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6. 별이 쏟아 지는-56- >
두 사람은 장비를 챙겨 어젯밤 연습했던 야외 배구장으로 향했다.
"성수 앞에서 너무 티내는 거 아니야? 찰떡이라니? 백어택은 또 뭐고?"
"왜요? 그럼 쿵떡이라고 할까요?"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오빠랑 호흡이 잘 맞는 건 사실인데요, 뭘. 오늘 잘 해봐요."
경기장에 도착하자 아침부터 선수등록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2/3 한국인 1/3 정도는 외국인들로 보였다.
"외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어?"
"명색이 비치발리볼 대회잖아요. 우리나라보단 해외에서 인길걸요?"
"아니 그래도, 상금이 얼마나 한다고 이런 시골까지?"
"상금이 중요한 게 아니죠. 그냥 한국 놀러 온 김에 참가하는 거겠죠. 외국은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일반인들도 어지간하면 배구를 할줄 알거든요."
"그래?"
도훈은 유미의 설명을 들으며 접수대 앞에서 줄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등록에 시간이 오래 걸리자 유미가 도훈에게 말했다.
"오빠 혼자 줄 좀 기다리고 계실래요? 전 야외샤워장 가서 환복 좀 하고 올게요."
"환복이라니?"
"남자는 몰라도 여자는 수영복 착용 필수라서."
유미는 위에 얇은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었는데, 수영복으로 미리 갈아입을 생각으로 보였다.
"알았어. 얼른 다녀와."
"네."
유미가 샤워실로 사라지자 도훈은 혼자 줄을 기다리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경기는 크게 3종목으로 갈렸는데, 남자 2인, 여자 2인, 그리고 혼성 2인 종목들이었다.
'혼성팀이 숫자가 제일 적긴 하네'
도훈이 쭉 둘러보니 남자팀 접수처와 여자팀 접수처는 장사진이 펼쳐진데 반해 혼성이 가장 숫자가 적어 보였다. 아무래도 남녀가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경기다 보니 팀을 구성하기가 녹록치 않은 모야이었다.
'흐음, 그나저나 여자부는 은근히 구경하는 재미가 있구나.'
절반정도는 벌써 환복을 한 상태라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배구 경기 특성상 모델처럼 큰 키의 아가씨들이 우르르 줄서 있는 모습은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한국인 선수들과 달리 금발의 외국인 선수들은 몸매도 월등히 좋았다.
'오우, 저 비키니 저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개중에는 티 팬티를 입은 선수들도 있었는데, 그 덕에 엉덩이 라인이 완전히 드러나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특히 발육이 훌륭한(?) 외국 여성들의 힙라인은 국내 선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역시 금발의 백미는 진리인 것인가.'
[거참, 침 좀 닦으시죠.]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저쪽에 남자들 보라고.'
선수등록의 무대는 한편으로는 미팅의 장소기도 했다. 모든 선수들이 한 대 모여, 줄을 서 기다리다 보니 그 틈을 타 수작을 부리는 선수들도 있었다. 지금도 한국 남자 둘이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여성들에게 말을 건네며 추파를 던지는 중이었다.
"Where are you from?"
"Canada"
"Good"
뭐가 굿인지 알수 없지만 짧은 영어실력으로 손짓발짓 다 해가며 호감을 표시하는 남자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수영복으로 환복한 유미가 등장했다.
"뭘 그렇게 봐요?"
"어? 왔어?"
유미의 재등장에 도훈이 침을 닦고 고개를 돌리다 제 눈을 의심했다.
"흐억! 야, 너!"
"왜요? 너무 섹시한가요?"
유미는 평소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타이트한 배구복을 입을 때도 느끼긴 했지만, 그녀는 장신임에도 몸매의 비율이 완벽했다.
