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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47화 (1,214/2,000)

1230.. 2학년2학기-45-

'그래? 그럼 바로 구입할 수도 있다는 거야?'

[네. 경매에 올린 상대가 마켓에 접속해 있다면 말이죠.]

'오, 그럼 잠시 기다려 볼까?'

도훈은 시간 난 김에 서고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비록 가상 현실이긴 하지만, 서고의 너비는 운동장만큼 넓었다. 각각의 책장은 2m 높이로 각종 비급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도훈은 유사 이래 탄생한 무공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놀라운 뿐이었다.

'와, 이거 다 익히고 나면 천하제일인이 되는 건가? 근데 그전에 죽겠지? 인간은 길어야 100살밖에 못 살테니 말이야.'

[꼭 그렇진 않습니다.]

'뭐? 혹시 다른 차원에선 수명도 달라? 너무 불공평한데 그건.'

[아닙니다. 인간종의 기본형은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일부 무공 중에는 장생의 효과를 내는 것도 있습니다. 도가 계열의 무공이 그런 쪽으로 특히 탁월합니다.]

'오, 그럼 정말로 불로장생이 가능하다고?'

[불로까지는 아니지만 노화를 늦추고, 영생은 못해도 200년 이상 사는 경우도 있죠.]

'대박이네. 어떻게 해야 인간이 200년까지 살 수 있는 거지? 지구로 오면 완전 기네스북 감이겠는데?'

[하지만 주인님은 불가능합니다.]

'왜? 언제는 나보고 천무지체라며? 어떤 무공이든 쉽게 익힐 수 있는 체질이라지 않았어?'

[그게 아니고 대개의 장생류 무공은 동자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동자공이면 설마 그 고자라니?'

[이상한 말 마시고요, 어쨌든 정기를 아껴야 수명을 늘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물 플레이어인 주인님과는 상극이 죠.]

'아, 맞다. 동자공 하니까 생각났는데 나 저번에 산속 동굴에서 쌍둥이 스님 내공도 냠냠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해서 현재의 총 내공합은 대략 100여년가까운 수준입니다. 다행히 백년 산삼의 기가 정순하여 뒤섞인 내공이 혼탁해지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100년이면 2갑자가 조금 안되는 건가?'

[네.]

'그것만 해도 엄청난데? 남들이 100살 먹을 때까지 수련해 얻은 수 있는 힘을 불과 20대 초반에 얻었다는 거잖아?'

[참고로 무가의 자제들도 그런식으로 내공을 전수 받기도 합니다. 아니면 내단을 섭취하거나 별도의 기연으로도요. 이 때문에 무가의 후지기수로 손꼽히는 이들은 대체로 내공이 빼어난 편입니다.]

'그렇게 치면 나역시 기연인 셈이군. 희원보살 미션 때 스님들에게 내공을 전수받고, 무녀 장군 덕에 산삼뿌리까지 얻었으니.'

[그렇다고 봐야죠. 아, 주인님! 방금 낙찰 됐습니다.]

'됐어?'

[네. 마침 판매자가 접속해 있었나 봅니다.]

'경매도 안 붙여보고 최저가에 낙찰된거야 그럼?'

[아마도 여러차례 유찰로 그냥 낙찰가를 판매가로 정한 모양입니다. 차라리 주인님에겐 잘 된 일이죠.]

'계속 유찰된 물건? 그럼 생각보다 안 좋은 건가? 좋은 비급이면 플레이어들이 여럿 입찰에 뛰어들었을 거 아냐?'

[아마 '권법' 계열이라서 그럴 겁니다.]

'그건 무슨 소린데?'

[맨손으로 싸우는 것보다 비급도 무기술쪽이 훨씬 각광을 받거든요. 주인님이야 지구라는 특수한 사정상 권법을 구하신 것이지만, 흔히 '무림'이라 불리는 차원에서 권법은 다른 종류의 비급에 비해선 인기가 덜합니다.]

'어쨌든 내가 낙찰 받았다는 거지?'

[넵. 이제 현실로 복귀 하시죠. 여기서는 어차피 무공을 익힐 수 없으니까요.]

'오케이.'

도훈이 다시 눈을 감았다 뜨자 오래된 서고가 자취를 감추고 자신의 원룸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 앞에는 배송이 막 끝난 '백보신권'이 보였다. 도훈은 순간 천상계 시스템으로 택배사업을 하면 대박일 거란 엉뚱한 상상을 했다.

'오, 바로 왔네. 그럼 이제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거야?'

[넵. 스킬북을 통한 무공은 곧바로 주인님께 흡수됩니다.

다만, 적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권의 비급을 오롯이 체화시키는데 대략 한달여 정도가 소요됩니다.]

'한달이라. 그때까지만 PK단을 조심하면 되겠군.'

[또한 무공을 익혔더라도 늘 조심하셔야 합니다. 상대는 수도 많을 뿐더러 각각 플레이어를 잡는 데 특화된 스킬을 보유한 자들이니까요.]

'당연하지. 몇 달을 잘 피해다녔는데 한 달을 못 버틸까.'

