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7.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7- >
정신조작.
흔히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영화 X맨에서 휠체어를 탄 대머리 아저씨가 주로 사용하는. 나에겐 정신조작을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아이템이다.
메저키스트의 밧줄이라 불리는 이것으로 대상을 옭아매면, 그 순간 상대는 살아있는 마리오네트가 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너무 거추장스럽다. 더구나 주머니에서 갑자기 밧줄을 꺼내 장미를 묶는다면, 다른 여자들이 나를 변태라고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또 다른 하나는 상식개변 스킬이다.
상대에게 그릇된 상식을 주입하여, 인식 오류를 일으키는 수법. 현재로선 그것이 가장 최선으로 보인다. 다만 상식 개변은 아무에게나 쓸 수 없다. 호감도가 너무 낮으면 말 빨이 먹히지 않는다. 일단은 장미가 나에게 가진 호감도가 어떤 상태인지부터 확인부
터 해야 한다.
‘로시, 빠르게 상태창.’
[네,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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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장미현, 예명 ‘장미’ (비처녀, 일시 21세 2개월)
나이 : 29 #새끼마담#초고속 펠라#관록의 소유자
호감도 : 86/100
개방성 : A
성감대 : 목구멍, 클리토리스, 목덜미
*애무 포인트 : 펠라를 무척 좋아하는 타입입니다. 자신이 애무를 받을 때보다, 남자 것을 빨 때 더욱 흥분합니다.
성욕지수 : 높음.
공략팁
*그녀는 당신의 대물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녀는 당신과의 원나잇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도 해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해 낙담한 상태였습니다.
-추천행동 : 그녀에게 정체를 밝히기만 하십시오. 그녀는 기꺼이 당신의 육변기를 자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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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상당히 흐른 것 같은데도 여전히 80이 넘는다니.’
[미현양이 주인님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던 모양입니다. 또한 호감도 하락 방지 버프의 효과도 있었을 테구요.]
‘하긴. 그게 쉽게 잊혀질리 없지. 장소도 장소거니와 동시에 셋을 상대하는 특수한 경우였으니.’
[어쨌든 상식 개변을 걸기엔 호감도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오케이.’
"더 가까이 와봐요."
나는 장미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 둘만 겨우 들릴 크기였다.
"내 상식에 따르면, 이런 데서 우연히 지인을 만나면 절대 아는 채 안 하는 게 매너라죠?"
"···으, 응?"
상식 개변이 들어가자 순간 장미의 눈빛이 흐리멍덩해졌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뒤바뀐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정체를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맞아요, 제가 그때 그 기둥이에요. 흑보 누나."
"헉!"
장미가 대번에 눈을 부릅떴다.
나는 연이어 덧붙였다.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으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을까요?"
"저, 정말?"
"아니면 제가 누님이 흑보라는 걸 어떻게 알겠어요. 흑장미씨."
"아, 아···."
둘이서만 속삭이자 여름이 대번에 야유를 보내왔다.
"뭔데? 대체 뭐라고 쏙닥거리는 건데?"
"쉿-. 방해마. 지금 그거 반칙이야."
윤솔이 곧바로 제제했다.
"아니 나는."
"아까 너도 똑같이 귓말 했어, 한여름."
윤솔이 여름을 붙들고 있는 사이, 놀란 장미에게 계속 말했다.
"얼굴이 많이 바뀌어서 놀랐죠?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어, 어떻게···."
"그러니까 여기서는 제발 모르는 척해주세요. 그거 하나만 약속해주면 다음에 제가 누나 부탁하나 들어드릴테니까."
넌지시 조건을 내걸자 장미가 곧바로 말귀를 알아 먹었다.
"···무슨 부탁이든지?"
"네. 누님이 원하는 건 다."
"분명 약속했다?"
"물론이죠. 대신 여기선 누나 안 고를 거예요."
"알겠어."
귓속말이 끝나자 장미가 웃으며 일어섰다. 상의까지 탈의해서 달려든 주제에 막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윤솔이 그 점을 지적했다.
"뭐야, 벌써 신고식 끝?"
"응. 끝."
"둘이서 대체 무슨 얘길 한 건데? 한참 얘기했었잖아?"
"비밀이야."
윤솔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생각보다 신고식은 시시하네. 아무튼 결정 내렸니?"
"이제 고르면 되는 건가요?"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장미와 여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장미는 아직도 믿기지 않은 지, 내 얼굴을 자꾸 힐끔거렸고 여름은 당연히 자신이 뽑힐 것이라 믿는지 윙크를 날리고 있었다.
"그래. 네가 직접 파트너를 고르는 거야. 둘 중 누구로 고를래?"
"꼭 둘 중에서만 골라야 하나요?"
"응?"
의외의 질문에 윤솔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무슨 뜻이야?"
