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 2학년2학기-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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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짱’이 되어보는 걸 상상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인 여자를 볼 때, 학교 일진에게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볼 때, 아니면 몸에 문신을 한 양아치가 험악한 말로 위협할 때.
대다수 남자들은 속으로만 분노할 뿐 감히 나서지 못한다. 불의를 보고도 모른 척 눈감아야 할 때의 무력감. 이는 자존감을 바닥까지 추락시키며 자기비하에 빠지게 만든다.
내가 싸움만 잘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이런 아쉬움에 울분이 쌓이는 것도 잠시, 끝내는 침묵하고 동조하는 비겁자가 되고 만다.
과거의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부 잘하기로 유명해서인지-학교 시스템에서 우등생은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불리한 대접을 받는 일은 없었지만, 살면서 몇 번이나 불의에 눈감은 적이 많았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맞을까 봐, 아니 맞아서 쪽팔릴까봐. 괜히 나섰다가 비웃음 살까 봐.
나에겐 그들을 제압할 특별한 힘도 기술도 없었고, 빽도 돈도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두뇌를 타고났지만, 신체 조건은 평균 이하였다. 시쳇말로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런 평범한 삶을 살다가 185cm가 넘는 건장한 이도훈으로 다시 태어났다. 타고난 피지컬은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고, 이제는 거기다 강력한 내공에 무공까지 갖추었다.
과거엔 법을 먼저 찾았다면, 이제는 주먹이 더 빠르다.
나쁜 놈들에게 더 이상 빌빌댈 필요가 없었다.
"기회를 주겠다."
나는 주먹을 말아쥔 채 달려드는 놈들에게 경고했다.
"저 새끼 뭐라는 거야?"
"기회를 준다는 것 같은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놈들이 잠시 주춤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살려는 주마."
"푸하하하!"
"미친 새끼."
"웬 또라이가 왔어?"
물론 상대가 응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 흉기로 변해버린 나에 대해 미리 고지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각목을 든 상대가 달려들었다.
"헛소리 말고 뒈져 새끼야!"
끝에 못을 박은 각목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끝에 삐뚤빼뚤 박힌 못 대가리가 굉장한 악의를 드러냈다.
놈은 내가 못에 박혀 병신이 되어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자비를 둘 필요 없지.
강화된 내공 때문인지, 안 그래도 평균 이상이던 동체시력이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머리로 날아들며 긴 호를 그리는 각목의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느릿하게 보였다.
‘이것도 내공 증진의 효과인가?’
[네. 주인님의 모든 신체기능은 현재 초일류 운동선수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훗, 그렇단 말이지?’
위에서 아래로 머리를 쪼갤 듯 내리치는 단순한 동작.
나는 반 박자 빠르게 거리를 좁힌 뒤 그대로 정권을 내질렀다. 마치 무술의 한 장면 같은 깔끔한 움직임. 내가 해놓고도 어리둥절할 만큼 깔끔한 동작이었다.
‘얼레? 이게 뭐람?’
[주인님은 현재 칠성권을 5성까지 습득한 상태입니다.
무형(無刑)의 권술인 칠성권은 가장 빠르고 강력한 타격을 추구합니다. 모든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최적의 동선을 찾아 움직입니다.]
‘오, 절권도 같은 동작인데?’
절권도.
부르스 리라고도 불렸던 이소룡이 창안한 무술.
모호함을 배격하고 극실용을 추구했던 그의 무술사상에 기반하여 중국무술 특유의 형이나 투로 수련 등을 배제하며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추구하던 실전 무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날아간 정권이 놈의 가슴팍에 닿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차에 받힌 것처럼 두 발이 붕 떠서 멀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내가 봐도 기가 막히는 파워였다.
"쿠헉!"
단 한방.
놈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엔 충분했다.
표정부터가 완전히 달라졌다.
"저, 저게 뭐야?"
"방금 내가 뭘 본거지?"
"야이 씨, 쫄지마 씨발. 저 새낀 혼자야."
하지만 그 말에서 나는 놈들의 확실한 공포를 느꼈다. 놈들은 단 한 번의 주먹질에 패닉에 빠진 것이었다. 이럴 땐 딱 한마디만 덧붙이면 된다.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덤벼."
"뭐, 뭐?"
"이런 미친놈이!"
"어디서 무술 좀 배웠냐? 니가 아주 죽을라고 환장을 했구나?"
하지만 다들 개처럼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정작 나에게 덤벼드는 놈은 없었다. 옛말이 딱 맞다.
짖는 개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
"아니면 내가 갈까?"
움찔!
발걸음 내딛는 방향마다 놈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섰다.
완전히 겁먹은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희열감이 차올랐다.
‘로시, 이거 너무 강력한 거 아니냐?’
