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17화 (984/2,000)

< 1000. 별이 쏟아 지는-60-<1000화 이벤트> >

'운동신경은 뭐…나쁘지 않네.'

다들 열띤 분위기 속에서 배구 경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아영은 팔꿈치를 괴고  턱을 받친 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외따로 떨어진 섬처럼 홀로 앉아있는 그녀는, 군중 분위기에 조금도 휩싸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운동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거기에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도 있지만, 반대로 무식해 보이기도 하니까.'

실제 아영 본인도 운동을 잘하는 남자에 대해 딱히 흥미는 없었다. 야구를 즐겨보긴 하지만, 그것은 수치에 집착하는 그녀의 독특한 취향 때문이지 남자 운동 선수에 대한 동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키가 185랬던가? 평균보다는 큰데, 그렇다고 저만한 키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아영은 도훈을 분석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 도훈이 그렇게 매력적인지 검증해보고자 했다.

'몸은 보기 좋네.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족하지 않고.'

근육질인 도훈의 몸은 비치발리볼의 룰로 인해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었다. 햇볕에 그을렸는지 살짝 구리빛으로 변한 몸은 다부진 어깨와 범처럼 늘씬한 허리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특히 조각처럼 다음어진 대흉근과 선명히 드러난 식스팩은 남자가 보아도 감탄할 정도로 잘 빠져 있었다.

"와, 도훈이형 몸이 저 정도였어?"

"몰랐어? 완전 근육 짱짱맨이잖아."

"되게 예쁘게 잘 만들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아영은 주변의 동기 남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호리호리한 근육질. 그러면서도 골격은 어찌나 좋은지 옷빨이 잘 받는 체형이었다.

'하지만 피지컬이 전부일 순 없을 텐데.'

외모는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은 줄 수 있을 정도다.

대체로 근육질이면서 얼굴이 잘생기기도 힘든데, 도훈은 심지어 잘생긴 근육질이었다. 또 단순히 몸만 좋은게 아니라, 운동실력도 발군이었다.

전형적인 체대 미남.

하지만 아영은 그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포츠 미남이 인기가 많은 건 당연해. 잘생긴 운동선수들이 여성 팬이 유독 많은 것만 봐도 그렇지.'

그녀가 좋아하는 야구에서도 그런 선수들이 간혹 있었다.

운동선수 하기엔 얼굴이 아깝다고 불리는 부류들.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며, 도훈같은 타입에 흥미를 못 느끼는 여자들도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과 여자애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단 말이지. 다른 숨은 매력이 뭘까?

아영이 지켜보는데 도훈이 멋지게 페이트 공격을 성공시켰다.

흔히 배드민턴에서 '드롭'이라고 불리는 기술로서, 때리는 척 자세를 잡아 상대가 블로킹을 준비하면 공을 툭 건드려 네트 밑으로 떨구는 기술이었다.

낙하 속도가 느려 프로씬에선 어림없는 페인트지만 아마추어 경기, 더욱이 선수가 둘밖에 없는 비치발리볼 게임에선 굉장히 효율적인 공격 옵션 중 하나였다.

"캬! 봤어? 방금 페인트?"

"소름! 완전히 때릴 것처럼 점프했는데 저기서 떨구네."

"저런거 보면 도훈이 형 은근 머리도 좋단 말이야?"

"맞다. 나 어제 술자리에서 얼핏 들었는데, 도훈이형 이번에 단대 수석이라는 말이 있던데?"

아영도 그 얘기를 듣고 생각났다.

'그래. 공부도 잘한댔던가?'

아영은 뭔가 생각난 듯 수첩을 꺼내 분주히 적기 시작했다. 야구를 볼 때 좋아하는 팀 선수의 기록을 직접 기록해 정리하는 습관이 나온 것이었다.

'스포츠 미남, 운동 천재, 공부도 …수석?'

수첩에 적힌 키워드를 곰곰이 들여다보던 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단점이 없어?'

스펙만 놓고 보면 도훈은 소위 엄친아 수준이었다. 정말이지 못하는 게 없었다. 어제 군대가는 태영과 우선을 위해 '이등병의 편지'를 부를 때 보니 노래실력도 가수 뺨치게 잘 했다.

'이건 뭔가 말이 안 되는데?'

수첩에 '가창력 우수'라고 적던 아영은 점점 더 의문에 빠졌다. 결론을 내리면 도훈은 그야말로 완벽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아영은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불신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아니, 적어도 스무살 초반에 저렇게 완벽하기도 쉽지 않지.'

아영은 근본적으로 허무주의자였고, 비관론자에 가까웠다.

성선설을 부정했으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믿었다.

그녀는 수첩에 써둔 키워드에 삭선을 긋고는 그 아래 커다랗게 '호색하'이라고 썼다.

'그렇지, 이게 맞지. 얼굴값을 하는 거야. 제대로 바람둥이랄까?'

아영은 겉으로 보이는 도훈이 완벽한 모습이지만, 도덕적으로 심각한 흠결이 있다고 믿었다. 태영이 들려준 일화도 그렇고, 어젯밤 실제로 본인이 효민의 젖은 팬티를 찾으면서 밝혀낸 결론이었다.

