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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87화 (954/2,000)

< 970. 별이 쏟아 지는-30- >

하지만 민주의 야릇한 기대는 유미의 등장으로 무너졌다.

"오, 여기 체육과 차기 집행부들이 다 모여있었구나?"

도훈은 재빨리 민주의 치마 속에서 손을 뺐다. 민주 역시 헛기침을 하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귀찮은 훼방꾼의 등장이었다.

"차기 집행부라니? 우선이 여름 방학 마치고 군대 가는데."

도훈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유미가 놀라 반문했다.

"그랬어요? 우선이 너 군대 가?"

유미는 빈 의자에 앉더니 합석했다. 특유의 쾌활함과 능청스러움은 처음부터 회식에 참여한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네, 회장님."

"회장님은 또 뭐야? 딱딱하게. 그냥 누나라고 해."

"그래도 회장님인데···."

"솔직히 회장 역할은 성수 오빠가 다 해주고 있잖아. 나도 염치라는 게 있지. 그나저나 술 안 따를 거야? 팔 빠지겠다야."

유미가 빈 잔을 들어 올리자 우선이 재빨리 소주를 따랐다. 민주가 살짝 텐션이 올라간 유미를 향해 걱정스럽게 말했다.

"유미 너 방근 교수님하고도 꽤 마신 거 같은데, 괜찮니?"

"저야 끄떡없어요. 합숙하면서 금주 엄청 오래 했거든요. 간이 아주 쌩쌩해요."

유미가 보란 듯 소주를 원샷 때리더니 이번에는 도훈을 향해 다시 잔을 내밀었다.

"도훈 오빠도 한 잔 따라줘요. 내일부터 파트너니까."

"파트너? 무슨?"

민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거슬린다는 표정이었다.

"아, 오빠랑 같이 비치발리볼 대회 나갈 거라서요."

"아, 아. 그 파트너?"

도훈은 아까부터 자꾸 자신과 엮으려 드는 유미가 부담스러웠다. 특히 오자마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게 살짝 불안한 조짐을 보였다.

"술 적당히 마시는 게 좋지 않을까? 약간 취한 것 같은데."

"에이,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러세요? 저 끄떡없어요. 제 별명 혹시 모르세요?"

"무슨 별명?"

"말술의 유미, 하핫."

유미가 제 입으로 말하고도 민망한지 머쓱하게 웃었다.

유미는 체격에 큰 만큼 술도 잘 마시는 편이었다. 여자치곤 굉장한 주량이었는데, 새내기 시절 소주 다섯 병을 앉은 자리서 한 시간 만에 해치운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 되고 있었다. 그때 당시 붙은 별명이 말술의 유미였다. 혹은 주당 유미.

"나참···."

도훈이 마지못해 술을 따르는 데 유미가 말했다.

"참, 오빠. 좀 있다 밤에 같이 호흡 맞추는 거 잊지 마세요?"

"근데 무슨 야밤에 배구연습이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면 되지."

"그래도요. 기왕 나가는 거 우승해야죠. 비치발리볼은 둘이서 하는 경기라 파트너 호흡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유미가 자꾸 수작을 부리자 도훈이 반박했다.

"현역 대학 여자배구 공격수가 무슨 호흡까지 필요하냐? 그냥 공만 띄워주면 알아서 잘 하겠구만."

"암튼, 저는 연습 없인 불안해서 못해요."

"누나, 제가 그럼 같이 도와드릴까요?"

우선이 눈치 없게 끼어들자 유미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민폐를 끼칠 순 없지. 그냥 도훈 오빠만 있으면 돼."

그 말이 거슬렸던 민주가 유미와 도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파트너니, 호흡을 맞춘다느니 내뱉은 단어들이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유미 저 계집애가 주인님을? 하여간 주인님이 잘나다 보니 이년 저년 다 껄떡거리네. 어휴, 신경쓰여.’