특히 가슴은 겨우 가리는 손바닥만한 비키니가 목 뒤에서 끈으로 묶여 있었는데, 굉장히 도발적인 차림새였다. 원체 사이즈가 큰 가슴은 전체를 가리지 못하고 옆에서 보면 옆가슴이 삐져나와 훤히 보일정도로 탱탱했다. 거기다 팬티역시 골반이 다 드러날 정도로 깊이 패여 있어 쳐다보기가 민망한 수준이었다. 도훈은 아찔한 느낌에 애써 유미를 외면하며 말했다.
"야, 야. 너무 투머치 아니야."
"왜요? 외국인들은 잘 만 입구만."
"그래도 한국 선수들은 너처럼 잘 안 입잖아."
실제로 도훈의 말처럼 한국 출전 선수들은 굉장히 무난한 수영복이 대다수였다. 가슴은 탱크탑 형태로 골짜기조차 안보일 정도로 꽁꽁 싸맸고, 팬티역시 트렁크 스타일의 반바지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보니 최대한 보수적인 수영복 차림을 한 것이다.
"걔들은 몸매에 자신이 없나보죠. 전 상관없어요."
유미가 포니테일 머리를 찰랑거리며 대답했다. 확실히 수영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야, 저기 봐. 혼성팀."
"와, 수영복 실화냐? 외국선순 줄 알았네."
"근데 얼굴도 예쁘다. 배구도 잘하게 생겼어."
"옆에 남자 완전 계탔네."
도훈은 수군거리는 주변의 시선에 창피함을 느꼈다.
'아이씨, 별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는데….'
도훈은 민망해 챙겨온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눈이라도 좀 가리면 뻔뻔해 질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하필 선글라스는 쓰리 사이즈 스카우터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눈앞의 유미의 몸매가 고스란히 숫자로 찍혔다.
<39-26-38
'3, 39?'
[어우, 유미양은 정말 어마어마후군요. 큰 줄은 알았지만 수치로 접하니까 압도적인게 느껴집니다.]
'저 정도면 거의 D에서 E컵 정도 되는 건가.'
[하지만 키도 크고 몸집이 크니 막 글래머처럼은 안 느껴지는 군요.]
'그럴 수 밖에. 원래 작은 애들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이는 거거든. 유미는 원체 길쭉길쭉 하니까 비율상 딱 좋아 보이는 거고.'
[사실상 유미양이 체육과 최고의 글래머였군요.]
'볼륨 하나는 압권이지.'
그때 도훈의 선수등록 차례가 되었다.
야외 테이블에 간이 접수처를 만들어 놓고 있던 직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서류와 볼펜을 내밀었다.
"그쪽에 동그라미 친 곳 작성해서 주시고요, 두분 신분증 제출해 주세요."
"신분증요?"
"네, 선수등록 하려면 필요해서요."
두 사람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제출했다. 도훈이 가만히 보니 인접 테이블에서 등록을 하는 외국인들도 여권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다.
'아하, 모두 실명으로 참가하는 거구나.'
[그렇군요. 의외로 대회가 짜임새가 있는데요.]
'그러니까. 아마추어 대회에 프로선수들 참여 못하게 거르는 것도 있을 테고, 중간에 선수 바꿔치기나 같은 부정행위도 철저하게 막아놨네.'
"혹시 후보선수는 따로 없으신가요? 최대 3명까지 등록 가능합니다만."
"네, 저희는 두 사람입니다."
"알겠습니다. 접수 되셨구요. 근데 팀명이….국성대 체교과? 맞나요?"
"네. 둘 다 소속 대학생들이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선수 등록 끝나는 대로 토너먼트 추첨이 있을 예정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음 참가자분."
등록을 마친 두 사람은 잠시 옆으로 빠져나와 조추첨을 기다렸다. 그때 유미를 향해 남자 한명이 다가왔다.
"Wow, Gorgeous! Hello pretty girl."
