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2. 별이 쏟아 지는-52- >
술이 들어가고 밤이 깊어가자 하나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거창하게 시작된 술자리가 모두 그렇듯, 마지막엔 진정한 소수정예만 남게 되는 것이다.
성수가 주축이 된 조도 그중 하나였다. 워낙에 주당인 성수가 굳건히 버티면서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다들 무리하지 말고 주량껏 원샷하라고."
"주량껏 원샷이라뇨?"
"이해했음, 마셔."
뭔가 모순적인 말이었지만, 워낙에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다들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 처음부터 함께였던 정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도훈이 합류하고 나서부턴 그만 바로보는 해바라기 되어있었다.
'오빤, 언제봐도 멋있구나.'
도훈은 편한 츄리닝 차림이었지만, 유독 돋보였다. 남자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정음의 표정에 잠시 수심이 깃들었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조용히 지켜만 보던 정음과 달리, 나연은 아까부터 쉴새 없이 도훈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도훈만 챙기는 그녀를 보자 정음의 가슴에 무거운 돌이 얹어졌다.
' 휴, 오빠가 인기가 너무 많아도 걱정이네.'
정음은 이곳에 있는 어떤 여자보다 도훈을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도훈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할지 의문이었다. 도훈을 바라보는 그녀의 처지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팬클럽에 가까웠다.
가까이 하고 싶지만, 다가설 수 있는 만인의 연인 같은.
그와 섹스를 나눈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울적한 마음에 정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잠시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이 시간에?"
"12시 넘었는데?"
"엄마가 늦게라도 자기전에 꼭 전화 부탁했거든요. 걱정되신다고."
"아이고, 정음이는 효녀네. 그래 다녀와."
정음이 일어서자 아까부터 눈치를 살피고 있던 도훈도 잠시 뒤 일어섰다.
"전 화장실 좀."
"아, 그냥 저기 담벼락에다 대충 갈기고 왐마."
"크크크, 형 그건 노상방뇨 잖아요?"
"그게 아나리 큰 거예요."
도훈은 술이 취해 왁자지껄 떠드는 선후배들을 피해 화장실로 향했다. 물론 화장실을 찾는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벼락같이 담벼락으로 달려들더니, 닌자처럼 멋지게 한 방에 높은 담을 뛰어넘었다.
쿵~
육중한 몸무게 덕에 착지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어딜 가시려고 몰래 담치기를 하시나요?]
'보면 몰라? 밖에서 통화 중인 정음이 찾는 거지.'
담벼락을 넘어 민박집 밖으로 나간 도훈은 어둠 속에서 자세를 낮추어 대문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정음은 시끄러운 술자리를 피해 대문 밖에서 엄마와 통화중이었다.
"…어, 엄마. 나 이제 곧 들어가 자려고"
"아니아니, 별로 안 마셨어."
"응, 재밌었어요. 오길 잘한 거 같아."
정음의 통화를 몰래 엿듣고 있던 도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밌다는 것 치곤 목소리가 너무 처져 있는데?'
[피곤한게 아닐까요?]
'하긴, 씨름부터 수중 기마전까지 빡시게 하긴 했지.'
통화를 끝낸 정음이 다시 돌아가려는데 어둠속에서 튀어나온 도훈이 뒤에서 정음을 끌어안았다. 몰래 등뒤에서 눈을 가리며 놀래켜 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음이 누구던가? 고등학교 때 이미 국대 선발전에 나갈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태권도 유단자였다.
뒤에서 덮치는 도훈을 치한으로 착각한 정음이 반사적으로 호신술을 전개했다. 왼발을 굴러 발등을 찍더니 팔꿈치를 휘둘러 도훈의 관자놀이를 가격한 것이었다.
"감히!"
그 동작은 너무나 빠르고 매서웠기 때문에 도훈도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윽!"
그나마 도훈 역시 반사신경이 빨랐기 때문에 관자놀이를 노리는 정음의 엘보우 어택을 손들으로 아슬아슬 막아낼 수 있었다.
그제야 도훈을 확인한 정음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앗, 도훈 오빠?"
"와, 호신술 장난 아니네? 손바닥이 욱씬욱씬하다야."
"어, 언제 나오셨어쇼? 부, 분명히…."
정음이 도훈을 치한이라고 착각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민박집의 입구는 하나였기 때문에 문 앞에 서있던 자신을 지나치진 않고선 드나들 수 없었고, 당연히 도훈을 외부에서 온 침입자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담 뛰었어"
"아…. 죄, 죄송해요. 오빤 줄 모르고. 괜찮아요?"
도훈이 엄살을 부렸다.
"발등 뼈 아작난 거 같은데…."
"앗! 정말요?"
"농담이야. 일단 다른 곳으로 가자."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 훼방꾼에게 들킬 것을 우려한 도훈이 장소를 옮겼다. 이동하는 중 절뚝거리는 도훈을 보며 정음이 어쩔줄을 몰라했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요? 죄송해요, 전 갑자기 누가 뒤에서 달려들길래 치한인 줄 아고…."
