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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09화 (1,076/2,000)

< 1092. 그해, 여름-7- >

***

"얼래? 알바 새로 뽑으셨수?"

창범은 여느 때처럼 조대근의 피씨방에 들렀다가 새로운 알바생을 보고 물었다.

"어. 예쁘지?"

창범은 여느 때처럼 조대근의 피씨방에 들렀다가 새로운 알바생을 보고 물었다.

"어. 예쁘지?"

"장난 아닌데? 설마 웃돈 주고 데려온 건 아니죠?"

"웃돈이라니?"

"아니 왜  다른 피방 가니까 그러던데? 얼굴 반반한 애들로다가 뽑아다가 매출 올리는 전략으로 말야. 은근히 피방도 남자 손님이 많이 오는 곳이라 여자 알바생 예쁘면 얼굴 보러 오는 애들 종종 있거든."

"웃기고 있네?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웃돈까지 얹어주겠냐? 최저시급 주기도 빠듯한 마당에."

"하, 복도 많으신 양반이네. 어떻게 저런 A급 알바생을…."

"가만, 근데 다른 피씨방 갔냐? 이 새끼가 진짜 지부장 하는 가게 매상은 못 올려 줄망정!"

대근이 역정을 내자 말실수를 한 창범이 후다닥 흡연실로 도망쳤다.

"에이, 그냥 경쟁사 조사 나간 거지. 무슨 또."

"야, 너 안 나와? 이 의리도 없는 새끼!"

흡연실 문을 사이에 두고 창범과 대치하던 대근이 주먹에 힘을 주며 말했다.

"존말 할 때 튀어나와라. 내가 맘만 먹으면 문고리 부수는 거 일도 아닌 거 알지?"

"해보쇼. 그래봐야 형님 가게 부서지지 내가 손핸가?"

"이 새끼가 진짜."

"사장님! 라면 언제 갖다 줘요."

"아, 넵. 금방 갑니다."

창범과 으르렁거리던 대근은 손님의 라면 호출에 분을 삼키며 사라졌다.

"너 이따 보자."

"보거나 말거나."

창범이 피식 웃으며 흡연실에 들어온 김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때 자리를 치우고 있던 새 알바생도 흡연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곧장 담배를 꺼내물었다.

'오, 화끈한데? 어디서 좀 놀았던 앤가?'

창범이 아무 말 없이 소연을 쳐다보고 있는데, 시선을 느낀 소연이 창범을 향해 물었다.

"저희 사장님하고 잘 아는 분이세요?"

"아, 네. 뭐…. 아는 형님이라 가끔 일 끝나면 가게 놀러 옵니다."

"아…."

"새로 오신 알바 분이신가 봐요?"

"네."

소연은 처음 해보는 일이 고된지 담배만 푹푹 피우다 다시 일을 하러 물러났다.

"그럼 전 이만."

"넵."

창범은 소연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지? 저런 훌륭한 와꾸로 왜 이런 꼬질꼬질한 피씨방 알바를 지원한 걸까? 확 견적 따봐?'

PK단 일원인 창범은 정신 조작계 능력자였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진실을 실토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에이, 민간인 상대로 능력 썼다가 저 영감탱이한테 무슨 잔소릴 들을라고?'

창범이 담배를 마저 피우고 흡연실에서 나오자 대근이 기다렸다는 그를 붙잡았다.

"요 새끼, 잡았다."

"앗, 놔요. 팔 아파요. 이게 사람 손이야, 짐승 손이야?"

"그러게 인마, 누가 딴 가게 들락거리래? 너는 진짜 나한테 그러면 안 돼. 내가 공짜게임을 얼마나 시켜줬냐?"

"언제 공짜로 게임을 했다고? 퇴근하고 와서 같이 마감쳐 준 게 몇 번인데? 알바비도 안 주고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창범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어진 대근이 조용히 팔을 놓았다. 창범은 손자국이 난 손목이 시큰거리는 제 손으로 주무르며 말했다.

