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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12화 (1,079/2,000)

< 1095. 그해, 여름-10- >

"학!"

찰싹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밖의 풍경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뒤치기를 당하던 선령은 버티던 팔꿈치가 점점 구부러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창밖으로 상체까지 밀려 나왔다.

"아, 안 돼!"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 구경하라는 듯이 선령을 뒤에서 따먹던 도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번 업적은 식은 죽 먹기네!'

[가끔 그런 업적도 있어야죠. 늘 힘들게 쟁취하셨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선령이 곤란할 수 있으니 되도록 빨리 끝내시죠.]

'안 그래도 그럴 참이야. 이미 목적 달성했으니 더 끌 필요는 없지.'

뒤치기를 당하는 선령은 주위를 둘러 볼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박히기 급급했지만, 뒤치기를 하는 도훈은 선령의 잘빠진 몸매와 함께 눈앞의 전경을 즐겼다.

업적 이름처럼 참으로 보기 좋은 전망이었다.

'로시, 보여?'

[뭐가 말인가요?]

'이게 바로 카사노바가 바라보는 풍경이라는 거야.'

탱탱한 돌싱녀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도훈이 웃었다.

***

폭풍 같은 섹스가 끝나자 어느덧 밤이 가까워졌다.

도훈은 끝내 야경까지 둘러본 뒤 선령에게 가계약을 약속했다.

"계약금은 얼마나 걸어야 하나요?"

"통상은 10%"

1억 5천짜리 집의 10%는 1,500만원. 하지만 도훈은 경험상 꼭 표준에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 천만원으로 가능할까요? 잔금은 계약서 쓰러 오는 날 모두 치를게요."

"응. 괜찮아. 내가 잘 아는 임대인분이라 말해볼게."

"고마워요, 누나. 편의도 봐주시고."

"풉. 너 아까는 짐승처럼 거칠더니 다시 얌전해졌다?"

"제가 너무 오래 굶었나봐요. 아깐 저도 모르게."

"암튼 어디 가서 절대 오늘 일 떠들면 안 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당연하죠.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나요?"

"혼사라니?"

"누님도 다시 갈 준비하셔야죠. 혼자 있긴 너무 아까우신데."

"어머, 별소릴 다 듣겠네. 너나 얼른 여자친구 사겨. 나 같은 아줌마한테 쓸데없이 힘빼지 말고."

"아줌마라뇨. 아직도 충분히 아가씨 같으세요."

"말은 참 잘해. …뭐, 가끔 도저히 못 참겠음 연락하던가."

"네, 누나."

선령과 기분좋게 헤어진 도훈은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소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계약 체결 소식을 알리자 소연이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휴, 고마워요. 역시 아저씨밖에 없네.

"근데 왜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몰라요. 완전히 뻗기 직전이에요.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어요.

"설마 아직도 알바 안 끝났어? 오늘 시작했다며? 첫날부터 사람을 그렇게 부린단 말이야?"

-이제 마감치는 것만 배우면 돼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드네요. 그래도 사장님 되게 좋은 분이세요. 전 괜찮아요.

"고생이 많아. 그래도 대견하다. 마음먹자마자 실행에 옮기는 건 아무나 못 하는 건데."

도훈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소연이 다시 힘을 냈다.

-다 아저씨 덕이죠. 고마워요, 여러모로.

"참, 잔금은 일주일 뒤에 치르기로 했어. 집주인도 그날 시간 내서 오기로 했으니까 늦지 말고 꼭 맞춰 가야 해. 중개사무소 주소는 내가 문자로 넣어 놓을게."

-주소는 왜요? 오빠랑 같이 가는 거 아니에요?

"아, 그게…. 생각해보니 그때 마침 해외로 출국할 일이 있지 뭐야?"

-아저씨가요? 해외에 간다고요? 왜요?

"비즈니스. 자세한 사정은 묻지 말고."

도훈이 사채를 비롯한 어둠의 경로의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던 소연은 뭔가 중요한 일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아…. 근데 저 혼자 어떻게 해요? 저 그런 거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등기부 등본 열람해서 근저당 설정 같은 건 오늘 중개사님이랑 같이 싹 다 확인했어. 그리고 중개사님 되게 좋으신 분이더라. 내 사촌 여동생이 살 집이라고 하니까 잘 챙겨주신다고 했어."

-그래도 겁나는데…. 근데 왠 사촌 여동생? 아저씨는 제 삼촌뻘 아니에요?

도훈의 평소 얼굴을 모르는 소연으로서는 자신과의 관계를 사촌으로 설정한 도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훈은 적당히 둘러댔다.

"나이 차 잇는 사촌이라 생각하겠지. 암튼, 끝까지 마무리 못해 줘서 미안. 몇 달 전부터 잡혀있던 스케줄이라."

