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49화 (916/2,000)

< 932. 여름 방학-24- >

***

"오, 올인?"

"여기서?"

사방에서 경악에 찬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에게 중요한 일전.

미쓰리에겐 성공 보수 500이, 노태윤에겐 무려 5억이 걸렸다. 그리고 참가자 두 사람은 남성의 상징까지 내놓았다.

불안하긴 다들 마찬가지였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아이템 효과로 미쓰리는 도훈이 자신의 밑을 훑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란 대로 몰래 숨겨서 오긴 했는데···. 왜 쓰질 않는 걸까? 안 쓰고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소릴까?’

태윤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이번 한 판에 5억이다. 이걸 지면 나는 그대로 파산이야. 제발, 제발 이겨줘!’

오히려 구경꾼에 비하면 대호와 도훈은 끝까지 진중한 모습이었다. 특히 대호는 도훈이 가방을 뒤집어 돈을 쏟아붓자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으허허! 여기서 결단을 보자는 소리구만! 그래 좋다, 받아주마!"

대호도 모든 자금을 밀어 넣었다. 올인 판이다 보니 따로 돈을 세는 사람은 없었다. 게임 진행으로 볼 때 두 사람의 총액은 얼추 비슷했다.

패는 뿌려졌고, 모든 돈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마침내 건곤일척의 승부.

대호가 패를 뒤집기 전 입을 털었다.

"아야, 좆대가리 건 거 후회는 없겄냐?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면 불알 한 짝으로 퉁쳐줄 수 있는디."

"사나이가 한 번 질렀으면 끝까지 가는 거야. 바꾸 없어."

"나가 가슴이 아프다 안 카노? 아직 아도 없는 것 같은데 고자되도 괜찮겄어?"

"니미, 콜 때렸으면 얼른 패나 까. 입 털지 말고."

"니 분명 경고했데이. 후회마라."

대호가 패를 던졌다.

7과, 5.

합이 2끗.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노태윤은 대호의 패를 확인하는 순간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이, 이끗이라고? 지금 이끗으로 올인을 한 거야? 너, 너 이 자식 남의 돈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태윤은 실성한 사람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도훈이 그 모습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남의 돈? 둘이 한패 맞구나."

"와? 이제와 무르게? 도박판에 니 편 네 편이 어딨노? 돈 딴 놈, 잃은 놈만 있을 뿐이지."

대호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2끗이면 어떻고 2땡이면 또 어떻노? 어차피 니는 1끗일텐데.’

"너도 까라."

도훈이 하나씩 패를 뒤집어 던졌다.

첫 장은 대호가 뿌린 장미(6).

그리고 두 번째는···.

"또 장미?"

"우앗!!! 6땡이구나 오빠?"

대호는 얼이 빠졌고, 노태윤은 다리가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결과는 2끗 대 6땡으로 도훈의 완벽한 승리.

대호가 헛것을 본 것처럼 중얼거렸다.

"자, 장미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왜 없긴? 기리는 네가 해놓고선."

"말도 안 돼. 나는 분명히···."

대호는 말을 하다말고 아차 싶어 멈추었다.

진실을 밝히면 자신이 1끗을 만들기 위해 패를 바꿔치기했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 볼 것도 없이 끝났지?"

"자, 잠깐!"

대호가 발악했다.

"이건 사기여, 무조건 사기여!"

"사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증거 있어?"

"즈, 증거는!"

대호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반쯤 혼이 나간 태윤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었고, 미쓰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미쓰리가 자신의 눈을 피하는 걸 보고 직감했다.

"저, 저년이여!"

"뭐?"

"저 다방 년이 화투패 새로 가져왔잖아! 분명 저년이랑 짜고 친 게 틀림없어!"

도훈의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짜고 쳤다고?"

대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판단했다.

‘난 분명 놈한테 5를 줬어. 1끗을 쥐여줬다고. 내 손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아.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분명 중간에 바꿔치기 한게 틀림없어.’

그때 갑자기 도훈이 미쓰리의 몸을 더듬던 기억이 떠올랐다.

‘맞아! 아까 저놈이 여자 가슴에 손을 넣고 주물럭거렸잖아. 그때 몰래 패를 숨긴 거야. 분명해!’

"저, 저년 벗겨봐. 분명 몸에서 화투패 나온다!"

"아니면? 네 말에 어떻게 책임질건데?"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멘붕에 빠졌던 태윤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끼어들었다.

"이놈이 미쓰리랑 짜고 사기를 쳤다고?"

"맞다니까! 내 말 믿어!"

"그러니까 아니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도훈이 윽박질렀다.

대호가 말했다.

"영감. 아니면 판돈의 두 배를 준다고 하쇼."

"두, 두 배라니?"

"그래. 나 믿고 걸어보쇼. 내가 장담하니까."

"아, 아니 뭘 어떻게···."

태윤이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자 도훈이 정리했다.