"에이씨, 힘은 더럽게 세 가지고. 민간인 상대로 이래도 되는 거요? 지부장이 되가지고?"

"니가 어딜 봐서 민간인이냐? 그리고 인마. 입 조심해. 누가 듣겠다."

대근이 주의를 주자 창범이 카운터에 있는 소연쪽을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쟤가 소머즈도 아닌데 여기 있는 우리 대화를 어떻게 들어요?"

"하긴."

"근데 누구에요?"

"어?"

"알바생요."

"소연이? 왜? 관심있냐? 아서라. 너보다 8살은 어릴 거다. 새끼가 양심이 있어야지. 순 도둑놈이네 이거."

"아니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창범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누가 관심있대? 그냥 정체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우리 가게 알바생 정체를 니가 왜 궁금해 하는데?"

"혹시 압니까? 플레이어가 심은 끄나풀일지?"

"푸하하, 이 새끼 괜히 속마음 들키니까 창피해서 둘러대는 것 좀 봐."

대근이 한바탕 껄껄 웃더니 다시 말했다.

"혹시 몰라 당연히 확인했지. 딱히 의심할 만한 점은 없었어. 아이템 같은 것도 지니고 있지 않고."

"음, 아무튼 난 미심쩍은데."

"왜 또?"

"아니. 솔직히 이런 가게에 저런 비주얼이 어울리기나 해요? 저 정도 얼굴로 최저시급을 받고 동네 피씨방 알바를 한다고? 지나가던 소가 웃겠쇼."

"크크크, 나도 처음엔 엄청 놀랬잖아. 왜 저번에 일했던 봉준이 알지?"

"알다마다. 새벽마다 뻑하면 졸던 그 야간 알바?"

"그러니까. 애가 착하긴 한데 너무 게을러서 확 짜르려고 했는데 지가 그러더라고."

"뭐라고요?"

"자기 짜르면 다른 알바 구할 수 있겠냐면서."

"엥? 그런 말을 해요? 새끼가 건방지게."

"요새 다른 야간은 시급 만원씩 맞춰준다는 거야. 자긴 최저시급만 받고 일해주는 거라면서."

"그래서 짜른 거였어요?"

"아니. 제 발로 나가던데. 죄송하다면서."

"그래서 일주일 혼자서 피똥 싸잖아. 야, 말이 되냐? 24시간 돌리는 가게에 알바도 없이 사장 혼자 날밤 새고 일하는 게."

"근데 소연인가 쟤는 최저시급받고 하겠데요?"

"어. 물어봤는데 알바가 처음이래."

"아…."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더라고. 얘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거 같아."

그 얘기를 듣던 창범이 화를 냈다.

"이거 순 사기꾼이었네! 아니 속일 사람이 없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스무살 짜리를 속여요?"

"인마. 말 조심해. 법정 시급 맞춰 주는데 무슨 사기꾼이야."

"그래도!"

대근이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내 주머니 사정 너도 알잖아. 형 힘들다 요새."

"어휴, 맨날 지지리 궁상 진짜."

"넌 새꺄. 일 안하면 월급 따박따박 나오지. 난 장사 안되면 길거리 나 앉아야 돼 인마."

"누군 쉬운줄 아쇼?"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다 결국 한숨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으으, 진짜 내가 왜 PK단을 지원해서 사서 고생하는 줄 모르겠네. 형님은 후회 안 되쇼?"

"말이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서약 안 했지. 젠장."

한참 푸념하던 중 대근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아, 맞다. 그건 알아본 건 어떻게 됐어?"

"허탕이죠, 뭐 이번에도."

"아…."

두 사람은 대물 플레이어를 찾기 위해 몇 달 째 안간힘을 썼으나 단서가 부족해 도저히 실마리를 못 찾고 있었다. 거의 근접했다고 생각할 때마다 번번히 놓치기 일 수 였다.

"애초부터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였다니까 그러네? 이 건은 집어치우고 그냥 다른 놈이나 잡읍시다. 쓸데없이 힘만 너무 빼는 것 같소."

"후-. 대체 어떤 놈이길래 흔적도 없이 숨어버린 거야?"

