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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36화 (1,103/2,000)

< 1119. 그해, 여름-34- >

***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카지노에 짱박힌 두 형제는 새벽녘까지 도박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본래는 중독성이 강한 도박이지만, 형제가 주거니 받거니 잡담을 나누며 즐기는 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 형철이 간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상철아,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달리는 말에선 어지간하면 내리는 게 아니라는데…. 들락거리면 끗발 떨어진다, 형."

"이깟 푼 돈 얼마나 한다고? 배가 아파서 좀 걸릴 테니 내 몫까지 잘하고 있어."

동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형철은 동생 몰래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외국 번호로 날아온 영어 메시지에는 -입금 확인, 배달 완료-라는 짤막한 설명과 함께 들어간 형철은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한참 남자 화장실 내부를 수색했다.

당연히 새벽이 넘어간 시간이 화장실 안은 텅 빈 상태.

재차 메시지를 확인한 형철은 왼쪽부터 화장실 칸막이을 하나씩 세어 나갔다.

‘하나, 둘… 셋. L3라는 말이 왼쪽에서 3번째라는 뜻이랬지?’

형철이 바짝 긴장된 표정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더니 좌변기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질 않았다.

"씨발, 이거 사기당한 거 아냐? 박사장 그 새끼가 여긴 확실하다고 했는데….‘

화장실 밑바닥에 머리를 대고 한참을 찾던 형철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좌변기의 뚜껑을 열어 보았다. 물이 가득 찬 수조에 손을 집어넣은 형철은 밑바닥에서 지퍼백을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있다! 씨발, 진짜로 있잖아?’

그는 지퍼백 겉면의 물기를 조심스럽게 닦더니 좌변기 수조통 뚜껑을 다시 닫고 흥분한 표정으로 변기에 걸터앉았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서늘한 실내 기온임에도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괜히 좆 되는 건 아니겠지? 아냐, 분명 코인 지갑으로 입금하면 절대 추적 당할 리는 없다고 했어.’

형철은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물에 젖지 않도록 포장된 지퍼백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겉 포장 안에는 또 한 번 속포장이, 그리고 속포장을 풀자 그 안에선 천에 둘둘 말려 있는 콘택트 렌즈통이 나왔다. 조그만 렌즈통에 비해 지나친 과대 포장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물건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후읍-, 후읍-."

케이스가 무척 작았기 때문에 형철이 조심스럽게 한쪽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푸른색의 조그만 알약이 십수개가 보였다.

"오오, 지, 진짜다!"

형철은 비밀스러운 거래가 성공했다는 사실에 잭팟을 터뜨린 것과 같은 쾌감을 느꼈다. 반대쪽 뚜껑마저 열어 내용물을 모두 확인한 형철은 컨택트 렌즈통을 서둘러 주머니에 넣고는 다급히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거래 현장에서 길게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방금 한 거래 방식은 소위 던지기라는 수법.

마약 거래를 안전하게 하기위해 장소와 시간만 지정한 뒤 물건을 두고 가는 수법이었다. 결제 역시 계좌 입금이나 현금이 아닌 가상화폐를 이용해 대면 접촉이나 경찰의 추적을 회피했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 컨텍트 렌즈통을 움켜 쥔 형철은 긴장를 풀기 위해 호텔 로비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국에서도 불법이지만, 미국에서도 당연히 불법인 메스암페타민 한 통을 손안에 품고 있다는 사실에 손발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와우, 퍽킹 USA! 하여간 돈이면 못 구하는 게 없는 나라구나!"

형철은 최근 사업차 친분을 튼 박사장에게 마약을 소개받았다.

필로폰처럼 주사로 맞아 흔적을 남길 일도 없고, 간단한 복용만으로 쩌는 쾌락을 안겨주는 약물이었다. 흔히 클럽에서 술에 타 먹는다는 대표적인 정제 형태의 마약이었다. 소위 클럽뽕이다.

연구 발표된 쾌락 지수에 따르면 섹스보다 강렬한 것이 도박, 그리고 그 도박보다 더 강한 것이 마약이었다.

사업차 접대를 통해 우연히 마약을 맛 본 형철은,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마약을 미국령 싸이판에서 거래하는 방법을 전해 듣고 겸사겸사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흐흐, 이것만 있으면…. 상철이 새 여친도 홀라당 벗겨 먹을 수 있으려나.’

그가 접해본 마약의 힘은 참으로 강렬했다. 특히 약에 취해 섹스를 하면 쾌감이 두 배로 강해지는 효과 있었다. 이성이 마비되고 오로지 본능만 남게 되는 것이다. 술 같은데 타 먹이면, 그 어떤 최음제보다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은지 고년이랑 상철이랑 일 치르게 만들어서 아버지 유산도 내가 꿀꺽해버리는 거지.’

