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65화 (1,132/2,000)

1148. 질투는 나의것-3-

‘그러고 보니 이 형···.’

영철은 어렸을 때부터 잘생겼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자기 관리를 못하는 편이라 귀찮으면 세수도 않고 머리를 감지 않은 날도 부지기수였지만, 타고난 피부가 워낙 좋아 별 티가 나질 않았다. 보통 사람이면 머리털이 떡져 엉망이 되었을 텐데도, 특유의 찰랑거리는 머릿결은 늘 귀족적인 느낌을 고수했다.

눈썹은 남자답지 않게 가늘었고, 입술 또한 유난히 붉은 빛을 띠어 마치 화장품을 바른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타고난 미소년.

한마디로 그는 축복받은 유전자였다.

그의 여동생이 평범보다 못한 것으로 볼 때, 유전자를 오빠에게 몰빵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여장을 하면 여자보다 더 예뻤다.

미모가 물이 오른(?) 고등학교 때부터는 인근 여고생들로 부터 팬레터가 끊이질 않았다. 여자들은 귀공자처럼 생긴 그를 무척 따랐다. 말이라도 한마디 걸어주면 꺄악꺄악 비명을 질러 대며 까무러치기 일 수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영철은 여자를 딱히 밝히지 않는 타입이었다. 오히려 자신을 좋다고 쫓아다니는 여학생들을 귀찮아했다. 그는 친구들과 농구를 하는 것이 좋았고, 여자를 만나 기보다 피씨방에서 게임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성에 눈을 뜬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곱상한 얼굴 생김과 달리 운동을 잘해 체육 관련 학과를 꿈꾸던 그는, 사범계열로 진학하기 위해 최소한의 내신등급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철의 부모는 동네에서 유명한 과외선생을 소개시켜 줬는 데, 그 여선생은 24살의 대학원생이었다.

과외선생은 영철을 보는 순간 그의 외모가 남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먼저 그를 유혹했다. 어쩌면, 나중에 여자를 알게 되었을 때 절대 만나주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외모의 과외선생은,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영철의 첫 여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지금이 아니면 만나볼 수 없는 외모에 대한 그릇된 욕망을, 어린 영철에게 마음 껏 풀어낸 것이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아다(?)를 뗀 영철에게 과외선생이 해준 말이 있었다.

-영철이 넌 대학가면 진짜로 인기 많을 거야.

-제가요?

-응. 너랑 한 번 자보려는 여자애들이 줄을 설걸?

-왜요?

-아직 모르나 본데, 너 되게 색기있게 생겼어.

이후 영철은 자신이 여자들에게 성적으로 매력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수능을 위해 잠시 멈추었던 그의 여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고3 겨울방학.

생애 처음 간 클럽에서는 그는 바로 원나잇에 성공했다.

그것도 TV에서나 나올법한 굉장한 미인과.

영철은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잘생기게 태어난 그에게 여자는 너무나도 쉬운 존재였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자든 10분이면 꼬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여자를 많이 만나다보니 눈도 덩달아 높아져, 자길 좋다는 여자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꼬시는 걸 목표로 삼았다.

고3 겨울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 온갖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그는 새터 와서도 금새 유명인사가 되었다.

-올해 체육과 남자 신입생 중에 꽃미남 들어온 거 알아?

-엄청 잘 생겼다며?

-얼굴이 완전 아이돌이래!

그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새터에서 처음 만난 도덕과 여자애와 사귄 뒤 일주일 만에 헤어졌어도, 아무 영향이 없었다. 누군가와 헤어지면 어차피 며칠 안 가 또 다른 여친이 생겼다.

여자들은 유독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다. 전화번호라도 알려주면 매시간 끊이지 않고 톡이 날아들었다.

별 내용도 아니었다. 지금 뭐하느냐, 밥은 먹었느냐, 주말에 약속 있느냐 등등의 불필요한 연락이 대부분. 귀찮을 정도로 고백도 이어졌다.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극단적인 스토커도 있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자랑만 만났다. 연락만 하면 당장 가랑이를 벌려줄 여자들이 한 트럭이었다.

그렇게 방탕한 대학 생활을 보내는 한 학기 동안 그는 사범대 여자들을 공략했다 동갑내기 신입생부터, 졸업반에 이르기까지 나이도 제각각, 학과도 제각각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사범대 투어(?)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4번째로 만난 여자와 헤어지고나서 돌이켜보니, 우연히 시작부터 모두 다른 과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공식적인 여자 친구든, 몸만 가끔 섞는 여사친이건 간에 다들 학과가 달랐다. 이에 그는 독특한 목표를 세우게 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범대 전과의 여자들을 만나보겠다는.