"저는 여기서 누나가 제일 마음에 드는데."
"나를?"
윤솔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미리 언질을 받았던 장미는 괘념치 않는 표정이었으나, 자신이 뽑힐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여름은 분노에 차 소리쳤다.
"뭔데 지금! 신고식은 나랑 장미 언니가 했는데, 뜬금없이 윤솔언니가 소환되는데?"
"나보고 정하라며? 그래서 고른 건데? 문제 있어?"
"와, 너 진짜!"
예상대로 여름이 폭발했다.
스스로의 외모에 자신이 넘치는 여자니만큼 방금의 역선택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 더 의외는 윤솔이었다.
"정말 나라고? 왜?"
그녀가 이유를 물어왔다. 뭔가 관심이 동했는 뜻이다.
"누님이 가장 제 취향이거든요."
"내가? 하-."
윤솔이 어이없어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아 보였다. 어쨌든 가게에 놀러 온 텐프로 셋 중 자신을 인정해준 셈이니.
잠깐 놀라던 윤솔은 이내 차가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섰다.
"나는 싫은데?"
"네?"
"난 너 얼굴 못생겨서 별로야. 못생기면 눈치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어림없는 거절.
처음엔 멘탈이 나가 흔들렸지만, 이제는 이것이 윤솔의 독득한 스타일이란 걸 안다. 그녀는 남자를 당혹 시키고, 무시하며 휘두르는 마녀같은 여자.
이런 여자는 설사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라도 본심을 숨기는 타입이다. 얼굴이 빻은 지금의 나에겐 두말할 나위 없고.
하지만 쿠사리 좀 먹었다고 쉽게 물러서면 안 된다. 남자로서 자신감을 잃는 순간 그녀는 상대를 완전히 열외 시켜 버린다. 자존심이 상해도 버텨야 한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나의 선택이 싫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반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가 눈치는 없어도 고집은 좀 있거든요. 누나가 여기서 고르라고 했고, 저는 그래서 누나를 고른 건데요."
아까처럼 당황하지 않고 맞받아치자 윤솔도 약간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면전에서 못생겼다고 싫다는 데도, 달라붙는 사람은 거의 못 봤을 테니까.
"난 아까 분명히 말했어. 신고식을 한 사람 중에서 고르는 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죠. 아, 이러면 되겠네요."
"어떻게?"
"누나도 저한테 신고식 한 번 하실래요?"
"뭐라고?"
윤솔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진심으로 화가 난 모습이었다.
[주인님, 불안하게 왜 이렇게 상대를 도발하십니까? 상대는 미션 공략 대상입니다.]
‘나도 알고 있어.’
[더구나 윤솔 양을 도발하는 것도 도발하는 거지만, 동시에 여름양 또한 무시하고 있습니다. 여름 양도 공략 대상이구요.]
‘알고 있다고.’
[이러다 둘 다 놓치면 어쩌시려고. 그나마 한 명이라도 건지는 게 최선 아닐까요?]
‘어차피 All or Nothing이야. 로시 네 말처럼 지금 도발이 실패하면 둘 다 잃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둘 다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은 거야.’
[둘 다 얻다뇨?]
‘여름인 걱정할 필요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자존심이 무척 센 여자처럼 보이니까.’
[그러니 더 열 받지 않을까요? 주인님이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데.]
‘바로 그거지.’
[네?]
‘여름은 살면서 자기가 마음에 든 남자는 모두 취했을 거야. 그러니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겠지.’
[그건 그렇죠. 어리고, 예쁘고, 매력적이니까요.]
‘그러니 만만히 봤던 나에게 뺀찌를 먹으면 얼마나 약이 오르겠어.’
[충분히 그럴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야. 자존심이 센 여자는 그걸 절대 못 참거든. 어떻게 해서든 윤솔에 꽂힌 나의 관심을 돌리려 들겠지. 난 그때 적당히 줄타기를 하면 돼.’
[하아, 이건 완전 도박인데요.]
‘그래서 말했잖아. 모두 취하거나, 모두 잃는 전략이라고.’
[여름 양은 그렇다치고, 윤솔 양은요? 주인님을 이렇게 대놓고 괄시하는데 무작정 들이댄다고 승산이 있다 보십니까?]
‘윤솔은 상대적으로 더 복잡한 인물이야. 여름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부심도 높을뿐더러, 남자를 골탕 먹이면서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는 유형이지.’
[쉽지 않겠군요.]
‘내 예상인데, 내가 설사 얼굴이 멀쩡한 이도훈이었더라도 어려운 상대였을 거야.’
[그럴리가요.]
‘아냐. 생각해봐. 객관적으로 동탁이 나보다 못생겼어?’
[그건 아닙니다.]
