀 해보고. 한 과에 너무 예쁜 애들이 우글거리면 그것도 이상할 것 아니야.'

[이미 지금도 충분히 이상합니다.]

도훈은 희주 말대로 최대한 늦게 희주의 집에 도착했다.

희주는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학교와의 거리도 그렇고 허름해 보이는 외관이 딱히 좋아보이는 조건은 아니었다.

도훈은 투룸을 얻어 같이 동거하는 나연과 연두의 집을 떠올렸다.

'희주가 잘사는 집 애는 아닌가봐.'

[그런가요?]

'보통 딸자식 키우는 집이면 무리해서라도 좋은 원룸을 구해주려고 하거든. 근데 여긴 상당히 외졌고, 가로등도 별로 없네. 아마 서울에서도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하는 곳이 아닐까?'

[희주양이 평소에 화려만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의외로 소탈한 모양입니다.]

'그러게.'

도훈은 3층에 위치한 희주 집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건물의 보안도 허름해서 공동 현관문에 비번같은 것도 없었다.

계단 층계 역시 청소가 안 돼 쓰레기들이 굴러다녔다.

'와, 생각보다 심한데.'

[평범보다는 그 이하가 아닐까 싶네요.]

'희주가 고학생이었나? 왜 근데 한 번도 티를 안냈지?'

도훈이 알기론 희주는 앓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존심이 굉장히 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는데 버튼이 망가졌는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도훈은 한숨을 쉬더니 문을 쿵쿵 두드렸다.

쿵쿵-

"희주야. 나 왔어."

안에서 곧 소리가 들려왔다.

"앗, 천천히 오시라니까요! 잠깐만요! 찌개 불 좀 줄이고요."

"…찌개?"

잠시 후 희주가 마중 나왔다. 현관문을 여는데 도훈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지 앞치마를 걸쳤는데, 안에 아무것도 안입은 모습이었다.

"억! 야, 너 뭐야?"

"왜요? 오빠 저녁 해주려고 요리하고 있는데."

"아, 아니 잠깐 일단 들어가자."

도훈은 혹시라도 누가 볼까봐 화들짝 놀라 희주를 억지로 들이 밀었다. 현관문을 닫고 나서 도훈이 희주를 나무랬다.

"야.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

"보긴 누가 본다 그래요? 그리고 보면 또 어때요? 어차피 앞치마는 입었는데."

"앞치마 말고는 안 입었잖아!"

"히히? 들켰나?"

희주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앞치마로 가려진 앞과 달리 뒤는 완전히 트여 엉덩이가 다 보이고 있었다.

"어때요? 저녁보다 제가 더 땡기지 않아요?"

"뭐래 진짜?"

그때 보글보글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피시식- 불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주가 깜짝 놀라더니 가스레인지로 뛰어갔다.

"아차차! 냄비 넘친다!"

후다닥 달려가는 희주를 보고 도훈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예상대로 허름한 외관에 걸맞은 비좁은 집이었다. 도훈이 놀러가본 여자들 집 중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 같았다.

그마저도 창문을 반쯤 거린 간이 행거와, 거기에 수북히 걸려있는 희주의 옷들 때문에 방은 더 좁아 보였다. 신발을 벗기 위해 현관 앞을 보는데, 신발장이 차고 넘칠 만큼 희주의 구두가 이러저리 흩어져 있었다.

'어유, 진짜. 옷 입는 건 좋아해서 또 엄청 사모았네.'

[희주양이 밖에선 티가 안날만 했네요. 저렇게 많은 옷과 구두를 매일 바꿔가니.]

희주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된 도훈은 괜히 마음이 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밖에서 식사하거나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할 걸 그랬나?'

[왜요?]

'희주가 민망해 할 것 같아서.'

[민망했으면 주인님을 집까지 초대했겠습니까?]

'하긴 그런가?'

[걱정 마시죠. 희주양은 언제나 그렇듯 씩씩한 것 같으니까요.]

"캬, 기가 맥히네요. 소주 안주로 딱인데."

희주가 찌개를 숟가락으로 떠서 간을 보며 말했다. 코믹한 그 모습에 도훈도 빵 터지고 말았다.

"아니, 뭘 끓인 건데?"

"김치 찌개? 아니 짜글이에 가까워요. 바짝 쫄였거든요.

오빠 소주한 잔 할래요? 아, 술 못하시나?"

"술은 무슨. 차 가지고 왔다. 근데 나 술 못하는 거 아니야.

그냥 안 먹는 거지."

"원래 못 마시지 않았어요?"

"그게 아니라 그냥 자제하는 거라고."

"그럼 한 번 보여줘요. 나 오빠랑 술 먹고 싶은데. 뭣하면 우리집에서 자고 가면 되잖아요."

도훈은 희주가 자는 침상을 보고 생각했다.