그렇게 컴퓨터 교육과 여학생을 사귀고, 마지막 체육교육과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고작 반년 만에 목표를 거의 달성한 그는 평소처럼 컴교 여학생을 손절하던 중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오빠, 나 임신한 것 같아.

울면서 그의 자취방으로 찾아온 여자친구를 설득해 병원으로 가 애를 떼던 날.

천하의 호색한인 영철이라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애는 지우는 것이 맞았지만, 하나의 생명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데 그 역시 크나큰 죄책감을 느꼈다.

여자친구와 결별하고 도망치듯 군대에 간 그는 군생활 동안 다시 멘탈을 잡았다.

군대에서 그가 얻은 결론은 딱 하나였다.

피임을 꼭 하자.

더 이상 난봉꾼처럼 살지 않겠다, 라던가 혹은 앞으로는 두번 다시 무책임한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가 아닌, 절대 질싸하지 않고 피임을 꼭 해야겠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군 생활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는 칼 복학을 통해 예상보다 빠르게 대학으로 돌아왔다. 그에 대한 소문은 아직 남았지만, 어차피 소문 따윈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라 상관없었다.

이제 나이는 스물 둘.

여전히 죽지 않은 꽃미남 외모에 심지어 군필이라는 타이틀까지.

그는 다시 목표를 정했다.

못 다한 사범대 투어를 마무리 한 뒤 이번엔 국성대 투어(?)에 도전하리라는 웅대한 계획이었다. 대학 4년 동안 국성대 모든 학과의 여학생들을 따먹겠다는 야심찬 포부였다.

지금까지의 전례로 보아, 그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호기좋게 시작한 야구장 데이트에서 그는 의외의 난 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그가 대학생활 동안 일면식도 없었던 이도훈이란 체육과 신임 학회장의 존재였다.

‘···엄청 잘생겼잖아?’

처음에는 몸만 좋은 선배정도로 인식되었으나 다시 보니 얼굴도 상당한 미남이었다. 자신이 호리호리한 병약 미소년 타입이라면 도훈은 정말로 강인한 남자의 표상과 같은 사내였다.

특히 옷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근육질 떡대는,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완벽한 역삼각형. 게다가 반전 매력으로 얼굴에서 훈훈함이 밀려오는 게 누가봐도 매력적인 상대였다.

체육교육과에서, 아니 사범대를 통 틀어 적수가 없을 거라는 그의 안일한 생각은 이도훈을 만난 처음 박살나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저런 선배가 우리과에 있었다고? 그것도 학회장이라니···.’

하지만 영철의 또다른 장점은 유난히 좋은 친화력이었다.

그는 결코 적을 만드는 타입이 아니었다. 아무리 완고한 상대라도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자기편으로 끌어 들였다.

어차피 자기보다 잘난 사람은 언젠가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대와 대립각을 세우며 맞서느니, 친구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여자는 많고, 세상의 반은 여자기 때문이다. 다툴필요는 전혀 없었다.

"와, 형 운동하셨어요?"

"어?"

"아니 몸이···."

영철은 은근슬쩍 도훈의 팔뚝을 어루만졌다.

갑옷을 두른 것처럼 단단한 근육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저 두꺼운 팔에 얻어맞으면 자신처럼 가벼운 몸은 한 방에 나가떨어질 게 뻔했다.

하지만 적이 되지 않고 동료가 되면 누구보다 든든한 보디가 드가 되어줄 형이었다. 영철은 도훈과 무조건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엄청 몸 좋으시네요."

하지만 도훈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는 영철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나 몸에 손대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좀 사양해 줄래?"

"아, 아 넵···."

영철은 칭찬을 거부하는 도훈에게 살짝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전에도 그런 오해를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내가 게이인 줄 아는 건가? 나중에 따로 말해야 겠다.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이야.’

영철은 기회를 엿보다 도훈과 단둘이 있을 시간을 잡았다.

야구장 입장 후 간식을 사러 가는 시간이었다. 여자들은 먼저 자리를 잡고 남자들이 경기장 내 매점에서 간식을 사오기로 했는데, 도훈과 영철이 함께한 것이다.

도훈의 뒷주머니에 꽂힌 담배 곽을 눈여겨 본 영철이 그에게 물었다.

"형, 경기 시작되면 다시 나오기 힘든데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실래요?"

"담배?"

"네, 마침 저기 흡연부스가 있어서요."

잠실 야구장 귀퉁이에 설치된 야외 흡연석이었다.

예전에는 앉은 자리에서 소주도 까고 담배도 피우고 했다는 데, 지금은 엄격하게 관리되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귀퉁이에 흡연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음먹고 나갔다 오려면 1이닝정도는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애연가인 도훈이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자. 너 근데 담배도 피워?"