도훈은 무공을 익힌다는 소리에 흥분해 책자를 펼쳤다.

책은 본래의 형태와 달리 한국어로 자동 번역되어있었는데 각각의 장마다 목차가 씌여져 있었다.

<제1장, 칠성권>

'칠성권?'

[대략적인 설명이 적혀 있을 겁니다.]

<무엇이든 7번의 주먹질 내로 격파한다. 첫번째 주먹에 비해 마지막 주먹은 7배로 강력해진다. 별도의 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명을 읽은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1장이란 소리는 가장 먼저 익히게 된다는 의미겠지?'

[네. 백보신권은 모두 열두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칠성권은 그중에서도 가장 첫번째로 익히는 스킬입니다.]

'오, 그럼 12개의 무공스킬이 생기는 거야?'

[그래서 스킬북의 값이 비싼 겁니다. 단일 스킬이 아니라, 일종의 스킬 셋이니까요. 물론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이 섞여 있고 어떤 무공은 단계별로 나뉘어 결국 하나의 스킬로 묶이기도 하지만요.]

'대박. 이것만 있으면 정말 PK단과 만나도 끄떡없겠는데?'

도훈은 신이나 허공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거 힘조절 잘못하면 사람 죽이는 거 아니냐? 마지막 주먹은 처음의 7배 파워라며?'

통상 헤비급 복서의 펀치력은 1톤에 상회한다고 한다.

그 7배면 펀치 한방에 무려 7톤 트럭에 치이는 충격량이란 소리였다.

[당연히 민간인 상대로는 절대 금물입니다. 컨트롤을 잘 못하면 주인님이 도리어 범법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당연하지. 내가 일반인이랑 싸울일이 뭐가 있겠어?' 그때 도훈의 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힐끔 보니 아까 연락했던 김양이었다.

-김봉순 : 오빠, 언제쯤 올 수 있어요? 저 이제 퇴근하는데.

도훈은 그제야 자신이 산삼을 먹고 경매장에 들르느라 김양의 메시지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도훈 : 그래. 어디서 볼까?

-김봉순 : 되도록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데서요. 인근 상가 건물이 리모델링 한다고 비어 있는데 거기서 볼까요?

도훈은 김양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뭔가 쌔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지?'

[네? 뭐가 말입니까?]

'장소말이야. 마치 나를 으슥한 곳으로 유인하는 말투잖아.'

[듣고보니 약간 그런것 같네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한다면 차안이나 모텔도 상관없을 텐데요.]

'확실히 수상해. 내 느낌엔 김양이 꼬리를 밟혀 협박당하고 있는 것 같아.'

[설마 그럼 어장관리 어플의 충돌경보도···.]

'그렇지. 어쩌면 김양이 당했을 수도 있겠는데.'

도훈은 자신 때문에 애꿎은 김양이 험한꼴을 당했다고 생각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이것들을 확 그냥···.'

[자중하셔야 합니다. 함정인걸 알면서도 굳이 뛰어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김양의 이중간첩 행각이 발각되었다면 모든 플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해야 합니다. 현자타임으로 세운 계획도 다시 짜야 하고요.]

로시의 신중한 조언에도 도훈은 쉽게 화를 풀지 못했다.

산삼을 먹은 영향때문인지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펄펄끓었다. 당장이라도 분출해내지 않으면 속에서 타들어 갈것 같은 에너지였다.

'아니야.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김양은 지금 몹시 곤란한 처지에 놓여있어. 실컷 이용해 먹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잘라버린 다면 양아치나 다름없지.'

[주인님 양아치 아니셨습니까?]

'뭐래. 내가 바람둥이긴 하지만 쓰레기는 아니지.'

[흐음. 그럼 어쩌시려고요?]

'끽해봐야 조폭들 몇놈 불러서 다구리 치려고 할 텐데, 내가 그런 것에 당하겠어?'

[설마 싸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더 정체를 노출시켰다간 박회장에 대한 복수가 복잡해 질 겁니다.]

'알아. 아는데 허세 도훈이 또 방법을 찾아 주겠지. 지금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간다.'

[아니 주인님.]

'걱정마. 사람은 안죽일 테니까.'

* * *

"놈이 정말 여기로 오겠습니까?"

"모르지.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리모델링 중인 상가건물에는 10명이 넘는 건장한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험악하게 생긴 인상에 문신도 드문드문 보였다.

게다가 다들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각목에서부터 끝을 살짝 남기고 붕대로 감아놓은 사시미까지 전원 무장 상태였다.

"미리 와있었네?' 그때 계단을 통해 올라온 최실장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최실장의 뒤로는 잔뜩 겁을 먹은 김양이 졸졸 따르고 있었다.

"형님, 오셨습니까? 옆에 아가씨는 누굽니까?"

"어, 있어. 오늘 접선 상대야."

"자, 잠깐만요. 저 사람들 다 뭐에요?"

김양은 흉기를 들고 있는 괴한들을 보고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분명 도훈에게서 장부가 든 파일만 빼앗겠다는 말에 협조했는데 잔뜩 무장한 패거리가 모여있었던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놈이 보통 놈이래야지. 위협만 할 거야.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이,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요!"