"생각보다 랭크가 높은 놈일지도 모르지. 일본까지 왔다간 거 보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플레이어라던가."

"그런가?"

"에이 몰라. 나도 피곤하니까 당분간 쉴랍니다. 이번 주가 서울지부 회동이죠?"

"어."

"미호한테도 연락했죠?"

"요샌 연락도 잘 안 돼."

"이 구미호가 어디 가서 누구 간을 빼먹고 다니는 거야?"

"구미호요?"

두 사람이 휴게실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손에 물걸레를 든 소연이 어느새 다가와 물었다. 방심하고 있던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어? 카운터 보고 있어야지 여긴 왜 왔어?"

"휴게실 청소 좀 하려고요."

"아, 아니야. 괜찮아. 카운터 보고 있어. 걸레 나 주고."

당황한 대근이 소연에게서 걸레를 뺏어 들었다. 소연은 여전히 궁금한지 계속 물었다.

"근데 구미호가 무슨 말이에요?"

"아…. 그게…."

대근이 말을 못 잇자, 창범이 적당히 둘러댔다.

"어, 너네 사장님이랑 같이 하는 게임 있어. 거기 나오는 캐릭터 말하는 거야."

"아하."

"그, 그래. 게임 캐릭터. 암튼 가서 카운터 봐. 여긴 내가 청소할 게."

"네."

소연이 물러나자 식겁한 대근이 이마에 땀을 훔쳤다.

"어휴, 깜짝이야. 쟤는 언제 또 들어온 거야?"

"그러게요."

"당분간 입조심하자. 얘가 귀가 밝은 거 같아. 호기심도 많고."

한편 카운터로 돌아간 소연은 피씨방 알바가 따분했는지 도훈에게 문자를 남겼다.

-조소연 : 오빠, 전셋집 알아보고 있죠?

***

-조소연 : 오빠, 전셋집 알아보고 있죠?

대포폰으로 온 문자를 확인한 도훈이 급히 폰을 숨겼다. 그러나 예리한 선령의 눈썰미를 숨기진 못했다.

"어머, 폰이 두개나 있어요? 아까랑 다른 폰이네?"

"아…. 네, 뭐, 어쩌다 보니."

"흐음? 보통 바람 자주 피우는 사람들이 폰 두 개 쓴다던데… 혹시?"

"예? 무슨 바람이요. 저 아직 여친도 없는데."

"푸훕. 농담이에요. 농담. 뭘 그렇게 놀래요? 진짠 줄 알겠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어느새 많이 친해졌는지 선령이 농을 건넸다.

'은근 귀엽다니까? 덩치는 산만해서 말이야.'

선령은 보면 볼수록 도훈이 쏙 마음에 들었다.

잘생긴 얼굴도 얼굴이지만, 셔츠만 입고 있어도 드러나는 근육질의 몸에 훤칠한 키가 딱 자기 스타일이었다.

'어휴-. 무슨 망측한 생각이람. 나이도 한참 어린 애한테.'

선령은 도훈에게 남자로서 호감을 느끼는 자신을 질책했다.

자신의 나이는 이미 서른 다섯.

군대를 막 전역했다는 도훈은 기껏해야 스물 너댓살 정도였다. 최소 10살이라는 나이 차가 주는 심리적 부담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미 한 번 다녀온 몸.

돌싱이 된 후 열심히 일에 매진하면 경제적으론 윤택해졌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는 다는 말처럼 남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미쳤지 내가. 저렇게 사지 멀쩡하고 어리고 잘생긴 애가 뭐가 아쉬워서 나같은 아줌마랑 엮이겠어? 에이, 일이나 하자.'

마침 첫 번째 건물에 도착해 선령이 주차를 마쳤다.

"다 왔어요."

"아, 이 건물이에요."

"네. 올라가면서 설명해드릴게요."

선령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프로의식을 발휘해 열심히 집을 설명했다.

"말씀하신 대로 출입구는 비번을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어요."