-괜찮아요. 알아봐 주신 것만으로 고맙죠. 암튼 오빠, 저 지금 주문 들어와서 다시 일해야 하니까 나중에 또 연락해요.

"응, 너네 집 참 야경 좋더라. 알바 마무리 잘하…."

뚝-

소연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도훈의 말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끊어진 폰을 보며 도훈이 뻘쭘함에 어깨를 으쓱했다.

'신기하네. 소연이 저렇게 일을 열심히 할 줄 몰랐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경찰서 한번 다녀오더니 사람이 180도 달라졌군요.]

'지금이라도 정신 차렸으니 다행이지. 아무렴 몸 파는 일보다야 건전하게 땀흘려 돈 버는 게 훨 낫지 않겠어? 일단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오늘 받은 전리품 좀 살펴야겠다.'

간만에 업적을 달성한 도훈이 기쁜 마음으로 귀가했다.

***

집으로 돌아온 도훈은 업적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게 그 마스터 키라고?"

[네. 그렇습니다.]

도훈은 조악한 디자인에 허탈하게 웃었다.

설명에 따르면 모든 문을 열 수 있다는 엄청난 아이템이지만, 겉보기엔 황동색의 평범한 집 열쇠일 뿐이었다. 생각보다 뽀대가 나지 않았다.

'허, 참. 이게 어떻게 세상 모든 문을 열 수 있다는 거지?'

[지금 천상계의 기술력을 의심하나 본데, 보기에만 그렇지 나름 나노 조형기술이 가미된 최첨단 장비입니다.]

'그게 뭔데?'

[쉽게 말하면 자물쇠에 넣는 순간 그 모양에 따라 스스로 형상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죠. 주물처럼 스스로 녹은 뒤 모양에 딱 맞게 변형되거든요.]

'진짜? 이게?'

[못 믿으면 실험해 보시던가요.]

'좋아.'

도훈은 마스터키를 들고 원룸의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문은 사고예방-자살방지-를 위해 집주인이 늘 시건해 놓아 평소엔 한 번도 드나들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마스터키를 어떻게 사용하지?'

[그냥 열쇠 구멍에 꽂아 넣으시면 됩니다.]

'모양이 전혀 다른데?'

[상관없습니다. 일단 넣어보십시오.]

'흐음.'

도훈이 반신반의하며 마스터키를 밀어 넣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평범하게 생긴 열쇠 끝에서 빠르게 레이저 불빛이 쏘아지더니 자물쇠 안을 스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열쇠 끝을 집어넣음과 동시에 딱딱하던 금손이 액체처럼 흐물흐물 변하더니 새로운 모양으로 변형이 이루어졌다.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훈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마술같은 기술력이었다.

"이게 진짜 돼?"

도훈이 반신반의하면 열쇠를 옆으로 돌리자 옥상문이 철컥하고 열리는 게 아닌가?

"와, 씹!"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간 도훈은 몇 달간 살면서 처음 구경하게 된 옥상위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올라온 김에 기념으로 한 대 빨고 가야겠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 물건이구나.'

[천상계의 아이템은 허위 과대광고가 없습니다.]

'가만. 근데 신기하긴 한데, 이게 마법의 문고리랑 다른 게 뭐지?'

마법의 문고리는 어떤 문에건 붙이기만 하면 기억하는 장소로 공간이동이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전혀 다르죠. 마법의 문고리로 문을 연다고 그곳이 반대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3차원을 왜곡시키는 공간이동의 종류고, 이건 말 그대로 잠긴문을 개방해 내부를 열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니까요.]

'아하, 그렇네. 그럼 이건 사용제한 같은 건 따로 없어?"

마법의 문고리는 다 좋은데 사용 후 충전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심지어 충전방식이 여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채워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본 아이템은 아무때고 사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범죄의 목적으로 사용은 불허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령 비밀 금고를 턴다든가 등의?'

[네, 당연히 불허합니다. 신은 플레이어가 범죄를 저지르는 걸 용납지 않으시니까요.]

'그럼 이걸 어디에 사용해? 그림의 떡이잖아?'

도훈이 불만을 표하자 로시가 보충했다.

[분명 요긴하게 쓰일 곳이 있을 겁니다. 실은 해당 아이템은 현 지구 시스템이 아니고 다른 차원의 시프 클래스를 위해 개발된 아이템이거든요.]

'시프? 도적 말이야?'

[네. 던전의 보물상자를 푸는데 필수템이기 때문에….]

'흐음. 암튼 나한테는 당장 별 쓸모없다는 거잖아? 하긴 뭐 나한테 다른 마스터키가 하나 더 있긴 하지만.'

[네?]

'이거 말이야.'

도훈이 당당하게 대물을 가리켰다.

'어떤 자물쇠도 능히 딸 수 있으니, 이거야 말로 봊이마스터키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쩝. 자만은 금물입니다, 주인님. 이번 업적은 쉽게 성공했지만, 더 높은 난도의 업적도 얼마든지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이번에 외국 나가시지 않습니까?]

