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8. 그해, 여름-3- >
[기소유예가 뭡니까?]
'쉽게 말하면 법적 처분을 면해준다는 뜻이야.'
[그럼 조소연 양이 성매매로 처벌받지 않는다고요?]
'그렇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죄로 인정되지 않는 게 형사법이거든. 아마도 스무 살이라는 나이 때문에 정상참작 되었지 않나 싶은데.'
소연이 불기소가 뜬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동귀어진을 생각했으나, 홀로 구덩이에서 탈출한 셈이다.
"참, 근데 그 여자 형사분 좀 이상했어요."
"여자 형사라니?"
"왜, 가슴 대빵 큰 언니 있었거든요."
아아, 아마도 현장에 출동했던 왕빛나 순경을 형사로 오해한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1계급 특진이로군.
"그 사람이 왜?"
"조서 쓰고 있는데 저보고 이상한 걸 묻더라고요. 게임에서 만난 오빠랑 어떤 사이냐고."
아차!
빛나가 마지막까지 의심했군. 하지만 둘은 나에 대해 서로 다른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대화가 엇갈렸을 가능성이 크다.
"…게임에서 만난 오빠?"
일단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러니까요. 뭔 소린 줄 몰라서 잘 모르겠다고만 했어요."
"그러니까 뭐래?"
"그 이상은 물어보진 않더라고요. 암튼 그 언니 진짜 짱 멋있었는데. 완전 제대로 걸 크러쉬!"
그 언니 완전 변태인 것도 알려나 모르겠다.
"암튼 이제 다 끝났어요."
"그래 네가 고생 많았어."
소연이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향해 배시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끼리 남은 거 정리해야죠? 성공보수, 잊지 않으셨죠?"
"얼마 주기로 했더라?"
"1억요."
"음, 1억."
본래 1억은 홍정원에게 받은 잔금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장난질로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바람에 오천이 비고 말았다. 갑자기 돈을 게워내야 할 상황이 되자 그녀를 손절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자른 데 자르더라도 돈은 마저 받고 보냈어야 했는데.
[이제와서 후회되십니까?]
'아니.'
[솔직히 너무 성급하셨습니다. 정말 뒷감당이 부담스러웠던 거면 업적을 성공한 다음 손절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텐데 말이죠.]
'알지, 그건 아는데….'
물론 그런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양아치 짓이었다. 실컷 이용해먹고 단물 다 빠졌으니 이제 꺼져라는 식. 솔직히 내가 아무리 탁락했어도 그렇게 무책임하고 싶진 않았을 뿐이다. 그건 진짜로 쓰레기잖아.
"설마 갑자기 말 바꾸시는 거 아니죠?"
답답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소연이 따지고 들었다.
"말 바꾸긴? 누가 안 준데?"
"근데 표정이 왜 그런데요?"
"그냥 돈 받을 게 있었는데 떼인 게 생각나서."
"아, 맞다. 오빠 사채하신다 그랬나?"
소연은 내가 말하지도 않은 직업을 멋대로 지어냈다.
그러더니 혼자 계속 떠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돈 떼인 걸 지금 저한테 전가시키려는 건 아니죠?"
"걱정마. 약속은 꼭 지킬 테니까."
아깝지만 지난번 착수금에서 챙겼던 돈을 다시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소연이 갑자기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빠 못 받은 돈이 얼만데 그래요?"
"왜?"
"그냥, 궁금해서. 얼만데요?"
"오천."
"오천?"
"그래."
"흐음…."
소연은 한동안 고민하는 척 뒷집을 지고 고개를 푹 숙였다. 돈이면 환장을 하던 소연이 갑자기 머뭇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다.
"이건 어때요?"
"무슨?"
"솔직히 나 돈 좋아하는 거 알죠?"
"잘 알지."
"그래서 성공보수도 꼭 받으려고 했거든요."
"그래. 준다니까."
"근데, 오빠도 돈 떼였다면서요."
"이런 일 하다 보면 으레 있는 일이야. 신경 꺼."
"그렇다고 오천이 작은 돈은 아니죠."
"작은 돈은 아니지."
"내가 그럼 오천 까줄가요?"
'응?'
[이건 뭡니까?]
'이건 생각도 못 했던 전갠데?'
"소연이 네가 왜?
소연이 뭔가 결심을 내린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요. 오빠한테 빚을 씌우려는 거죠."
"빚이라고?"
"나한테 남은 돈 주고 나면 앞으로 영영 볼일 없을 거잖아요. 안 그래요?"
"……."
"그러니까 오천 대신 앞으로 저랑 만나요."
"만나다니?"
"에헤, 말귀를 영 못 알아듣네. 그냥 저랑 친하게 지내자고요."
"그게 무슨…."
너무나 의외의 제안이었다. 설마하니 저 돈만 밝히던 수전노가 돈을 포기하고 나와 만나는 걸 선택한 것이었다.