형철은 그 와중에도 비즈니스를 생각했다.

동생과 사이가 좋은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곧 돌아가실 아버지의 유산을 공평히 나눌정도로 좋진 않았다.

그는 장남인 자신이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착실히 자기 사업체를 이끌며 후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 형제 중 한쪽이 가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면, 나머지 한쪽은 적당히 뒷선으로 물러나 적당히 돈이나 받고 유유자적 살면 그만. 하지만 상철 또한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것이 화근이었다.

특히 집안 도움 하나 없이 조그만 자영업으로 시작한 음식점을 전국적 프랜차이즈로 키워가는 데서 보여준 역량은, 형인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업적 수완을 보여줌으로써 형철을 바짝 긴장시켰다.

형철은 그런 상철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슬 겁이 났다. 객관적으로 더 뛰어난 쪽은 상철이었다. 형만한 아우는 없다지만, 자신보다 똑똑하고 자신보다 더 능력이 출중했다.

지금이야 비등비등하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생이 집어 삼킬 께 뻔한 흐름이었다. 그런 모습은 자수성가로 집안을 일으킨 아버지와 여러 가지 면에서 오버랩되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버지를 더 닮은 쪽은 상철이었다.

형철은 그 사실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상철만 없으면 그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물려받은 재산을 멋대로 탕진하거나 무리한 경영으로 평생을 일궈 온 부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상철이 자기보다 더 뛰어난 것 뿐이었다.

‘상철이 이 자식만 없으면….’

형철은 오랫동안 이 문제에 천착했고, 동생 상철의 형수에 대한 집착에서 묘수를 찾았다. 일부러 동생에게 아내인 허은지를 내주어 그를 파렴치범으로 매장시키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차남이라도, 아버지 입장에선 가족의 도를 저버린 상철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또한 아내 허은지에 대한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형철이기에 가능한 전략이기도 했다.

‘…썅년. 내가 아랫도리 함부로 굴리고 다니는 거 모를 줄 알았나 보지? 하여간 창녀 같은 년.’

형철은 본인의 바람기 때문에 아내 역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애정이 남았다면 오히려 화를 냈겠지만, 이제는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값어치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딱히 화도 나지 않았다.

그나마 쇼윈도 커플 행세를 잘 맞춰주는 것과, 적어도 밖으로 소문 안 나게끔 깔끔하게 뒤처리를 하고 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러하듯이.

‘아무리 은지가 성욕이 미쳐 발정이 났어도 내 동생하고는 차마 못 할거야. 상철이 새끼도 마음은 굴뚝같지만, 차마 형수라서 어쩌진 못 할거고. 하지만….’

형철이 마약이 든 통을 굳게 쥐었다.

‘이거면…. 이거면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거든. 그럼 난 두 사람이 저지르는 짐승 짓거리를 보고 격노해 아버지에게 싹 다 일러바치는 거야. 당신이 짐승을 낳았다고. 저런 새끼에게 유산을 줄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 동시에 상철의 새 여친을 떠올렸다.

‘후후-. 상철이 여친도 기회봐서 쓱싹 해버릴까나? 존나 맛있게 생겼던데. 아니야. 나까지 얽혀버리면 괜히 일을 그르칠 거야. 적당히 스와핑 떡밥을 흘렸으니 상철이 놈 망상도 점점 커지겠지.’

형철은 차갑게 웃은 뒤 담배를 비벼 껐다.

그는 자신의 절제력을 믿었고, 손에 쥔 마약으로 동생을 후계자에서 영원히 박탈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평소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허은지를 매장시키는 것은 덤이었다.

‘가자. 잭팟으로.’

***

한편 카지노에 혼자 남겨진 상철은 어느새 블랙 잭을 거두고 슬롯머신에 앉아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레버를 당기는 중이었다.

그때 한 여자가 가슴이 깊이 파인 차림으로 등장했다.

바로 여자친구인 김민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자친구 흉내를 내고있는.

"왔어?"

"…이 시간에 갑자기 부르는 건 좀 지나친 거 아니에요? 지금 몇 신 줄은 아는 거죠?"

민희는 잔뜩 짜증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 피로로 인해 지쳐 깊은 잠을 자던 중 상철의 부름으로 급히 새벽녘에 화장을 하고 나온 것이었다.

상철은 주변에 한국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민희에게 말했다.

"어이, 김민희 씨. 아직 형도 안 왔는데, 그딴식으로 말할 거야? 고용주한테."

너무도 차가운 목소리였기 때문에 민희도 움찔 놀랐다. 평소 형님네 커플 앞에서는 늘 자신에게 툴툴거리는 주문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말이 편히 나왔던 것이었다.