유미는 키도 크지만, 그 못지않게 비율도 좋았다. 체격이 큰 만큼 바스트도 훌륭했고, 배구로 오랜 기간 다져진 하체는 비견될 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특히 경기복인 딱 붙은 핫팬츠를 입고 있을 때면 잘빠진 힙에 절로 시선이 몰렸다. 얼굴, 몸매, 운동능력 여자 스포츠 스타로서 필요한 삼박자를 고루 갖추다 보니 남녀 가릴 것 없이 인기가 많을 건 당연지사.

민주는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여학생이 유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안 그래도 1학년들도 신경 쓰이는데 하필 유미까지 끼어들다니···.’

민주가 속으로 걱정하는데 도훈이 계속 투덜거렸다.

"해 떨어져서 공도 잘 안 보이겠구만···."

"아니에요. 오는 길에 해변에 가보니 비치발리볼 경기장에 야간 조명 켜고 있더라고요. 거기가서 연습하면 돼죠. 현지 적응 겸."

"음."

유미가 계속 밀어붙이자 도훈도 점점 반박할 말이 없었다. 도훈이 밀리는 모습에 유미가 쐐기를 박았다.

"오빠. 저 감독님한테 꼭 우승하고 오겠다 약속했단 말이에요. 솔직히 제가 아마추어 대회 나가서 지고 돌아오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제 입장도 고려해 주세요."

유미의 집요한 설득에 있던 학생들마저 동조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 프로가 아마추어 경기 뛰는 꼴이니."

"그냥 도훈이 형이 도와줘요. 어차피 같은 팀인데."

"해 주실 거죠?"

주변의 다른 학생들을 이용해 교묘하게 압박하는 유미의 공세에 도훈도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알았어. 잠깐 리시브만 맞춰보자 그럼."

"꺄아. 역시 오빠라니까?"

유미가 신이 난 듯 소주잔을 원샷 때렸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유미가 다른 테이블을 옮기자 옆에 있던 민주가 조용히 물었다.

"···유미랑은 친해?"

"제가요?"

"몰랐는데 오늘 보니 굉장히 친해 보이네?"

도훈은 살짝 피로감을 느꼈다. 자신을 떠받드는 민주마저 질투심을 느낄 정도라면, 다른 여학생들의 눈총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휴, 이래서 다 같이 모여있으면 불편하단 말이야. 1:1로 공략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여자들의 견제와 질투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눈칫밥에 배 터지겠네 진짜.’

도훈은 그런 게 아니라며 둘러대다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화장실 앞에는 마침 희주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어엇? 이게 누구신지? 도훈 오빠?"

희주는 술을 좀 마신 듯 얼굴이 새빨갰다. 예전에는 술만 먹으면 죽은 깨가 올라와 빨간 머리 삐삐같은 못난이 느낌이 들었는데, 어느새 지금은 피부도 눈에 띄게 고와져 살짝 청순함 마저 풍기고 있었다. 마법의 정액으로 인한 극적인 변화였다.

화장실 앞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희주가 도훈에게 찰싹 들러붙었다.

"아잉, 보고 싶었다고용!"

"뭐, 뭐야! 애들 다 있는데."

도훈이 놀라 밀어냈지만, 과음한 희주는 막무가내였다.

"잉, 난 오빠 하나만 보고 캠프 온 건데, 서운하게 그럴 거예용?"

"날 보고 왔다니 무슨 소린데?"

도훈이 찰거머리같은 희주를 끝까지 떼어내며 물었다.

"정말 모르셨어요? 1학년 여자애들 다 비슷한 마음으로 왔을  걸요? 도훈 오빠가 수영 강사한다니까 온 거라고요."

"그건 네 생각 아니야?"

"아니에요. 저희끼리 단톡방에서 나왔던 얘기에요."

"단톡방?"

희주가 몸을 휘청휘청 하면서 계속 말했다.