"그러니까 미쓰리 몸에서 화투장 한 장이라도 나오면 지금 판돈의 두 배를 주겠다는 거지? 총 6억 걸렸으니까 12억. 맞아?"

"그래!"

"아, 아니 무슨 그런 중대한 결정을 자네 마음대로!"

"영감! 글쎄, 나만 믿으라니까!"

"지금 자네만 믿다 내가 무슨 꼴이···."

태윤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어차피 엎질러진 물인데 마지막으로 믿어보는 것도···.’

"뭐, 나야 손해 볼 것 없지. 받겠어, 영감?"

"그, 그럼세."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미쓰리를 향해 말했다.

"미쓰리. 벗어 줘."

"여기서?"

"이 양반들이 굳이 확인해야겠다잖아. 화끈하게 벗어줘 버려. 두둑히 챙겨 줄 테니까."

"아이, 참···."

미쓰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옷을 벗었다.

몸에 착 달라붙은 상의가 벗겨지자 하얀 살결과 함께 브래지어에 가린 커다란 가슴이 두둥-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어디 있다는 건데?"

"속옷! 속옷 안이 틀림없어!"

대호가 확신하듯 말했다. 브래지어 패드가 있는 부분이면 화투패를 숨기기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들었지? 브라도 벗어."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돼? 나 이래뵈도 이과나온 여자라고."

"실업계 아니었어?"

"인문계 맞아. 중퇴했지만···."

미쓰리가 실없는 소릴 하며 브라를 벗어 훅훅 풀어 헤쳤다.

그러나 대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녀의 몸에선 화투장 한 장 나오지 않았다. 미쓰리가 민망하듯 손바닥으로 젖꼭지를 가렸다.

"됐지?"

"···이럴 리가 없는데!"

대호가 현실을 부정했다.

"그, 그래! 치마! 치마 속을 뒤져야 해!"

"뭐?"

"아까 허벅지도 쓰다듬는 것 봤어! 분명 치마 속에!"

"이 미친놈이 진짜!"

도훈이 대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스타르탄의 벨트를 찬 그의 힘은 체격보다 훨씬 좋았다.

그러잖아도 힘이 좋은 도훈이 아이템 버프로 괴력을 발휘하자 덩치의 대호의 몸이 끌어 올라갔다.

"끝까지 인정 못 해?"

"에이씨, 진짜 봐라, 봐!"

그때 미쓰리가 짧은 미니스커트까지 훌훌 벗어버렸다.

놀랍게도 그녀는 노팬티였다.

"귀찮아서 빤스도 안 입고 나왔구만 진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미쓰리의 몸을 본 대호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이 개새끼가!"

퍼억!

도훈이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대호는 한 대 얻어맞고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도훈이 테이블 밑에 놓인 도끼를 집어 들었다.

"좆 짤리기 싫어,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네가."

쓰러진 대호의 가슴을 발로 밀어 넘어뜨린 도훈이 도끼를 쳐들었다. 조명 빛에 날카롭게 바루어진 도끼날이 번뜩였다. 피를 볼까 겁을 먹은 미쓰리가 눈을 감았고, 12억을 날린 태윤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저, 젊은 친구 제발 이것만은!"

"왜? 막상 잘린다니까 후달려? 그러니까 내가 확실할 때 걸라고 했지!"

도훈이 도끼를 내리찍었다.

도끼날이 쓰러진 대호의 가랑이 사이로 떨어졌다.

"꺄악-!"

"아, 안돼!"

미쓰리의 비명과 대호의 울부짖음이 서라운드로 어울렸다.

콰직!

도끼는 정확히 대호의 불알 끝에서 1cm 떨어진 곳에 찍혔다. 아슬아슬 도끼가 비켜나갔고, 이를 확인한 대호는 지나치게 겁을 먹은 나머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그의 바지춤이 곧 축축하게 젖어갔다.

도훈이 도끼를 멀리 내던지며 말했다.

"그러게 쫄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고 있어? 뒤질라고."

[어휴, 전 주인님이 진짜로 찍는 줄 알았습니다. 왜 손속을 봐주셨나요?]

‘그냥. 피보기는 싫어서. 그리고 놈이 마지막에 그랬잖아.’

[뭘요?]

‘지금이라도 빌면 불알 한 짝으로 끝내준다고.’

[아아···. 그랬죠.]

‘아주 질 나쁜 놈은 아닌 거 같아서, 겁만 주고 끝냈어. 내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게다가 원래 목표는 대호가 아니었잖아.’

[잘하셨습니다.]

눈을 감았던 미쓰리 역시 도훈이 봐준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진짜로 자르는 줄 알았네."

"넌 옷이나 입어."

"응."

도훈은 난리가 벌어졌는데도 얼이 빠져 멍하니 앉아 있는 태윤에게 다가갔다.

"영감. 이건 이거고, 우린 이제 계산 마쳐야지?"

"······."

태윤은 아직도 눈에 초점이 없었다.

충격으로 실성한 노인네같았다.