[자제하십시오. 비록 오성의 칠성권이라도 맨주먹으로 사람을 때려죽이기엔 충분한 힘입니다.]
‘알았어. 두 번째부터는 살살할게.’
칠성권은 연속된 주먹질에 배가되는 위력을 지닌다.
첫 주먹의 파괴력이 성인 남자를 날려버릴 정도면 일곱번 째 주먹에 가기도 전에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강화된 내공이 주먹에 실려 평소보다 훨씬 힘이 배가된 것 같았다.
‘로시. 내공을 조절하는 건 어떻게 하지?’
[주인님께서 몸소 느끼셔야 합니다. 무림의 고수들은 닭잡는 데 소잡는 칼을 꺼내지 않으니까요.]
‘그런가? 힘을 조절이라···.’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몸속에 넘치는 에너지에 정신을 집중했다. 배꼽 부근 단전 어딘가에서 펄펄끊는 기운이졌다.
‘오호라. 이게 내공이라는 건가?’
[벌써 느끼신 겁니까?]
‘그냥 느껴지는데?’
[역시 남다른 자질···. 훌륭하십니다 주인님.]
‘그러니까 이걸 조금만 꺼내쓰라는 말이지?’
[한 번 조절해 보십시오.]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면 단전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주먹 끝에 몰렸다. 웅웅- 하고 말아 쥔 주먹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의식을 집중해 몸속에 흐르는 기운을 조절했다. 마치 송유관의 벨브를 조이는 상상을 하자 주먹에 맺힌 기운이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하는 거였군?’
[어엇! 설마 벌써?]
‘대충 감 잡았어.’
[과연 천무지체!]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있게 되자 나는 좀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사실 누군가를 때려 죽일까 하는 두려움에 선빵을 치지 못한 것이었는데, 이 정도면 절대 사람이 죽을 정도는 아닐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죽엇!"
그때였다.
내공을 조절하는 법에 정신이 팔린 사이, 등 뒤에서 한 놈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덤벼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사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전후사방 360도 모든 곳에서 모든 기척이 느껴졌다. 당연히 등 뒤에서 달려든 놈의 기습은 실패로 끝났다.
나는 곧바로 놈의 손목을 낚아챈 다음 바깥으로 훽 꺾어버렸다. 한지연에게 흡수한 유술의 응용이었는데, 무공을 익히고 나니 단순히 기술만 알고 쓸때와는 효과가 전혀 달랐다.
팔이 꺾인 놈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그대로 칼을 놓치고 위아래가 뒤집힌 것이었다.
쿵-!
주먹까지 쓸 필요도 없는 허접한 놈들이었다.
‘로시. 혹시 이러면 칠성권이 끊기게 되나?’
[네. 칠성권은 연속 공격일 때만 활성화됩니다. 권각을 섞어 쓰거나 중간에 유술이 끼어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갑니다.]
‘생각보다 번거롭구만. 일곱 번 연속 주먹을 내질러야 콤보가 완성되다니.’
[그래서 칠성권인걸요.]
"저, 저럴 수가!"
"고수다!"
"야! 한 놈씩 덤비지 말고 동시에 덮치라고!"
일격에 한 놈씩 나가떨어지자 양아치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그래도 머리는 있는 놈인지 순식간에 놈들이 스크럼을 짜듯 부채꼴로 퍼져 겹겹이 둘러쌌다. 한놈이 타겟이 되더라도 다른 놈이 공격을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 같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부터 칼날까지 반창고로 감싸여진 칼은 끝만 살짝 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근데 칼은 왜 감아놓은 걸까요?]
‘일전에 들었는데 조폭들도 사람 죽여서 깜빵가는 건 겁난다더라고. 또 찌르다가 자기 손이 베이는 일도 잦고. 그래서 찔러도 사람이 안 죽도록 끝만 살짝 남겨놓는 다던가?’
[아하.]
"너희들 재밌는 걸 가지고 다니는구나?"
나는 단검처럼 보이는 칼을 쥐었다가 그대로 놈들의 대장을 향해 휙- 내던졌다. 투척술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놀랍도록 향상된 신체 능력에 힘입어 칼은 그대로 놈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갔다.
"우, 우앗!"
쒜에엑!
날아가는 단검의 속도는 번갯불처럼 빨랐기에 놈은 감히 피할 생각도 못 했다. 죽음을 예감한 놈이 눈을 질끈 감는데 단검은 아슬아슬 놈의 머리털을 스치며 등 뒤의 기둥에 정확히 박혀버렸다.
꿍-!
기둥에 박힌 칼자루가 부르르 떨렸다.
"미친!"
"코, 콘크리트 벽에다 칼날을 박았어!"
"혀, 형님, 저희 상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야 튀어!"