"네, 군대 가서 배웠어요."

"자식, 못된 것만 배워왔네. 가자."

원래 흡연자는 흡연자끼리 통하는 법. 영철은 도훈과 친해지는 것이 의외로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훈이 담배를 꺼내물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라이터를 붙였다.

"헤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영찰이 아부를 떨어 보았지만 도훈은 딱히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여전히 자신을 게이라고 오해한다고 생각한 영철이 도훈에게 말했다.

"형, 근데 여자친구 있으세요?"

"나?"

"당연히 있으시겠죠? 형처럼 잘생기셨으면."

"없는데."

"아···."

첫 대사부터 꼬이자 당황한 영철이었지만, 순발력을 발휘해수습했다.

"그렇구나. 저도 군대갈 때 헤어져서 아직 없어요. 고무신 거꾸로 신을 까봐 먼저 뻥 차버렸죠."

"그래?"

"이번 달 말에 전역하니까 최대한 빨리 사귀어 보려고요."

이쯤이면 자신이 이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어필했다고 생각한 영철이 다음 말을 던졌다.

"근데 오늘 같이 온 1학년들 괜찮지 않아요? 정음이랑 아영이."

"뭐가?"

"그러니까···. 저도 올해 1학년 여자애들 예쁘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와. 저희과가 이렇게 물이 좋았던 때가 있었나 싶어요."

도훈이 무표정하게 듣다가 대답했다.

"왜? 쟤들 꼬시기라도 하게?"

"음,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그건 뭔 소리야?"

"그러니까 굳이 제가 다가가지 않아도···. 헤헤, 농담이에요형."

영철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도훈이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이 새끼, 이거 기고만장 하네.’

[마치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여자들이 알아서 자신에게 들이댈 거라고 생각하나 보네요. 이부분도 주인님이랑 비슷한데요?]

‘뭐, 반반하게 생겨서 그런 일이 많았나 본데 하필 상대를 잘 못 골랐군.’

[하긴, 다른 여자도 아니고 정음양과 아영양이면 절대 주인님을 두고 한눈팔 여자는 아니죠. 왠지 영철이 헛물켜는 것 같은데요.]

‘하여간 실실 눈웃음이나 치면서 알랑방귀 뀌는 게 영 마음에 안 드는 후배놈이야. 차라리 우선이처럼 듬직하거나, 좀 멍청해도 태영이처럼 속 보이는 놈이 좋은데 의외로 능구렁이 같은 구석이 있군.’

"참, 지금이 말년 휴가라고?"

"네. 8월 말 전역이에요."

"군 생활은 할 만했어?"

"포병대대에서 행정반 했는데, 나름 땡보였어요. 기수가 잘풀려서 일병 때부터 고참 노릇 했거든요. 완전 운 좋은 케이스랄까?"

도훈은 영철과 대화를 나눌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그에게는 책임감이나, 희생이라는 단어보다 회피나 뺑끼같은 얍삽한 잔머리만 보였다.

‘보면 볼수록 정떨어지는 놈이네. 하필 분위기 좋은 1학년에 이딴 새끼가 끼어들다니.’

처음부터 뒷소문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않았지만, 막상 만나보니 더 실망스러운 후배였다. 특히 앞으로 집행부의 팔다리 역할을 할 1학년 8선녀들 사이에 분탕질 하는 미꾸라지 한마리가 끼어든 느낌이라 기분이 쌔했다.

"맞다. 요샌 군대에서도 전문하사인가 뭔가 뽑는다며?"

"병장제대 끝내고 하사관으로 전환복무하는 그거요?"

"어."

"그거 하는 놈들은 완전 또라이죠. 얼마나 사회에 나와서 할 짓이 없으면 군대에 말뚝을 박을까요?"

‘난 니가 군대에 계속 짱 박혀 있으면 좋겠는데.’

[와, 주인님 그건 좀.]

‘일단 고쳐 쓸 수 있는 놈인지 본 다음에 고민 좀 해봐야겠다. 마인드가 영 쓰레기 같아서 거두는 것도 부담스럽다. A급은 고사하고 멀쩡한 놈이면 좋았을 텐데 어디서 폐급 새끼가 왔네.’

[역시 회장이 되더니 후배를 보는 눈도 달라지셨군요.]

"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네, 회장님."

"밖에선 그렇게 안 불러도 돼."

"네, 도훈이 형."

도훈은 복학생 영철이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왠지 그가 단란하던 1학년 후배들 사이에 암세포처럼 자라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암이 될 놈이면 조기에 싹을 잘라버려야 하는데 말이지.’

도훈은 스키니 청바지를 입어 늘씬한 다리를 드러낸 영철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몸도 삐쩍 말라 왠지 더 마음에 안드는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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