'어. 싸이판.'

[주인님이 국내 한정으로는 수준급 피지컬인건 인정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더 대단한 인물들도 많을 겁니다.]

'흥, 그때 야동 찍을 때 말한 자지노프 같은 새끼들 말이지?'

[그런 이름은 없던 것 같은데요.]

'암튼, 조진지 존슨인지 누구든 상관없다고. 한국산 고추의 매운맛을 보여줄 테니. k-대물 이라 이말씀이야.'

다시 원룸으로 돌아오던 도훈은 문득 굳게 닫힌 옆집 문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일전에 BJ를 하던 서윤의 방이었다. 옆집의 BJ

"아…. 한때는 이 방 뻔질나게 들락거렸는데 말이지."

옆집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손안에 마스터키를 들고 있다보니 언제든 다시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도훈이 아련하게 추억을 되뇌는데 로시가 말했다.

[서윤양은 이사 가지 않았던가요? 공무원 합격해서 지방으로요.]

'알아.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들어가 볼까 했는데 안 되겠다. 이제 다른 사람 사는 것 같으니.'

도훈이 기억하기로는 서윤이 떠난지 두 달뒤 새로운 세입자가 입주한 상태였다.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사내는 일이 고된지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들어와 잠만 자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도훈은 간만에 하서윤을 떠올렸다.

낮에는 공시생, 밤에는 성방BJ로 활약하던 남다른 비밀을 가졌던 그녀.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도훈에게 있어 잊지 못할 상대였다.

'갑자기 서윤이 생각나네.'

[일부러 연락 끊으신 것 아닙니까?]

'뭐 그런 것도 있지. 과거 세탁하고 조용히 공무원으로 사는 애를 굳이….'

도훈은 한때 그녀와 합방을 하며 지금도 회자되는 명작 '대물 베트남' 시리즈를 만든 장본인. 좋든 싫든 서윤으로서는 도훈과 엮이는 것만으로 과거의 지우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살아 자주 보면 모를까 괜히 내가 연락해봐야 마음만 흔들릴 거야. 서윤이가 기왕 힘들게 공무원 됐으니 거기서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잘 가면 좋겠어.'

[별일이군요. 주인님이 방생을 다 하시고.]

'어쩔 수 없잖아. 상황이 그런데.'

도훈은 아쉬웠지만, 다시 마음을 추스렸다. 자신은 잠깐 보면 그만이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서윤으로선 무척 혼란스러워질 게 분명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그냥 행복을 빌어주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 보면 공무원 생활에 잘 적응ㄹ하고 있나 봅니다. 저는 얼굴이 노출된 BJ다 보니 걸릴까 걱정했거든요.]

'그래도 방송할 땐 최대한 가렸으니 쉽게 눈치 못 챌거야. 아예 벗겨 놓고 몸매랑 같이 보면 모를까, 평소 꽁꽁 숨기고 있으면 은근히 티가 안나는 타입이거든.'

[역시 그렇겠죠?]

'에이, 됐다. 괜히 얘기했네. 암튼 내일부턴 여행 준비해야 하니까 오전에 미나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드디어 싸이판 입니까?]

'응. 이번 여행은 외국인 관련 업적이나 혹은 여행지에서 가능한 업적 리스트 쫙 뽑아서 한방에 여러개 해치우고 올 작정이ㅑ.'

[오오, 폭렙 시즌이군요.]

'그렇지. 여름 막바지에 다리른 거지. 오늘처럼 일사천리로 뚫어버리면 돼.'

도훈이 각오를 다지며 잠을 청했다.

***

미나는 여느 때처럼 수강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자, 한 세트만 더 갈게요. 힘내서."

현재는 그룹PT 수업. 총 3명의 여자 수강생을 각각의 기구를 로테이션 시켜가며 교육 중이었다. 다들 운동을 여기서 왜 더하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몸매긴 했지만, 원장인 미나에 비교하면 한 수 아래였다.

요가복으로 보이는 타이트한 스키니 팬츠에, 가슴이 살짝 파인 트레이닝복을 입은 미나는 수강생들에겐 흠모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빼어난 몸매 자체가 가게의 홍보 역할을 해주는 지도 몰랐다. 마치 필라테스를 배우면 미나처럼 핫바디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듯이.

"여덟…, 아홉…, 자 한 개만 더."

독특한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수강생들을 독려하던 미나는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에 발신인을 확인하더니 양해를 구하고 물러났다.

"도훈아!"

전화를 받은 미나가 활짝 웃었다.

그렇잖아도 조만간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도훈이 먼저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녀는 수업 중이란 사실도 잊고, 통화에 몰입했다.

"캠프는 잘 다녀왔어?"

-네, 누나. 사이판 여행 때문에 전화했어요. 통화 괜찮으세요?

< 1095. 그해, 여름-1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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