"아…. 죄, 죄송해요."

상철이 손가락을 세워 민희 젖가슴을 쿡쿡 찔렀다.

"돈 받고 고용됐으면, 아가리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쳐 맞기 싫으면."

"……."

형님네 커플과 함께 있을 땐 상상도 할 수 없는 폭압적인 모습. 민희는 가슴을 쿡쿡 찌르는 상철의 손길에 굴욕감을 느꼈지만,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왜? 아무것도 안 해도 따박따박 월급 주니까 내가 호구로 보여?"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상철은 다시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형이 다시 카지노로 돌아올까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변비라도 걸렸나? 더럽게 늦네.’

상철은 형을 의식하면서 민희에게 말했다.

"잘 들어. 형님네 가족 앞에서는 나한테 싸가지 없게 굴어도 아무 상관없어. 그래야 남들이 볼 때 더 자연스러우니까. 근데 우리 둘만 있을 땐 예의를 지키라고. 한 번만 더 기어오르면 확 그냥!"

"…네. 명심할게요."

민희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희는 본래 유흥주점 출신이었다. 상철은 형수와 분위기가 비슷한 그녀를 보고 이번 일을 기획했다. 바로 자신의 새 여자친구인 척 그녀를 가족에게 소개시킨 뒤 형을 스와핑을 하자고 꼬드기는 것이었다. 그것이 형수를 자신이 품을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흐흐, 자기도 내 여친 건드렸는데, 내가 형수 건드렸다고 따질 수 있겠어?’

상철은 형철이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특히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불법을 넘나들며 아슬아슬 법망을 피해 가는 솜씨는 범죄자의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크리미널 마인드. 형철이 형은 어려서부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지. 만약 내가 아무런 담보없이 형수랑 붙어먹었다간 분명 그걸로 나를 엮어서 엿 먹이려고 할 거야. 하지만 지도 내 여친을 빼앗으면 피장 파장이니까 말이야.’

상철은 겁먹은 채 서 있는 민희를 보고 말했다.

"인상 펴. 곧 형 돌아올 거야. 자연스럽게 맞이해."

"네, 네."

"무슨 일로 왔냐고 하면 잠이 안 와서 잠깐 내려와 봤다고 해. 그러고는 형 옆에서 꼭 붙어서 칭찬해 주란 말이야. 그럼 형은 좋다고 헤벌레 해 질테니까. 젖탱이도 좀 문지르면서."

"괘, 괜히 의심사지 않을까요?"

"상관없어. 난 자연스럽게 떠날 거거든. 둘 만 있을 때 은근슬쩍 호감을 드러내라고. 나에 대한 불만도 쏟아내면서."

"뭐라고요?"

"밤일 존나게 못한다고 해."

"바, 밤일요?"

"그래. 섹스를 좆나 못해서 후회스럽다고. 결혼하기 망설여 진다고."

민희는 상철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 사실이잖아, 좆만한 새끼야’

민희는 일찍이 룸망주를 꿈꾸며 유흥업소 일을 했기 때문에 섹스라면 이골이 난 여자였다. 짜리몽땅하고 좆도 볼품없는 상철이 당연히 만족스러울리 없었다.

하지만 매달 스폰을 해주고 성공하면 큰 돈을 주겠다는 꾀임에 넘어가 벌써 3달째 그의 여자친구 노릇을 연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상철은 자신을 자주 부르는 편은 아니었다. 스폰 치고는 무척 널널했다. 다만, 이번 여행에선 그의 형을 유혹해야 하는 임무가 걸려있었다.

대강의 사정을 아는 그녀는 두 사람의 지저분한 성욕에 진절머리가 났다.

‘미친 새끼. 지 형수한테 박고 싶어서 여자친구를 상납할 생각이나 하는 또라이 새끼. 하여간 저 놈의 집구석은 제대로 된 놈들이 없어. 형도 딱 보니까 똑같은 과던데. 좆도 작겠지 뭐.’

상철이 계속 설명했지만 민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 공항에서 본 잘생긴 남자도 이 호텔로 왔던데…. 아 씨발, 일이고 뭐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그 잘생긴 남자랑 한 판 하고 싶네.’

민희는 공항에서 힐끔 본 도훈을 잊지 못했다.

특히 도훈 옆에서 붙어 있던 미나를 본 뒤 그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찰싹 붙어있는 걸 보면 밤일도 끝내주게 잘할 게 분명해. 아 존나 부럽다. 나는 좆같은 형제들 좆물이나 받아줘야 하다니….’

홀리데이 인 싸이판에 들른 여섯 남녀는 서로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각자의 욕망에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다는 사실이었다.

< 1119. 그해, 여름-34- >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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