도훈이 그의 따귀를 철썩 때렸다.

짝-!

"정신차려, 정신!"

"어, 어엇!"

"어떡할 거야, 내 돈. 남은 6억 더 받아내야겠는데."

"사, 살려주게! 제발 한 번만 살려주게!"

정신이 든 태윤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도훈의 구두발에 이마를 찧으며 조아렸다.

"흑흑, 내가 잠시 미쳐 가지고 저놈의 꾀임에 넘어가고 말았네. 제발 없던 일로 해주게나."

60대 노인이 비굴하게 용서를 비는데도 도훈은 가차없었다.

"이거 왜 이러실까? 피차 알만한 양반이. 개평 없는 판인거 몰랐어? 나도 목숨 걸고 도박 한거야."

"제, 제발! 지금 5억도 전 재산이나 마찬가질세. 더 이상 줄 돈도 없어!"

"웃기시네. 어제 부동산에서 보니 건물 몇 개 있더만? 그거 팔면 되잖아."

"그거다 깡통이야. 정말 먹고 죽을 래도 없어."

"깡통이라고?"

"그, 그래. 이리저리 저당 잡힌 거 제하면 지금 이 돈이 내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네. 제발 이걸로 안 되겠나? 젊은 친구. 내가 이렇게 빔세. 제발···."

사정을 다 들은 도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가 한 가지 재밌는 사실 알려줄까?"

"뭐, 뭘 말인가."

"마른 수건도 짜니까 물이 나오더라고. 영감도 쥐어짜면 어디선가 나올 거야."

"지, 진짜래도! 날 아무리 털어도 저게 전부네."

"하다 못 해 친척이라도 있을 거 아니야? 돈 많은. 거기서 빌리면 되겠네. 아니면 내가 가서 받아올까?"

"그건 안되네. 제발 한번만 이 불쌍한 노인네를···."

도훈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어, 어떻게 말인가? 내 줄 수 있는 건 다 주겠네."

"영감 조카 하나 있지? 예쁜 여조카."

"그, 그걸 자네가 어떻게?"

"요즘 같은 세상에 친족 관계 하나 못 털까 봐?"

"으으···."

"대충 보니 무남독녀 외동딸이더만? 집은 부자고. 맞지?"

"그, 그렇네만···."

"그 여자 나한테 넘겨. 그럼 남은 6억 빚은 없던 걸로 해줄테니까."

"너, 넘기라고? 내 조카를?"

"그래. 내가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알아서 할 테니까. 나한테 넘기라고. 영감도 살아야지 않겠어? 어때?"

6억을 건 제안.

노태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계산기를 때렸다.

‘그, 그래. 어차피 민주는 김변에게 작업 치기로 했었잖아. 이렇게 된 이상 나라도 살려면 민주를 저 타짜놈한테 넘기는 것도···.’

결심을 마친 태윤이 조카를 팔아 넘겼다.

"아, 알겠네. 그렇게 하겠네."

도훈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정말 천하의 쌍놈이구나. 자기가 궁지에 몰렸다고, 나 같은 도박꾼에게 친조카를 넘기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저럴수 있을까요.]

"잘 생각했어 영감. 그럼 오늘부로 당신 조카는 내가 작업 치는 걸로. 만에 하나 이 사실을 발설했다간."

도훈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에 오줌을 지리고 기절한 대호가 볼썽사납게 누워있었다.

"그땐 진짜로 어디 하나 잘리는 거야."

"아, 알겠네. 네, 단단히 명심하겠네."

"말귀가 통해서 좋구만. 어이, 이과 나온 미쓰리."

"엉?"

"가방에 돈 담아. 볼일 끝났으니까."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미쓰리가 도훈의 가방에 돈을 쓸어 담았다. 자그마치 6억에 이르는 현금이다 보니 넣는데 한참 걸렸다. 돈이 절반 쯤 담겼을 때 도훈이 말했다.

"거기까지."

"어? 아직 한참 남았는데?"

"네 몫은 확실히 챙겨줄 테니 더 욕심내지 마."

"아니 그래도···."

미쓰리가 산처럼 쌓인 현금다발을 보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도박으로 딴 돈이지만, 어쨌든 돈은 돈이었다. 도훈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가방을 어깨에 들춰매며 말했다.

"난 원래 딴 돈의 절반만 가져가. 그게 내 철칙이야."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태윤이 놀라서 소리쳤다.

"저, 정말인가?"

"입막음으로 주는 거니까 앞으로 처신 잘해. 앞으로 조카 일에는 얼씬도 말고."

"고, 고맙네! 젊은 친구! 저, 정말 고맙네!"

노태윤이 체면도 잃고 도훈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12억을 모두 잃은 줄 알았던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3억만 손해를 봤으니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돈 가방을 챙긴 도훈이 미쓰리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바닥에 바짝 엎드린 태윤은 일어설 줄 몰랐다.

< 932. 여름 방학-24- > 끝

ⓒ 성난불기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