소연이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기소유예 받아도 어차피 저 오피 다신 못 뛰어요. 형사님 말이 이번엔 넘어가는데 나중에 한 번만 더 걸리면 가중처벌 될 거라면서…. 쉽게 돈 벌 생각하지 말고 착하게 살더라고요."
"음…."
"그래서 어제 하루종일 생각했거든요. 어차피 저번에 1억도 받았겠다. 오빠한테 또 성공보수도 받겠다. 이 돈 생기면 진짜로 마음잡고 착실하게 살아볼까 하고."
"잘 생각했네 그건."
"한번 창녀라고 영원히 몸 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는 거예요."
"뭔데?"
"솔직히 제가 함부로 몸 굴린 것도 맞지만, 전 정말 섹스를 좋아해서 한 거거든요. 오피를 뛴 것도, 스폰을 받은 것도 다 섹스 하고 싶어서 한 거였어요. 물론 그 변호사는 진짜 못했지만."
한번 말문이 터진 소연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근데 이제 오피도 못 뛰고 조신하게 살다 보면 또 너무너무 하고 싶은 것 같은 거예요. 그렇다고 아무 남자나 만나봐야 딱히 마음에 들것 같지도 않고. 괜찮은 사람 만나려면 시간도 필요할 거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제가 오천 까줄테니까, 저 남친 생길 때까지 오빠가 제 파트너 해달라고요."
[와!!!]
'진짜 예상도 못 했는데 이건.'
소연의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면 정원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다만 차이점은 정원은 줄 돈을 야금야금 미루고 나를 길들이려고 했다는 것익, 소연은 받을 돈을 안 받고 쿨하게 섹파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재정적 입장에선 완벽하게 똑같은 대차대조표지만, 받아들이는 입자에선 전혀 달랐다.
"어때요, 내 제안? 마음에 들어요?"
대답을 하려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정수리로 떨어졌다.
툭-
투두둑-
가볍게 떨어진 빗방울은 어느새 어마어마한 기세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소나기였다.
"우읏, 뭐야. 우산도 없는데."
"오, 오빠 차!"
나는 소연의 손을 잡고 고수부지 주차장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하지만 달려가는 내내 헉헉대는 소연과 보폭을 맞추기 위해 비를 흠뻑 맞을 수밖에 었었다.
겨우 차 안으로 들어왔을 땐 이미 머리가 미역처럼 전신이 젖어버린 후였다.
"헉헉, 오빠 왜케 달리기가 빨라요?"
소연은 소나기를 맞은 것보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숨을 몰아쉬기 더 급급한 듯했다. 젖은 그녀의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뚝뚝 입고 있던 나시에 떨어지는데, 젖은 나시 밖으로 검은 브레지어가 비치는 모습이 몹시 섹시 했다.
"아씨…. 옷 다 젖었네."
소연이 젖은 나시를 끌어 올리자 잘록한 허리와 함께 배꼽이 보였다. 그녀는 속살이 보이는데도 아랑곳 않고 밑단을 비틀어 물을 짜냈다. 물이 한가득 나왔다.
"어휴, 이거 짜서 될 게 아닌데요? 오빤, 괜찮아요?"
"나도 다 젖었어. 일단 에어컨으로 좀 말리자."
에어컨 찬바람을 최대로 틀었지만 역부족. 속옷까지 흠뻑 젖는 바람에 차안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소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안 되겠어요. 어디 모텔이라도 가요 우리."
"모텔?"
""빤스까지 홀딱 젖었다고요. 벗어서 말려야 할 거 아니에요. 여기서 벗을까요?"
"아, 아니야."
거침없는 소연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기세가 밀리고 말았다. 그녀는 운전하는 내 얼굴에 손을 올리더니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오빠도, 어렸을 땐 꽤 잘생겼을 것 같은데…."
"뭐래, 갑자기."
"인상이 좀 사납긴 하지만 은근 새끈한 느낌이랄까?"
"손 치워. 운전 방해되니까."
"까칠하긴. 풉."
그녀를 밀어냈지만, 소연은 피식 웃을 뿐 조금도 쫄지않았다.
확실히 험상궂은 외모로 겁먹게 하는 것도 잠깐일 뿐이었다. 여자들이란 한 번 몸을 섞고 나면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풀어져 버린다.
"저기 무인텔 어때요?"
"어디."
"아니 사거리 모퉁이에요."
소연의 말에 따라 무인텔에 입성했다.
돈을 주고 정산하려고 했던 나이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소연은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훌훌 벗었다.
젖은 옷을 말린다는 핑계였지만, 너무 대놓고 벗으니 민망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뭐해요? 오빤 안 말려요?"
상의를 탈의한 소연이 팬티를 내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생각해봤어요? 내 제안."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만 묻자."
"네. 말씀하세요."
소연은 이제 완전히 나신이 되어 내 앞에 섰다.
젖은 몸에 물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조명에 비쳐 번들거리는 몸이 몹시 음란하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물오른 비치였다.
"그 큰돈을 포기하면서까지 나랑 섹파가 되려는 이유가 뭐야?"
"이유요?"
"그래."
"저한텐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투자니까요."