'저 메트리스만 달랑 놓인 침대엔 혼자 자기도 벅차 보이 는데.'

"갑자기 술은 왜 근데?"

"아니, 오빠가 와서 간 좀 보시라니까요? 그냥 딱 소주 안주에요."

"나참."

도훈이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후 희주가 조그만 소반에 공기밥 두그릇과 찌개, 그리고 소포장된 김 한 통을 꺼내왔다. 반찬이라곤 김 하나가 전부였다.

"차린건 없지만 맛있게 드세요."

"진짜로 없는데?"

"뭐라고요? 와 진짜, 오빠 매너."

도훈은 일부러 희주가 민망하지 않도록 농담을 던졌다.

희주도 딱히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희주양은 씩씩한 여학생이군요.]

'그러게. 화려한 학교생활 뒤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 상을 내온 희주는 갑자기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왔다.

새 것도 아니고 먹다 남았는지 2/3만 차 있었다.

"술까지는 됐고, 반주 정도는 괜찮죠?"

"왜 자꾸 날 술을 먹일라고해?"

"흐흐. 오빠가 취해야 차타고 집에 못 돌아갈거 아니에요.

술 깰때까지 오빠 따먹을라고 그렇죠."

"와, 씨. 넌 진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정도였다.

희주는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근데 그 앞치마는 계속 입고 먹을 거야?"

"왜요? 그냥 이것도 마저 벗어요?"

"아, 아니 그냥 민망해서 그렇지."

"오빠도 그럼 벗으시던가?"

"밥먹자."

"넹."

도훈과 희주는 조그만 원룸에서 소박하게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도훈은 음식이 너무 맛있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외로 희주의 음식 실력이 수준급이었던 것.

"야, 너 요리 잘하는데?"

"히히. 맛있어요? 오빠한테 칭찬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잘해? 이제 겨우 스무살인데."

"저요? 저 자취한 지 오래됐어요."

"엉?"

"아, 저희 집이 경기도 무지 시골인데 근처에 학교가 없어서 통학버스 타고 다녀야 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부모님이 저랑 동생이랑 읍내에 방 얻어서 자취 시켜 줬거든요. 고1때부터 쭉."

"아…."

반주가 돌아 얼굴이 조금 벌게진 희주가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오빠를 집에 부를까말까 많이 고민했어요."

"왜?"

"그냥. 오빠는 부모님도 미국에 사시고…. 암튼 엄청 잘 살잖아요."

"아니야. 새로 이사간 집은…. 그냥 운 좋게 얻은 거잖아."

"암튼요. 저랑 비교하면 완전 차이나죠. 저희집은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지으셔서 보시다시피…. 암튼 뭐 그래요."

도훈은 괜히 민망해지는 얘기에 화제를 돌렸다.

"야, 근데 나 온다고 방 청소 한다더니 하나도 안 했네?"

"이게 한 거예요."

"이게 한 거라고?"

"한다고 했는데 옷이 너무 많아서 티가 안나서 그렇지."

"아니 무슨 집에 옷이 저렇게 많아?"

형편도 어렵다면서.

도훈이 가까스로 덧붙이려던 말을 멈추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희주도 눈치가 있었기에 도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저 비싼옷 하나도 없어요."

"응?"

"저기 걸린 거 다 합쳐도…. 암튼 다 보세구요, 시장에서 산 거에요. 저기 저 호피무늬 원피스 보여요?"

희주가 유독 눈에 띄는 레오파드 무늬의 원피스를 가리켰다.

"저거 인터넷에서 5,000원 주고 산 거예요. 무배로. 제가 옷이 많다고 해도 웬만한 애들 1벌 값으로 10벌도 넘게 샀을 걸요?"

"아, 그, 그래?"

"뭐, 저야 몸매가 되니까. 거적대기만 걸쳐도 예뻐 보이긴 하죠. 히히."

알고보니 화려하게 보였던 희주의 옷은 죄다 싸구려 였던 것. 하지만 희주 말대로 옷걸이가 너무 좋아서 이제까지 티가 안났던 것이었다.

새삼 희주가 고생하며 살았겠거니 하는 생각에 도훈은 마음 한켠이 답답해졌다.

'그런거였네.'

[뭐가요?]

'희주가 왜 고등학교때 반항적이었는지 어렴풋 알 것 같기도 해.'

[가정 형편 때문에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저렇게 꾸미기 좋아하고 활발한 여자 애가 집이 가난해서 늘 억누르고 살았을 거 아니야. 그 나이 땐 충분히 그럴 수 있거든.'

[전혀 예상도 못했습니다. 희주양이 이런 타입일지는.]

술이 조금 들어간 희주는 얼굴이 발그래해져서 말했다.

"저 근데 오빠한테 사실 고백할 거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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