훤칠한 키의 백인 남성이었는데, 키가 어찌나 큰지 도훈보다 10cm이상은 더 커보였다. 각진 턱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서양 금발 미남이었다.
그러나 유미는 상대의 칭찬에도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민망해진 상대가 머쓱해하면서 물러나자 유미가 도훈을 보고 말했다.
"어휴, 날파리는 해외에도 있군요."
"왜? 잘생겼던데. 너보고 칭찬한 거 아니야?"
"뭔 상관이예요. 난 외국남자 냄새나서 싫어요."
"냄새라니?"
"왜 그 특유의 치즈 냄새 있잖아요. 암내 같은."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서양애들이 체취가 심하긴 하지.'
[여자들도 그런가요?]
'없다곤 할 수 없어. 왜, 왜국애들도 우리나라 사람보면 마늘냄새 난다고 하잖아. 그나마 동양인들은 유전적으로 체취가 약한 편인데, 외국인들은 심한 경우에 버스를 못 탈 지경일걸.'
[버스를 못 타나뇨?]
'왜, 그 버스 손잡이 있잖아. 그거 잡으려고 팔을 드는 순간….'
[아아, 이해했습니다. 그 정도이군요.]
유미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전 오빠가 있는데, 다른 남자 한 눈 안팔거든요."
"뭔 소리야 갑자기."
"왜요? 오빠는 다른 여자 찾고 싶은 가봐요?"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지 않아?"
도훈이 딱 잘라 말하자 유미가 눈을 치켜떴다.
"혹시 저 말고 다른 여자 있는 거였어요?"
"그건 너무 개인적인 질문 같은데."
"경희에요? 희주에요?"
"어?"
"아님 둘다?"
"뭔 소리야 그게?"
"아니 오늘 아침에 구보할 때보니까 둘 다 상태가 메롱이던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어젯밤 술을 많이 마셨나 보지."
"흐음….술 마셔서 그런 것 같지 않던데…."
"야야. 이상한 소리 말고. 오늘 어떻게 이길지나 생각해 보자고."
"흥, 말 돌리는 거 같긴 하지만 넘어가 드리죠. 아무튼 나한테 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뭐?"
유미가 도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랑 할 때 안서면 진짜 화낼 거라고요. 아셨어요?"
"참나….알았으니까 얼른 작전이나 짜보자."
도훈은 유미의 질투에 순간 쫄았으나 더 이상 말을 아꼈다.
'어휴, 이번 캠프 끝나면 유미는 방출각이다.'
[감당이 안 되십니까?]
'어젯밤 고무줄로 묶는 거보고 결심했어. 이대로는 못 견딜 것 같아서.'
[뭐 그거야 주인님 마음이지요.]
"제가 잠깐 훑어보니까, 저 팀이랑 저 팀이 세 보이더라고요."
"누구?"
유미가 혼성팀 중에서도 두팀을 가리켰다.
한 팀은 한국 선수들이었고, 한 팀은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기 저 단발머리 여자애, 제가 중학교때 전국대회서 봤던 얘거든요."
"정말? 설마 프로야?"
"아니요. 그 뒤론 배구를 접었는지 대회에선 볼 수 없었어요. 아무튼 기본은 된다고 볼 수 있어요. 남자도 아마 선출인거 같고."
"선출이라면…."
"끽해야 고등학교 때까지 겠죠."
"아무튼 초보들은 절대 아니구나."
"네. 그리고 저 외국인들."
유미가 이번엔 외국인 혼성팀을 가리켰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압도적인 키를 가진 장신팀이었다. 특히 여자는 까무잡잡한 흑인이었는데, 말같은 허벅지를 과시하고 있었다.
"아까 둘이 몸 푸는 거 봤는데, 장난 아니에요. 어쩌면 혼성조에서 가장 유력한 상대일지도."
"흐음. 남자 키가 2m는 되겠는데."
"그러니까요. 저 키면 공격 때려도 블록에 다 걸린다고 보시면 돼요."