단검 투척 한방에 놈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쓰러진 놈들을 부축하더니 부리나케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는 굳이 도망치는 놈들을 막지 않았다. 그 중에서 딱 한놈만 막아섰다.
김양을 협박한 최실장이었다.
"어이, 넌 나랑 따로 할 얘기 있지 않아?"
"이, 이씨! 오지마! 이 년 죽여 버릴거야!"
갑자기 놈이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더니 곁에 있던 김양의 목덜미에 들이댔다. 정말 뼛속까지 양아치 새끼였다. 나는 낯빛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죽여."
"뭐, 뭐?"
"나를 배신하고 함정에 빠뜨린 년을 내가 봐줄 것 같았어? 잘됐네. 손에 더 피 안 묻혀도 되니. 봉순이는 니가 죽이고, 나는 너를 죽이면 되겠다, 그지?"
나의 대답에 김양이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녀도 나를 함정에 빠뜨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협박이 통하지 않자 갑자기 최실장이란 놈이 칼을 내동댕이치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가 미쳐가지고!"
놈은 비굴하게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나는 김양에게 눈치를 주어 옆으로 피하라고 했다. 김양이 안전한 곳으로 물러서자 나는 놈의 멱살을 들어쥐고 들어 올렸다.
"그러게 미쳐가지고."
스파르탄 벨트의 힘에 내공이 더해지자 악력이 말도 안될 정도로 세졌다. 70Kg는 너끈히 나갈 것 같은 놈이 한손으로 들어 올려졌다.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파워였다.
"흐, 흐익!"
"넌 좀 맞자."
"제, 제발!"
빡!
최대한 살살 힘을 주어 뺨을 갈겼는데도 입속에서 하얀 물체가 두 개나 튀어나왔다. 뺨다구 한번에 이빨이 부러진 것이었다.
"좆만한 새끼가 누굴 담구려고."
"크흑, 혀, 형님 제발!"
"난 너같은 동생 둔적 없어 새끼야!"
빡!
다시 한 번 손등으로 돌려쳤다.
뺨따구 두 번에 놈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퉁퉁 붓고 말았다. 입에선 질질 핏물이 흐르고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다.
[주인님!]
‘왜?’
[그렇게 내공을 실었다간 사람이 죽습니다!]
‘아···. 흥분하니까 자제력이 떨어지는 군.’ 나는 거의 기절한 놈을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놈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쓰러졌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김양이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흐,흑, 자, 잘못했어요."
나는 말없이 김양을 안아주었다.
"미안해, 늦어서."
"···죄송해요. 최실장한테 협박을 당해서, 끄흑!"
나는 딱히 김양이 밉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녀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었다.
괜한 나의 복수에 그녀를 휘말리게 해 죄스러운 마음 뿐이었다.
"저, 정말 저도 죽이실 건가요?"
김양이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여기 왔을 때 니가 그랬잖아, 함정이라고.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해."
김양이 배신하긴 했지만, 결국엔 내 편으로 돌아섰다.
그것으로 나는 김양에게서 받은 배신감은 충분히 보상받았다. 여기서 오직 죽일놈은 단 한놈이었다.
"흐흑. 이제 어쩌실 거예요?"
김양이 기절한 최실장을 보고 물었다.
박회장의 끄나풀을 조졌으니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냐는 소리였다.
"나한테 자세히 말해봐.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김양은 하나도 빠짐없이 있었던 일을 모두 나에게 알려 주었다. CCTV에 파일을 빼낸 장면이 찍히는 바람에 덜미를 잡혔다는 것과, 그것을 묵인하는 댓가로 최실장이 자신을 겁탈한 것. 그리고 혼자서 나를 잡기 위해 조직을 동원하지 않고 아는 양아치 패거리를 불러들인 것까지.
내용을 파악하자 결국 조질놈은 최실장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알았어. 오늘 너무 고생많았어. 먼저 집으로 돌아가 있어. 내가 다 해결할게."
"저, 저 혼자서요? 무서워요. 같이 있을래요."
"아니야. 앞으로 더 끔찍할 거야. 차라리 보지 마."
"아···. 저, 저 사람 진짜로 죽일 거예요?"
"그건 두고봐야지. 쓸모가 있는지 말이야."
나는 김양을 어르고 달래 집으로 먼저 돌려보냈다.
리모델링 공사 중인 건물에 이제 기절한 최실장과 나만 남았다.
나는 주변에서 빈 의자를 가져와 쓰러진 최실장 앞에 놓고 앉았다. 아직 역용술이 풀리지 않은 험악한 얼굴이 이럴때는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일어나 새끼야."
나는 최실장의 머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최실장은 뺨 두 방에 기절했는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새끼가 아직 덜 맞았구나?"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최실장이 번쩍 눈을 떴다. 그 얍삽한 잔머리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