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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91화 (858/2,000)

< 873. 처녀 보살-15- >

장군은 한 번 의문을 품으면 끊임없이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여기서 내려가서 다른 산을 오른다는 소린가?’

하지만 도훈이 하산한다고 했으니 그것도 말이 맞지 않았다.

더욱이 산악회 회원이라고 했는데, 굳이 무리를 이탈해 개별행동을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분명 부부 사이도 아니라고 했는데···.’

두 사람은 유난히 사이가 다정해 보였다. 특히 여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 주는 모습에선 애틋한 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이로 봐선 둘 다 기혼자처럼 보이는 게 문제였다. 장군은 그쯤 추리가 이르자 두 사람의 관계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설마!"

"응?"

도훈은 묵묵히 장군의 뒤를 따라가던 중 장군이 갑작스럽게 내뱉는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가 설마야?"

"설마 불륜이란 소리야?"

"으잉?"

두 사람과 교차 한지 한참 지났기 때문에 도훈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면서 되물었다. 그러다 맥락을 훑고는 대답했다.

"아, 아까 그 불륜 커플?"

"지, 진짜로 불륜이 맞아?"

"여태껏 그 생각하고 있었어? 난 딱 보니 알겠던데?"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뭘 그렇게 놀래 또?"

"아니 바람을 피워도 곱게 피울 것이지 뭐하러 산까지 올라와서···."

도훈이 순진한 장군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너 진짜로 뭘 모르는구나?"

"내가 뭘?"

"하긴. 혼자 지낸 시간이 많으니 누구한테 그런 이야길 들어 볼 기회가 없었겠네. 원래부터 산악회는 불륜의 온상으로 유명해.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등산을 핑계로 남녀가 모이기 좋으니까."

"정말로?"

"등산 한 번 하면 하루 꼬박 걸리잖아. 그러니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눈치 볼 필요 없지. 중간에 저 사람들처럼 몰래 새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게 뭐야? 운동 핑계 삼아 가입해서 제각기 짝짓기하는 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지금은 거의 없겠지만, 한때는 묻지마 관광이란 것도 있었잖아."

"묻지마 관광이라니?"

"처음 보는 남녀 회원들끼리 모여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관광버스 타고 멀리 떠나는 거야. 그러다 버스 안에서 눈이 맞아서는 제각기 모텔로 흩어지는 거."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숫처녀인 장군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특히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뭐, 나도 그 나이가 안 돼봐서 잘 몰라. 그쯤 되면 막 바람피우고 싶어지나?"

"···더러워.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몰래 바람이나 피우다니."

장군은 진심으로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남자친구 한 번 사귀어 본 적 없는 장군에게는 도훈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도 불결하고 더럽게 느껴졌다.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거고, 되도록 정혼자와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보수적인 장군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관이었다. 도훈은 장군이 보이는 격렬한 반응을 보고 생각했다.

‘마인드가 무슨 조선 시대 씹선비 수준이군.’

[왜요? 정숙하니 보기 좋기만 한데.]

‘그만큼 공략이 까다로워지니 문제지. 안 그래도 처녀라서 부담스러운데 섹스에 대해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느낌이잖아. 저런 보수적인 애를 무슨 수로 하룻밤만에 자빠뜨린담?’

[그러니 주인님이 더욱 분발하셔야죠.]

‘살짝 떠볼까?’

"뭐···. 나도 그리 좋게 보는 건 아닌데, 인간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뜻이야?"

장군이 바짝 날을 세웠다.

"아니, 솔직히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막말로 밥만 먹고 살면 얼마나 질리겠어? 라면도 먹고 외식도 하고 그러는 거지."

"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니?"

"아니 왜 나한테 화를 내?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냥 최대한 이해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장군의 격한 반응에 도훈도 움찔 놀라 물러섰다.

‘씹선비다 진짜. 내가 본 여자 중에 가장 씹선비. 하긴 처음 만났을 때 한복 입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 마인드가 아직도 조선 시대에서 벗어나질 못 했구만.’

"난 조금도 공감되지 않아."

"뭐, 그러시던가."

대화를 마친 장군은 기분이 상한 것처럼 팩 돌아서더니 성큼성큼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훈과 거리를 벌리려는 고의가 느껴졌다.

"천천히 가. 그러다 다쳐."

"알아서 할 테니까 내 신경···, 아악!"

아니나 다를까 발을 헛디딘 장군이 경사로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발목을 붙잡은 장군이 고통을 호소했다.

"으, 으 발목."

"괜찮아? 그러게 천천히 가래도!"

도훈이 후다닥 뛰어가 장군을 살폈다.

"신발 벗어봐."

"신발은 왜?"

"상태가 어떤지 봐야 할 거 아냐?"

"괜찮아. 실수로 발을 헛디딘 것뿐이야."