"그 정도 호신술이면 덮치던 치한도 다 죽이겠어."
"흑….저도 모르게 반사적을…."
절뚝거리던 도훈이 쉴곳을 찾았다.
마을 어귀에 있는 팔각정이었다. 주로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곳은,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텅 비어있었다.
"일단 저기 앉자."
도훈이 정자에 앉자마자 정음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신발을 벗겼다.
"오빠, 한 번 봐봐요. 정말로 다쳤을지도 몰라요."
"괜찮다니까. 얼른 일어나."
도훈은 맨 바닥에 무릎꿇는 정음을 얼른 일으켜 세웠다.
"제가 미안하니까 그렇죠."
"아니야. 말없이 장난친 내 잘못도 있지. 그리고 정말로 괜찮아. 지금은 하나도 안 아파."
도훈이 보란 듯이 발목을 빙빙 돌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정음은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다행이 뼈는 안다쳤다는 판단에 그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죄송해요, 오빠."
"뭘 자꾸 사과해. 내가 더 미안하지."
"그래도…."
"미안하면 이리 가까이 와서 앉아."
도훈이 떨어져 앉은 정음을 보고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탕탕 두들겼다. 정음은 놀라 주변을 살폈다. 민박 집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 누가 올까 걱정부터 들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이 시간에 누가 온다 그래. 아아, 발 아프다 갑자기…."
"지, 진짜요?"
"그러니까 이리 가까이 오라니까."
도훈의 강권에 정음이 쑥쓰러워하며 옆으로 살짝 이동했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이 정도요?"
"에이, 진짜."
도훈이 팔을 옆으로 뻗더니 정음의 옆구리를 잡아 바짝 끌어 당겼다.
"엄마야!"
"이렇게 옆에 딱 붙으라고."
몸이 바짝 붙게 된 정음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이렇게나…."
"왜? 싫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요…."
"오늘 많이 기다렸지?"
"네?"
"눈치 보여서 자리 옮기기가 쉽지 않더라. 진작부터 너한테 가고 싶었는데 너무 티 날까봐 한참 돌아서 왔어."
"아….괜찮아요, 전. 성수오빠가 말을 재밌게해서 하나도 안 심심했어요."
"부회장님이?"
"네. 저보고 운동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으음, 그건 나도 인정."
도훈은 오늘 낮에 보여준 정음의 운동능력에 진심으로 감복했다. 방금 전만 해도 보통 사람이었으면 한방에 나가 떨어졌을 호신술이었다.
'성수도 알아봤구나.'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건가요?]
'아니 근데 정음이는 워낙에 발군이라 운동 못하는 사람이 봐도 대단하다고 느낄걸? 사실 고등학교 때 부상만 안 당했음 이미 태릉에 있을 텐데.'
[그렇군요.]
"너 근데 인기 많더라?"
"예? 제, 제가요?"
두 사람은 워낙에 밀착해 있었기 때문에 말하는 데 입김이 얼굴에 닿을 정도였다. 정음은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자꾸 뒤척이면서 대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무슨…."
"아니던데. 우리과 남자애들 반은 너만 보고있는 것 같던데…."
"그런 농담 마세요."
정음이 질색했으나, 도훈은 그마저도 과소평가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번 수영캠프 이후로 정음에게 관심을 두는 학과 남학생이 배로 늘어날것이라고 생각했다.
"농담 아닌데."
"저보다는 오빠가 훨씬 인기 많죠."
"나?"
"오빠는 우리과 모든 여자들이 좋아할 걸요?"
"정말?"
"네."
정음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은 이렇게 단둘이 꼭 붙어 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이였다. 둘 만의 비밀이었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이 도훈을 좋아하는 것까지 막을 권리가 없었다.
'아니야. 설사 내가 오빠랑 사귀었더더라도 신경쓰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여자애들 중엔 여친 있든없든 신경쓰지 않는 애돌도 많았다. 어쨌든 도훈은 여러모로 힘든 상대였다.
"설사 그렇더라도 상관없어."
"?"
"나한테 너 밖에 없으니까."
"아, 앗."
도훈의 고백을 받은 정음이 얼굴이 빨개졌다.
계속 허리를 감고 휘감고 있던 도훈이 손에 힘을 꽉주며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몰래 뒤따라 나왔잖아. 단둘이 있으려고."
"고, 고마워요."
"너랑 얘기하고 싶었는데 나연이가 계속 말 걸어서…."
"알아요. 나연이도 오빠 좋아하나 봐요. 저처럼…."
"나연이? 몰라 그런 애는."
[와, 뻔뻔하시긴.]
'그럼 어떻게 해? 우리과 여자애들이랑 다 한번씩 자봤다고 떠들고 다니리? 저렇게 순진한 정음이한테?'