"헤에-. 오빠 진짜 인기 좋던데요? 우리과 여자애들 몇 명이나 마음을 훔친 거예요?"

"내가 언제 뭘 훔쳤다고?"

"아니지. 마음을 훔친 게 아니고, 설마 몸을 훔쳤···. 읍!"

당황한 도훈이 희주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평소엔 티 안 내고 잘 감추더니, 술이 취하자 폭탄 발언을 서슴지 않고 쏟아내고 있었다.

"야! 뭔 소리야 하는 거야. 우리 희주 많이 취했구나!"

도훈은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큰소리를 내며 희주의 목소리를 희석시켰다. 그러자 희주가 입을 막고 있던 도훈의 손바닥을 낼름 혓바닥으로 핥기 시작했다.

할짝할짝-.

"읏, 뭐야?"

급기야 희주는 도훈의 손가락을 물더니 힘껏 빨았다.

쪽쪽-.

도훈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해 지금?"

"오빠 꺼 빨고 있잖아요, 헤에."

"더럽게 남의 손가락을 왜···."

"하나도 안 더러운데? 나 빨 것 좀 줘봐요."

"미쳤어? 갑자기 왜 이래? 안 하던 짓을 하고."

도훈이 정색하자 술김에 희주도 덤볐다.

"그래요, 미쳤어요. 술기운 오르니까 갑자기 땡기는 데 어떻게 해요 그럼?"

아무리 봐도 희주는 주량을 넘어선 것 같았다.

눈이 완전히 풀리고, 입에선 알콜 냄새가 진동했다. 술을 반주 삼으라고 줬더니, 고기를 안주 삼아 시작부터 술만 들이 부운 모양이었다.

"희, 희주야. 누가 들으면···."

"헤에, 오빠 당황하는 모습 귀엽네. 더 소리쳐 볼까요?"

희주가 갑자기 자세를 잡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아! 오빠 꺼 빨고···."

"희, 희주야!"

이번엔 도훈이 희주를 백허깅 하더니 완전히 입을 틀어 막았다. 이렇게라도 제압하지 않으면 도저히 난동을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웁웁!"

"잠시만 나랑 잠시 조용한 데서 얘기 좀 하자."

도훈은 희주를 납치하다시피 화장실 옆 창고로 끌고 갔다. 창고는 문이 닫혀있어, 딱히 누가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누가 있는지도 모를 음침한 곳이었다.

희주를 폐창고로 데려온 도훈이 문을 잠그며 말했다.

"희주야, 왜 이렇게 취했어?"

도훈은 최대한 차분한 톤으로 희주를 타일렀다. 이성을 잃은 상대에게 흥분하여 큰소리를 내봐야, 상대도 똑같이 소리칠 뿐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다행히 도훈의 방법이 먹혔는지 희주 역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히잉, 몰라요. 저 술만 먹으면···. 아니, 취하면 이렇게 된 단 말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희주가 창고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의자에 걸터 앉더니 말을 이었다.

"오빠 저 걸렌 거 알죠?"

"무슨 소리야. 난 그렇게 생각 안해."

[와, 거짓말. 언제는 걸레는 빨아도 걸레 어쩌고.]

‘인마. 상대가 감정적으로 흥분해 있는데 펙트 폭행해서 되겠냐?’

"제가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말해줄까요?"

"···뭔데?"

"바로 술 때문이에요."

"술?"

"이상하게 술만 들어가면 막··· 음욕이 솟구치고···. 하고 싶어 미치겠어요."

"지금 술 많이 마셨어?"

"하아···. 네."

희주가 다시 뜨거운 기운을 내뱉었다. 그녀의 말처럼 술을 진탕 마셨는지 알콜 샤워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서 소주 냄새가 진동했다.

"아니 오늘 밤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초장부터 이렇게 달리는 사람이 어딨어?"

"몰라요. 속상하단 말이에요."

"응?"

말을 하다 희주가 감정에 북받쳤는지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저는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한 것 밖에 없는데··· 흑, 흑."