스스로 찾은 해답이 만족스러운지 아영이 모처럼 웃었다.

결함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쁜 모양이었다.

'그래. 너도 위선자였어. 남자들은 다 똑같지. 이도훈. 앞으로 무척 재밌어질거야.'

그때 아영의 곁으로 누군가 앉으며 음료수를 내밀었다.

"마실래?"

"응?"

"목 마르지 않아? 선배가 나눠 주길래 네것도 챙겨왔어."

왕따처럼 떨어져 앉은 아영에게 다가온 것은 바로 정음이었다. 그녀는 막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캔 음료를 내밀었다. 아영은 불필요한 친절을 경계하며 쌀쌀맞게 대답했다.

"난 별로 생각 없어."

"뭘 또 그렇게 말해? 자, 내가 따줄게."

정음은 아영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캔뚜껑을 따 내밀었다.

"마셔."

"……."

아영이 신기한 표정으로 정음을 쳐다보았다.

'뭐야, 얘는?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인데?'

"안 마시면 내가 마신가?"

정은은 내밀었던 캔을 거둬들이더니 꿀꺽꿀꺽 몸으로 넘겼다. 보기만 해도 갈증을 유발하는 음료수 먹방에 아영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뭐, 뭐야 진짜? 줬다가 뺏는 건 뭔데?'

"너 아영이지? 박아영. 새터 때 한 번 본 것 같은데."

"……."

"난 육정음이야."

"알아."

"날 알아?"

"이름은."

"응, 1학기 때 자주 못 봤는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정음이 마셨던 음료수를 다시 내밀었다. 아영은 정음의 순박한 행동에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순진한 거야, 천성이 원래 저렇게 해맑은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수가 없네.'

아영은 늘 사람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정음의 호의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다고 의심했지만, 정음의 태도엔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아영은 정음이 내민 음료를 받았다.

"…고마워."

"고맙긴. 친구끼리."

"……."

'친구라…. 언제봤다고.'

"배구 경기 재밌다, 그치."

어느새 경기는 1세트가 끝나가고 있었다. 8강전만큼 압도적인 스코어는 아니었지만, 점수는 더블 스코어로 벌어지며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었다.

"난 별로 배구는 안 봐서."

"그래? 넌 그럼 운동 뭐 좋아해?"

"그래? 넌 그럼 운동 뭐 좋아해?"

"야구."

"야구? 재밌겠다. 나도 야구 보고 싶은데 규칙을 잘 모르겠어."

야구이야기가 나오자 아영은 자기도 모르게 살짝 들떴다.

"규칙 별로 안 어려워. 조금만 룰을 알면 게임보는데 아무 문제없어."

"그래? 다음에 아영이 네가 가르쳐 주면 되겠다. 헤헤."

정음은 조금의 구김도 없었다. 어떤 의도도 찾아볼 수 없는 정음의 태도에 아영은 약간의 혼란을 느꼈다.

밖으로 겉도는 성향의 아영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대체로 경계하는 편이었다. 낯선 남자가 말을 걸면 100이면 100 수작을 거는 것이었고, 여자들의 경우엔 사교적이지 못한 그녀를 은근히 디스하며 깎아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영의 얼굴은 눈에 띄게 예쁜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음이라고 했나?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참 순박한 아이네.'

아영은 몇분만에 정음의 본질을 파악했다. 연기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에 밴 태도였다.

'좋은 사람이구나, 정음이는.'

"근데 회장님 움직임 좀 이상하지 않아?"

같이 경기를 보던 정음이 유미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가리켰다.

"어떤 게?"

"보면 중심이동이 평소처럼 안 되고 있잖아. 반응속도도 살짝 늦고."

"그게 보여?"

"그게 안 보여?"

"……"

"암튼 발목에 부상을 입은 게 아닌가 싶은데."

"유미언니가?"

"응. 내가 볼 땐 그래. 평소 실력이 아니야. 공격도 도훈 선배가 전담하고 있고."

"으흥. 몰랐어, 난. 볼 줄 몰라서."

"그렇구나. 잘 됐다. 아영이 네가 나한테 야구룰을 알려주고 나는 너에게 배구를 알려주면 되겠다. 물론 나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해 배구 경기를 구경했다.

1세트를 이긴 도훈의 팀은 어느새 네트를 교대해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잠시 네트 교대 시간이 되자 체육과 학생들이 참아왔던 응원을 시작했다.

"멋있어요, 도훈이형!"

"공격 최고예요!"

"회장님도 한 방 꽂아줘요!"

"얀마,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겠냐. 회장님 제대로 실력발휘하면 저팀 숨도 못 쉬어."

"아…하긴. 결승이 아직 남아있으니 전력을 감추는 게 낫겠구나."

학생들은 유미가 공격에 나서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유를 캐치해 내지 못했다. 오직 정음만이 그녀의 부상 부위를 정확히 간파해낸 것이었다.

"괜찮겠어, 다리?"