[여튼, 주인님은 그러다 천벌받을 겁니다.]
'천벌은 나중에 받더라도 정음이 마음 다치게 하는 거 싫으니까.'
"오빠도 참….나연이 들으면 섭섭하겠네요."
"나연이는 그냥 후배지. 연두도 후배고, 경희도 후배. 내가 후배 위하는 선배는 맞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챙겨줄 순 없는 거잖아."
'난 분명 진실을 말했다?'
[후배위하는 선배라고요?]
'어, 그러고 보니 다 한 번쯤 뒤치기는 해준 것 같아서.'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고마워요, 오빠…."
"고맙긴. 내가 더 고맙고 미안하지."
도훈이 정음을 보는데, 달빛 아래 비치는 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던 탓에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도훈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정음에게 입술을 맞추었다.
정음이 눈을 감고 도훈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순간 도훈은 찌릿한 고통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하고 말았다.
"악!"
"왜 그래요 오빠?"
효민을 상대로 마지막 5분 컷을 끝낸 그의 대물이, 정음과 키스하는 동안 다시 발기하면서 전립선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던 것이다.
도훈은 차마 말을 못하고 급히 입술을 뗐다.
"그, 그게…."
"어디 아파요?"
"미안. 실은 유미랑 배구 연습 하다 왔거든."
"네, 내일 시합 준비하신다고."
"그때 유미의 스파이크 공에 여길 맞아버린 거야."
"헉! 저, 정말요? 괜찮아요?"
정음도 가끔 남자와 겨루기를 해왔기 때문에, 그곳이 보호대를 찰만큼 중요한 급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수도 걷어차이면 보호대를 차고도 데굴데굴 구르는다는 것도.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너랑 있으니까 갑자기 커지면서…."
"아, 앗. 그럼 저 때문에."
"아니야. 그게 왜 너 때문이야. 이놈이 맘대로 일어서서 문제지."
"그러셨구나. 많이 아프셔서 어떻게 해요?"
"심한 정도는 아니야. 축구 할 때도 몇 번 공에 맞아봤는데, 이 정도면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더라고."
"아…."
정음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도훈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다른 여자랑 떡을 너무 쳐서 그렇다고 어떻게 말하겠어'
[쯧쯧. 본처 놔두고 이게 뭡니까?]
'상황이 좀 그랬잖아. 정음이는 내일 꼭 해줄거야.'
[이렇게 조강지처만 버림받는 군요.]
'버리다니 인마. 말을 해도….'
[정음 양보고 새벽까지 기다려달라고 부탁하신건 주인님이셨습니다.]
'알지. 나도 어떻게든 해보고 싶었는데, 마유미 고년 때문에 부상을 입을 줄 알았나, 뭐.'
로시의 핀잔을 들을 도훈은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 역시 마음속에도 정음이라면 오늘을 넘겨도 이해해 줄거라는 얕은 생각이 있었던 것.
하지만 막상 다른 여자는 다 눌러주고, 정작 본처앞에서 힘을 못 쓰게 되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음….내가 지금 이꼴이라 같이 할 순 없겟지만…."
허리를 감싸고 있던 도훈의 손이 슬금슬금 가슴으로 향하더니 얇은 티를 입고 있던 정음의 젖가슴을 꾹 눌렀다.
"아, 앗! 오빠"
"힘들 것 같으면 좀 도와줄까?"
도훈의 은밀한 터치에 오매불망 그만 기다리던 정음의 몸이 즉각 반을했다. 단순히 옷 위로 가슴을 문지르는 데도 젖꼭지가 빳빳히 서며 팬티가 축축해진 것이었다. 실은 팬티는 이미 키스할 때부터 젖어있었다.
"아, 아니에요. 오빠 힘드신데…."
"거기가 힘들지, 손가락이 힘든 건 아니니까."
도훈은 더욱 과감하게 손을 흔들었다.
얇은 티를 입은 정음의 목 위로 손을 집어넣자 뭉클한 가슴이 잡혔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촉감이 일품이었다.
"아, 아 오빠 이러시면…."
정음은 말론 거절하면서도 도훈의 손길을 차마 떨쳐내질 못했다. 그만큼 그의 도훈의 집요했기 때문이었다. 브라 컵을 위로 들춘 도훈은 곧장 젖꼭지를 꼬집으며 정음을 희롱했다.
"아, 아앙…."
몸 천재 정음은, 예민함도 남달라서 금새 달아올랐다. 귀밑이 빨개지고 숨결이 거칠어졌다. 팬티에선 주륵 애액이 흘러내렸다.
"오, 오빠 정말 이러시면…."
"가만 있어봐. 나는 못 즐겨도 너는 즐겨야지."
도훈이 주면을 쓱 한 번 살피더니 정음의 상의를 밑에서 들어올렸다.
< 992. 별이 쏟아지는-5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