희주가 난데없이 훌쩍거리자 도훈이 얼른 다가가 그녀를 위로했다.

"왜 이래, 갑자기. 너 답지 않게."

"제가 어쩐다고요? 오빠도 나 더럽다고 생각하죠? 그죠?"

"아니라니까, 그래. 누가 혹시 너한테 뭐라고 했어?"

도훈은 짐작가는 바가 있어 물었다. 희주가 훌쩍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까 샤워할 때 우연히 들었어요."

"무슨 말을?"

"양희주, 걸레 같은 게 아주 작정하고 왔다면서."

"뭐? 어떤 싸가지 없는 년이 그딴 소리를 해?"

도훈은 일부러 과장되게 흥분하며 희주 편을 들었다. 그 모습이 위로가 되었던지 희주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몰라요. 누군지는 못 봤어요. 한 둘이 아니었어요. 애들이 막 그러데요. 제가 오늘 비키니 입고 온 꼴이 남자들한테 대주려고 작정하고 온 거라면서."

"하···."

"저 소문 별로 안 좋은 거 아시죠? 다 사실이에요. 오빠도 알겠지만."

"희주야 그건···."

"상관없어요. 제가 아무 남자나 막 자고 다니는 건 사실이니까. 무, 물론 오빠가 아무 남자란 소린 아니지만요."

"······."

"근데 저도 억울해요. 그게 다 술 때문이란 말이에요."

"술?"

"모르겠어요.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술만 먹으면··· 몸이···."

희주가 갑자기 도훈의 손을 잡더니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헐렁한 반 팔티에 밑에는 몸에 딱 붙은 검은색 레깅즈를 입고 있었는데, 살짝 오버핏으로 상의가 허벅지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다.

희주가 상의를 들추고 가랑이를 벌리더니 옷 위로 도훈의 손가락을 갖다 댔다.

"어?"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는데, 레깅즈 가운데 술을 쏟은 것처럼 축축했기 때문이었다.

"여, 여기 왜 이래?"

"봤죠? 술만 마심 이렇게 돼 버린다고요."

"설마 ···젖은 거야? 이게?"

아무리 레깅즈가 얇다고 한들 팬티를 뚫고 옷 밖으로 흥건히 젖을 만큼 배어 나오려면 얼마나 애액을 쏟아냈다는 소릴까?

도훈이 놀라는데 희주가 다시 훌쩍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했다고요, 저는. 진짜로 아무것도 안했는데, 여기가 이렇게 돼 버린단 말이에요."

"술만 마시면?"

"술만 들어가면 그냥 줄줄 흘러요. 하고 싶어 가지고. 밑에 구멍이 난 것처럼요. 하아···."

희주가 다시 가쁜 숨을 쏟아냈다. 몸은 터질 것처럼 뜨거워지고, 당장이라도 쓰러질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예요. 변명 같지만 술자리를 계속하다보면 도무지 참을 수 없게 되버려서···. 누구든 좋으니 박아줬으면 좋겠고···."

"희주야."

"무, 물론 오빠랑은 아니에요. 맹세할 수 있어요. 오빠랑 술먹고 한 적 한 번도 없잖아요. 그냥 그런 일이 많았다는 거예요."

도훈은 희주의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일전에는 못난 외모에 대한 보상심리 차원으로 남자들을 유혹한다고 보았지만, 더 내막을 알고 보니 주사로 인한 충동적인 선택의 결과였던 것.

‘취하면 성욕이 오르는 여자들은 더러 봤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젖어버리는 여자는 처음보는구만.’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희주양 상태가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데요.]

‘뭘 어째? 가만 놔뒀다간 이성 잃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게 생겼는데. 우선 첫코는 희주로 때야지.’

도훈이 결심을 굳힌 듯 희주를 보고 물었다.

"지금 대줄래?"

< 970. 별이 쏟아 지는-3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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