‘그치? 호빠 에이스라는 동탁이, 이 가게 간판이라는 동탁 조차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어. 그만큼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게 쉽지 않다는 소리지.’
[확실히 그렇네요.]
‘내가 볼 땐, 윤솔은 자꾸 얼굴을 본다고 하는데 실제로 얼굴을 많이 따지는 타입이 아닌 것 같아.’
[그럼요?]
‘자신감이지.’
[네?]
‘외모에서 드러나는 자신감. 재력에서 느껴지는 당당함. 권력을 가진 자가 보여주는 자신만만한 태도. 바로 그런걸 중요시 하는 거라고.’
[오오.]
‘한마디로 자신 앞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남자를 찾는 거야. 그 원천이 얼굴이 됐건, 돈이 됐던, 아니면 하다 못해 부모님 빽이 됐건 말이야. 자신의 월등한 외모에도 주늑들지 않는 당찬 남자를 원한다는 거지.’
[그게 주인님의 분석입니까?]
‘그래. 그러니 윤솔에겐 뻔뻔하게 나가야 돼. 저런 타입은 괜히 비위 맞춘다고 고개 숙이고 들어갔다간, 윤솔은 맨틀 층까지 처박아 버리고 말걸? 윤솔은 그런 여자라고.’
나의 뻔뻔한 대답에 윤솔이 표정이 굳히며 말했다.
"네가 아주 사람은 만만히 보는구나?"
***
"네가 아주 사람은 만만히 보는구나?"
도훈의 분석은 정확했다.
윤솔은 티를 내지 않고 있지만, 그의 말처럼 속으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대체 뭐야? 무슨 자신감인데?’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선수 할 얼굴이 아니었다.
선수할 말빨도 아니었다.
선수할 끼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누구보다 당당했다.
아니 뻔뻔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을 픽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든 여름과 장미를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사실이었다.
‘하-. 정말 기가 막히네. 감히 텐프로 앞에서.’
여름과 장미는 어느 누가 봐도 예뻤다.
가게에서 가장 잘나가는 여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텐프로 치고 다소 떨어지는 평가를 받는 장미조차 밖을 걸어다니면 열에 아홉을 놀라서 쳐다볼 만큼 객관적인 미인이었다.
무려 텐프로다.
유흥업계 상위 10프로!
말이 10 프로지 실제 일반 여성들을 모두 포함하면 상위 1 퍼센트 안에 들 것이다. 애초에 유흥업에 뛰어든 여자라면 뚱뚱하거나, 너무 못난 경우는 애초부터 필터링 되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들 중에서 10% 안쪽만 뽑는다는 텐프로니 만큼 감히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여자 둘의 구애를, 도훈은 보란 듯이 거절하고 있었다. 그리곤 신고식도 하지 않았던 자신을 찍었다.
윤솔은 그 점이 어이 없으면서도 한편으로 기분이 좋았다.
‘짜식, 그래도 여자 보는 눈은 있네.’
"만만히 안 봤습니다. 자세히 보았습니다."
"뭐라고?"
"누가 그러데요. 자세히 보아야 이쁘더라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고요. 누나도 그렇네요."
도훈이 응용한 것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한 구절이었다. 다른 여자들은 무슨 쌩뚱맞은 소린가 했지만, 인텔리인 윤솔은 곧바로 도훈이 유명한 시에 빗대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 봐라? 저 시를 알아?’
윤솔은 사실 못 생긴 남자보다 무식한 남자를 혐오했다.
일단 본인 스스로가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지식이 얕은 사람과는 대화 자체가 되질 않았다.
그녀가 주로 정관계 고위 관료나, 전문직들을 접대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돈만 많다고 만나주지 않는 여자였다. 그녀는 국제 정세나 전문적인 금융용어에도 능통했고, 수준 높은 대화를 즐겼다. 사실상 그녀의 가장 높은 허들은 바로 지적 수준에 있
었던 것.
‘얼굴은 못 생긴 게 시 좀 읽었나 보네.’
윤솔은 도훈이 점점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호빠 선수라고 당연히 기대도 안 했던 부분을 도훈이 충족시키고 있었다. 이쪽 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잘난 얼굴만 믿고 학창시절 공부를 내팽게 친 사람이 태반이었다.
얼굴은 반반한데 얘기를 나누다 보면 5분도 못 가 깡통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것은 텐프로 업소녀든, 호빠 선수든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도훈은 달랐다. 더욱이 다른 동료들이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점도, 그에 대한 평가를 바꿔놓고 있었다. 남들이 욕심내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흥, 말은 뻔지르르 하긴."
윤솔의 태도가 한풀 꺾였다. 도훈이 여세를 몰아 밀어 붙였다.
"말만 뻔지르르하진 않고요. 제가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합니다."
도훈이 슬슬 섹스어필을 시작했다.
< 787.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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