김양의 격렬한 반응에 최실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쭈? 왜? 놈이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거야? 우리 김양이 언제부터 이렇게 순애보가 되었을까?"

"아니, 그게 아니라···. 괜히 다치면 저까지 연루되는 거잖아요. 전 분명 USB만 돌려받으면 된다고 해서."

최실장이 김양을 노려보며 말했다.

"니가 아직 사태 파악이 안되나본데, 넌 이미 깊이 연루된 거야. 알고 있어? 일 잘못되면 너나 나나 도끼형님한테 끌려갈 거라고."

"아, 아니···."

"그러니 잠자코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험한꼴보기 싫으면 말이야."

최실장이 넌지시 양아치 무리를 가리켰다.

양아치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나더니 김양이 인질처럼 끌려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음탕한 표정을 지으며 김양을 희롱했다.

"휘유, 몸매 죽이는데."

"형님, 일 끝나고 한바퀴 돌려 주시는 겁니까?"

"순서정할까?"

끔찍한 농담에 김양이 잔뜩 움츠러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으로 도훈을 부른 것이 크나큰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 어떡하지.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올텐데.'

뒤늦게 후회가 된 김양이 몰래 주머니에서 폰을 어루만졌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도훈에게 상황을 알리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눈치빠른 최실장이 곧바로 김양의 손을 낚아채더니 폰을 빼앗았다.

"뭘 자꾸 꼼지락 거려? 너는 놈이 여기 올 때까지 잠자코 있으라고."

"그. 그사람한테 전화라도 오면요? 제가 받아야죠."

"그럼 그때 내가 바꿔주면 되지. 흐흐."

최실장은 의심이 많았기 때문에 김양을 믿지 않았다. 게다가 수틀리면 입막음으로 김양까지 정리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때 최실장이 쥐고 있던 김양의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도훈 : 5분 뒤 도착할거야. 입구에서 봐.

"야야, 이 새끼 5분뒤에 온댄다. 준비해라."

"네, 형님."

동시에 최실장은 김양을 보고 말했다.

"눈치 못채게 행동 똑바로 해. 안 그럼 너나 그놈이나 그냥 싹다 죽는 거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살고 싶으면 처신 잘하라고."

"······."

"대답 안해?"

"아, 알겠어요."

김양은 최실장의 협박을 받으며 도훈을 마중 나갔다.

빈 건물의 2층에는 십수명의 양아치들이 도훈을 집단 린치하기 위해 대기중이었다.

* * *

약속 장소에 도착한 도훈이 차에서 내렸다.

건물의 1층엔 긴장된 표정의 김양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 오셨어요?"

"뭐야 여긴? 거 사람 하나 죽여도 쥐도 새도 모를 곳이네?"

역용마스크로 얼굴이 험악하게 변한 도훈이 농을 건넸다.

김양은 그 말을 듣자마자 덜덜 몸을 떨었다.

"저, 저 그게."

"왜? 무슨 일로 보자고 했는데?"

김양은 막상 도훈을 보자 옅어졌던 호감도가 올라갔다.

도저히 그에게 해가 될 짓을 못할 것 같았다.

"그, 그냥 도망가요."

"뭐?"

"그냥 가시라고요. 이거 함정이에요!"

그 말을 듣던 도훈이 피식 웃었다.

"왜? 내가 모르고 왔을 까봐서?"

"야! 잡아!"

"저 썅년,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김양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최실장은 김양이 함정이라고 소리치는 순간 부하들을 데리고 뛰쳐나갔다.

빈 건물에서 연장을 들고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무리들을 보고도 도훈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온 몸이 자신감으로 철철 넘치는 표정이었다.

"죄, 죄송해요. 저도 협박당해서."

"신경쓰지마. 이렇게 될 줄 알고 온 거니까."

"아이고, 염병. 로맨스 찍고 있네. 둘이 언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대?"

"너냐?"

"뭐?"

"협박한 게 너냐고."

"웃긴 새끼. 꼴에 남자라고 후까시 존나게 잡는데, 우리 애들이 장난으로 보이냐?"

험악한 사내들이 도훈을 조롱하듯 비웃었다.

제 발로 함정으로 찾아온 사람치고는 무방비 상태의 차림이었다. 연장은 커녕 평범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도훈이 좌우를 두리번 거리며 숫자를 헤아렸다.

'모두 12명인가?'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내가 놈들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거?'

[그래도 조심하셔야 됩니다. 현재 스킬 셋의 활성화가 5% 정도입니다. 1장의 칠성권도 50%의 효율밖에 나지 않을 겁니다.]

'그 정도면 상관없어. 오히려 잘 됐네. 한방에 사람 죽일까봐 걱정했는데.'

도훈이 김양에게 말했다.

"사과는 나중에 하고 잠깐 비켜있어."

"어쭈? 이 새끼가 배때지에 칼이 들어가고도 그러나 한번 보자. 뭐하냐? 조져!"

대장의 명령에 무기를 든 양아치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도훈이 내공이 담긴 주먹을 강하게 말아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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