장군은 무리해서 일어서려 했지만 두 발로 서는 순간 찌릿한 고통이 엄습하며 그대로 다시 고꾸라졌다. 도훈이 쓰러지는 장군을 부축했다. 장군은 고통이 심한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바, 발목이 너무 아파."

"일단 바닥에 앉아."

"으, 응."

장군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않고 도훈의 말을 따랐다.

"신발 벗긴다."

도훈이 조심스럽게 등산화를 벗겼다. 그 정도 충격으로도 발목이 시큰거리는 지 장군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아냈다.

"으으."

도훈은 양말까지 모두 벗겨 장군의 발목 상태를 살폈다. 복숭아뼈 부근으로 빨갛게 부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전형적인 염좌 증세였다.

"심하게 삐었네."

"삐었다고?"

"발목을 접질렸다고. 그러니까 바닥을 잘 보고 다녔어야지."

"미, 미끄러진 거야."

"그러게 내가 천천히 가랬잖아."

"······."

"내 가방 줘봐."

"가방은 또 왜?"

"혹시 몰라 뿌리는 파스 챙겨왔어. 뿌리고 나면 좀 괜찮을 거야."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장군이 무심결에 가방을 벗더니 도훈에게 건넸다. 어깨끈이 사라지자 장군의 젖꼭지가 뿅 튀어나왔지만, 도훈은 모르는 척 시선을 피했다.

‘아파서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나 보군. 보기 좋으니 모르는 그냥 모른 척하자.’

도훈은 가방을 뒤져 안쪽에서 구급낭을 꺼냈다. 구급낭이라고 해봐야 파스와 반창고, 빨간약과 압박 붕대 정도가 든 조그만 파우치였다.

"살짝 따가울 거야."

"으, 응."

파스 캔을 흔든 도훈이 복숭아뼈 부근으로 칙칙- 파스를 뿌렸다. 장군이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파스를 모두 뿌린 도훈이 이어 압박 붕대를 집어 들자 장군이 물었다.

"그걸로 뭐 하려고?"

"이대론 계속 못 걸어. 감싸줄 테니 발 들어 봐."

"괜찮아. 굳이 그럴 필욘."

"고집 피우지 말래도 그러네? 안 그럼 내가 너 업고 가야 한다고."

도훈의 성화에 장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발을 들었다. 도훈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장군의 다리를 받쳐 들고는 능숙한 솜씨로 압박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장군은 맨발에 닿는 도훈의 손길에 너무나 부끄러웠다.

‘창피하게 이게 무슨 꼴이람···.’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훈의 침착한 응급처치와 배려심에 감동하기도 했다.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것 같아도 마냥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은근 자상한 데도 있고.’

붕대를 매던 도훈은 그제야 장군의 상반신을 쳐다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너 근데 의외로 대범한 구석이 있다?"

"내가 뭐?"

"아니. 난 아까 말하는 것 듣고는 굉장히 보수적인 타입이라고 생각했거든."

"응?"

장군은 여전히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경황이 없다 보니 노브라인 것을 깜빡해버린 것이었다.

도훈이 계속 변죽을 울렸다.

"하긴, 요샌 뭐 걸 크러쉬다 뭐다 하면서 그렇게 다니는 사람도 많다더라."

"자꾸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크흠. 아니 너 거기."

도훈이 손가락을 들어 젖꼭지를 정면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장군이 사색이 되어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꺄, 꺄악! 어, 어디 보는 거야 지금?"

"내가 뭘?"

"어, 어서 고개 돌려!"

"아니 지가 노브라로 입고 와 놓고 갑자기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도훈이 툴툴대며 고개를 돌렸다. 장군을 얼굴을 빨개진 채 어찌할 줄 몰랐다.

"가, 가방 줘."

"내 가방인데?"

"얼른 달라고!"

"알았어."

어느새 압박 붕대를 감싼 도훈이 구급낭을 챙겨 가방을 건넸다. 장군은 후다닥 가방을 다시 메더니 변명했다.

"이, 이건 실수야."

"알았어."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내가 뭘? 솔직히 말하면 난 노브라 운동 지지하는 사람이야. 남자들 입장에선 보기만 좋지 뭘."

"벼, 변태."

"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린지 모르겠네."

"너 다 봤지?"

"뭘?"

"···아, 아니야."

장군은 더 언급하기 부끄러웠는지 말을 삼갔다. 하지만 당장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떻게 해. 도훈이 날 이상한 여자로 오해할 거야.’

장군은 자신이 도훈 앞에서 유난히 실수가 잦다고 생각했다. 혼자 빨리 가려다 발목을 삔 것도 자신이었고, 브라에 땀이 차서 벗어 버린 것도 자신이었다. 사실상 도훈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장군이 부끄러워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파스를 뿌리고 압박 붕대를 감싸서 그런지 아까보다 한결 발목이 덜 아팠다.