공인중개사인 선령은 집주인에게서 비번을 인계 받았는지 능숙하게 출입문을 해제했다.

"방은 2층에 있는데 방범창 시설이 되어 있어서 안심하셔도 될 거에요."

"아, 네. 그건 좋네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채광이 좋은 원룸이 보였다. 볕이 잘 드는 것은 좋았지만, 도훈이 보기엔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 근데 부엌이랑 방이 뚫려 있네요?"

"네?"

"부엌 분리가 안 되면 음식할 때 방안에 냄새가 배더라고요."

"그렇긴 하죠. 잘 아시네요? 혹시 도훈 학생도 자취?"

"네."

"그러시구나. 남자 혼자 힘들겠어요."

"살다보니 괜찮더라고요."

"그래도 가족이랑 떨어져 살면 외롭잖아요."

선령은 자기도 모르게 흑심을 드러내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 미쳤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행히 도훈은 말뜻을 못 알아듣는 지 딴소리를 했다.

"제가 성격이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 아니라 괜찮더라고요. 암튼 아쉽네요. 위치나 시설은 깔끔하긴 한데, 방 구조가 좀…. 이게 얼마짜리라고 하셨죠?"

"가만있자, 1억이요, 관리비 따로."

"보증금 1억이요?"

"네."

도훈은 대략적인 시세를 가늠하더니 말했다.

"보증금을 좀 더 올려도 되니 부엌 분리되고 좀 더 큰집이 좋을 것 같아요."

"얼마까지 가능하신데요?"

"외삼촌께서 1억 오천까지는 괜찮다면서."

"으흠. 그 정도면 투룸도 가능하긴 해요. 일단 다른 곳도 가보실까요?"

"네."

두 번째 장소는 처음 보여준 집과 멀지 않았기 때문에 선령이 도보로 이동할 것을 권했다.

"여기서 300미터 쯤 떨어진 곳이라 걸어가실래요?"

"네."

하지만 거리상으로 가까웠지만,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둘은 금새 땀을 흘렸다. 땡볕에 무더위는 단순히 걷기만 해도 땀을 주륵주륵 나게 했다.

뒤늦게 선령이 후회했다.

"미안해요. 언덕이 많은 걸 깜빡했네. 그냥 차가지고 올 걸."

"저는 괜찮습니다. 많이 더우시죠?"

"네?"

"아니 땀을 이렇게나…."

도훈이 무심결에 선령의 이마에 묻은 땀을 훔쳤다.

선령은 도훈이 갑자기 스킨쉽을 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나….'

오랜만에 느낀 남자의 터치에 선령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안그래도 더운데 몸에 더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도훈이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씩 웃었다.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구만.'

[어떻게, 견적이 좀 보이십니까?]

'아까부터 은근슬쩍 수작을 부리는 걸 보니 나한테 호감을 가진 게 틀림없는 거 같아.'

[정말이지 얼굴이 깡패군요.]

'어쩔 수 있나.'

"괘, 괜찮아요. 이 집이에요. 다 왔어요."

당황한 선령이 황급히 말을 돌렸다.

하지만 도훈의 스킨쉽 이후 그녀는 점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 사람 혼란스럽게….'

방으로 안내한 선령이 집안 구조를 도훈에게 설명했다.

"아까보단 훨씬 넓죠? 부엌분리도 되어 있고, 나름 투룸 구조에요."

"그렇네요."

도훈은 자기 방을 구하는 것처럼 꼼꼼히 집안을 살폈다. 도훈이 혼자 방안을 둘러보는데 선령이 말했다.

"언덕이 좀 걸리긴한데 가격에 비해 방이 넓게 나왔어요. 3년 전에 신축한 건물이고요. "

"네. 되게 깨끗한 거 같아요."

도훈이 창문을 열어보더니 바깥의 경치를 감상했다.

확실히 높은 지대에 위치하다 보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게, 전망이 되게 좋았다. 창밖을 구경하던 도훈이 선령에게 말했다.

"이 집은 야경이 더 멋있을 것 같은데요?"

< 1092. 그해, 여름-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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