"아직은 버틸만 해요. 오빠는요? 혼자서 다 하려니까 힘들죠."

"나도 할만해. 8강 상대팀보다는 확실히 잘하는데 못 이길 상대까지는 아닌 것 같아."

"맞아요, 우리 진짜 상대는 외국인 혼성조니까요."

심판의 휘슬로 두 번째 세트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유미의 서브 차례였으므로 도훈이 전위에 서고, 유미가 서브 자세를 잡았다. 타이트한 수영복을 입은 유미가 두 팔을 위로 들고 서브를 날리자 지켜보던 남자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개 섹시!'

'와, 겨드랑이 실화냐.'

'허벅지 짱짱한 보소, 밤에 죽여 주겠네.'

유미는 한국 선수치고도 유난히 야한 비키니를 입고 있었으므로, 구경하던 남자들에겐 훌륭한 눈요깃거리였다. 특히 오버서브를 넣을 때 취하는 특유의 자세가 몸매의 곡선을 부각시키며 남자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지린다.'

'키크고 힘센 여자에게 압사당하고 싶다.'

'아아, 존나 조이겠지?'

거의 성희롱에 가까운 망상들이었지만, 누구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국성대 응원석에서 한 남학생이 큰 소리로 외쳤다.

"회장님 섹시해요!"

그 말이 도화선이 되어, 사방에서 유미의 몸매에 대한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예뻐요!"

"회장님 나이스 바디!"

유미는 민망한지 못 들은 척 서브를 날렸다.

그러나 디딤발의 부상 때문인지 평소의 날카로운 서브가 아닌 밋밋한 공이 들어갔다. 때문에 유미가 다시 전위로 복귀하기도 전에 2타만에 상대의 공격이 들어왔다.

도훈이 수비를 하기엔 유미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유미는 스스로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이볼!"

수영복을 입은 유미가 두 팔을 가슴 앞으로 바짝 내밀자 커다란 가슴이 좌우의 압박으로 모아지며 깊은 가슴골이 형성되었다. 배구의 언더 리시브 자세 자체가 가슴을 쥐어짜는 포즈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지켜보던 수컷들은 더욱 흥분했다.

'최고다!'

'가슴에 머리통이 으깨져도 좋아!'

'아아, 이게 비치발리볼이지!'

도훈은 유미가 겨우 받아낸 공을 백어택으로 성공시키며 겨우 득점했다. 하지만 유미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 보였다.

"유미, 괜찮아?"

"공이 갑자기 날아와서 어쩔 수 없었어요."

"무리하지 말래니까."

"저 진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게임에만 집중해요. 다리 좀 삐었다고 큰일 안나니까."

"나참."

도훈은 유미의 넘치는 승부욕에 혀를 내둘렀다.

'경기를 뛰는 유미는 정말 다른 느낌이구나.'

[당연하죠. 그녀에겐 배구가 인생의 전부일 테니까요.]

'저런 모습 보면 또 괜히 마음이 짠해지면서 손절하기 미안해 진달까?'

[또 정에 휘둘리시는군요. 잊지 마십시오. 침대에서 유미양이 얼마나 포악해지는지를요.]

'알지. 아는데….'

도훈은 부상 투혼을 보이는 유미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특유의 사디스트저인 취향을 맞춰주긴 곤란했지만, 어쨌든 유미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에이, 경기 끝나고 생각하자.'

두 사람은 다시 게임에 집중하며 경기를 우세하게 끌고 나갔다. 그 모습을 성수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전임회장의 은퇴식 겸, 차기 회장의 취임식을 보는 것 같군. 아주 좋아.'

성수는 두 사람을 경기에 내보내길 참으로 잘했다고 자평했다. 유미에게는 마지막으로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 셈이었고, 도훈에게는 새롭게 탄생하는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였다.

어찌 됐건 체육교육과의 회장이니만큼 운동을 잘하는 모습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 운동을 배웠던 학생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운동을 잘하는 사람을 동경하고 따르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도훈은 이미 다방면으로 능력을 검증했기에, 이번 배구 경기에서마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다면 후배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회장이 될 것 같았다.

'꼭 이겨라, 이도훈. 그래야 내가 맘편히 집행부 물려주고 임용에 올인할 테니까.'

성수의 바람대로 2번째 경기도 국성대 체교과팀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제 남은 것은 대망의 결승. 상대측은 부전승으로 올라온 팀을 가볍게 누르고 올라온 외국인 혼성조였다.

"이어서 결승 시작하겠습니다."

< 1000. 별이 쏟아지는-60-<1000화 이벤트> >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천화 이벤트 시작합니다.

이벤트 내용은 1000화 기념으로 새롭게 제작된 표지의 인물이 누구인지 맞추는 것입니다. 모두 5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인물들을 순서에 상관없이 댓글로 적어주세요.

ex) 예지,리아,류진,채령,유나(itzy의 멤버 이름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벤트 기간은 5월 5일 어린이날 자정까지이며 맞추신 분 모두에게 n/30만원을 배분해 드립니다.

(한분만 맞추면 상금이 30만원!)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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