도훈의 키는 185. 아무리 점프력이 월등해도 15cm라는 높이차를 극복하기엔 무리였다. 도훈은 처음으로 호승심에 불탔다.
'젠장, 코쟁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쓸데없이 큰거야.'
[주인님께서 키로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는군요.]
'북유럽애들이 워낙 유전자가 좋잖아. 네덜란드가 어딘가는 남자 평균키가 188이라며. 난 거기가면 평균이하야.'
[그래도 주인님도 어디가서 꿀리진 않습니다.]
'여튼 키가 전부가 아니란 걸 보여주지.'
"혼성팀 조추첨 결과 나왔습니다. 대진표 걸어둘 테니 경기 시작 30분전까진 대기석으로 와주세요."
진행요원의 안내가 있고나서 게시판으로 쓰이는 화이트 보으에 프린트 물이 한 장 붙었다. 혼성팀은 가장 참가자 숫자가 적어 모두 7팀이었다.
"어, 나왔다."
"잘하면 부전승도 있겠는데?"
8강 토너먼트다 보니 운 좋은 팀 하나는 부전승으로 자동 4강이 진출되는 경우였다. 도훈이 혹시나 모를 기대감을 가지고 대진표를 들여다 보았으나 아쉽게도 부전승에 뽑히진 않았다. 오히려 맨 첫자리에 자리해서 1번으로 경익를 치르게 되어 있었다.
"엇, 우리 첫 경기 같은데?"
"정말요?"
상대팀명은 , 유미가 경계대상으로 뽑았던 한국인 혼성팀이었다.
"아이고 몸도 못 풀고 바로 시작이네."
"얼른 준비해요."
경기 시작 10분전이었기 때문에 도훈도 서둘러 환복해야 했다. 규정상 비치발리볼은 수영복 차림이었으므로, 도훈도 짧은 반바지에 상의를 모두 벗어야 했다.
"탈이실이 어디야?"
"안에 바지 받쳐 입었죠?"
"어."
"시간도 없는데 그냥 여기서 벗어요."
"여기서?"
"왜요? 제가 벗겨 드려요?"
유미가 정말로 벗길 기세로 달려들자 놀란 도훈이 도훈이 스스로 훌렁훌렁 옷을 벗었다.
"아니, 노땡큐."
도훈이 해변 한가운데서 상의를 벗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쏠렸다. 대회의 첫 번째 경기이기도 해서, 관련 없는 팀들도 다들 구경하고 가려는 눈치였다.
"오, 저 남자 화끈한데?"
"배구 선수가 아니라 보디빌더 아냐?"
한 가운데 옷을 벗는 도훈에게 당연히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선글라스를 써도 감춰지지 않는 반반한 얼굴과 과하지 않게 균형 잡힌 근육질의 몸매는 지켜보던 이들도 깜짝 놀랄 만큼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여자선수들이 도훈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저 남자, 제법인데?"
"실력도 출중 하려나?"
도훈은 바지마저 훌렁 벗어버리고 짧은 반바지차림으로 환복을 마쳤다. 반대편 코트에선 상대팀이 벌써 몸풀기에 돌입해 있었다.
"오빠, 몸 풀어요. 우리도."
"응."
도훈과 유미는 가볍게 토스를 주고 받으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여름이긴 해도 아침이라 그런지 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해 체온을 끌어 올리는 게 관건이었다.
양 팀의 선수들이 어느 정도 몸 풀기를 마치자, 심판을 맡은 진행요원이 심판대 위로 올라갔다.
"플라이 하이 대 국성대 체교과, 국성대 체교과 대 플라이 하이의 남녀 혼성 8강전 1경기,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각 팀 주장 심판 앞으로."
주장으로 이름을 올린 유미가 심판에게 다가갔다. 반대쪽에서도 여자 선수가 걸어왔다.
< 996. 별이 쏟아지는-5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