"투자라고?"
"오빠. 여자들만 몸 파는 줄 아세요?"
"뭐?"
"남자도 있어요."
"호빠 선수 말이야?"
"호빠도 있고. 뭐, 어쨌든요. 오빠 정도면 그 정도 투자해도 남는 장사 같았거든요."
어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따졌다.
"세상이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네."
"돈으로 안 되는 건 없어요."
소연이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의자에 앉아 옷을 말리고 잇는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홀딱 벗은 몸으로 바짝 밀착한 소연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충분한 댓가만 지불한다면요."
"뭐야, 진짜. 안 떨어져?"
"왜 이러셔? 순진한 척."
나는 가까스로 그녀를 밀어내고 벌떡 일어났다.
자꾸 말을 섞을수록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아직 모르겠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 제안을 받아야 하나?'
[사실 따지고 보면 주인님의 수많은 섹파 목록에 한 명 더 늘어날 뿐이죠. 굳이 안 나가도 될 돈이면 아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돈에 어차피 별 미련 없어. 벌고 싶으면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다만 내 생각엔 앞으로 소연이를 다른 업적이나 미션에 활용할 수 있는가 여부야.'
[업적이나 미션요]
'와꾸가 좋잖아. 타고난 색녀에, 모험심도 강한 편이고.'
[호오.]
'솔직히 우리과 애들은 평범한 대학생들이라 빡센 미션에서 활용하기가 어렵거든. 가령 저번에 NTR 미션 같은.'
[아….]
'하지만 소연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본인도 즐기고, 내 죄책감도 덜할테니까.'
[주인님은 정말 끝까지 계산적이시군요.]
'적어도 돈에 팔려가진 않는다는 마링야.'
"일단 씻자. 찝찝해서 도저히 못 잊겟어."
"오빠도 벗어요 그럼."
소연은 눈요기라도 하겠다는 듯 응접 테이블 위에 걸터앉았다. 옷을 하나씩 벗을 때마다 소연이 말했다.
"역시, 오빤 몸매 하난 끝내준다니까?"
"……."
"오빠 몇 살이라 그랬지? 나랑 나이차이 얼마 안나는 거 아니에요?"
"……."
"팬티는 내가 벗겨줄까요?"
"적당히 하지?"
나도 옷을 모두 벗었다. 소연의 시선은 대물에 꽂혀있었다.
"과연 오천만원짜리 잦이네요."
"아직 한다고 안 했어."
"에이, 솔직히 오빤 나랑 꽁씹하는 건데?"
"내 주변에 여자가 없을 것 같아."
넌지시 힌트를 줬다. 다른 여자도 충분하다는 암시였다.
그말을 듣고도 소연은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그게 뭐요? 누가 오빠보고 내 애인해달랬나? 그건 오빠 알아서 하시고요."
"그렇다면 너는 나를 딱 섹파로만 만나겠다는 거지?"
"당연하죠. 나 겨우 스무살인데 그럼 아저씨랑 사귀겠어요?"
"적당히 남자친구 생기면 정리하는 걸로?"
"남자친구가 오빠 반만큼만 해도 깨끗이 끝내줄게요."
"흐음.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알고 하는 거지?"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사채를 하던, 도박을 하던. 내 알바 아니고요."
"좋아. 그럼 받아들이지."
"콜?"
소연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껴안았다. 풍만한 가슴이 짓누르는 압박에 나도 모르게 잦이에 힘이 들어갔다.
"히히. 이제 아저씨 나랑 섹파하는 거다?"
"아저씨라니. 오빠라고 해."
"그거야 내 맘이지."
"일단 씻고 하자. 너무 찝찝해."
"알았어요."
소연이 볼에 쪽 키스를 하더니 샤워실로 먼저 들어갔다.
같이 씻는 취미는 없었던 모양이다.
[의외로군요. 정원을 택하고 소연양을 손절할 거라고 생각 했는데 정반대의 결과라니.]
'뭐, 더 어린 쪽을 골랐다고 해.'
[역시, 나이가 깡패인가요?]
'불륜녀보단 오피녀가 더 나았다고 해줘.'
[소연양이 앞으로 업적과 미션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요.]
'충분할 것 같은데? 일단 김변 건만 봐도 시키는 대로 잘 따르잖아. 무식한게 흠이긴 하지만, 오히려 머리를 굴리는 타입이 아니라서 다행인 것 같기도.'
잠깐 쉬고 있으니 샤워를 마친 소연이 개운한 표정으로 나왔다.
"오빠도 씻고 와요."
소연이 젖은 몸을 수건으로 말리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내 앞에서 거침없이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오랜만이라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왜요? 오빠도 한 대 피울래요?"
"…아니. 씻고 와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어느새 소연이 젖은 옷가지들을 한 데 모아 소파에 넓게 펼쳐놓은 상태였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강하게 틀었으니 1~2시간이면 충분히 마를 것으로 보였다.
"자, 그럼. 간만에 몸 좀 풀까요?"
< 1088. 그해, 여름-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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