"···아, 아무튼 고마워. 이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무리하지 마. 거기서 더 다치면 꼼짝없이 산에 갇힐 판이니까."

"알았어."

"그리고 가방 무거우면 나한테 줘. 내가 대신 매고 갈게."

"그건 괜찮아."

장군은 가방이 신줏단지라도 되는 것처럼 꽉 붙잡았다.

어깨끈이 없는 상태론 뽕 튀어나온 젖꼭지가 마중을 나온다는 것을 의식한 것이었다.

"다, 다시 가자."

장군이 다시 앞장섰다. 그러나 도훈에게 노브라를 들켰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으휴, 진짜 오늘 왜 자꾸 이러는 거지?’

응급조치하긴 했지만, 한 번 삔 발목은 정상이 아니었다. 아까보다 확연히 등반 속도가 느려졌다. 속도를 맞춰 뒤따라오는 도훈의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졌다. 장군은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에 도훈에게 사과했다.

"미안···. 괜히 따라온다고 해서. 난 짐만 되는 것 같아."

"아니야. 뭘 그런 것 가지고."

도훈은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끝까지 자신을 배려하는 모습에 장군도 점점 마음이 흔들렸다.

‘도훈이는 정말로 자상한 것 같아. 저렇게 괜찮은 애가 자살까지 생각했더니, 도저히 믿기지 않아.’

갑자기 생각이 미친 장군이 도훈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어디서 귀인을 만난 거야?"

"나?"

"응. 여기 근처라지 않았어?"

"정확히 기억 안 나. 일부러 능선을 피해 비탈길로 빠져나갔거든. 죽을 때 죽더라도 폐 끼치기 싫어서."

"폐를 끼치다니?"

"등산객들이 올라왔다가 시체 보면 심장 떨어질 거 아니야. 그냥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가려고 했지."

"아···. 안 무서웠어?"

"안 무섭긴. 당연히 무서웠지."

"어쨌든 다행이야. 그렇게 살아줘서."

장군이 진심으로 위로했다.

도훈은 그녀의 말속에서 따듯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씨도 곱고 몸매도 착한데, 하필 씹선비라니.’

[도저히 공략할 길이 안 보이십니까?]

‘기회를 엿보는 중이야. 일단은 호감도부터 차근히 쌓아야지.’

[간만에 정석 공략이로군요.]

‘그러게 말이다. 엄한 지리산까지 오르고 있고. 여자 하나 따먹으려고 별짓을 다 해보네.’

[미션이나 업적은 갈수록 어려워질 겁니다. 한국이 아닌 세계로 뻗어 나가셔야 할지도 모르고요. 지리산이면 그나마 낫죠.]

‘방학이라 다행인 건가? 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대학생 방학 2달은 진짜 사긴거 같아. 여름 겨울 합쳐서 년중 1/3은 논다는 거 아냐? 이런 꿀이 어딨냐?’

[원래 지나고 나야 소중한 것을 깨닫는 다죠.]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이런 거냐? 말하고 나니까 꼬추 가렵네.’

사실 도훈도 장군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무 발기 상태에서도 허벅지에 쓸릴 정도인 대물이, 습기 찬 팬티 안에서 고통받고 있었던 것.

도훈은 무심결에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땀이 젖은 불알을 한 번 쓱 훑었다. 그리고는 다시 손가락을 뺀 다음 자기도 모르게 코로 가져가 킁킁댓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하필 그 장면은 앞서가던 장군이 우연히 보고 말았다.

도훈이 급히 손을 뒤로 감추며 대답했다.

"아니 나는 그냥···."

"벼, 변태."

"아니야 오해야."

"됐어. 나한테 말 걸지 마."

장군이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다시 발걸음을 빨리했다. 절뚝거리는 걸음에서 다급함이 느껴질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도훈은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소리쳤다.

"아, 아니야. 그런 거 내 말 좀 들어보라고."

"싫어! 불결해."

"아니 그게 아니라."

"악!"

무리하던 장군이 다시 쓰러졌다.

도훈이 한숨을 푹 쉬며 장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그, 그 손 치워."

그 손은 도훈이 꼬추를 만졌던 손이었다. 도훈이 잽싸게 반대손을 내밀었다.

"이건 깨끗해."

"그걸 어떻게 믿어?"

장군은 도훈이 치한이라도 되는냥 눈을 흘겼다. 좋은 사람인가 싶다가도 가끔씩 하는 행동은 오해를 사기 딱 좋았다.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항변했다.

"오해를 하더라도 최소한 변명은 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갑자기 바지에 손을 넣어서 거길 만졌잖아!"

"아 놔 진짜. 오해래도 그러네."

"무슨 오해?"

장군이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도훈을 노려보았다.

< 873. 처녀 보살-1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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